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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5-12-06 주일 1부 예배


2015-12-06 주일 1부 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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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창립 2주년 감사 : 시대를 담는 축복의 그릇

교회를 개척할 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2년 전 이맘때쯤 어린 선우네 집에서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나눈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시대를 향한 축복의 그릇을 마음에 담고 믿음에 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가 되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변화되어 세상에 빛이 되고 사랑을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시작했었는데 솔직히 한동안 염려하고, 걱정했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마태복음을 설교를 하면서 신앙에 관해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질을 놓치고 있구나,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목사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제에 저에게 비판적인 모습이 있었습니다. 또 그러면서도 주류에 속해서 인정받고 잘 먹고 잘사는 것에 매력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그런 것이 믿음이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마태복음 설교를 하면서 그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천국을 보았고,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고, 은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회개를 시작하게 되었고 평안과 안식을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예배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사가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 되는 거구나. 염려나 근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되는 거구나' 그런 믿음이 생겼습니다.

사실 이렇게 예배당도 주셔서 편하게 예배드리고, 교회가 2년 만에 조직이 구성될 만큼 예비 임직자와 또 훌륭한 장로님을 보내주신 것도 전부 제가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응답들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또 그런 응답들을 바라보면 본질을 놓칩니다. 본질은 구원이고 하나님의 사랑이며, 말씀의 은혜입니다.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할 때 남은 인생도 책임져주시는 것에 우리가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문제도, 어려움도 응답이라고 생각될 만큼 신앙생활을 회복해야 합니다. 문제가 오면 우리는 문제라 생각하지 구원이나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믿음을 갖고 싶습니다. 어려움, 위기가 올 때도 믿음을 지키는 목회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시대를 담을 수 있는 축복을 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깨어지고 어그러진 세대를 담게 됩니다. 우리의 불신 가정, 가문, 이웃을 담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믿음의 사람으로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시대에 가스펠 교회로 살게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Ⅱ. 믿음은

1. 새벽에_마태복음28: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_마태복음28:1’

안식일이 지나고 새벽에 마리아는 무덤을 보려고 갔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작은 시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믿음이라는 것은 크고 대단한 것이라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크고 대단한 것보다 작은 것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된다고 합니다. 작은 시간, 작은 적용, 작은 응답이 훨씬 대단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은 전부 대단한 것들로 우리를 현혹합니다. 대박 났다고 합니다. 대단한 것들을 해야만 응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상실감도 큰 시대입니다. 그런 세상적인 것들이 교회 안에도 들어왔습니다. 특별기도회, 특별집회, 특별한 프로그램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쫓아 살다보니 삶을 잃어버렸습니다. 매일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다는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성탄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야제를 하는데 그것이 우리를 위한 전야제인지, 주님을 위한 전야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기 위해 성탄절인지 정말 예수님을 경배하는 성탄절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나이트클럽에서 노는 거랑 교회에서 노는 거랑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 프로그램들이 없으면 교회에 안가니까요.

여러분 매일 작은 시간을 내어 말씀을 묵상하고 그 묵상을 적용하며 사는 것은 아무런 가치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큰 사건을 만나서 크게 기도하고 큰 응답을 받아야 할까요?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으십니까? 우리에게는 작은 기도도 없고 작은 응답도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마리아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무덤에 갔다고 하는데 그것이 믿음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일이 지나고 당장 내일 새벽에 우리는 말씀을 적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부터 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서부터 그것이 필요합니다.

2. 영적인 사실_마태복음28:2-6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_마태복음28:2-6’

사람들이 왜 그것들을 하찮게 생각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예 기대도 없이 살아갑니다. 그것이 사탄의 전략이 아닐까요? 부활도 믿지 않고 재림도 바라보지 않습니다. 말씀에 관해서는 무감각하고, 무지합니다. 얼마나 우리가 바뀌어야 하나 생각해봅니다. 왜 기도하지 않을까? 왜 묵상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을까? 우리는 늘 염려하면서 왜 하나님을 찾지 않을까?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녀도 육신적인 기준만 찾아 삽니다.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은 천사가 돌을 굴려내고 앉아 있으니 완전 기절해버렸습니다. 마리아는 두려워서 엎드려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그래도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절은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일이 발생하면 기절해 버립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믿는 건지 그냥 취미생활을 하는 건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전부 영적인 세상 안에서 돌아간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3. 달음질 할 새_마태복음28:7-8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_마태복음28:7-8’

