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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4-04-06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4월 06일

제목 : 초대교회의 첫 순교자

말씀 : 사도행전 7 : 54-60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4-06 주일2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메시지를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I2NmKT9k



Ⅰ. 스데반 집사의 복음선포

저는 필리핀에 가서 한 권사님을 만났는데 그분은 이화여고, 서울대, 서울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을 다닐때에는 기독학생회의 부회장까지 한 분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출강을 할 정도로 화려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현재는 필리핀 빈민촌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당시 29살 때는 왜 이런 곳에 계시나 했습니다. 남편을 만나 선교지에 온 것인데 너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을 보면서 뭔가를 실패했나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제 나이 20대 후반이었는데 한참 잘 나가던 시절입니다. 제가 성공이나 미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오늘 1부 예배 말씀을 준비하면서 한참 울었습니다. 다 정복하고 다 이루고 난 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주신 메시지가 도피성이었습니다. 그 안에 있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후대에게 무엇을 남기길 원하십니까? 성공한 사람들은 돈을 남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남겨야 할까요?

사실 교회가 3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할 수 있다면 우리교회가 세상에 빛이되고 소금이 되며 겨자씨가 되고 밀알이 되길 원합니다. 사람들이 볼 때 참 교회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내려 놓아야 할 것입니다. 도피성에 대한 메시지를 받으며 가슴을 쳤습니다. 우리는 가나안을 차지하는데 열광하지만 하나님은 그 곳에 관심이 없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리라고 하십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빛났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가 내 자신에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 사랑이 누구보다 나에게 있어야 합니다. 나를 축복하는 것이 어색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한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 성령이 계십니다. 하나님의 우릴 향한 계획이 믿어져야 합니다.

‘서울대를 졸업했으면서 이 빈민촌에서 뭐하고 있냐’가 아니라 그 권사님 간증대로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그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정말 보람되다’고 한 이야기가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착각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오늘 스데반 집사님을 볼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이름의 뜻은 면류관이란 뜻입니다. 그는 초대교회의 7명 집사가운데 한 사람으로 항상 이름이 첫 번째로 거론된 집사님입니다. 뛰어난 사람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스데반 집사님이 죽음의 현장에서, 진흙 같은 엉망진창인 현장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순교하는 장면입니다. 초대교회의 첫 순교입니다.

Ⅱ. 거룩한 체험

1.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_사도행전7:55a

사람들이 스데반을 향해 분노하고 이를 갈았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진리를 말하는데 사람들은 이를 갈았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데 세상이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성령으로 충만했다고 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모두가 성령 충만한 것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그 사람의 모든 삶이 완전히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보통은 사람은 상황이 좋으면 기뻐하고 상황이 나쁘면 좌절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그런 상황과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이냐에 따라 움직이기에 그것을 초월합니다. 말씀을 따라 순종하기에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봤다고 합니다. 많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 즉 하늘의 시민이면서도 땅만 보고 삽니다. 특히 문제가 오고 위기가 올 때 땅을 보고 결정합니다. 땅만 보고 살면서 땅의 문제에 몸과 마음이 메여있습니다. 근심을 안 할 수 없지만 진짜 문제는 문제를 대하는 자세가 세상 사람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기도에 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믿는 자들이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내 생각이 마뀌고 마음이 바뀌고 성령께서 내 안에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기도하면 변화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대신 걱정을 합니다. 땅을 보고 사는 것입니다. 그 말은 단순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위기가 와도 땅을 보고 축복이 와도 땅을 봅니다. 스데반 집사와 같이 하늘을 우러러 보는 신앙을 갖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_사도행전7:55b

땅을 본다는 것은 자신을 본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자신이 판단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판단합니다. 저 또한 그럴 때가 많습니다. 그 상황과 맞지 않는 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괜히 말했다고 후회할 때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의 밤, 새벽시간입니다. 오늘도 새벽에 눈을 떴습니다. 고치려하는 것이지요. 그런 시간이 제가 실수를 하던 하지 않던 하나님이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는 그 시간을 통해 제가 하는 실수 까지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메여 살 때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스데반 집사는 ‘아, 내가 어쩌다가 이 힘든 상황까지 왔는가? 이 재판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내게는 몇 년형이 떨어질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구름을 본 것이 아닙니다. 태양을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왠지 힘이 없고, 기가 죽어있고, 왠지 낙심 속에 사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세상은 늘 힘이 듭니다. 세상의 권세 잡은 자가 사단이니 당연히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것은 힘이 듭니다. 죽을 것 같고 도망치고 싶은 현실 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보좌에 앉아계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좌에 앉아계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모든 어둠과 절망을 몰아내신 빛 되신 주님이십니다. 십자가에게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대속하고 사망의 권세를 깨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의 대장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런데 보좌에 앉아계시지 않고 일어선 것입니다. 그것은 스데반집사님의 사역과 순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을 들으려 해야 합니다. 그것이 살길입니다. 우리 교회의 어떤 사역보다 급한 사역이 이 거룩한 체험이 개개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세례를 받으시는 오병석집사님, 김명희집사님은 이번 주 이 응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Ⅲ.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_사도행전7:56-60‘

