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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3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4월 13일

제목 : 내 인생의 사마리아

말씀 : 사도행전 8 :4-13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4-13 주일2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메시지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TAaxcngW


 내일 오후에 호주에 집회를 하러 가게 됩니다.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환절기에 건강도 잘 챙겨야 할 것입니다. 새 달, 새 주가 될 때마다 새롭게 갖추고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미래 준비를 하나하나 해 나가면서 잘 인도 받기 바랍니다.

Ⅰ. 어려움은 영적으로 철들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은 영적으로 철들게 합니다. 어려움이 오지 않았으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려움들이 저의 영적인 부분을 철들게 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부분입니다. 어려움이 방황으로, 포기로, 아예 믿음을 포기하는 길로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인간관계라던지 가정의 상처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많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면 모두 합리적이고 맞는 이야기이며 다 그럴 듯합니다. ‘저는 부모님 때문에, 제가 교회에서 받은 상처가 있어요.’라고 합니다. 진짜를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복음이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고 구원의 은혜가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데 그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려움이 영적으로 철들게 하여 이 자리에 섰습니다. 철이 들었다는 말은 스스로 책임을 지고 앞뒤좌우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갓난아이가 마음대로 하는 것을 철들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육신으로는 사람이 철이 들지만 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무언가가 늘 걸려 있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철이 들고 보면 부모님이 이해가 되고 세상이 이해가 되듯이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가정을 주신 이유가 나 때문이고, 이런 계획을 가지신 것이 나 때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신앙의 철이 들어야 합니다. 신앙의 철이 들면 사마리아가 보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묵상해보려고 합니다.

Ⅱ.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1.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_사도행전8:4

지난주 설교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스데반의 순교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의 순교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가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사실 예루살렘 초대교회성도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핍박 속에서 예수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뜻밖의 시련이 닥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왜 이런 어려움을 줬냐고 하지만 그것은 신앙의 철이 들게 하는 과정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신앙의 철이 들고 말씀의 흐름을 탄 것입니다. 그것이 본질을 놓치지 않고 개혁하는 올바른 믿음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도 본질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힘들어진 것이 오히려 복음전파를 더 넓고 적극적으로 하라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냥 두면 예루살렘에만 모여 있을 그들을 핍박을 통해 흩으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예루살렘을 떠나면서 비로소 사도행전 1:8말씀을 깨달았습니다. 예루살렘을 도망치면서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생각대로 계획하고 ‘하나님 왜 이렇게 하셨나요.’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계회과 섭리가 있습니다. 어려움은 우리를 영적으로 철들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한마디로 좋은 소식입니다. 굿 뉴스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입니다. 그래서 이번주와 다음주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복음을 받고 구원을 받아 인생이 변했고, 그렇게 변한 사람들이 또 복음을 들고 나가 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침묵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면 그들이 핍박 속에 흩어졌지만 또 거기서 그리스도를 전파한 것입니다. 복음을 진짜 가진 사람은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것입니다. ‘왜 우리집이 이렇게 되었지? 나는 왜 이런 곳으로 발령이 왔지?’가 아닌, 복음을 전할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는 것입니다.

2.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서 전파하니_사도행전8:5

사마리아 성이 어디입니까? 사마리아는 유대인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을 지나서 가면 금방 갈 길을 저주 받은 땅이라며 지나지 않고 돌아서 다녔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적대적인 땅, 저주받은 땅이라고 했는데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왔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고, 또 빌립집사가 사마리아에 왔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예수님이 놀랍게도 사마리아를 거쳐야 땅 끝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빌립집사와 사역자들이 마음에 담은 것입니다. 우리의 가까운 곳이 변하지 않고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그토록 원망하고 미워하는 곳이 변하지 않고 세계복음화가 가능할까요? 나의 가장 안 되는 것이 바뀌어야 다른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반대로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그곳의 백성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한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함의 결과입니다. 사마리아에 가고 그 곳에 가자마자 복음을 전한 것은 성령충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았더니 드디어 사마리아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3.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_사도행전8:7a

