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014-01-03 금요예배


<금요예배 >

일시:  2014년 1월 3일

제목 : 축복을 담을 영혼의 상태

말씀 : 시편 1:1-6

설교 : 오승주목사





2014-01-03 금요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9VtfaKCX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으로 메시지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youtu.be/kL0OAx7elTI


오승주 목사

서론)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는 가?

성경은 영적인 세계에 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세상은 반대로 영적 세계에 대해 무지하게 하거나 오해하게 한다. 사단의 가장 큰 전략 중 전략이다. 복음을 받았는데 속을 때가 있다. 복음은 좋은데 환경에, 감정에, 인간관계에 속은 적이 있다. 복음은 알았지만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말씀을 보던 중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영적 세계를 믿게 되었다. 그 때부터 달라져서 환경에 잘 속지 않고 감정에, 성격에 흔들리지 않는다. 내면에 힘이 생겼다. 영적 세계를 알기 때문에 속지 않으려 한다. 그걸 모르면 자꾸 속게 된다.

고등학생 때 전도만 하던 때가 있었다. 매일 영접을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을 정도였다. 일기장을 보면 200명이 넘는 영접한 친구들의 이름이 있다. 그렇게 1년을 살았다. 많은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경공부 모임에 수십 명씩 모였다. 어느 날 화장실에 있는데 밖에 친구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들이 제가 있는지 모르고 제 이야기가 이야기를 했다. ‘이번 주에 어디 놀러 갈래’ 하고 이야기 하는데 ‘승주는 어떻게 하냐’라고 하자, ‘빼고 가자’라고 이야기 했다. 서운해 하지 않겠냐는 친구의 이야기에 ‘걔는 우리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자나. 영접대상으로만 보지’라고 이야기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화장실에 있었다. 나는 친구들을 사랑해서 지옥에 가지 않게 하려고 복음을 전했는데 저 친구들은 나를 다르게 생각해고 있었다. 인생에 있어 잊지 못할 장면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에서는 괴로월 할 수도 있다. 나는 장로로서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아내나 자녀들은 힘들어 할 수 있다. 나는 목사로서 잘 하고 있는데 성도들은 괴로울 수도 있다. 그것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면 많은 응답을 찾을 수 있다. 영적인 문제는 그런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한동안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 영적 싸움에 관해 이야기 할 텐데, 영적 세계가 진짜 있다면 우린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 만약, 세상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정말 존재 한다면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께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는 영적문제가 있다면 그것과 싸워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 영적 싸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냥 흑암을 꺾는다. 그냥 기도를 한다.

오늘은 조금 다르게 이야기 해보려 한다. 우리는 균형을 알아야 한다. 영적 싸움은 흑암만 꺾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젊을 때 갑자기 죽게 된 친구가 있었다. 오랫동안 기도했던 친구이다. 그때 큰 충격을 받았다. 계속 흑암을 꺾고 기도만 했지 그 친구를 위해 진실하게 복음을 전해준 적은 없었다. 영적싸움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금요예배를 통해 나라와 민족 세계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제가 율법적인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저는 학교에서 세상에 나가서 봉사를 하자는 것을 배우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은 균형을 갖췄으면 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당분간 계속하려 한다.

그렇다면 영적 싸움은 어떻게 할 것인가

본론) 영적인 싸움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1. 인생의 도표를 그려야 한다.

진짜로 사단이 존재 한다면, 부모님을 괴롭히고 가문을 공격한 사단이 있다면 그냥 기도해서, 특별 새벽기도를 해서, 합숙훈련을 다녀와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가문 대대로 공격해온 사단과 싸우는데 우리는 아무런 계획 없이 싸우고 있다. 인생을 두고 싸워야 하는데 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그렇다. 절에 가면 절을 하고 제사를 하는데도 다 의미가 있다. 중국의 선도교는 경지에 이르는 단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우리는 세상이 무너져 가는 데 이를 위해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리고 왜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셨냐고 한다. 인생의 도표는 우리의 비젼이고, 이면 계약이다.

예레미야 31:31-32 처녀 이스라엘아 너의 이정표를 세우며 너의 푯말을 만들고 큰 길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을 마음에 두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반역한 딸아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이정표는 사인이다. 서울에서 광주를 가는 것만 해도 시간표를 알아야 하고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하는지 머리 속으로 그린다. 이정표는 그런 것이다. ‘너의 푯말을 만들고’라고 한다. 그 뒤가 더 중요하다. ‘큰 길 곧 내가 전에 가던 길을 마음에 두라’ 전에 가던 길은 모세, 아브라함, 이삭이 가던 길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조들을 통해 보여주신 길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 이 나라를 두고 세계를 두고 실제적인 영적 싸움을 하지 않는다. 기도제목 하나, 도표 하나를 갖고 있지 않다.

