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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6-01-03 주일 2부 예배


2016-01-03 주일 2부 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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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_사도행전9:1-5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_사도행전9:1-5’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저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번에 2년 만에 해외집회를 섬기고 왔습니다. 사실 해외집회나 다른 집회를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캐나다는 제가 렘넌트집회가 처음 생길 때부터 섬겼던 곳이어서 애착이 있는 곳입니다. 2년 만에 다시 갔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어떤 분이 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많이 바뀌셨네요. 예전에도 은혜가 되었지만, 그때는 은혜만 되었고 이번에는 마음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캐나다든, 한국이든 얼마나 분주한지 모릅니다. 인생의 목적이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성공이 무엇일까요? 신앙인들의 기도제목을 들어 보십시오. 전부 잘 먹고 잘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기도제목들뿐입니다. 교회의 방향을 보세요. 전부 사람들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들뿐입니다. 그러니까 행복이 없습니다. 성공을 해도, 안 해도 행복이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사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행복이 없습니다. 마음이 공허하고, 허전합니다. 그래서 멋지게 산다고 약속해놓고 결국, 쾌락을 찾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뜻을 쫓아가니 힘을 잃었습니다. 외형은 커지고, 프로그램은 화려한데 영향력을 잃었습니다. 오히려 볼품없는 초대교회보다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을 만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만나야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알고, 뜻도 알게 됩니다. 그러면 다 바뀝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종교생활은 하면 할수록 지칩니다. 반대로 신앙생활은 하면 할수록 행복합니다. 내 구주 예수를 주인삼아,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방향을 설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따로 전도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아도 말할 수밖에 없고, 자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자랑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왜 하나님이 택하신 당신의 백성이 십자가의 복음을 거부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Ⅱ. 복음을 받지 않는 이스라엘

1. 복음을 받지 않는 이스라엘_로마서11:8,20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_로마서11:8’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_로마서11:20’

이스라엘은 복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이렇게 강팍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오늘 성경은 그들이 혼미했다고 합니다. 보지 못하였고 듣지 못하였다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통해 이방인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역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런 상황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끝날 듯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큰 교훈이 되기도 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어떤 이들에게 큰 교훈을 주시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어둠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많은 이방인에게 복음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2. 바울의 믿음_로마서11:5-6,12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_로마서11:5-6’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_로마서11:12’

여기에서 바울의 믿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구원은 절대 행위로 불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오직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렇지요? 행위로 구원이 가능하다면 이 세상에 단 한명도 구원받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는 이미 죄악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행위로 악하지만, 그 속에서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받을 자를 남겨주셨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저는 수도 없이 넘어졌습니다. 크고 작은 죄와 세상의 유혹들, 제 마음의 연약함들에게 져서 주저앉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그것이 죄인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서도 저는 넘어짐이 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넘어짐과 실패가 반복되었지만 그 반복이 이제는 줄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충만하여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확신했습니다. 자신은 유대인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는 유대인이 아니냐? 아직도 율법이 남아있고, 반역한 유대인과 같지 않냐? 그렇다면 너는 우리와 다른 사람이다라고 하자 아니다 내가 비록 수도 없이 죄를 지었지만, 이제 예수님을 만나 너희와 같이 은혜의 사람이다. 내가 넘어지는 것도 너희에게 유익하겠지만, 이제 나는 충만함으로 넘어지지 않고 너희와 함께 은혜에 참여하게 되었다.

3. 바울의 간증_로마서11:13-16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_로마서11:13-16’

그런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변입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포기하셨는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유대인들이 깨닫지 못하고, 저렇게 대적자로 있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신 계획 속에서 구원받을 기회가 올 것이다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간증을 하였습니다. 자신도 핍박자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이 본문은 역사를 넘고 넘어 연결되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과연 유대인들이 언제 회개하고 돌아올까? 벌써 2천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종말의 때가 올 때입니다. 저는 종말론자는 아니지만 종말의 신앙은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 종말이 옵니다. 죽음이 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종말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현재 유대인 안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유대인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들은 지금 순교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하면서 타락하고, 변질된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 중에 강팍한 자들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돌이키고, 돌아오면 가능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거룩한 자를 찾고 계십니다.

Ⅲ. 주님의 마음을 아는

1.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_로마서11:1-5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_로마서11:1-5’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사랑합니다. 버리지 않으십니다. 버린 것 같아 보이지만,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남은 자를 심어두십니다. 그 남은 자가 영어로 Remnant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렘넌트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다 타락하고, 신앙인들이 신앙을 잃어버린 지금 교회가 세워지고, 신앙을 가진 신앙인들이 다시 세워지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2. 돌이키는 자에게 베푸시는 긍휼_로마서11:29-30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_로마서11:29-30’

하나님은 죄에서 돌이키고, 세상에서 돌이키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순종하지 않았던 그들이 돌이켜 회개할 때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저는 이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전에는 순종하지 않았더라도 이제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면 긍휼이 임합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변화가 됩니다. 타락한 마음,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합니다. 교회를 오랫동안 다녀도 주님을 만나지 못해 종교생활하던 사람들이 어느날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기도 합니다. 순종하지 못했던 삶에서 이제는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이 긍휼입니다. 긍휼이 임하니 달라집니다.

3. 주님의 마음을 아는 믿음의 사람_로마서11:33-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_로마서11:33-36’

바울은 자신이 변화되어 보니 이제 유대인들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당장은 유대인들이 받아드리지 않아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만, 결국 자기 형제이고, 가족인 유대인들에게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왜냐면 주님의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것이 무엇입니까? 죽는 것입니다. 죽는 것보다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다 죽습니다. 그것이 개인 종말입니다. 그것 말고는 어떤 것도 확실하다고 장단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누구라도 다 떠나보내야 합니다. 문제는 죽음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사는 것만 준비하지 죽음을 준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많습니다. 개인뿐만 아닙니다. 세상 역사에도 종말이 있습니다. 종말에 대한 메시지는 곡해되기 쉬우므로 늘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종말이 있습니다. 교회는 항상 종말을 준비해야 합니다. 성경은 어떻게 준비하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가능합니까?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능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_데살로니가전서5:4’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는 과연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가? 바울은 모든 사람이 다 주께 다시 돌아감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마음으로 전도하고 선교했습니다. 화목하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랑하고 섬겼습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결국 죽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 유대인 같은 존재가 있기도 할 것입니다. 이방인들도 있겠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굴 미워하고 계시나요? 주님이 마음을 알길 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런 마음으로 되어지길 기도합니다.

✔ 주님의 마음을 알기 원합니다. 그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해주세요. 복음을 받지 않았던 우리가 복음을 받아 마음이 변화된 것처럼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을 향하여 그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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