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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4-04-06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4년 4월 6일

제목 : 살 길이 있습니다. 


말씀 : 여호수아 20 : 1-9

설교 : 오승주목사



2014-04-06 주일1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메시지를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hBDTe8u0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으로 메시지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youtu.be/qIFAthYg0KE



 여호수아 말씀은 오늘로 마무리를 하려 합니다. 다음 주부터는 마태복음을 보려 합니다. 같이 말씀을 읽어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Ⅰ. 예배는 회개입니다.

한 살인자가 있었습니다. 그 살인자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살인자의 형이 국가에 많은 공로를 쌓은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형은 동생을 위해 모든 체면을 내려놓고 대통령을 찾아가 눈물로 호소하고 자신이 동생을 책임지겠다고 하여 대통령으로부터 사면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동생에게 찾아갔는데 그 사면을 동생이 거절하였습니다. 어리석은 동생은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그 판사를 죽여버릴꺼야’, ‘ 나를 잡은 경찰을 죽여버릴꺼야’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형 너도 싫어’라고 했습니다. 동생은 늘 잘되는 형이 싫었던 것입니다. 부모도 싫고 다 싫은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자기도 모르게 나쁜 길로 빠져들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형은 늘 동생을 사랑했고 동생의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를 살리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가 없습니다. 100%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오늘 도피성에 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살 길이 있습니다.

Ⅱ. 살길이 있습니다.

1. 부지중(不知中) 오살(誤殺)의 죄

- 나부터 해당됩니다.(여호수아20:1-3)

여호수아가 모든 성읍을 정복했는데 하나님이 살인을 예고하시고 도피성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도피성은 부지중 오살한 죄를 도망하게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부지중 오살한 자는 죽이겠다는 의사가 전혀 없이 실수로 다른 사람을 죽인 것을 말합니다. 도피성은 모든 살인자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고의로 살인을 하면 사형이 집행됩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중에 실수로 살인한 자는 도피성 제도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지중 오살한 자가 남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지중 오살이란 말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굉장히 교만합니다. 자기 확신에 의해서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 하는 것이 교만중의 교만입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 후에 땅 나누는 일을 마치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거의 완성했다고 했는데 ‘살인’이 있을 것을 하나님이 예고합니다. 어떻게 하십니까? 믿음의 선진들 중에서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고 많은 전리품을 얻은 히스기야, 다윗, 노아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했습니다. 자신을 절대 과신하면 안됩니다. 누구나 부지중 오살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럴 수 있어’ 라는 말은 무의미합니다.

폴 틸리히는 ‘죄라는 것은 소외를 말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불신앙으로서의 소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안믿는 것입니다. 둘째는 교만으로서의 소외입니다. 내 행위와 의로 의로워지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욕망으로서의 소외입니다. 자기 집착에 빠져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세운 계획, 내 꿈, 내 동기만 바라보며 하나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다 가끔 쓰는 단어들이고 저 역시 쓰는 단어들이지만 ‘절대로, 반드시, 언제나, 매일, 결코, 항상..’와 같은 단어들을 자주쓰는 사람은 완벽주의 성향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런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기준을 높게 잡고 그것이 한번 어긋나면 자책하면서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을 물거품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예인, 기업인과 같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을 데리고 필리핀과 같은 가난한 국가들에 많이 다녀왔습니다. 다른 청소년들과 비교하여 자살을 하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습니다. 스포츠 스타들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자신의 인기가 떨어 진 것 같이 느끼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인색한 사람은 타인에 대해서도 인색하고 날마다 비판이 많습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까닭에 쓸모없는 일에 과잉 헌신하고 스케줄에 집착하다가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부지중 오살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지중 오살이 무엇입니까? 나의 재능을 오살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재능을 주셨는데 그것을 오살해 버리는 것입니다. 시간을 오살합니다.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는데 이를 오살해 버립니다. 수능시험 점수가 나오지 않아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의무를 오살하고 영혼을 오살합니다. 나도 모르게 말로 상처를 주고 나도 모르게 정죄하는 것입니다. 어떤 중직자를 만났는데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에게 받은 상처가 있어서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싶었다고 합니다. 신혼 때 반찬투정을 했는데 아내가 ‘쥐꼬리만큼 벌어다 주면서 뭘 바라는 거야!’라고 쏘아붙였다고 합니다. 그게 20년 전 이야기인데 잊히지 않는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칼로 살인을 해야 살인입니까? ‘다 너 때문이야’ ‘너만 아니었으면...’ 이라고 합니다. 부인이 부지중에 오살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살 길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복음을 들으면 바뀌게 됩니다. ‘고마워’ ‘미안해’ ‘내가 잘못 했어’라고 하게 됩니다. 한마디 말로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2. 자백하면 살길이 열립니다.(여호수아20:4)

