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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4 금요예배

<금요예배>

일시:  2014년 1월 24일

제목 :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

말씀 : 시편 4 : 1-8

설교 : 오승주목사



2014-01-24 금요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QmiTMcPJ



 지난주 에 이어 시편 3,4편은 같은 시편이다. 편의상 나누어져 있지만 하나의 시편이다. 압살롬에게 쫒길 때 쓴 시이다. 일주일 동안 설교문을 작성하고 설교를 하기 위해서가 아닌 깊은 묵상을 했다. 하나님이 왜 이 말씀을 주셨고 어떤 은혜를 나눌 수 있는지 묵상했다. 시간표를 보고 있는데 2월이 되면 지역모임을 하려고 한다. 지역에 중요한 모임이 형성이 되면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고 실제로 삶속에서 어떻게 역사나 나는지 보려 한다. 부교역자로 있을 때는 담임 목사님을 따르면 됐기에 어떻게 보면 쉬웠지만, 이제 영적인 지도자로 서 있어야 하기에 부담이 있다. 그래서 진짜 기도할 수 밖에 없다. 이번 주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목회자로써 응답을 받은 부분이 있다. 오늘 그것을 붙잡아야 하겠다.

Ⅰ. 인생 최고의 선택

우리는 어둠속에 있으면서도 어둠속에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예전에 받은 응답을 가지고 착각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다윗이 그러했다. 다윗에게 흉년이 왔다. 아들인 압살롬이 자신을 몰아내려 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감사할 제목이다. 그에게 흉년이 안왔다면 평생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증거이다. 여러분은 어떤 흉년을 가지고 있는가? 건강, 경제, 마음의 흉년이 있는가? 제일 무서운 것은 믿음의 흉년이다.

저는 가진 것이 없고 배경이 없이 시작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감사하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셨다. 가난 할 때도 극심한 외로움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힘을 주셨다. 그게 가장 큰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윗이 곤경 속에서 하나님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았다. 일주일 동안 이를 묵상하며 빨리 이 말씀을 나누고 싶었다. 다윗이 어떻게 이 곤경 속에서 최고의 선택을 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다.

혹자들은 합리적으로 '이 선택이 맞다'고 하고 세상의 기준은 '이 선택이 맞다'고 말한다. 다 맞는 것 같지만 틀리다.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은 선택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는데 그것이 두렵다. 왜 두려운가? 영적인 상태가 들통 날 것 같기 때문이다. 말씀을 붙잡고 살면 왠지 다 포기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다 잃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제가 목사이지만 그 선택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헌금을 하려 할 때도 그렇다. 여러분은 무엇이 두려운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는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_요한1서 4:18-19’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 안에 거하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우리가 하나님과 완전히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 신앙생활의 기준이 이곳에 있다.

왜 흉년이 왔는가? 하나님이 신앙의 경고를 주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_요한1서 5:1’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_요한1서 5:4’

Ⅱ. 최고의 선택은 말씀이 들리는 선택입니다.

1. 말씀이 들리는 것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왕위에 20년 동안 앉아 있었고 가는 곳마다 승리했다. 그리고 다윗은 다윗에게 충성한 훌륭한 장수들이 많았었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우리가 대단한 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대단했다. 시편을 보라. 하지만 왕위에 오른 이후에는 실수를 하게 된다. 다윗이 밧세바를 아내로 취할 때 밤중에 일어났다고 한다. 함께 전쟁터에 나가 있거나 전략을 짜거나 깨어서 기도를 해야 하는데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는 것이다. 영적인 흉년이 든 것이다. 그 찰나에 사단이 역사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암논이라는 아들이 이복누이 다말을 범하게 되었다. 다말의 오빠인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헤브론으로 도망을 가게 되었다. 이게 시작이 되어 다윗을 원망하고 있던 헤브론 사람들은 압살롬과 함께 반역을 꾀하게 되었다. 결국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자녀는 다 죽게 되었다.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문제가 온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않으면 문제가 온다. 과거의 것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 나중에도 압살롬에게 쫓겨난 후 다 깨달은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인구조사를 또 하게 된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 엄명했지만 다윗이 두려움에 이를 하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이 다윗에게 벌을 주게 된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와서 보챌 때 겨우 회개 하는 듯해 보이다가 다시 돌아서면 하나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흉년을 주었다. 여러분은 어떤 흉년을 가지고 있는가?

교회를 다니는 것이 풍년이 아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이 흉년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 흉년이다. 하나님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말도 듣지 못한다. 사람들도 만나기 싫어하고 교회에 가기도 싫게 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흉년이 생기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영적인 흉년은 그렇게 풀리지 않는다. 돈이 없다가 생기고 병이 있다가 낫는 것이 흉년이 풀리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은 세상 적으로 자녀를 성공시키려 하지 말고 영적으로 자녀를 키우기 바란다. 자녀를 믿음으로 키우지 않으면 우리의 노후가 어찌 되겠는가? 그것이 최고의 노후대책이다. 지금 세상은 영적으로 흉년이 들이닥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흉년이 오면 구석으로 도망을 간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과 관계도 맺지 않으려 한다. 상처를 포장으로 메우려 한다. 그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나홀로 고집스러우면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놓치게 된다.