이들은 사마리아에 가서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사단의 쑥대밭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땅을 저주 받은 땅이라고 외면하는 동안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그런 땅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마리아 땅을 보고 저주받은 곳, 더러운 곳이라고 욕만 하고 있었던 그들이 과연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까? 아니면 종교인이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기도를 듣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변에 복음을 몰라 쑥대밭이 되어있는 현장을 보시길 바랍니다. 놀라운 것은 성령이 그 현장에도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누구나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입견과 계산으로 그것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이 말씀을 전하니 귀신들이 떠났고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았다고 합니다. 말씀은 치유하고 회복하게 하십니다.

4.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_사도행전8:8

아마 사마리아 사람들은 평생 기쁨을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왜 항상 저주가운데 있는지 태어나니 앉은뱅이이고 중풍병자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지금 3세계 현장이 그렇습니다. 이유도 원인도 모르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게 재앙이 와 있는데 그것이 재앙인 것도 모릅니다. 성령의 사람 빌립집사님의 복음사역이 그 사마리아성 전체 분위기를 바꾸어버렸습니다. 사마리아가 얼마나 우울하고 어두운 도시였습니까? 그들은 희망도 소망도 없었습니다. 늘 무시와 차별을 당했습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소외당하고 찌든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는 완전히 쑥대밭이 된 곳이 사마리아성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니 사람들이 변하고, 귀신이 떠나고, 병이 낫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왕의 자녀의 권세를 주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런 역사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이런 기쁨이 진짜 기쁨으로 포럼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기적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Ⅲ. 내 인생의 사마리아

이 말씀을 적용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번 주 고난주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말씀이 되어 질 것입니다. 내 인생의 사마리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정하기 싫고, 머리로는 알겠는데 삶속에서는 외면하고 사는 그것을 우리는 우리의 기도속으로 가지고 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낮은 곳, 가장 비참한 곳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 인생의 사마리아는 어디입니까?

1. 귀신들린 자, 중풍병자, 못 걷는 사람

저는 제가 목회자로써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나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정죄했습니다. 알고 보면 제 모습인데 제 모습이 다른 사람 모습에서 보이면 그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말은 안 하고 행동은 안 해도 속으로 속앓이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느 날 알게 된 것입니다. 제 인생의 기준이 영혼구원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수천 년을 인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것 때문에 모진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영혼구원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가 목회를 하는 동안 기준이 되길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역사와 모든 사람, 모든 죄, 모든 것의 기준을 구원으로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조금만 응답받으면 다른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조금만 남의 흠이 보이면 파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사마리아는 어디입니까? 무엇입니까? 귀신들린 자로 중풍병자로 못 걷는 사람으로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 수치를 내어놓으시길 바랍니다. 목회를 쉽게 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이 일찍 죽는다고 합니다. 아마도 속앓이를 많이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도사 때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전도사 때 가장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 때는 책임이 없으니 일은 힘들지만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내면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때로는 기다려야 되고 포기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생각하면서 ‘직장에서는 얼마나 힘들까, 가정에서는 얼마나 힘들까’ 생각합니다. ‘아, 이 사람은 많이 기다려줘야겠네. 아, 이 사람은 정말 사랑해줘야겠네.’ 일이 아닙니다. 영적인 일이 생깁니다. 힘든 것이 사라집니다. 기준이 바뀌면 다 부질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그렇게 됩니다. 그 기준이 내 안에 들어오면서 내 인생의 내 인생의 사마리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전에는 남의 것만 보이고 남의 탓만 하다가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안에 들어오고 나니 내 죄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해결하고 넘어가야 사마리아에 가서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수치스럽지만 그것을 사랑하게 될 때 진짜 것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은 정말 영적인 것입니다.

A

‘너희는 온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_마가복음16:15-16’

이것이 여러분의 기준이 되기 바랍니다.