그래서 믿음이 자라는 것은 어디에 포인트가 있을까요?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서 만날 것을 말씀하셨을 때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하였습니다. 영적인 세계를 보니 무섭기도 하고 예수님이 말씀대로 부활하셔서 기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 삶에 적용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이 자라나는 포인트입니다. 우리가 예배 때 말씀을 듣고 찔리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깨닫기도 합니다. 그러한 감정들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달음질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가 정말 멀어진 채로 신앙생활하게 됩니다. 마음의 염려와 근심이 떠나지 않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요한계시록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와 더불어 먹으리라 무슨 말입니까? 식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주보고 식사하고 싶답니다. 우리는 그 식사 자리를 외면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같이 밥은 먹기 싫습니다. 결혼도 해서 부부인데 식사를 평생안합니다. 대화도 없고, 교제도 없습니다. 그걸 쇼 윈도우 부부라 한다지요. 마치 신앙도 쇼 윈도우처럼 합니다. 달음질은 단순히 열심히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을 믿으며 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의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살아납니다. 어떤 것이 살아나는 것입니까?

Ⅲ. 살아나는 것

1.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_마태복음28: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_마태복음28:9’

‘예수님께서 그들을 만나’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만나주시는 인생이 진짜 복 받은 인생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돈이 많아도, 세력이 있어도 예수님이 만나주지 않으면 그것처럼 불행한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은 당신을 버린 제자들까지도 만나주셨습니다. 우리가 작은 믿음만 있어도 됩니다. 우리가 만날 준비가 되면 만나주십니다. 그 준비도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것이 믿음의 이유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것이 교회의 존재이유입니다. 우리가 직분도 받고, 교회의 시스템도 만들어서 움직입니다. 왜요?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을 만나도록 돕기 위해섭니다. 왜 전도합니까? 전도 많이 해서 인정받으려고 합니까? 아닙니다. 내가 만난 주님을 만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내 부모가 내 남편이 내 자녀가 주님을 만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유를 놓쳐버립니다. 믿음의 이유, 과정, 목적이 다 여기에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니 믿음이 변질됩니다. 믿음이 교만이 되기도 하고, 믿음이 지식이 되기도 합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만나시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전도사님이 새로 오셔서 제가 교역자님들에게 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저와 함께 교회를 섬기는 교역자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주일이면 가장 많이 은혜 받고 가장 많이 살아났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 주님 만나게 해주는 직업이지만, 그러려면 주님을 만나는 삶이어야 합니다. 애석하게도 목사님이 주님을 만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애석하게 교역자들이 사역은 열심히 하면서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건강하지 못하게 됩니다. 믿음은 살아나는 것이고 살아나려면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살아난다는 것의 증거가 무엇일까요? 주님이 도망친 제자들을 만나자 처음 하신 말씀입니다. ‘평안 하느냐’

2. 평안의 이유_요한복음20:19-23,31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너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_요한복음20:19-23’

