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2014-03-16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4년 3월 16일

제목 :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기업


말씀 : 여호수아 11 : 16-23

설교 : 오승주목사



2014-03-16 주일1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메시지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V97sKIhi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 메시지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youtu.be/mnZdMkW4QYM



Ⅰ. 회개하는 삶으로의 갱신

이번 주에 제가 심방을 마무리하면서 숭실대학교에 갔습니다. 그 곳에 갔더니 한경직목사님 기념관이 있었습니다. 심방을 마치고 그 건물 앞에 잠시 앉아있는데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도 피고, 모여서 수다도 떠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왠지 마음이 서글펐습니다. 사실 불신자 같은 그 아이들을 보고 서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주일간 만난 렘넌트들과의 만남이 쌓인 것이었습니다. 이 복음을 우리 믿음의 선조들 때문에 받았는데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배에 오는 것이 대단하다고 할 정도로 강퍅해졌습니다. 저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음에 동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심방을 하러 갔을 때는 사명을 주고 하나님 앞에 받을 응답을 주어야 하는데 심방의 목적이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시대가 강퍅해진 것입니다. 이 마음을 나누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금요예배 때 나누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묵상을 제대로 한번 못해본지 모릅니다. 다양한 묵상집이 있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묵상을 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묵상은 하나님 말씀을 따르겠다는 것인데, 우리는 그렇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묵상은 단 한번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예배는 억만 죄악가운데서 하나님 떠나 영원히 지옥에 가야할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독생자의 보혈의 은혜로 구원 받아 남은 인생 주를 위해 살겠다고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배를 빨리 해치워 버려야 할 것으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겨우 예배한번 안 빠지고 생색내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 나라와 민족의 젊은이들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교회 건물은 번듯하게 지어져 가고 시스템은 막강해져 가는데 하나님이 이 나라와 민족을 떠나고 있다는 느낌을 이번주에 받았습니다. 그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같은 종교생활하고 있는 자들의 결말입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_마태복음23:13-14’

가스펠교회 가족들은 이런 종교생활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회복하고 소외계층, 3세계, 엘리트 현장에 저들이 즐거워하는 말씀이 아닌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교회가 됐으면 합니다. 이 교회를 개척하면서 정말 예배를 회복하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온 맘과 정성을 다하는 예배를 꿈꾸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드리는 이 예배뿐만 아니라 일주일간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화평케 되는 예배가 회복되어지길 축복 드립니다.

Ⅱ.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1.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들과 싸운 지가 오랫동안이라(여호수아11:18)

남부연합과의 전쟁이후 북부연합과의 전쟁 부분을 뛰어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이후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노예생활 400년, 광야 40년을 지나서 가나안에 들어와서 무려 7년 동안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랫동안’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요단의 창일한 물을 마른땅으로 건너고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가나안 남부를 석권하고 북부 연합까지 다 물리치고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이 마침내 끝났습니다(여호수아11:23) 가나안 땅을 취하라는 것은 창세기에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입니다.(창15:13) 창세기에서 약속을 주셨으면 하나님 능력으로 금세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복하게 하실 일이지 왜 이렇게 여러 날 동안 싸움하게 하셨을까요? 이 본문을 묵상하며 하나님이 이 부분에 마음을 주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점점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두렵건대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_신명기7:22’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많은 답들을 얻었습니다. 회개하고, 돌이키고, 죄를 끊었다가도 다시 너무 쉽게 죄에 물드는 것이 우리의 본성일지 모릅니다. 그 본성을 하나님이 아시고 여러 날 동안 전쟁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 날, 죽을 때까지 우리는 전쟁을 해야 합니다. 천국에 갈 때까지 죄와의 전쟁, 악습과의 전쟁, 하나님 떠나게 하는 사단과의 전쟁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여호수아11:20a)

7년 동안 힘든 전쟁을 하면서 기브온 하고만 화친을 했습니다. 그것도 여호수아가 속아서 화친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만 곁에 남았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다 강퍅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강퍅한 마음은 안식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1장 24~28절에 보면 ‘자기 마음대로, 상실한 마음대로, 정욕대로 살게 내버려 두는’ 상태를 강퍅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멸할 자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고, 하나님의 자비의 날이 지나간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중에 의인이 하나도 없고 우리가 100% 죄인인데 죄악의 속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다스려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은혜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자고, 먹고, 착한 일도 자기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을 성경은 강퍅하다고 합니다.