2. 마술사 시몬

사마리아에 마술사 시몬이 있었습니다. 기쁨이 없는 우울한 사마리아 성에서 최고의 인기쟁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을 보고 빌립집사의 기적을 보더니 자신도 믿겠다고 합니다. 결국 이 시몬이 나중에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저도 속을 뻔 하였습니다. ‘시몬이 변화되어 제자가 되었구나.’하고 넘어갈 뻔 했습니다. 그런데 18절부터 보니 시몬이 그 성령의 역사를 돈을 주고 사려고 합니다. 나에게도 병을 낫게 하는 성령 역사가 나타나도록 팔라고 한 것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_디모데전서6:10’

유명한 마술사인 시몬이 돌아왔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처음부터 복음에 말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큰 표적과 큰 능력에 놀라서 그런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기적에 있지 않습니다. 말씀이 지겨워도, 이 복음이 정말 듣기 싫어도 그것이 들려서 달콤해야 하고, 그것이 내게 은혜가 되는 사람이 진짜 크리스천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이것을 돈을 주고 사려고 합니다. 그것이 믿음에서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돈 뿐이 아닙니다. 그 무엇인가 믿음에서 떠나게 한다면 그것에서 떠나야 합니다. 미국의 한 티비 프로그램에서는 성령의 역사를 팔고 있습니다. 티비에서 안수를 하는 장면을 보이면서 입금을 하면 동시에 안수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돈을 주고 은혜를 사려 하는 것입니다. 마술사 시몬 같은 신앙인이 아니라 말씀의 은혜를 받는 신앙인이 되기 바랍니다. 지금 시대에 교회안에 그런 모습들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그것과 싸워야 합니다. ‘나는 헌금을 많이 했는데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는거야.’라고 합니다. 헌금은 하나님 앞에서 한 것입니다. 봉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안에서는 비교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내 인생의 사마리아를 봐야 합니다. 그 아픔, 상처는 사람이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사마리아가 있습니까? 그것을 치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가능합니다.

Ⅳ. 교회의 핵심 사명

교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요약하면 그것입니다. 고난이 왔지만, 그것 때문에 짜증도 날법하고 억울할 법도 하지만 본질로 돌아간 것입니다. 사실 사람 때문에 가장 시험에 많이 듭니다. 그런데 사람 때문에 은혜를 못 받으면 억울합니다. 어제 청소년 신학원에서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잔소리 하는 엄마가 가장 싫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사마리아가 엄마인 것입니다. 그 아이를 나중에 따로 만났습니다. 엄마 때문에 교회에 가기 싫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엄마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너의 인생은 어떻게 되겠냐.’라고 했습니다. 쓰레기통에 결혼반지가 빠졌을 때 더럽다고 그냥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방황하고, 공부도 포기하고, 예배도 안 드리면 결국 누구 손해입니까? 사단의 전략이 먹힌 것입니다. 교회가 자꾸만 본질을 놓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것 때문에 이 땅에 오신 것인데 우리는 그것만 놓칩니다. 시대가 변화되고, 세상이 발전하고 빠르게 진행되어 우리도 갱신하고 도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본질, 즉 핵심사명은 놓치지 않아야겠습니다. 그것이 곧 영혼 구원입니다.

영혼구원은 무엇으로 가능할까요? 곧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영혼을 사랑하면, 사마리아같은 사람의 영혼도 사랑하게 됩니다. 전도는 방법이 결코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기도하게 되고 사랑하면 모든 것을 품어줄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과 늘 싸우는 기도제목입니다. 빌립집사가 사마리아 땅을 밟았을 때 그 땅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잘 안 될 때가 있습니다.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참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면 참아집니다. 그것이 다른 것입니다. 이번 한주 고난 주간에 슬퍼할 것이 아닌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묵상하는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래서 그 사랑으로 여러분의 사마리아가 품어지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그릇이 생각이 잘못된 선입견이 깨어지길 바랍니다.

‘하나님도 나도 이웃도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그곳이 바로 지옥이고, 땅끝입니다._땅끝의 아이들, 이민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