오늘 말씀의 내용이 조금 더 자세히 기록된 요한복음에 보니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도망쳤지요?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래서 만나자 마자 ‘괜찮다’라고 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도망가도 괜찮고, 자신을 배신해도 괜찮았습니다. 구원받는 것이 예수님에게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삶의 이유도 구원이 될 때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진짜 평안의 이유는 구원입니다. 구원을 위해 살았던 다윗이, 바울이 평안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평안이면 영원히 평안을 맛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평안이면 진짜 평안을 맛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죽어서 지옥에 가면 좋은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요? 수준 있게 교양 있게 사는 것이 다 의미가 없습니다. 진짜 평안은 구원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_요한복음20:31’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평안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가장 평안할 때가 언제입니까? 믿을 때입니다. 허드슨 테일러라는 중국에서 사역한 선교사가 있습니다. 이분이 사역을 하다 쓰러졌습니다. 몸이 아파서 쓰러진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병이 아닙니다. 마음의 병으로 쓰러졌습니다. 보아하니 중국의 그리스도인을 보면서 늘 화를 많이 냈다고 합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중국 사람들에게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합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그걸 모르겠습니까? 아침마다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저에게 평안을 주세요. 제가 이렇게 화를 많이 내서 저 영혼들을 살릴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저녁에 그것이 안 된 모습을 보고 늘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쓰러진 것입니다. 병상에 누워있는데 메카디라는 친구 선교사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주님이 내안에서 일하게 하라'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사역했던 것입니다. 내 의를 위해, 내 사역의 결과를 위해 뛰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살지 않았구나. 믿음으로 살지 않았구나. 그걸 깨닫고 믿음이 생겼다고 고백합니다.

염려와 두려움을 없애려고 노력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삶을 살도록 노력해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과 친밀하십니까?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옆 사람과 친밀하십니까? 지금 우리 친밀해집시다 하면 친밀해집니까? 새끼손가락 걸고 우리 친한 사이입니다. 하면 됩니까? 아니지요. 어떻게 하면 친밀해집니까? 서로 인사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또 묵상일기를 나누고, 함께 선교도 가고, 수련회도 하고, 미션홈에서 교제도 하고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친밀하게 됩니다. 주님과 친밀해지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 왜 우리가 주님과 친밀하지 못하지요? 밥 같이 먹자고 오셨는데 우리는 친밀하려고 전혀 노력하지 않아요. 그렇지요? 주님은 우리 마음에 오셨는데 목적을 가지고 오셨어요. 함께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제가 묵상일기를 쓰라고 한 것은 주님과 친밀해지라는 거예요. 믿음은 그런 것입니다. 믿음은 변합니다. 자랍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믿음은 사라집니다. 굳어버립니다. 병듭니다. 살아나셔야 합니다. 주님과 친밀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3. 내 형제들에게_마태복음28: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_마태복음28:10’

‘내 형제들에게’ 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참 좋았습니다. 자신을 버린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셔서 구원을 완성하시고 제자들이 이제 세상의 기준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를 오라고 하셨습니다. 왜 십자가 지셨습니까? 우리의 염려와 근심을 바꿔주기 위해서입니다. 무거운 짐이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지요. 단순히 육신적인 문제,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이 말씀은 마음의 짐을 이야기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없다면 주무셔도 됩니다. 아니면 그냥 돌아가셔도 됩니다.

사람들은 재정이 넉넉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과 수고하고 무거운 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더 수고하고 무거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오늘 주님이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누가 부르셨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왜 마음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여전히 있습니까? 하나님하고 관계가 끊어져서 그렇지요.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간병하던 부인이 남편이 오랜 시간 투병하다가 죽었는데 남편을 따라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남편이 죽고 육신적으로 편안해졌는데 왜 자살을 했을까요? 육신적으로 간병을 할 때 자살을 하지 않았습니다. 병든 남편이 있을 때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사라지니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믿음은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것인데 그러면 살아납니다. 믿음이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살도록 인도해주시고 계십니다. 거기에 반응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형제라고 생각하십니다. 형제여 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형제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 살아야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 것을 믿어 살아나도록, 그래서 살리도록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육신으로 살지 말고, 성공으로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도록 기도합니다.

✔ 주님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실제로 믿는 믿음을 주옵소서. 그것은 크고 놀라운 사건에서뿐만 아니라 작고 사소한 우리네들의 모든 삶에서 믿음으로 살길 원합니다. 문제가 있을 때, 어려움이 올 때만 믿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모든 삶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살길 원합니다. 주님과 친밀한 교제가 있는 삶을 살아 세상의 것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마음이 아닌 주님이 주신 평안이 있는 인생이 되게 해주세요. 세상 나라에 속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형제가 되어 영원을 바라보고 사는 안식이 있게 해주세요. 그런 인생이 부요한 인생이요, 또 주님을 만나지 못한 영혼들을 부요케 할 인생임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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