복음의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누구도 저주받은 자의 길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내 식구라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들어오지 못하면 저주받은 자가 되고 맙니다. 사실 강퍅한 사람이 옆에 없으면 세상과 화친하기가 쉽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가나안 사람들을 강퍅하게 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사람들과 화친을 맺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친절하게 이스라엘을 맞이했다면 가나안 땅은 거룩한 땅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나를 속이는 기브온 보다 강퍅한 형제, 배우자가 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도 문제가 있고 강퍅한 사람이 어서 빨리 넘어져 하나님께 돌아왔지만, 너무 착한 사람 '법 없어도 살 사람, 아무리 봐도 예수 믿는 사람보도 백 배 나아’라고 하는 사람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강퍅한 자가 옆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저희 아버지가 강퍅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신학교를 가겠다고 하니 공무원, 군인이 되라던 아버지께서 학교로 찾아 오셨습니다. 제가교회를 통해 신학교에 간다는 것을 모르시고 교무실에 와서 난리를 치신 것입니다. 유교사상에 충만하셨던 국어 선생님이 저를 찾아오셔서 엄청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 때문에 저희 가정이 하나가 되고 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가정에 전쟁이 끝나고 나니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3.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고(여호수아11:22a)

얼마 전 유정옥 사모님이 쓰신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 행복하다’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책을 읽으니 참 기가 막혔습니다. 신앙이 좋은 사모님이 결혼했는데 남편은 사업을 잘하는 사람으로 매우 강퍅했습니다. 그런데 그 잘나가는 사업 중 한 대리점의 사장이 3억원을 부도내고 잠적하는 바람에 결국 잘나가는 사업까지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수를 믿자 해도 믿지 않던 남편이 사업이 망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더니 그 남편이 신학공부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모님이 어느 날 길에서 부도내고 잠적했던 대리점 사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미안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그 사람 앞에서 우리 같으면 멱살을 잡고 돈을 내 놓으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모님은 ‘당신이 우리 남편 예수 믿게 해주었으니 이 돈은 안 갚아도 된다, 앞으로 돈이 생기거든 다른 어려운 사람 도와라. 이 3억원은 오늘부터 끝이다. 그리고 우리 남편을 만나지도 말라’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에 이 사모님에게 있던 돈의 '아낙'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돕고, 장애인 사역, 3세계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의 강퍅함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내 속의 강퍅과 두려움이 멸절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강퍅함을 보면서 내 속의 강퍅을 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저주 받은 사람들, 진멸 받을 자들은 절대로 다른 사람의 강퍅을 보면서 내 강퍅을 보지 못합니다. ‘저 인간이 이상해, 내 남편, 내 자식은 이상해’ 그러면서 스스로 강퍅해져버립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못하는 삶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저는 목사이고 오직 복음 외치는 전도자라면서도 어느 순간에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 신앙생활 해?’ 가 아닌 '저 사람 직장은? 저사람 학교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제 기준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정도 주일예배 드렸으면 괜찮겠지.' ‘약간’이라고, ‘가끔’이라고 쉽게 생각한 것들이 평생 따라다니는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4.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여호수아11:23b)

이것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완전할 수 없고, 하나님의 명령을 100% 이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데 쉽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왼뺨을 맞았을 때 쉽게 오른 뺨을 내 줄 수 있습니까? 그것을 우리가 100% 이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세력을 단계적으로 ‘점차’ 그것도 7년간 물리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 승리한 후에 지파의 구분에 따라 그 분깃을 기업으로 나누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구별해서 뽑고, 뽑아 주신 것입니다. 그 분깃은 여러분의 삶의 상황들, 혹 가난과 고난 등 나에게만 주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 내게 주신 이 분깃들을 받아들이고 살도록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점차 우리를 작업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원망만 하고 있으면 평강은 없습니다. 전쟁이 멈추는 것은 이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전쟁이 멈추어야만 비로소 분깃을 보이고 또 그 분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속의 전쟁이 멈춰야 하나님이 주신 분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정말 가난했습니다. 사실, 8남매가 농부의 자식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고달팠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수 믿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저의 가난과 고달픔을 인정할 때부터 하나님께 다 드릴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예수님을 믿고 대학생 때 제 젊은 시절을 하나님께 다 드렸습니다. 다 드려도 보잘 것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더 컸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어려운 사람들 보면 어머니 생각나고, 제 젊은 시절 생각나서 못 지나칩니다. 어제도 핵심에 갔는데 늘 저에게 힘주시던 전라도의 작은 교회 목사님 딸을 본 겁니다. 사실 요즘 저는 예전처럼 지갑에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가지고 다니면 쓰기 때문에 아예 안들고 다닙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몇 년만에 봤는데 저에게 힘주셨던 그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은행에 뛰어갔습니다. 예전에 한 목사님이 정말 어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 분하고 저하고 아무런 상관없는 분인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와이프 몰래, 제 사례를 받아 십일조를 빼고 다 준적이 있습니다. 사실 저도 그때는 어려울 때입니다. 그 친구도 부담스러워 할까봐 다른 분들과 힘 모아서 줬다고 거짓말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보니 그분이 맡은 청년부에서 우리교회를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평강이 없습니다. 평강은 우리 안에 전쟁이 멈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묵상입니다. 말씀이 들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 끊임없이 전쟁이 있는 것은 아직도 내 마음대로 살기 원하는 삶의 방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삶은 ‘비교하지 않는 삶’입니다. 가출하는 자녀, 잔소리하는 시어머니, 부당하게 대우하는 직장 상사가 모두 용납하기 힘들 것 입니다. 그런데 용납하려 하니 내 속에 전쟁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십자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선택이 전쟁을 승리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평강이 임합니다. 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무엇을 뜻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죄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 내가 주님께 용서받았다는 확인이 없으면 전쟁을 그칠 수 가 없습니다. 그 전쟁이 그쳐야 비로소 하나님이 내게 주신 분깃이 보입니다. 나를 괴롭히던 시어머님이, 나를 괴롭게 하던 자녀가, 나를 괴롭히던 그 무엇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분깃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Ⅲ. 하나님의 백성에서 주신 기업

