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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4-03-23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3월 23일

제목 : 예수는 그리스도라

말씀 : 사도행전 5 : 33-42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3-23 주일2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메시지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ZfdKdq7c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으로 메시지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youtu.be/F6zZYAE5MT4


Ⅰ. 내 인생의 간증(Story)

하버드 대학교의 조세프 나이교수님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드파워와 소프트 파워입니다. 즉, 딱딱한 힘과 부드러운 힘입니다. 예를 들면, 하드파워는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것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상대의 마음을 굴복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드파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소프트 파워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3세계의 엘리트들이 하버드 대학 같은 곳에 와서 공부하면서 미국적 가치관을 배워 자기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소프트 파워의 핵심이 스토리(story)라고 하였습니다. 휴대폰이나 페이스북, 트위터등을 통해 별 비용을 들지 않고도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퍼질 수 있는 메시지의 힘을 이야기합니다. 그것 때문에 공산국가나 중동의 독재정부들이 뿌리채 흔들리기도 합니다. 북한이 철저하게 통제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스토리라 전투기, 항공모함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하드파워 보다 소프트 파워가 더 중요합니다. 교회의 진짜 힘은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습니다. 건물이나 조직이 아닙니다. 예배처소를 준비를 잘해야겠지만 제가 예배를 갱신하자고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처소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의 예배를 향한 마음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갱신해서 하나님앞에 올바르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한 예배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몇 만명이 모여도 하나님은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스토리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스토리중의 스토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심을 체험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스토리를 가지고 시대를 움직였습니다. 핍박과 환란이 몰아 닥쳤지만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스토리. 즉, 그가 인격자로 도덕적으로 스승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그분의 스토리가 교회를 움직이고 하나님의 백성을 움직이는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하면 안됩니다. 다른 노래를 해서도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만 해야 합니다. 그분을 만나 변화된 삶, 그분을 통해 얻은 힘, 그분께 나아기기 위해 결단한 삶들이 내 인생의 스토리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_빌립보서3:12’

사도바울이 신앙생활을 시작하며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생의 말미에 전도운동을 일으키고 난 후 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런 비밀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단계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식적으로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오면 그 지식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축복이 와서 잘 먹고 잘 살면 그것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스토리로 가지고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Ⅱ.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초대교회의 사도들의 스토리를 듣고 종교지도자들이 격분을 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을 죽이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저도 그런 상황이 닥치면 난감할 것 같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했는데 여러분이 저를 죽이려고 한다면 어떨까요? 난감할 것입니다. 오늘 마치 그런 상황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왜 그런 강퍅한 마음을 가졌을까요? 자기들이 의롭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고 회개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여 강퍅한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육에 속하여 하드파워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배경에 사단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화내는 정도가 아니라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단은 미움의 영이고 살인의 영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고 싫어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면 이들 중에서 상당수가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전쟁 중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승리할 수 있습니까?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야겠습니다.

1. 율법교사 가말리엘의 개입(사도행전5:34-39)

사도들이 죽음의 위기에 왔을 때 가말리엘이 나타났습니다. 모든 종교인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일 것입니다. 가말리엘은 사도바울의 스승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 사이에서도 대단한 인물이이서 한마디 하였는데 그것이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요 율법교사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성경만 연구하는 신학교 교수나 학자정도 되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학자들이 타락하면 그 시대는 희망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학교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가말리엘은 당시 율법학파를 양분하던 두 세력중 하나인 힐렐학파를 이끄는 대학자였습니다. 그는 성경지식만 갖춘 것이 아닌 존경받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훗날 죽을 때 ‘율법의 영광이 떠났고 깨끗함과 거룩함이 죽었다.’라고 슬퍼하였을 정도입니다. 그런 그가 사도들을 죽이려고 흥분할 때 냉정함을 되찾도록 오늘 한마디 한 것입니다. 그가 이야기 한 것은 역사를 보라는 것입니다. 현상을 보지 않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오늘 저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역사이면 우리는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 하고자 할새_사도행전5:33’

2. 세상이 금하는 복음(사도행전5:40-41)

사단은 같은 형제, 자매끼리 분쟁하고 싸우도록 하여 갈라서게 만듭니다. 그래서 중요한 사역을 못하게 하는 것이 특기입니다. 오늘 가말리엘의 조언을 받아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살려두었습니다. 그런데 자존심이 있는 지 그냥 보내지 않고 율법에 명시된 형벌인 39대의 채찍질을 가했습니다. 살가죽이 벗겨지고 뼈가 보이는 잔인한 매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그런 핍박은 언제 일어날까요? 복음을 전할 때 일어납니다. 지금도 중국땅, 북한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도록 협박하고 난 후 사도들을 풀어줍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전하는 메시지의 파괴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뒤에서 사단이 벌벌 떨고 있으니 저렇게 강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사단이 두려워하는 것은 조직과 건물 우리의 삶이 아닙니다. 우리가 깨끗하게 살고 건전하게 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이 복음을 금지했습니다. 교회가 모여서 다른 이야기하면 사단이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나 모여서 복음이야기하면 사단이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그렇게 핍박을 당했는데 본문에 보니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면 핍박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핍박이 오면 올수록 깊이가 더해집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런 힘이 있습니다.

