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2016-01-10 주일 1부 예배


2016-01-10 주일 1부 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음성다운로드 http://bit.ly/1Sbc6D1




Ⅰ. 신앙생활에 대한 오해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쌓여서 '기독교는 이런 종교다'라는 이미지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전통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전통 속에 있다보니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하면 뭔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얻은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인가요? 바로 예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저 예수님이 내안에 오셨고 나와 동행하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이 거기서 멈추어버리면 안됩니다. 그것이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면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드러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진정 복된 신앙생활입니다.

박주영선수와 예전에 대화를 하던 중에 이런 간증을 들었습니다. '왜 골을 넣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냐?' 물었더니 자기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려면 너무 힘들 텐데 천명, 만 명에게 한꺼번에 예수님을 자랑하면 좋겠다해서 기도했답니다. 세계적인 선수가 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이렇게 축복을 받았다고 전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선수가 되도록 기도했고 응답해주셨다고 간증했습니다. 특별한 선수에게만 있는 간증인가요? 저는 우리 모두도 이런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드러내고 사는 삶보다 축복된 삶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우리 안에 오신 것은 놀라운 일이고 행복한 일입니다. 이제는 두려움도 염려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셨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내가 그 예수님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설레며 흥분이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정말 믿는다면 삶에서 예수님을 자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자랑을 어떻게 할까요?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둠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싶어서 삶을 고치려 합니다. 단순히 말로 드러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교회를 세우면 그 메시지가 전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은 정말 멋진 삶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Ⅱ. 세례 요한의 신앙

1. 가장 영향력 있는 선지자_요한복음1: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_요한복음1:19’

세례요한은 그 당시 사람들로부터 대단한 주목을 받은 사람입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도 아니요, 세상의 권력을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광야에서 혼자 살았습니다. 메뚜기를 잡아먹고 석청을 먹고 약대 털옷을 입고 살았는데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말은 그만큼 실력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의 설교가 얼마나 힘이 강한지 사람들이 그 설교를 들으려고 광야까지 찾아갔습니다. 요한에게 가면 변화가 되었습니다. 줄을 지어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요한은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단한명의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았던 어둠의 공백기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등장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그를 메시야로 기대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줄 정치적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보내서 세례요한을 살펴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네가 누구냐? 그런데 세례요한은 지체하지 않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너희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엘리야도 아니다. 심지어 나는 선지자도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럼 너에 대해 무엇이라고 보고해야 하나? 그러자 23절에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엄청난 겸손입니다. 그렇게 대단하고 파워 있는 최고의 선지자가 왜 이렇게 겸손할 수 있었을까요?

2. 예수님을 아는 지식_요한복음1:25-27,29

그는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광야에서 외치고 있었습니다.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_요한복음1:27’

‘이틀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_요한복음1:29’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로 오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그가 오심을 선포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주목할 때 마다 나를 주목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주목하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세례요한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레위지파의 후손이고 제사장 가문의 사람이고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그 영향력이 사실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세례요한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예수님만을 높였습니다. 자기가 주연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몰려오는 사람마다 예수님을 증거 하기 바빴습니다. 나중에는 자신의 제자들을 전부 예수님에게 보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안다면 우리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금방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을 드러내고 살게 됩니다. 알면 알수록 그렇게 됩니다. 저는 예전에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는 누군가 저를 칭찬하면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사역을 잘해서 칭찬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드러날까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불신자들 속에서 살면서 그들과 부딪힐 일이 많고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도 기분이 나쁘거나 전혀 자존심이 상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3. 세례요한의 행복_요한복음3:29-30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_요한복음3:29-30’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면 그분 때문에 기쁨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아니 충만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드러내는 일이 최고 좋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 백성을 죄에서, 지옥에서, 마귀에서 건져낼 수 없는데 건저내실 그리스도가 오셨지 않느냐? 너무 신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들에게 말해주기 위해 쇠하게 되는 것마저 기쁨입니다. 내 부모 형제가 구원받는 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저 사람도 구원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존심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 은혜가 우리 가스펠 교회에 있길 기도합니다. 성도님들에게 있길 기도합니다. 이런 깨달음이 있길 기도합니다.

신앙생활의 행복이 무엇입니까? 사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자기보다 더 인기가 있으면 사람들에게 건방을 떨면서 '사실 예수는 내 동생뻘인데, 사역자로서 내가 선배라고 할 수 있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우리 가운데 벌어지고 있습니다. 왜 교회가 행복이 없을까?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행복이 없을까? '내가 개척을 한 거야, 내가 힘 좀 썼어, 내 가족들이 큰 몫을 했지.' 예수님을 모르니 우리도 모르게 나를 드러냅니다. 사실 엄청 창피한 것입니다. 너무 창피한 것입니다.

마요네즈, 케첩을 파는 하인츠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창시자인 헨리 존 하인츠는 1919년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예배당을 지으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5년에 걸쳐 엄청난 돈을 들여서 자손들이 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해 큰 예배당을 지었고 하인츠 기념예배당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미국 피츠버그 대학에 가면 아름다운 상징물중 하나로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곳을 찾아가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교회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볼 길이 없답니다. 오직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인츠와 그 가족들의 이름과 흔적밖에 없답니다. 물론 목사님이 매주 예배도 드리긴 하겠지요. 하인츠씨가 천국에 갔는지 저는 모릅니다만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특정한 사람이 교회의 주인이 되거나 영광을 받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정말 영적인 실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영광을 받으려고 합니까? 왜 하나님의 자리에 가려고 합니까?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진짜 예수님을 만나서 영적인 행복이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만 드러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비록 저같이 직업이 목사가 아니더라도 직장에서 일을 하든지, 집안에서 일을 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예수님을 드러내고 산다면 여러분은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언제나 예수님을 드러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인간 본성 자체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Ⅲ.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세요.

