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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5-12-31 송구영신예배 2부

 

 

2015-12-31 송구영신예배 2강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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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예수님이 이끄시는 교회_요한복음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_요한복음21:18’

습관은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특히, 마음의 습관은 더욱 힘이 있습니다. 분노가 저에게 있었습니다. 잘 못한다 싶으면 정죄하고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특히, 내 마음과 다르면 하기 싫고 짜증나고 그랬습니다. 그것은 제 마음이 병들었다는 것이지요. 지난 마태복음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가장 큰 응답은 제 마음이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답답하거나 짜증이 나지 않습니다. 그냥 참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행복한 것이 아니라 매일 주님을 바라보니 행복합니다. 그 행복이 있으니 환경과 여견, 사람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몇 년을 두고 제 마음의 습관을 바꾸려고 기도했습니다. 쉽게 되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안 그래야지 하면서 선택의 순간에 제 마음에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이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야 하는데 제가 나타납니다. 그것이 습관입니다.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것부터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묵상일기를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에 주님의 말씀을 담기 위해서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묵상노트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정말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묵상노트를 사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저에게 가져오시면 제가 노트 첫 페이지에 여러분을 위한 기도를 기록해드리겠습니다. 내년에는 제가 개인적으로 저축을 하려고 합니다. 묵상일기는 작은 것입니다. 내가 짜증내면서 하루를 마감할 수 있을 텐데, 부부갈등 속에서 마감할 수 있을 텐데, 걱정과 근심으로 마감할 수 있을 텐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회개하고, 돌이키게 됩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을 담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사랑해야지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마음이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저는 사람들을 많이 의식했습니다. 잘 보여야 하고,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에게 가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더 힘들어하는 지체들에게 갑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라고 확신합니다. 예수님이 주인되셔서 인도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끄시는 교회가 되도록 제가 가장 먼저 제 삶을 오픈하고, 제 마음을 오픈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은혜입니다. 목회자의 진짜 존경은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순종합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의 기준으로 교회를 이끌어간다면 곧 무너질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어디에 모였습니까? 불편한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나중에는 지하 동굴 즉 무덤에 모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부흥시기에 어디에 모였습니까? 차가운 마룻바닥에 지푸라기를 깔고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는 것은 환경이나 여건이 아닙니다. 집이 멀어서 교회에 잘 못 온다고 은혜를 못 받는 것은 진짜 핑계입니다. 사업이 잘되고 일이 많아서 성령의 역사를 맛보지 못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변명입니다. 그것이 그릇입니다. 교회는 그런 것과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느냐, 그것이 교회의 기준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 삶이 바뀌느냐입니다. 가스펠 교회는 예수님이 이끄시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생명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생명이 됩니다. 우리의 예배가 생명이 됩니다. 구원을 받고, 살아나게 됩니다. 교회는 그래야 합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와서 생명을 얻는 곳입니다. 예수님을 구주삼아 구원받아 생명으로 거듭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소중합니다. 하나님은 단 한번도 교회를 떠나서 역사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Ⅱ. 어떻게 하면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

1. 예수님의 방법을 보라_요한복음13:13-17

교회가 생명이 되고, 우리가 생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마태복음을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그중에 가장 핵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_요한복음13:13-17’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저도 세족식을 몇 번 했습니다. 세족식을 하겠다고 광고를 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그랬더니 전부 발을 씻고 오셨습니다. 심지어는 발에 향수를 뿌리고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쳐 광고를 듣지 못하고 하루 종일 일하고 오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셨습니다. 그 발을 씻는데 냄새도 나고 오물도 생기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분들만 눈물을 흘리십니다. 제자들의 발은 정말 더러웠습니다. 기능성 신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먼지투성인 그 당시의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써 이것이 저의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가서 이와 같이 발을 씻어주라. 문자대로 발을 씻어주라는 것이 아니지요. 예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생명을 얻기 위한 방법입니다. 저는 예수님께 제 마음을 오픈했습니다. 그랬더니 생명을 주셨습니다. 제 자존심 제 동기 제 상처까지 다 오픈했습니다. 누구에게 오픈하겠습니까? 예수님께 했습니다.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오픈하였습니다.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신기합니다. 전도지 한번 돌린 적 없고, 전도하려고 계획을 세워 본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문을 여셨습니다. 제 주변에 생명을 얻을 자들이 계속 몰려옵니다. 제가 계획을 세웠다면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전혀 그런 계획을 세워볼 여유도 없을 만큼 바빴습니다.