3. 날마다 전한 복음(사도행전5:42)

풀려난 사도들은 풀려나자마자 다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간단명료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즉.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들은 가르쳤고 전도했습니다. 전도라는 단어는 ‘선포proclamation’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teaching’으로 선포된 복음을 상세히 설명하고 그들의 삶에 적용해주는 것입니다. 곧 양육입니다. 이러한 균형을 갖추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 이런 사역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장기간의 계획을 세우고 인도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목회도 그렇고 저축도 그렇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단기선교를 가는데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돈을 모아서 대학생 때는 옷도 사 입지 않았습니다. 통장을 여러개 만들어서 늘 모았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사람, 후배들을 돕는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족을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오랜 시간 기도했는데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예배드리게 된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복음전하는 것을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19세기의 무디는 매일 단 한사람이라도 새로운 불신자를 만나서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사실 이 부분에 굉장히 무딥니다. 특별한 행사 때 전도하는 것인 줄로 압니다. 그리고 내 기분이 좋으면 전도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날마다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라고 했습니다. 장소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교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인생의 스토리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적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진짜 말씀대로 살고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사는 사람은 적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을 수 있지만 기죽지 않고 더 많은 자들에게 이 복음 전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Ⅲ. 예수는 그리스도라

오늘 초대교회 사도들이 전한 예수가 그리스도라 하는 데 무슨 말입니까?

1. 인간의 근본 문제(창세기3:1-6)

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란 말에 흥분했습니까? 반대로 사단은 그 말이 왜 그렇게 두려웠을까요?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근본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문제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부싸움의 이유가 치약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치약 때문은 아닙니다. 그 전에 무엇인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치약이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어질러진 신발이 싸움의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문제에는 원인이 있고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만이 인간의 문제를 다루면서 가장 중요하게 원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창세기 3장에 나온 선악과 사건입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에게만 하나님이 영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도록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땅에서 뽑힌 나무에게는 물과 햇빛이 오히려 독약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을 정복하고 다르시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마치 그렇게 보이지만 사실은 당하고 있습니다. 결혼날짜로 함부로 잡지 못하고 이사도 아무 때나 하지 못합니다. 자동차를 사도 전부 고사를 지내고 탑니다. 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원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였고 그 때로부터 하나님이 떠나신 것입니다. 그것이 교만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그렇게 되려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것이 사단이 주는 유혹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해야만 강한 인간이 하나님이 떠나시니 영이 죽은 것입니다. 그 영에 사단이 찾아오고 사주, 팔자, 저주에 묶이게 됩니다. 그때부터 우상을 섬기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대신 귀신을 섬기고 살게 됩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육신의 질병이 오게 됩니다. 의학이 발달했지만 한가지 질병이 해결되고 나면 또 다른 질병이 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 모든 것이 후대에 대물림됩니다. 영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두려우니 열심히 종교생활을 하고 가진 것을 바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근본문제를 알아야 합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죽으면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사단이 이 근본문제를 모르게 합니다. 교회에서도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지루하고 재미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을 떠난 것에 있습니다.

2. 모든 문제 해결자(창세기3:15)

이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나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원죄를 짓자마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이야기이고 신약은 오신 메시야 즉,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성경자체가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오셨는데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야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입니다. 구약에는 왕, 선지자, 제사장에게만 하나님이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세 가지 직분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왕은 사단을 멸하신 것이고, 선지자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신 것입니다. 제사장은 죄사함을 담당했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일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가 그리스도라 하니 바리새인들이 벌벌 떤 것입니다. 사단이 그 일을 막으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_요한복음3:16’

3. 임마누엘(요한복음1:12)

여기까지는 모두의 일입니다. 이것이 내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란 사실이 내게 믿어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은혜가 아니고 내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내 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부활하시 그리스도의 이름이 내게 은혜로 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언제까지나 끝까지 함께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을 알고 누리는 것인 신앙생활입니다. 그 인도를 받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 증거를 나누는 것이 전도입니다. 예배, 기도, 전도는 사실 같은 말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다 있는 것입니다. 내 스토리의 핵심은 임마누엘입니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_빌립보서1:6’

Ⅳ. 나의 전도 시스템

오늘 말씀을 통해 초대 교회 사도들처럼 응답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기독교인들이 남을 비판합니다. 이것을 알면 함부로 비난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가 전부 다릅니다. 하나님이 나를 먼저 부르셨으니 섬기면 되는 것인데 이를 모르니 싸우고 비난합니다. 진짜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들은 참 겸손합니다. 다 양보합니다. 복음을 아니까 세상에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영원입니다. 그 안에 있으면 사람들도 보입니다. 내 인생의 성공도 보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 지, 왜 결혼이 중요한 지, 왜 공부가 중요한지 보입니다. 그래서 내 간증이 생깁니다. 그것은 교회다니는 것과 다릅니다. 종교생활과 다릅니다. 누굴 만나든 무엇을 하든 내 간증이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전도시스템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전도는 간증이 있는 것입니다.

새로 가는 교회주변이 좋습니다. 좋은 동네입니다. 토요일에 학교에 가보니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좋은 잔디 축구장에 운동장에 이제 토요일이면 우리도 복음을 족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전도시스템은 여러분의 현장입니다. 여러분이 변화되어 가정과 가문을 살리고 직장을 살리는 것, 그리고 그 것이 연합되어 교회가 중요한 간증의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내 가정, 내 현장에서는 나를 감추고 전도를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스토리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스토리를 갖길 바랍니다. 오래 걸려도 저는 기다릴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도 시스템을 갖추어 중요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 정말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_사도행전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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