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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4-06-08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6월 8일

제목 : 베드로에게 각인된 것

말씀 : 사도행전 10 :9-23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6-08 주일2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메시지를 다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9r2mD9oP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으로 메시지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vimeo.com/97638187


가스펠교회 주일2부예배 20140608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베드로라 하는 시몬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_요한복음1:42’

 

게바’, 즉 켑하스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아람어로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그 반석이라는 의미의 게바를 헬라어로 번역하니 페트로스가 되었고 그것을 한글 성경은 베드로라 음역한 것입니다. 주님이 시몬에게 반석을 의미하는 베드로란 새 이름을 지어주심으로 반석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단순하면서도 불같은 성격을 가진 시몬은 매사에 격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언제나 덤벙거리고 살아가는 자였습니다. 그런 시몬을 주님께서 꿰뚫어 보신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 그 어떤 가치나 의미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도대체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어떻게 반석이 될 수 있으며 반석과 같은 믿음으로 살아 갈 수 있을까요? 시편621-2절에 답이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 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모든 것이 가변적인 세상에서 영원히 불변하는 반석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그래서 연약한 인간은 그분께 접붙임으로써 반석과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믿음의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몬은 원래 이스라엘 변방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던 무식한 어부였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을 주름잡던 엘리트들에 비하면 시몬은 정말 보잘것없었습니다. 아마 시몬이 주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수많은 어부들처럼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자신을 찾아오신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부터 위대한 반석 베드로가 된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변화된 시몬 한사람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앉은뱅이가 치유 받았습니다. 중풍병자 애니아가 완쾌되었습니다. 다비다는 죽음에서 새로운 인생이 되었습니다. 무두장이 시몬 역시 베드로가 유숙함으로 새롭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시몬이 훌륭하고 대단했기 때문이 아니고 주님을 만나 반석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입니다. 그 뿐 아니라 시몬은 이제 타인이 요청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를 찾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고넬료가 베드로를 찾아 모시고 오라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이런 반석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비밀은 반석 되신 주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장면에서 놀랬습니다. 그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그 사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인데 이 장면이 이유 없이 기록되진 않았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베드로는 이때까지만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인만 누릴 수 있는 이스라엘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그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 베드로에게 각인된 것

 

1. 지긋지긋한 선민사상_사도행전10:9-16

 

고넬료가 세 사람을 보내 욥바로 보낸 이튿날 그때 유대시간으로 제 6, 우리 시간으로 낮 12시에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셔서 옥상으로 올라가게 하셨습니다. 그것부터 하나님이 틀을 깨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관습상 그 시간은 기도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부정하게 생각하고 멀리하는 온갖 짐승과 새들이었습니다. 그것을 잡아먹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베드로는 자신은 속되고 깨끗하지 않는 것은 결코 먹지 않겠다고 답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그것이 무려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여기서 부정하다고 여기는 그것들은 이방인들입니다. 우리에게도 선민사상이 있습니다. 어쩌면 베드로보다 더할 수가 있습니다. 그의 인생이 주님을 만나 축복된 인생이 되었지만 주님의 진짜 소원을 위해 온유한 자가 되지는 못한 것입니다. 너무 웃긴 장면입니다. 베드로 같은 무식한 어부를 살려놓아 축복의 인생으로 만들어놨더니 그는 스스로 경건한 척합니다. 하나님이 깨끗하다 한 것을 먹지 않는다고 끝까지 이야기합니다. 누구의 모습입니까? 저의 모습입니다. 복음을 받아 그토록 복을 받아놓고도 이제는 남을 정죄하기 바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치인을 비판하고, 죄인을 정죄합니다. 그들을 살리려고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은 정말 지긋지긋한 선민사상과도 같습니다. 우리 단체가 복음운동을 하면서 그리 핍박을 받았으면서 또 우리는 핍박하려고 합니다.

 

2. 베드로의 편견_사도행전10:17-23

 

17절에 보니 베드로가 본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환상을 주신 이유조차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고난을 주시고 계시는지, 하나님이 왜 그런 꿈을 주셨는지, 하나님이 왜 저런 사람을 나에게 붙이셨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식조차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무두장이의 집에 머물고 있으면서 그러했습니다. 사실 아무도 가지 않는 그 곳에 간 것까지만 해도 베드로는 정말 위대한 사역을 한 것입니다. 더럽고, 버려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발걸음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은 담아지지 않았던 것이고 어쩌면 그들의 생각과 마음에 계획이 없었던 부정한 것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것은 편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고쳐먹지 않으면 평생 편견 속에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이 편견을 타파하고 극복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제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일이 많지 않습니다. 아마 거의 없을 지도 모릅니다. 고등학생 때 저를 괴롭히던 친구를 우연찮게 복음을 전한 일이 있지만 스스로 그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저는 저들이 하나님을 떠나 저주를 받는 다고 생각하였지 하나님이 저들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베드로가 그것을 모르고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에 깨닫게 해주십니다. 갑자기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온 것입니다. 그제야 베드로는 깨달았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기도하지 않았고 환상을 보지 않았더라면 고넬료에게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 번씩이나 보고 들은 환상과 음성의 의미를 몰라 당혹스러워하던 순간 그들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또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우리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도대체 이 말씀을 왜 주셨지? 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실수가 많고 편견이 많지만 그럼에도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편견을 깨뜨려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 삶에 그 말씀들이 떠오르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이고 묵상일 것입니다. 그것이 포럼이고 우리의 모임인 예배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 복음이 각인된 한 사람

베드로가 복음으로 자신의 편견들을 깨고 복음으로 각인되어가는 과정이 우리가 보고 있는 사도행전의 장면들입니다. 복음이 각인 되는 것은 많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보는 베드로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깨달았다고 큰 소리치고 사는 분들을 보면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정말 깨달았을까요? 아니나 다를까 금세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사람들과 벽을 쌓고 이중생활, 삼중생활을 합니다. 결국 복음을 떠나는 삶이 되어버립니다. 복음을 깨달았다는 것은 나의 모든 각인을 내어놓고 주님의 말씀, 즉 복음으로 각인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베드로도 그랬고 바울도 그랬습니다. 오랜 시간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과 생각을 수도 없이 고쳐먹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가스펠교회, 여러분에게 이런 과정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마음과 생각을 고쳐먹고 삶이 바뀌어질 때 온유라는 선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각인된 한 사람이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삶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편견을 깨고 그의 인생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받은 선물을 베드로전,후서에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_베드로전서2:9-10’

 

이런 베드로처럼 우리 인생이 변화되길 원합니다. 지금 예배드리는 것이 힘든 분들이 있다면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시간을 소망하고 견디셔야 합니다. 그것은 나를 위한 주님의 사랑에 대한 답변입니다. 우리 한 사람이 주님의 사랑으로 변화된다면 우리 가정과 우리 후대, 이 땅에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가스펠 교회의 성도님들은 최선을 다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주님 우리 인생이 베드로처럼 반석과 같은 믿음으로 사는 삶이 되어져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음운동에 쓰임 받게 하소서. 그것을 위해 우리의 편견과 지긋지긋한 선민사상을 내려놓고 주님으로 인해 온유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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