1. 오늘도 치러야 할 전쟁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치러야할 전쟁이 있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 전쟁이 정말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아직 애굽에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혹시 광야에 머물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요단 앞에 멈추어서 갈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여리고를 돌고 계십니까? 가나안의 매력에 빠져 있습니까? 하나님은 ‘점차’ 전쟁을 끝내시길 원하십니다. 전쟁이 끝나면 새로운 사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끝나야 진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영적인 상태가 되기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이 무려 7년이 걸렸습니다. 저희가 교회를 개척해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전쟁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이 전쟁이 끝나야 하나님이 교회에 개인에 주신 분깃이 보일 것입니다. 그 전쟁이 어려울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신앙생활, 곧 하나님과 화평케 되는 신앙생활로 들어서시길 바랍니다. 전쟁을 끝내는 것이 여리고는 도는 일일 수도 있고, 길갈로 몇 날 몇 일 나아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시 아이성에서 패하였을 지라도 단호하게 내안에 죄악을 회개하고 새롭게 결단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전쟁을 치르시길 바랍니다. 강퍅한 사람들이 있다면 여러분의 강퍅을 봐야 합니다. 이 전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종교 생활과도 같습니다. 외면하지 않기 바랍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_ 역대하7:14’

2. 내 마음의 완악함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의 강퍅을 봐야만 진정한 회개가 되어집니다. 저는 정말 생각을 잘못했습니다. '아 한국교회가 문제구나! 이 나라 정치가 문제구나! 우리 후대들이 왜 저럴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문제는 저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사람을 찾으시는 데 저는 다른 사람만 탓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 마음의 완악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호수아는 어떻게 전쟁을 끝낼 수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완전한 개입하심으로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였습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단순히 주일예배를 잘 드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예배에 대한 마음이 어떠한 가입니다. 그것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나에게 주신 기업을 소망합니다.

나에게 주신 기업을 소망해야 합니다. 복음을 가진 한 사람이 그 가정을 살릴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내 안의 전쟁이 끝날 때 비로소 분깃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땅이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가문이든지 상관없습니다. 그것을 여러분 소망하십니까? 우리는 이 땅에 사는 이유가 그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분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저 3세계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소외계층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교회의 분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짜 분깃은 엘리트현장에 있습니다. 헤브론 산지 같은 것입니다. 다음 주에 설교하겠지만, 우리 교회 안에 전쟁이 멈추면 하나님은 분깃을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예배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Ⅳ. 나의 현장

그렇다면 여러분의 현장은 어디입니까? 그 속에서 언약의 전쟁, 곧 거룩한 전쟁을 치르고 계시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그 현장이 가정입니까? 직장입니까? 아니면 그 직장의 상사입니까?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난입니까? 영적인 문제입니까? 여러분의 현장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거룩한 전쟁을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어떤 환난과 요동 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예배를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성도가 그 현장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설 때 비로소 전쟁은 멈추게 될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_마태복음5:9’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03-23 주일 1부 예배  (0) 2014.03.23
2014-03-16 주일 2부 예배  (0) 2014.03.16
2014-03-09 주일 2부 예배  (0) 2014.03.09
2014-03-09 주일 1부 예배  (0) 2014.03.09
2014-03-02 주일 2부 예배  (0) 2014.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