흉년이 왔을 때 우리는 더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교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잘 될 때 교회에 가는 마음이 가볍다. 흉년이 들었을 때 하나님이 은혜를 주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교회가 이를 할 수 없을 만큼 되었다. 흉년이 들어 구석으로 몰려 있다. 사람들이 교회에 갈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_룻기1:1a'

이 흉년은 영적인 흉년을 의미한다. 사사들, 목회자들 까지도 타락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제사만 남아 있게 되었다. 율법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2. 회개는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회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교회에서 청년과 결혼을 한 자매가 있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자마자 청년이 교회에도 가지 않고 마시지 않던 술도 마시고 도박에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결혼을 하기 위해 교회에 나온 것이었다. 그러자 이 자매가 더욱더 교회에서 열심히 했다. 그런데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자와 눈이 맞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지휘자가 유부남이었다. 이 두 사람이 살림을 차리고 아이들을 낳았다. 그런데 셋째 아이가 뇌수막염에 걸렸다. 그제서야 지휘자였던 남자의 아내가 알게 되었다. 그 남자는 다시 본 부인에게 돌아가고 자매는 애들만 데리고 남게 되었다. 이 사람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흉년이 또 있겠는가?

이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과연 복음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다. 어떤 목사님이 이 사람을 만났다. 우리 같으면 ‘너가 죄를 많이 지어서, 문제가 많아서 정신을 못차려서’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목사님은 아이를 낙태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나님이 축복하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을 교회에서 키울테니 노후에 복을 받으라고 하고 아이들을 교회에서 거두었다. 그 자매를 떠나서 목사님이 참 복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율법이 복음으로 둔갑한 것을 너무 많이 느낀다. 과연 나에게는 복음이 있는가? 나는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있는가? 사실 복음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우리의 원죄까지 용서하신 것이다. 그 무엇이 용서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용서하지 않는다. 내 자신도, 내 주변의 사람도, 교회도, 가족들도 용서하지 않는다. 힘이 없기 때문이다. 힘이 있다는 것은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제 어떤 청년에게 연락이 왔다. 직장에서 괴롭히는 사람이 많단다. 그래서 ‘너는 힘이 있지 않니. 용서해 주어라. 용서해 줄 때 그 사람이 너의 사람이 될 거다.’라고 했다. 그런데 용서하기가 쉽지 않다. 내 본전이 생각나고 화가 난다. 용서는 사랑이다. 예수님은 힘이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초, 부끄러움, 고난을 참았다.

인생의 가치관을 바꾸기 바란다. 정말 편한데 불편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말씀위에 말씀이 들리도록 해야 한다. 부부가 대화가 되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 말씀이 들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위에 사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다 용서할 수 있고 다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_이사야53:5-6’

Ⅲ. 저녁마다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1. 주님을 귀하게 여기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돌아서야 한다. 우리의 회개는 무엇인가? 돌아서는 것이다. 무엇이 돌아서는 것인가? 말씀이 들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저는 교회에서 돈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보았다. 결국 한쪽은 교회를 떠나게 된다. 그 때 교회를 떠나더라도 다른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 교회 안에서는 금전거래도 없었으면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단이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한다. 교회라고 방심해서는 안된다. 가끔 교회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표현은 믿음 없는 사람들 끼리 와 같은 것 같다. 그것은 약한 성도, 흉년이 와 있는 성도를 죽이는 것과 같다. 말씀이 들리지 않기 때문에 다른 모임을 만드는 것이다. 교회안의 등산모임과 같은 모임을 이것저것 만든다. 차라리 하려면 다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무슨 모임을 만들면 되는가?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모임을 만들어야 한다. 그 모임의 이름을 고민했다. 그게 다락방인가 미션홈인가 지교회인가? 마음의 결정을 내렸지만 아직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 이게 우리 안의 특징이 되고 현장을 나누는 곳이 되어야 한다. 미션홈이 가장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이 모임은 공격적으로 전도하는 곳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는 나누고 간증하고 교제하는 것이다. 전도는 언제 되는가? 그 모임에서 진짜 하나님 말씀이 나누어지고 하나님 사랑이 나누어진다면 누구를 데리고 가더라고 생명이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2월부터 시작 할 것이다. 여러분이 마음을 담았으면 한다.

우리의 모임은 은혜의 모임, 보혈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 모일 때 마다 누구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다. 서로 힘든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말씀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을 가스펠교회의 지역모임의 색깔로 만들어 갈 것이다.