인생의 도표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 첫 번째는 구체적인 기도제목이 있는가이다. 눈을 감고 기도하면 몇 분 정도를 할 수 있는가. 한말을 또 하고 또 하게 된다. 예수님은 이를 중언부언 한다고 말한였다. 찬양 인도자가 기도하는데 기도제목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앞으로 훈련을 할 것이다. 기도를 하면 나라를 위한, 세계를 위한, 선교를 위한 기도가 술술 나와야 한다. 우리는 한말을 또 하고 무슨 기도를 하는지도 모른다. 구체적인 기도 제목이 없기 때문이다. 진짜 기도의 사람들은 기도의 줄을 잡는다고 한다. 기도의 줄이 없다는 말은 기도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을 감았을 때 기도할 내용이 없다면 기도생활이 없다는 것이다. 사도신경, 주기도문은 눈을 감고도 줄줄 나온다. 매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냥 나오는 데로 기도하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기도 제목이 없는 것인가. 정확한 기도제목을 찾길 바란다. 인생의 도표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다. 기도제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생각과 삶이 다르다. 교회를 향한 기도제목이 있는 사람은 예배드리는 모습이 다르고 광고를 듣는 것도 찬양 하는 것도 다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제목을 가진 사람이 구체적인 그림, 목표를 가져야 한다. 인생에 있어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 저는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O형에, 막내에 낙천적으로 타고났다. 밥 먹으러 갈 때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지금은 많이 갱신했다.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문제가 오면 문제에 빠지고 남이 이야기 하면 시험에 들고 비난과 비판을 들으면 시험에 빠졌다. 목적과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20대 말미에 인생의 그림을 그렸다. '하나님, 30대, 40대, 50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30대 중반에는 하프타임을 가졌다. '하나님 인생의 후반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많은 생각을 했다. ‘저는 후대를 위해 이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잘하는 것은 글을 쓰는 것이니 후대를 위해 책을 쓰겠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문제가 오고 흔들릴 때마다 저를 잡아주고 인도해 주신다. 계속 기도하고 바라보고 있으면 내 것이 되고 체질이 되어 나를 이끌고 간다. 지금은 편안하게 책을 보고 묵상을 할 수 있다.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게 없으면 맹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신앙생활을 감정적으로 한다. 그러니 희망도, 소망도 없다. 잠언 21:31 싸울 날을 위해 마병을 예비하라 한다. 10년 20년 뒤에 전쟁이 있는데 마병이 없으면 되겠는가. 싸울 날이 분명히 있는데 이를 알지 못하면 적이 왔을 때 당할 수밖에 없다. 영적인 세계도 똑같다. 인생도 똑같다. 하나님 앞에서 구체적인 목표를 그리지 않는다면.

인생의 도표 마지막은 실제로 도전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실제로 도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허황된 꿈을 꾼다. ‘지교회를 몇 백개를 할 것이다. 세계복음화를 위해 이를 할 것이다.’ 라고 한다. 굉장히 허황되게 보인다.

교회에 한 아이가 에스더 사모님을 보고 통번역사를 꿈으로 가지고 있었다. 보통은 '대단하다. 믿음이 좋구나‘ 했을 텐데 현실적으로 이야기 헸다. ’영어 점수는 몇점이냐‘고 했더니 영어 공부가 하기 싫다고 했다. 그게 비단 그 아이의 모습일까. 제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교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생의 그림을 어디 위에 그릴 것인가. 말씀위에 그리고, 하나님과 약속을 한다. 그렇다면 도전해 가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이 성전을 짓는 것을 꿈으로 주셨다. 늘 성전 짓는 꿈을 그리고 늘 사모하였다. 광야에서도 쫓길 때도 포로 중에도 왕이 되어서도 사모하였다. 하나님이 피를 많이 흘려 지을 수 없게 했음에도 사모하고 성전 지을 준비를 다 하고 죽었다. 아주 구체적이었다. 바울은 로마 복음화가 꿈이었다. 매우 전략 적이었다. 사도 바울의 전략서가 사도행전이다. 지도를 펴고 보면 사도 바울이 전략적으로 도시를 순회 한 것을 볼 수 있다. 1, 2, 3차 전도여행을 통해 제자를 세웠다. 로마복음화, 세계복음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작은 것 하나하나를 도전해 갔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만 한다. ‘강남 복음화 하게 해주세요.’ 어떻게 할 것인가. 인생을 두고 가문을 축복의 가문으로 복음의 명문가로 바꾸고 싶다면 구체적인 기도제목, 그림을 가져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작지만 실제적인 도전을 해야 한다.