악의 없이 살인을 했다 해도 다른 사람을 죽게 한 사람이 그 자리에 머물면 피의 복수자로부터 보복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보복을 당하지 않기 위해 도피성을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먼저 장로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고해야 합니다. 죄를 진술하지 않으면 결코 도피성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장로들이 고의로 살인한 것인지 부지중에 살인한 것인지 분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바로 회개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_요한일서1:9-10’

인간은 100% 죄인입니다. ‘나는 죄가 없다. 의롭다.’ 하는 분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구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죄의 기준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 이기게 ‘나는 저 사람보다 나아’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누가복음 18장을 보면 바리새인의 기도가 그러했습니다. ‘나는 세리보다 십일조를 잘하고, 기도를 더 많이 하고, 더럽지 않고, 나쁜 일을 하지 않습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세리는 그저 가슴을 치고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세리같은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죄를 자백하면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주변에 바리새인도 있고 세리도 있습니다. 죄를 고할 때 장로들은 이것이 고의인가 부지중 오살인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부분이 고민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본질을 자꾸 놓칩니다. 본질이 그게 아닌데 마음이 문제가 있는 사람은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집니다. 나보고 무언가 잘못했다고 하면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병이 있다면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5:16에도 ‘병낫기 위해 서로 죄를 고하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하나님께 고백하고 해결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서로 죄를 고하라는 데 우리는 그런 모습이 없습니다. 남의 죄만 고합니다. 내 죄를 자백할 때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3. 용서는 나를 살립니다.(여호수아20:5)

오스카 와일드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모는 자식들의 허물이라도 용서하는데 자식들은 부모를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재단하고 자신의 부모를 용서하는 법은 거의 아니면 전혀 없다. 그래서 이 세상의 가장 큰 용서는 부모를 용서하는 것이다’

자식들이 무슨 죄를 지어도 부모는 다 용서해 주는데 우리는 부모님께 그렇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청년을 만났는데 어머니를 때린다고 합니다. 흥분해서 어머니를 때리다가 정신이 돌아오면 울며 미안하다고 한다고 합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유학가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IMF때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서 유학을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하는데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결국 술과 여자에 빠져 엉망진찬이 되었는데 그것이 부모님 탓이라고 원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 망했으면 하나님께 돌아오면 되는데 어머니에게 폭력을 가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노동을 하다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그것도 상처가 되어 무능한 아버지가 자기를 책임도 못지고 돌아가셨다고 말 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청년이 어머니가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하나님을 영접하고 치유 받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죄입니까? 다른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용서하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은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독생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구별하여 주셨습니다.