내 안에 이 은혜가 차고 넘쳐서 나누는 것이 전도라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오면 살 수 있는 모임이 우리 안에 생겨야 한다. 이 모든 것의 목적은 말씀이 들리는 것이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 다는 것은 저주 받은 것이다. 가끔 하나님은 말씀을 듣게 하기 위해 영적인 흉년을 준다. 그것이 다윗의 상황이다.

우리는 신앙을 두고 고민을 해야 한다. 신앙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때로는 율법과 복음을 두고 고민이 많다. 가끔 여러분을 두고 생각해 보면 가슴 아플 때가 많다. 저 사람이 은혜를 받고 하나님 말씀을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신앙이라는 것은 내가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아서 자랑할 것이 없어 상대방에게도 관대한 것이다.

만약 영적으로 교만해서 다른 사람에게 ‘왜 교회생활을 하지 않느냐’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신앙생활은 자랑 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관대한 것이다.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 개척교회를 하며 하나님이 주신 응답이 있다. 제가 목회자로서 가는 길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여러분이 저를 따라오고 있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앞에 수많은 환란이 있고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당장 주차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환란처럼 느껴진다. 어느 순간 우리가 지하로 가서 예배드려야 할지도 모른다. 비닐하우스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알기에 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없이는 저를 따라오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가 그 마음이 없으면 교회라는 것을 해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래서 이번 수련회가 중요할 것이다. 교회의 본질을 이야기 할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을 담기 바란다. 저와 함께 시작했다면 생명을 걸기 바란다. 여러분에게 궁금한 것은 저를 위해 얼마나 기도를 하는가이다. 모든 기도위에 제 이름을 놓고 기도하기 바란다. 이것은 제 개인의 욕심이 아니다. 그게 여러분이 사는 길이다. 생명력 있는 말씀이, 복음의 진수가 여기서 나와야 여러분이 살기 때문이다. 저 개인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의 목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답을 찾고 가슴이 시원해졌다. 그게 우리 교회의 본질이다. 이를 놓치면 갑자기 위기가 올 때 시험에 들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말씀을 의지해야 한다. 말씀을 듣고 또 들어야 한다. 여러분의 환경이 변하고 남모를 습관, 악습이 벗어질 때까지 말씀을 듣고 또 들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는 생명력이 있다. 이 말씀이 나눠지는 지역 모임을 할 것이다.

꿈을 꾸고 준비하기 바란다. 목적은 무엇인가. 서로서로 말씀이 들리는 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저녁마다 하나님을 만나기 바란다. 시편 4편에서 다윗이 저녁에 하나님 앞에 깊게 기도했다.

바람개비가 바람이 불지 않아서 돌지 않으면 앞으로 뛰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가만히 서서 기다린다. 말씀이 들리는 곳으로 가야 한다. 기도를 회복해야 한다. 밤 기도를 회복해야 한다. 밤에 기도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해야 한다. 무엇을 하면 가능한가? 주님을 사랑하면 가능하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나온다. 여러분의 상황이 있기 때문에 매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을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밤 시간에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게 여러분의 가문, 현장을 살리는 길이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앞에 아뢰면 된다. 가정, 직장, 세계를 위해 기도하면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_요한복음 6:35’

2.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_시편4:8a

하나님께 가는 자는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목마르고 주린 것은 하나님께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다윗이 이를 놓친 것이다. 뒤늦게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

기도생활을 하지 않는데 평안하다면 그것은 평안이 아니라 둔한 것이다. 다윗이 믿음을 회복하고 말씀이 들리는 상태로 바뀌니 핍박과 전쟁터의 상황 속에서도 평안히 잔다고 고백하였다. 왕궁에서 있을 때보다 더욱 평안하다고 고백한다.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한 그 때보다 더 기쁘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인가? 영적으로 회복했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회복되면 모든 것을 회복한다.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다. 여러분에게 기쁨이 있는가? 그 은혜가 있는가? 그것을 찾아야 한다. 가스펠교회공동체를 통해 이 기쁨을 회복하기 원한다.

Ⅳ. 다른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선택을 할 때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했다. 압살롬을 죽일 수 있었다.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다. 시므이도 죽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으로 된 것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사람을 살리는 선택을 했다.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하기 바란다. 진짜 힘 있는 사람은 용서할 수 있다. 계산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우리는 계산을 한다.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불신자의 걱정이다. 다윗의 기도를 듣고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이루셨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한 선택을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선택을 할 때 이를 위해 삶의 갱신도 필요하다. 영적인 갱신이다. 여러분의 삶, 가정을 돌아보기 바란다. 말씀을 바라보고 의지하는가. 그렇다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할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면 우리는 달라질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_에베소서 3:17-19‘

 영적인 선택, 말씀이 들리는 선택, 말씀이 들리는 현장으로 나아가는 거룩한 노력을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