가스펠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도전을 하려고 한다. 함께 기도해 주면 좋겠다.

2. 왜 우리의 영적인 싸움은 달라야 하는가.

우리는 왜 영적싸움을 이렇게 해야 하는가. 이런 말씀을 하면 그게 왜 영적인 것이냐고 한다. 독서를 하고 청소를 하고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영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성경을 보면 그게 영적이 것이라고 한다. 물론 산에서 기도하는 것도 영적인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다 영적이어야 한다. 그것을 모르니 자꾸 놓치고 분리하게 된다. 교회에서 거룩한 척을 하고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는다. 기도원에서 분위기를 잡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임재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의 직장, 가정, 발검음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는 것인가.

가정, 직장, 미래를 두고 도전하기 바란다. 작지만 대한민국, 세계 현장을 위해 도전할 것이다. 왜 이런 영적 싸움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복음이 없고, 복음을 모른다. 도미노와 같다. 작은 것이 하나 넘어지면 나중에는 어마어마한 것이 넘어진다. 사단이 준 작은 것이 국가를 교회를 무너뜨린다. 지금 한국교회가 그렇다.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검사, 변호사들이 들어가 있다. 그런 것은 교회 안에서 있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의 것이지 네 것 내 것이 없다. 작은 불신앙이 넘어뜨리는 세상이다. 지금도 사단은 우는 사자처럼 믿는 자들을 넘어뜨린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다.

단순히 기도만 하면 되겠는가. 전구가 빛이 나오지 않는데 빛이 나오게 해 달라고 365일 기도만 하면 되겠는가. 물론 하나님이 하실 수 있지만.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다. 한번 이를 어기신 것이 노아의 방주 사건이다. 하나님이 이를 회개하시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를 잘 모른다. 전구를 갈아 바꾸면 된다. 우리는 갱신하기 않고 점검하지 않고 세상 속에서 그냥 살아간다. 빛을 비춰야 흑암이 떠난다.

어제 기사를 보니 미국에서 대마초가 콜로다도 주에서 합법화가 되었다. 주지사의 얼굴이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며 밝았다. 서부 LA지역에는 동성애법을 투표해서 되지 않았다. 투표율을 보면 52%가 반대였다. 48%가 찬성한다는 것이다.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동성애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마약이 합법화 된 것은 마트에서도 마약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교회에 아이들이 없다. 점차 유렵교회처럼 되고 있다. 미국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모르고 있다. 대형교회가 생겨나고 있으니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구나.' 한다. 한국교회도 그렇게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이 이런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속는다. 맞다고 하지만 하나님 계획이 아닐 때가 많다. 바울은 섰다 하면 넘어질까 주의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한다.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라고 한다.

잠언 3:19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이사야 52:9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너희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그런데 우리는 자꾸 사람을 의지하고 세상을 의지한다.

여러분이 연약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저는 나이를 먹을수록 훈련을 받을수록 이를 느낀다. 한동안 훈련을 다 받고 해외에 강사로 나가면서 어느 순간 말씀을 듣는데 뒷자리에 가있었다. 다 아는 메시지네, 또 하시네 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얼마전에 이를 알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다. 예배를 소홀히 하고 성경 읽는 것을 소홀히 했다. 우리는 이렇게 연약한 존재이다.

세 번째로 우리는 한 사람을 통해 가정과 세상과 시대를 바꿀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한 사람 때문에 가정, 직장, 나라, 민족, 시대가 바뀔 수 있다. 루터 한사람 때문에 1500년간의 흑암이 꺾였다. 증도의 작은 전도사 한명 때문에 나라에 전도운동이 일어났다. 동네의 궂은일을 해가며 복음을 전했다. 그 전도사님의 제자가 김준곤 목사님과 같은 수십 명의 복음의 사람이 있다. 증도는 지금도 100% 기독교인인 섬이다.

제가 아는 의사 선배는 단기선교를 다녀와서 병원을 하고 있다. 병원을 선교센터처럼 해 놓았다. 기도제목을 걸어놓고 선교 현장을 그려 놓았다. 그런 병원을 불신자들이 가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지점을 내고 있다. 자기가 최선을 다해야 선교지에 있는 한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다며 최선을 다해 일을 한다. 그렇게 하면 실패하고 망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얼마나 치료를 잘 하는지 불신자들도 줄을 서 있다. 그런대도 방학이 되면 병원 문을 닫고 선교현장을 간다. 모든 간호사들이 예수님을 믿는다. 선교현장을 다녀오면 또 다시 최선을 다해 일을 한다. 왜 그렇게 하는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한사람을 통해 다 변화시킬 수 있다.