Ⅲ. 구별하여 택하신 우리

오늘 도피성은 참 신기한 제도입니다. 도피성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성 밖으로 나간 경우, 복수하려고 기다리던 피의 보수자가 그 사람을 죽여도 살인죄가 적용이 안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민수기35:27) 도피성에 들어온 자는 자신을 받아 준 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일까요? 도피성 안에 들어갔으면 지루해고 따분해도 밖으로 나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서 부르셨는데 신앙생활이 따분하고 지루하다고 다른 재미있는 것이 없을까 하여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첫 사랑을 잊고 나가면 영원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구별하고, 택하였다고 했습니다. 도피성은 언제까지 입니까?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 일주일 뒤에 죽을지, 30년 뒤에 죽을지 모릅니다. 그게 무슨 메시지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내 죄가 사라지는 기다림은 신앙의 깊이입니다. 저도 20년 신앙생활을 했는데 여전한 것들이 많습니다. 저도 상처가 아직 있습니다. 저도 남을 미워하는 것들이 아직 있습니다. 저도 나보다 못한 남을 정죄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머물려고 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환경이 변했고 주변 상황이 바뀌었지만 내 영혼이 성숙하지 않으면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 안에 있는 것들이 다 해결 될 때까지 도피성에 머무르려 합니다. 이때까지 도피성에 머물러야 합니다. 말씀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1. 영적인 세계

우리는 영적인 세계에서 도피성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도피성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그런 장로가 되고 그런 도피성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나온 날들에 관계없이 다른 사람의 도피성이 될 때까지 우리는 그 사람의 도피성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죽지 않도록 우리는 영적으로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성읍들입니다. 하나님이 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도피성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 직장, 학교 현장에서 고난당하고 피할 곳이 없는 사람들의 도피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을 정복하고 다 분배하는 작업이 끝났는데 살인죄를 걱정하여 뜬금없이 도피성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영적인 세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넘어질 수 있고 실수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절대 안 그래.’ 했는데 성공 후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누가 잘났고 못났고를 따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안내하기 위해 도피성을 마련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는 도피성 안에서 한 가족이고 같은 죄인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_이사야55:3’

2.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참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피하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날마다 그러하길 바랍니다. 내 죄를 고하고 피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택함을 받은 아내, 남편, 형, 누구든지 장로가 되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피성으로 안내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어떤 죄라도 다 해결하셨음을 믿는 다면 그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의 죄는 절대 안되. 너는 그 죄를 해결 할 수 없어.’라고 문 앞을 가로 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서 부지중 오살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사야 53:4-6 말씀을 묵상해 보기 바랍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_이사야53:4-6

Ⅳ.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도피성

하나님이 우리를 구별하여 택하신 것이 맞다면 우리 주변의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도피성으로 도망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장로가 되어 안내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억지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를 물려받았을 뿐입니다. 원죄를 물려받은 것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들을 도피성으로 안내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 중직자로 존재하는 이유이고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이 왜곡되어 진실이 아닌 것들이 진실을 밀어내고 진실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시대입니다. 사람들과 진실을 이야기하면 그것이 거짓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그것은 저들의 잘못도 있지만 교회도 잘못한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로써 회개했습니다. 저 때문에 누군가 상처가 되고 있다면 정말 회개합니다. 목회자가 상처를 주고 있다면 언제든지 이야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권위나 명예로 인해 그런 모습으로 나이가 든다면 정말 슬플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가장된 겸손이 아닌 하나님께 사랑받은 은혜로 겸손하여야 합니다.

낮아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가장 낮아지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가족을 살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웃을 살릴 수 있습니까? 저는 이런 것들로 우리가 통했으면 합니다. 저부터 그러길 원합니다. 실수투성인 제가 무슨 목사입니까? 잘하는 것이라고 하나 없이 여러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기 계신 전부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린 서로에게 가장 좋은 도피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미션홈에서는 무슨 사역을 해야 합니까? 도피성 사역을 해야 합니다. 도피성의 사역이 무엇입니까? 죽이는 사역이 아니고 살리는 사역입니다. 살길이 있다고 안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라도 살길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_이사야52:7’

 내일부터는 새로운 예배처소 공사가 시작됩니다. 오병석집사님이 수고를 많이 해주십니다. 그리고 전도사님이 수고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예배처소가 이 지역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도피성이 될 것입니다. 마음을 담고 기도해 주시지기 바랍니다. 이 지역의 소외계층들, 우리의 후대들, 엘리트들이 살길을 찾는 도피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도피성이 되길 바랍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항상 머물러 있어야, 그 사랑 안에 항상 머물러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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