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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7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4년 12월 07일

제목 :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말씀 : 마태복음 10:34-39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12-07 주일1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s0WKG4

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13821508



2014-12-07 주일 1부 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말씀이 들리면_‘1년의 그릇준비

 

창립 1주년입니다. 사실 부끄러운 마음이 많습니다. 더 용기 있게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사역을 하지 못하고 현실과 정해진 틀 안에서 아등바등 거렸지 않나 싶습니다. '교회 한 개가 더 생긴들 이 땅이 변화되겠나? 작은 개척교회가 건강한들 영향이나 끼치겠나?'라는 불신앙도 수도 없이 해보았습니다. 그뿐입니까? 제가 제 모습을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저 같은 무능하고 게으르고 부족한 자가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은혜가 있었습니다. 제게 머물러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제 무능과 교회의 상황과 아무 상관이 없고 이 은혜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그 은혜를 받으니 하나님이 보이고, 내 자신이 보이고,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1년입니다. 너무 짧게만 느껴지는 1년이었지만 하나님은 참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면 우리는 그 일에 쓰임 받으니 참 감사하고, 또 그 일을 위해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이제 1년을 그릇준비를 해 왔지만, 어쩌면 우리는 다음세대를 위해 평생 그릇준비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그릇 준비를 해야 할까요?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_데살로니가전서2:13’

 

모두들 착각하고 오해하는 것은 프로그램을 준비하거나, 성전을 짓거나, 재정을 마련하거나 하는 준비로 생각합니다. 다윗이 성전 지을 준비를 다 했지만 정작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것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이 오실 메시아를 보길 원하셨습니다. 진짜 그릇준비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입니다. 저는 일 년 동안 오직 그 한 가지를 바라보며 말씀을 나눴습니다. 이 말씀이 믿는 자 가운데 역사하도록 하는 것이 신앙인이 할 일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감사도 회복됩니다.

신앙의 완성은 없겠지만, 신앙의 유일한 기준은 말씀이 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과거도 아니요 어쩌면 미래도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가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지난 일 년간 끊임없이 우리를 비워왔습니다. 말씀을 담기 위해 방해되는 것들을 이겨왔습니다. 여러분이 응답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생각하실지 모르나 그것은 세상의 방정식으로 볼 때 그렇지 우리는 참 많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했고, 순종하기 시작했으며, 그 말씀을 따라 한걸음을 내딛어 내 삶의 여명원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잘못된 신앙관, 잘못된 교회관, 잘못된 인생관의 틀에 갇혀서 세상이 두려웠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예배 하는 인생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오래 걸릴지언정 그것을 위해 저는 또 한해를 살아가렵니다.

 

. 신앙생활의 오해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큰 4번째 말씀을 주십니다. 신앙생활을 오해하면 정말 열심히 하고도 억울할 것입니다. 그런데 내게 유익한 말씀만 들으려 하기 때문에 성경을 오해하게 됩니다. 많은 교회들이 달콤한 말씀만 합니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균형 있는 말씀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신앙생활의 오해가 풀리기 바랍니다.

 

1. 잘되는 것이 신앙인가_마태복음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_마태복음10:34’

 

화평의 주님, 평강의 주님이 오셨는데 검을 주러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에 대해 다들 입으로 아멘은 하지만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계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축복받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잘살기 위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너무 가난한 시대에 예수님을 만난 많은 목사님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을 믿음이라 가르쳐서 가난에서 벗어났고 그리고 너도 나도 믿음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고 검을 주러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화평이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검은 진리를 뜻합니다. 히브리서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검이라 표현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이 땅에 진리를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유일한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진리가 신앙의 목적입니다. 진리가 중요합니다. 잘되는 것이 신앙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진리가 신앙입니다. 신앙생활이 바르지 않는데 잘되는 것은 저주입니다. 자식이 틀린길을 가면 부모가 매를 들어 때려야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둔다면 진짜 부모가 아닐 것입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신앙생활이 바르지 않는데 어찌 화평이 의미가 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올바른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신앙생활을 바르게 했는데 잘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바른 선택일 것입니다.