1.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_요한복음1: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_요한복음1:34’

우리는 내 생각, 내 고집, 내 원함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다시 말해 우리 마음에 어둠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마음의 주인을 바꾸지 않으려 합니다. 빛이 왔는데 어둠으로 숨으려 합니다. 마음의 상태가 변함이 없습니다. 어느 권사님이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권사님이 정한 며느리가 아니라 아들이 마음에 들어서 데리고 온 며느리라 모든 것이 싫었습니다. 공부한 것도 싫었고 얼굴도 싫어보였고,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 것도 싫었다고 합니다. 혼수를 해온 것도 싫었습니다. 구박을 하다가, 하다가 화를 이기지 못해 기도하러 가겠다고 기도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원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밤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데 ‘권사야 더 늦기 전에 아들을 이혼시켜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내려와 아들을 이혼시키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해서 온 집안이 힘이 들었다고 합니다. 남편도 시험에 들고, 아들도 교회를 떠나려고 하였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입니까? 그것은 마음의 주인을 바꾸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인지, 예수님이 나를 믿어야 하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내 의견, 내 생각, 내 감정, 내 마음에 있는 분노, 혈기, 그것들이 자꾸 드러납니다. 그래서 싸우고 상처받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교제도 안하려고 합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친절한 척하면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기는 알고 있을까? 예수님이 마음의 주인이긴 한가? 물론 쉽지 않습니다. 어둠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속 어둠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2. 사랑하면 행복합니다._요한복음1:22-24, 요한복음3:19-21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내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_요한복음1:22-24’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_요한복음3:19-21‘

빛으로 나온다는 말은 빛 되신 예수님을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데 어머니에게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고 내가 자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녀라면 어머니에게 해드린 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것이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행여나 다른 자식이 나보다 더 어머니를 위해 헌신했어도 기쁨이 넘칩니다. 그것은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시기 질투합니다. 나보다 더 하나님께 쓰임 받아도 기분이 나쁘고, 나보다 못하면 못한다고 비웃습니다. 예수님이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제가 부교역자 때 제 잘못이 아닌데 제가 오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그 일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고 시시비비를 밝히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교회가 이상해지겠다 싶었습니다. 금요예배 때 기도를 하는데 억울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내 교회를 사랑하느냐? 네가 내 백성을 사랑하느냐? 그런 마음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것이 아닌데 제가 사과를 하게 되었습니다. 억울했고, 답답했지만 순종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높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들이 실망도 하였고, 오해도 하였지만 저는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더 교회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해도, 실망도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니 다 알게 되고, 시간이 흐르니 다 발판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랑해보셨습니까? 사랑하면 행복합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광야도 행복했고, 그보다 낮아지는 것도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백성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높이고 드러내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사랑해줄 분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떤 상황이든, 환경이든 예수님을 사랑해보세요. 그리고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보십시오.

3. 사랑은 더 알아가는 것_에베소서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_에베소서1:18’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셨던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요? 정의를 내리기 쉽지 않겠지요?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이 뭐냐고 질문한다면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도가 무엇인가요? 왜 꼭 기도를 해야 하지요? 기도할 때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내안에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왜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을 다시 듣고, 묵상하고 일기를 쓰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알라는 것입니다. 제대로 알면 우리의 삶이 변화됩니다. 바뀝니다. 세례요한이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알았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바울의 기도제목을 보세요. 마음의 눈을 밝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한동안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주를 위해서 살 수 있겠는데 주를 위해서 죽지는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민이 되던지 주를 위해 돈도 벌고, 축복도 받고, 좋은 자리도 가고 하겠는데 주를 위해 손해를 보고, 실패하고, 양보하고, 나누어주는 것은 못 하겠더라는 것입니다. 성공을 하면 주를 위해서라고 하면서 교회에 당당히 오는데 실패를 하면 주를 위해서라고 못하고 교회도 잘 못 옵니다. 사실 오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이 쉽지 않구나'라고 생각하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면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은 쉬운 것이고 너무 기쁜 일이 됩니다. 너무 신납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질문해보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주님을 높이고 있는가? 그러면 우리가 교회는 정말 주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주님이 드러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해보세요. 우리 마음에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 주님 날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만나니 너무 행복합니다. 이제 낮아져도 좋고 무너져도 좋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나를 통해 드러나길 원합니다. 오직 구원자이신 주님이 높아지길 원합니다. 내 가정에서, 직장에서 오직 예수님만 드러나길 원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시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예수님만 자랑하게 해주세요. 예수님을 드러내는 멋진 삶을 살게 해주세요.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03-13 주일 1부 예배  (0) 2016.03.13
2016-01-10 주일 2부 예배  (0) 2016.01.10
2016-01-03 주일 2부 예배  (0) 2016.01.03
2016-01-03 주일 1부 예배  (1) 2016.01.03
2015-12-31 송구영신예배 2부  (0) 2016.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