캐나다에 이민간 이나 엄마를 아시지요? 이번에 만나고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분이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복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어머니인 전도사님 때문에 조금 마음이 멀어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교회 저교회 다녔습니다. 규원씨는 워낙 착하고 긍정적이어서 교회를 함께 갔습니다. 그러다가 한 교회를 연결해주셨다 합니다. 그분이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드는 것이지 오해하지 마세요. 그분이 집에 와서 늘 말씀을 주는데 이나가 태어난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니 정신이 없잖아요. 그런 배려가 없이 그냥 찾아와서 꼭 들어야 하고 해야 한다고 전합니다. 규원씨가 저한테 그랬습니다. ‘정말 정말 싫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떠나있었습니다.’

그런데 언니 혜린씨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언니가 예수님을 믿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다가 시어머니가 저를 소개해주셨다 합니다. 저는 가서 저를 오픈하였습니다. 저희 가정을 오픈하였습니다. 그냥 혜린씨와 혜린씨의 문제를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물론 성경공부를 꾸준히 했습니다. 갈 때 마다 도움 되는 책도 사가고, 편지도 쓰고, 또 힘들 때는 살짝 쉬어주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니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나 아빠도 회복되고 규원씨는 캐나다 교회에서 완전 사명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혜린씨는 점차 주님을 사랑하는 귀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발을 씻어주는 곳입니다. 더럽고, 추접하고, 냄새나는 발을 씻어주는 곳입니다. 교회는 아픔이 있고, 깨지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고, 또 찾아오면 따듯하게 맞아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을까요? 주님이 우리 발을 씻어주셨잖아요. 누가 무슨 옷을 입고 왔더라,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데 그것이 왜 안될까요?

2.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_요한복음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_요한복음21:15’

예수님이 오늘 베드로에게 질문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한번이 아닙니다. 세 번, 네 번이나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이것저것 하실 말씀이 많았겠지요? ‘야 성공해야 한다. 야 교회건물은 가장 멋지게 지어야 한다. 야 헌금 많이 해라. 야 수준 있는 교회 만들어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느냐. 사랑하느냐.

그러고 보니 저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않았었습니다. 내가 성공하기 바빴고 인정받으려 열심히 사역하기 바빴습니다. 그러니 남과 비교하고, 정죄하고, 교만하고, 낙심하기 바빴습니다. 그것은 신앙생황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삶을 삽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을 사랑 하느냐입니다. 돈을 사랑하면 돈을 사랑하는 삶을 삽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삽니다. 그것은 문제가 옵니다. 상처가 됩니다. 마태복음 12장 39절에서 주님은 세상이 악하고 음란하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마귀가 우리로 하여금 악하고 음란한 세상 풍조를 본받고 따르게 하려고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힘으로 우리 마음에 역사하고 있음을 아십니까? 우리가 보고 듣는 것에 의하여 알게 모르게 마음이 묶여 끌려고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들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것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다 망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발을 씻어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모든 죄악을 다 씻어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기 모든 것을 다 뺏겨버리고 자신은 초라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평생 거짓 사랑에 속고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권력을 사랑하고 성공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면 다 망합니다. 그것들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거짓 사랑에 빠져 살았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 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며, 하나님 자신 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아들도 주신 것입니다. 아들이 자기 눈앞에서 죽는다면 그 아버지는 심장이 터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전능의 손을 스스로 묶으시고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을 견디셨습니다. 아들이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나를 어찌하여 버리시나이까” 밝은 귀를 가지셔서 우리의 신음 소리도 듣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소리를 청각 장애가 된 것처럼 듣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는 아들의 모습을 보실 수가 없어서 시각장애자처럼 어둠으로 온 땅을 캄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이 일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이루어진 것입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엄밀히 말하여 계명이 아닙니다. 사랑의 초청입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일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나를 사랑하세요!” 하지 못합니다. 만약 가까이 하기 싫은 사람이 여러분에게 사랑한다고 다가오면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엄청난 축복의 삶으로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초청을 받고도 “잘 모르겠어요!” “잘 안되요!” “느껴지는 것이 없어요!” “지금 제 형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이 나오세요?” 라고 반응하면 안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행동인지 아십니까?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짝사랑이 되고 맙니다. 짝사랑은 사랑하는 자도 괴롭고 사랑받는 자도 괴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오히려 불편하고 힘들게 느껴진다는 말입니다.