 

2. 가족이 신앙인가_마태복음10:35-36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니라_마태복음10:35-36’

 

두 번째 말씀은 더 태산 같습니다. 이제 가족 간에 불화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도대체 왜 그러세요?' 저는 이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저희 큰 누나가 저희 집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방법이 옛날 방법이어서 동생들을 모질게 했습니다. 큰누나가 예수님을 만나고 살길이 이것이라 여겨 세상에 빠져 잘 먹고 잘살고 있는 동생들에게 모질게 한 것입니다. 예수 믿으라고 한 것입니다. 미움도 받고, 외면도 당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다 봤습니다. 동생들이 몰라줬었습니다. 특히, 매형들은 큰누나가 왜 그러나 했습니다. 그런데 생명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안 큰누나에게는 그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다 살았습니다. 저를 살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누나가 너무 모질어서 원망도 했습니다. 새벽기도가 너무 가기 싫었는데 누나는 모질게 저를 깨워서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제가 방황을 할 것 같으면 정말 모질게 대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살길이었습니다. 반대로 가족중에 힘 있는 사람이 불신앙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온 가족이 다 죽는 길로 그렇게 끌려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 중에 예수님을 믿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 너무 귀한 것입니다. 핍박도 있고, 고난도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를 살리기 위해, 부모, 자식을 살리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눈물로 기도하고 섬깁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내 가족이 천국에 가면 됩니다. 내 가족이 예수를 믿고 그 은혜에 머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신앙하는 가족에게 예수 믿는 가족이 궁합이 잘 맞아 같이 불신앙하고, 같이 불의를 저지르고, 같이 사단의 종노릇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다 죽는 길입니다. 그래서 불화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등 돌리고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신앙생활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제대로 된 신앙생활

 

1.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신앙_마태복음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_마태복음10:37’

 

제대로 된 신앙생활의 첫 번째는 무엇일까요? 참 어려운 이야기지만 분명한 것은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신앙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더 사랑해야 합니다. 아들이나 딸보다 더 사랑해야 합니다. 살면서 그것이 가장 힘들 수 있습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이 부분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육신보다 영이 먼저입니다. 사실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신앙의 가장 첫 번째는 누구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저는 참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할 때 늘 비교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면 '왜 나만 하지? 왜 내가 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거나, 낙심하거나 혹은 교만할 때도 있습니다. 우쭐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헌금을 많이 하면 그렇기도 합니다. 십일조를 많이 했다고 생각하면 교회에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정말 웃기는 신앙입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으로 구원받아 예수님을 사랑하면 살게 된 것이 은혜인데 왜 비교를 할까요? 주님이 좋아서 헌신하는 것이고, 주님이 좋아서 궂은일도 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좋아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교회 안에 세상방정식이 들어와서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하니 열심히 하고, 헌금 많이 하면 축복받는다 하니 헌금 많이하고, 성전건축하면 세계복음화 될 것처럼 내 사업이 잘될 것처럼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틀린 신앙입니다.

사랑하는데 조건이 있습니까? 내가 내 자녀를 사랑하는데 조건이 있습니까? 내 부모를 모시는 데 조건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무슨 조건이 있습니까? 그냥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무슨 조건이 있습니까. 그냥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배드리면 축복 받을 거야,'가 아닙니다. 그냥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는 봉사도 그냥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큰 사랑을 받았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부모보다, 자녀보다 더 사랑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데 어찌 부모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으며, 자녀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까? 내 부모가 나로 인해 예수님을 만나 천국 가는 것보다 더 큰 효도가 있을까요? 내 자녀가 아무리 좋은 유산을 물려준들 주님과 멀리 세상의 방정식안에서 살아 고통을 당하는 것이 좋습니까? 내 자녀가 예수님을 구주삼아 한평생 주님 뜻대로 귀히 쓰임 받는 일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_마태복음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리라_마태복음10:38’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 중 두 번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것은 동기가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룟유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도 예수님을 제법 따라다녔습니다. 어려운 여정을 다 소화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한 자리 하려고 참고 견딘 것입니다. 조건을 보고 사랑한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의 크신 사랑을 받았음에 우리 인생이 이제는 전혀 다른 인생이 되어야 하는데 세상을 더 사랑해서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늘 남 탓, 세상 탓 심지어 하나님을 탓합니다. 내가 주님을 떠나 살던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잘난 척, 가진 척, , 척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십자가도 싫다 합니다. 나 혼자 신앙생활하고 나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까? 아닙니다. 교회를 번드러지게 짓고 많이 모여서 성공했다 부흥했다 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할 정도의 신앙이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교단안의 서밋팀을 섬기는데 거기에는 정말 똑똑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중 한 괜찮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엘리트가 엘리트로써 살지 않으면 나라가 위기가 올 것이다. 엘리트가 자기 역할을 해야지 비겁하게 살면 안 된다. 너는 최선을 다해 공부해서 성공할 생각 말고, 기업을 만들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 돈을 벌어서 많은 직장을 만들어야 한다. 건강한 기업이 많아야 나라도 건강해진다. 그것이 엘리트에게 주신 사명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내게 붙여주신 부모, 자녀, 형제는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을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저 소외되고 병든 저들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교회가 그래야 합니다.