오늘 스데반 집사님은 순교하시면서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리스도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감사과 감격이 넘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는 그런 감사와 찬송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그를 삼키지 못하였고 결국 그가 하나님 품으로 갔습니다. 또,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스데반 집사님은 2천년에 처음으로 세워진 안수집사 가운데 지도자겪인 인물로 지혜와 성령이 충만하고, 설교도 탁월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이 너무 짧았습니다. 집사가 되자마자 순교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죽은 것이 전부입니다. 우리가 생각했을 때는 ‘그의 인생이 실패 했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순교로 사울이라는 청년의 회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초대교회가 복음을 들고 전역으로 흩어질 수 있는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여러분이 하늘을 바라보는 신앙생활, 즉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고 그리스도로 늘 감사와 감격이 나오는 말씀과 기도에 메여 산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누군가에 복음이 전해지는 일에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필리핀에서 지내는 권사님의 삶이 한국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체험이 있다면 내 삶이 조금 부족해도 하나님은 반드시 사용하신 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께 메여 사는 것인가’가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1. 이 시대의 순교는 무엇일까?

이 시대는 거짓과 위선이 가득합니다. 본문에서도 거짓증인을 내세워 초대교회를 압박하고 고발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이 법정에 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보면 그런 사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전해야 합니다. 그래도 또 전해야 합니다. 스데반은 법정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을 살리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가 아무리 위선과 독선이 가득하고 진리를 몰아내려고 하여도 상관하지 않아야 합니다. 시대를 따르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으로 이 시대를 거슬려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순교입니다. 죽는 것이 순교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시대에 순응하고 산다는 것은 영적싸움에서 진 것입니다. 가나안에 가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를 몰아세워도 우리가 할 일입니다. 이 길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순교입니다.

2. 신앙생활은 제대로 해야 합니다.

스데반집사가 복음을 전한 것이 귀중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했고 그리스도께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전한 복음이 쓰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말로 남을 죽이고 남에게 상처를 주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할 짓, 못할 짓을 다하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함께 반드시 동반해야 할 것이 내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이 전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원칙이 없다면 우리는 이 시대를 변화시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은혜 받는다고 해서 시대가 바뀔 수 있습니까?’라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은혜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생각도 마음도 바뀝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을 잘하고, 똑똑하고, 완벽하면 전도를 잘하게 됩니까? 그 말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은 그 말이 아닙니다. 부족하고 연약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것과 싸우고 있습니다. ‘내가 신학을 공부했는데, 가족을 다 전도했는데, 그래도 내가 목사인데.’ 이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진짜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중의 핵심입니다. ‘저는 죄를 짓지 않고 잘 살고 있는데요.’라고 하는 것이 위험한 것입니다. 그것이 한국교회에 위기를 가져 온 것입니다. 저는 교회가 100명이 되던 1000명이 되던 한결같아야 한다고 전도사님과 이야기 합니다. 그것이 스데반집사님의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니 그에게 뜨거운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_고린도전서3:16’

Ⅳ. 핍박은 하나님의 큰 계획을 이루기 위한 시간표입니다.

욥은 원인도 모르고 이유도 모르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말하면 괜히 걸려 든 것입니다. 욥의 인생은 완전 망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백합니다.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그 존귀함이 하늘에 닿고 그 머리가 구름에 미칠지라도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 그를 본 자가 이르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하리라 그는 꿈 같이 지나가니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요 밤에 보이는 환상처럼 사라지리라_욥기20:5-8’

우리는 세상에서 억울한 마음이 많습니다. ‘나는 왜 이렇지? 나는 왜 이런 가정에 태어났지?’라고 합니다. 그것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고 마음입니다. 저도 옛날에는 부모님을 미워하고 창피하게 생각했습니다. 대학생 때 하나님 앞에서 깨지고 깨달았습니다. 그것만 깨달아도 변하게 됩니다. 진짜 사랑하고 품을 수 있게 됩니다. ‘나는 예수 믿고 있으니 너를 도와줄게.’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은혜 속에 있으면 스데반처럼 되는 것입니다.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도피성 안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바라보다는 것은 사모한다는 것이고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한결같이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핍박이 있고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스데반집사님의 일로 더 큰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받아드리기 힘든 상황입니다. 주를 위해 순교했는데 더 큰 핍박이 왔습니다. 초대교회의 핍박은 무려 300년 가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네로 황제는 기독교인을 다 잡아서 죽이려 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순교했는데 대가가 없어 보였습니다. 교회를 위해 헌신했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 나만 헌신해야해?’라는 마음으로 헌신을 하는 것은 잘못된 마음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준을 두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메어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똑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입니다.

벌집을 건드려서 교회를 향한 핍박이 더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핍박으로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말씀의 성취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이 임하였는데도 예루살렘에만 머물렀습니다. 안주하기 시작했고 자기들끼리 은혜를 받으려 했습니다. 사람들이 몰리고 헌금이 모이니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 순교자 스데반집사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광야에 머물러있으면 좋았을 텐데 가나안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헤브론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집을 만들어야 합니다.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으로, 선교지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필리핀 빈민촌에서 사역하시는 그 권사님이 참 귀하단 생각을 합니다. 지금 전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한국인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선교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교회를 세우고 세계복음화를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 어찌 하다가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쩌다가 새로운 장소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현장에서 도피성의 사명을 감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 3세계와 소외계층, 엘리트 현장을 바라볼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라고 하십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_이사야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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