3. 내 양을 먹이고 치라_요한복음21:16-17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_요한복음21:16-17’

주님을 사랑하면 어떤 삶으로 바뀔 까요? 바로 양을 먹이고 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니 그제서야 양이 보입니다. 시아버지도 보이고, 시어머니도 보입니다. 남편도 보입니다. 맨날 보던 사람들이 다시 보입니다. 양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맨날 보니 귀한 줄 모릅니다. 그런데 귀하게 보입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을 줍니다. 생명을 주세요. 그들을 쳐야 합니다. 무슨 말이지요?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 방법은 발을 씻어주면 됩니다.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Ⅲ. 결국, 신앙생활은 그릇싸움

1. 가스펠 교회의 그릇_마태복음20:25-28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_마태복음20:25-28’

신앙생활은 결국 그릇싸움입니다.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 싸움입니다. 우리는 교회 건축 같은 것을 담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갈등을 담지 않습니다. 우리는 남을 정죄하고 얕보고 비난하는 세속적인 눈을 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담을 것입니다. 진리를 닮을 것입니다. 생명을 담을 것입니다. 사랑을 담을 것입니다. 먼저 우리 교회가 어떤 그릇이 되어야 할까요?

우리 교회는 권세를 부리는 교회가 아니어야 합니다. 교회는 권세를 부리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왔는데 그런 느낌을 받으면 실패한 교회입니다. 교회는 권세가 없어야 합니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그리고 목회자, 교역자, 리더들이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어떤 느낌을 받아야 합니까? 우리가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살아가면서 그들이 볼 때 어떤 교회여야 합니까? 바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종이 되어주셨습니다. 대속물이 되어주셨습니다. 종이 되면 가스펠 교회는 생명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응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진짜 축복은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종으로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은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을 보세요. 손양원 목사님을 보세요. 성경의 인물들을 보세요. 전부 그 시절에는 알아주지도 않았습니다. 교회가 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역자님들은 기억해주세요. 가스펠 교회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좀 부족해도 됩니다. 집사님들은 기억해주세요. 자꾸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있으셔야 합니다. 교회를 유지하려고, 교회의 권세를 세우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거 없어도 됩니다.

2. 가스펠 성도의 그릇_고린도전서9:25-27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은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_고린도전서9:25-27’

성도님들은 어떤 그릇이 되어야 할까요? 1738년 5월 24일 웨슬리 목사님이 성령체험을 한 후에 그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났습니다. “나는 성령의 강력한 능력에 휩싸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내게 나타내셨으며 나는 하나님께 당신의 손을 멈추어 달라고 간청해야 할 정도로 강력한 그분의 사랑을 경험했다.” “나에게 온 세상을 다 준다 할지라도 이제는 그 축복을 경험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세상 부귀영화는 저울에 달린 조그만 먼지와 같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제 모든 삶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게 되기를 원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제 고민은 하루 빨리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빨리 자립을 하자 이것도 아닙니다. 전도를 많이 해서 인정받자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영혼들이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면서도 지치고 가슴이 답답하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고 다 포기하고 싶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채 책임감, 의무감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매일 사랑하여 그 사랑으로 진짜 행복하길 바랍니다. 저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쉽지 않고 오래 걸립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리며 섬기겠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님을 만나면 행복해집니다. 환경이나 여건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이 바뀝니다. 내가 행복하면 내 남편도 내 자녀도 행복합니다. 한국은 조기교육 이런 것이 심합니다. 가만 보니 아이들이 행복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못했던 것 강요합니다. 부모가 행복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돈 주면, 성공하면 행복하다고 가르칩니다. 아이들이 죽으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성공을 목적삼아 신앙생활 합니다. 끼리끼리 모입니다. 사장끼리, 장로끼리, 엘리트끼리 어쩌면 그게 편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왜 끼리끼리 모이나요? 종이 되기 싫어서 그렇습니다. 저 사람은 말씀을 깨닫는 것이 나보다 못하니 가르치려고 합니다. 포럼을 들어도 들어줄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나중에 버림을 받습니다. 주님이 버리신다 합니다. 왜 그렇지요? 자꾸 썩을 것을 좇기 때문입니다.

3. 그릇은 믿음의 결과_디모데후서2: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_디모데후서2:21’

여러분, 2016년도에는 우리 그릇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담읍시다. 예수님의 은혜, 예수님의 진리, 예수님의 생명, 예수님의 사랑을 담읍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한 일을 위해 쓰시도록 내어드립시다. 서로 그릇들이 다릅니다. 있는 모습 그래도 주님께 나아갑니다. 저는 깨진 그릇입니다. 그래서 깨진 그릇들을 이해합니다. 금 그릇도 있으십니다. 그러나 금 그릇에 이상한 것 담지 마시고 주님의 사랑을 담으세요. 그래야 금 그릇도 쓰임 받습니다. 다른 것을 담으면 금 그릇도 버림을 받게 됩니다. 송구영신 예배의 말씀을 제목이나 정리해서 기억하지 마시고 느낌을 기억하여 함께 인도받아가길 원합니다.

✔ 2016년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우리의 믿음, 삶, 인생길을 드립니다. 주의 말씀으로 인도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어둠에 살지 않고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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