 

3.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신앙_마태복음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_마태복음10:39’

저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따르니 목숨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내 목숨을 살리고자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이익이 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손해가 된다 싶으면 귀찮아합니다. 신앙이 귀찮은 것입니까? . 저와 여러분은 지금 그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저희 어머니가 새벽예배를 다니신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려고 그러시나 보다 했습니다. 어머니 말씀이 걸작입니다. ‘내가 좋아서 간다야. 하나님이 좋아서 가지야그러십니다. 처음에는 한 시간을 걸어서 가셨다 합니다.

신앙은 내가 살아야 가족도 나라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살려면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죽어야합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무릎을 꿇어야 살 수 있는 것이 신앙입니다. 내가 잘나서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도리가 없습니다. 재물, 지식을 가지고 문을 열지 않으면 어찌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가정이 화평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저주 중의 저주입니다. 잘난 맛으로 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절대 예수님은 못 만납니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내 수준을 빨리 파악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시작합니다. 내가 못하는 데 부끄럽다고 잘한 척하면 절대 공부를 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잘되는 척, 잘하는 척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자존심이 필요합니까? 목숨을 내어놓으십시오. 세상에 구걸하지 마시고, 명예와 재물에 목숨을 내놓지 마시고, 사단 마귀 귀신에게 내어놓지 마시고 날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께 내어놓으십시오. 그것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세 번째 비결입니다. 예수님께 목숨을 내어놓으면 살게 됩니다.

 

. 모두를 살리는 길_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이렇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길이 곧 모두를 살리는 길입니다. 내 가족도 살리고, 내 사랑하는 조국도 살리는 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즉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오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있어야 살고 가족이 아닌 예수님을 사랑해야 사는데 자꾸 이상하게 가르칩니다. 잘되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이라 하고, 또 가족을 위해 신앙생활 한다고 하며 신앙을 떠나게 되는 것도 너무 많이 봤습니다. 진리 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사랑 안에 거하면 내가 살게 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_데살로니가후서3:5’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2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어떤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까?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하면 됩니다. 그것은 미래의 이야기도 과거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지그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하면 됩니다. 그것이 신앙의 정점입니다. 과거에 그러셨습니까?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면 미래에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다 틀린 것입니다. 지금, 오늘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하는 신앙인이길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기준이 되시면 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도 덮느니라_베드로전서4:7-8’

 

그제야 가족을 진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면서 내 자식의 허물, 부모의 허물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꾸 자식의 허물을 정죄하고, 부모의 모진 인생을 비난한다면 아직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땅의 소외된 자, 병든 자, 심지어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들을 살리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무엇으로 가능합니까? 주님의 사랑으로 허다한 죄를 덮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내가 예수님을 누구보다 더 사랑하여 예수님을 따를 때 내 가족도, 내 인생도 예수님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 축복이 우리교회에 넘치길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는 지금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세상방정식 안에서 내 유익을 위해 주님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것이 당장은 유익이 될지 모르나 정말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미련하고 어리석은 신앙생활임을 깨닫게 하여주세요.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누구보다 더 사랑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길 원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따를 때 내 가족, 내 인생도 예수님을 따르게 하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