기독교가 욕을 먹고 있는데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의 영적 상태는 주변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상태는 달라져야 한다.

에베소서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인생의 도표를 그리고 정확하게 기도제목을 가지고 작은 도전을 해야 한다. 세상은 흑암에 덮여있다. 우리는 연약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적 싸움하는 한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바꾸기 원하신다.

3. 영적 싸움에 승리하는 방법이 있다.

첫 번째가 나를 복음화 하는 것이다. 흔히들 완벽한 것이 성령충만이고 복음이라고 생각한다. 서울 핵심을 가끔 가면 저에게 와서 악수하고 인사하는 분이 있었다. “그리스도”하고 악수를 한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악수를 하면 '저는 누구입니다. 평안하시죠. 식사는 하셨나요'를 해야 하는데. 그 순간에는 당황스러웠다. 한동안 그러시더니 요즘 보이지 않는다. 어디 가셨나 했더니 시험 들어서 나갔다고 한다. 그게 성령충만인가. “그리스도”. 이게 성령충만인가. 말로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 성령충만인가. 나를 복음화 하는 것은 늘 복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복음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넘어지고 좌절할 수도 있다.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된다. 그리스도께서 그것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다.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할 것을 알기에 그러셨다. 나를 복음화 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다.

전도는 방법이 아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것이다. 방법은 다른 것에 있지 않다. 방법은 곧 진심이다. 살아 있다면 물을 찾을 것이다. 시편을 보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이야기 하고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게 복음이다. 성령충만이다. 그게 믿음이고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찾게 될 것이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우리 교회는 그러할 것이다. 저는 율법, 정죄, 교권과 담을 쌓을 것이다. 그게 건강한 영적 상태이다. 목소리 크게 “오직예수, 성령충만, 아멘”을 하는 것이 성령충만이 아니다. 성령충만은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심을 믿는 것이다. 십자가 보혈을 믿는 것이다.

현장을 정말로 사랑하는가. 현장을 복음화 해야 한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다. 사단은 여러분의 주변을 에워싼다. 우리가 일본, 북한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위기가 온다. 나 혼자 깨끗이 씻어도 내 주변이 더럽고 방이 더러우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앙은 나만 깨끗이 하고 방청소는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여러분의 직장을 두고 정말 기도하기 바란다.

저는 저희 가정을 왜 제게 주셨을까 생각했다. 처음에는 낙심하고 원망했다. 생각을 바꾸니 저희 가정이 최고의 발판이 되고 있다. 지금 고향에서 30명의 가족이 기도하고 있다. 6명의 권사님과 4명의 장로님이 계신다. 20명이 넘는 조카들이 있고 이제 부모님도 기도하신다.

현장을 복음화 해야 한다. 그래서 있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말 부모님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 직장상사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섬겨야 한다. 그게 영적 싸움에 승리하는 방법이다. 정확한 시간표가 되면 헌신할 것이다. 그래서 그릇을 준비 할 것이다.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교회가 위기를 맞으면 국가, 시대의 위기가 온다. 우리는 시대와 세계를 향한 책임이 있다. 이 나라의 청소년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다. 왜 문제를 주시는가. 하나님이 길이 여기 밖에 없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이정표가 되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푯말이 될 것이다. 성경 속 모델의 재해석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대로가 될 것이다. 이를 믿고 꿈꾸기 바란다. 세상의 물질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하기 바란다. 돈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이는 저주이다. 무엇이 축복인가. 세상 속에서 무엇이 축복인가. 우리는 세상과 반대로 살 것이다. 세상은 이익을 위해 실패를 두려워하며 살지만 우리는 반대로 살 것이다. 예수님의 방법처럼 세상의 발을 씻겨 줄 것이다.

결론) 종교생활이 아닌 은혜 생활을 해야 한다.

영적 싸움의 진짜 무기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사모함이다.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가. 사모함이 있으면 된다. 제 영적 상태가 엉망이 되었던 것은 사모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 여러분이 가스펠 교회와 함께 종교생활에서 벗어나 은혜생활로 삶을 바꿔내길 바란다.

히브리서 4:14-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는 매주 금요일 밤 이 시대와 세상, 시대를 우리의 선교현장과 가정을 두고 기도하려고 한다. 강남에 많은 사람들이 술에 빠져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