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2014-11-02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4년 11월 02일

제목 : 예수님을 만나면

말씀 : 마태복음 9:9-17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11-02 주일1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ujMpWk

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10683451



가스펠교회 주일1부예배 20141102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나를 따르라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정말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지난 2주 동안 예수님이 누구신지 왜 오셨는지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인생 중 최고의 축복일 것입니다. 다른 것은 의미없다가 아닙니다. 똑같은 인생이라도 예수님을 만난 전후로 인생이 나누어질 것입니다. 가치관도, 인생관도 다 달라질 것입니다.

저는 이런 예수님을 매일 만납니다. 그러니 오늘이 소중합니다. 제가 소중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못 만납니다. 너무 좋은 것이 많은 세상을 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 서기관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겠지만 결국 세상의 방정식을 쫓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려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왜 예수님을 매일 만나지 못합니까? 자존심 때문입니까? 아니면 물질 때문입니까? 열심히 사는 인생방정식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닐 것입니다. 구원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생명이 자라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마태를 부르십니다. 이 성경을 기록한 저자이자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세관에 앉았다는 것은 그래도 직장이 괜찮았고, 그래도 유대인들을 핍박하며 살 수 있는 로마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두말없이,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일어나서 따랐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_마태복음9:9’

 

. 예수님을 만나면

 

그렇다면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아니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매일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는 어떤 믿음의 사람, 어떤 신앙인이 되어야 할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믿음의 회복_베드로전서2:9-10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_베드로전서2:9-10’

 

먼저, 예수님을 만나면 믿음이 회복됩니다. 왜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까? 원래 인간은 하나님을 믿어야 사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면 믿음이 생겨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병자들의 생이 변화되었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따르던 제자들이 변화되었다는 내용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자 두려워서 예수님을 부인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도 그렇다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세상 것이 좋아 방황하기도 하였고, 세상의 기준을 따라 살다보니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 참 바보 같아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라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예배를 중심으로 말씀을 중심으로 살기 시작하니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보였고,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니 문제투성인 내 인생을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고 만들어가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려 하시는 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내 인생을 맡기니 하나님의 백성으로 날 인도해 가신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믿음이 자랍니다. 믿음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제자들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을 부러워하지 않았던 것은 주님을 본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길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렇게 됩니다.

 

2. 하나님을 아는 지식 회복_이사야1:1-3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_이사야1:2-3’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날마다 주님 앞에서 변화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당이 섬기는 삼척동자 같은 존재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 목사님 설마 그럴까요?’ 그러나 그렇지 않고서야 창조주 하나님을 어르고 달래서 내 목적을 성취하려고 하는 지금의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 무당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인간이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그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내가 변화되어가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까? 사실 우리가 기도해서 생명인 공기를 얻었습니까? 우리가 철야예배를 했기 때문에 아침에 태양이 떠올랐습니까? 아닙니다. 있어야 할 것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다 알고 계시며 또 필요에 따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필요한 것이라면 어떤 방법을 쓰시던지 주시는 분이시고, 또 내게 필요 없는 것이라면 아무리 간구해도 주시지 않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내 기도의 목표와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주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할 것인지, 오늘 내가 두발 딛고 있는 이 현장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주님을 위하여 내 일거수일투족을 인도해달라고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에서부터 신앙의 성숙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_시편139:17-18’

 

다윗이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니 너무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는 졸고 잠들지만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동서남북에서 나를 위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모든 인생을 다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너무 적어서 삼척동자를 섬기는 무당과 같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성경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유보다 크다고 믿음의 선배들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3. 성령충만의 회복_사도행전2:1-4

 

예수님을 만나면 성령충만이 회복됩니다. 성령충만은 원래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 매일 예수님을 만나는 자에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바르게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성령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가능합니다. 성령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영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없고, 따를 수 없으며,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함 없이 바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길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충만이라 할 때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인식이 있습니다. 일단 뜨거워야하고 요란해야 합니다. 시끄러워야하고 박수도 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보다 더 소리높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철야기도까지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런 모습들이 성령충만의 한 단면일 수는 있지만 전체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사도행전을 통해서 성령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성령충만은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을 힘입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의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는 증명되지 않습니다. 예배당 안에서는 살인자도 거룩한 표정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됨의 증거는 예배당 밖에서, 삶의 현장에서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실 성령충만하다고 소문난 교회가 오히려 분란이 끊이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성령충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겉치레 하는 것이 아닌데 왜곡되어 성령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하다고 생색내고, 내말만 들으라 하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성령충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따르기 때문에 낮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한 사람은 영원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영원을 향하기에 늘 성숙한 자세를 유지합니다. 그것은 사람과의 관계하고도 관련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처음으로 성령께서 임하신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불같은 바람 같은 성령을 받고 난 이후를 보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예전에는 이방인이라고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을 살리려고 그들의 삶에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진리가운에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가는 성령충만한 삶을 살려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카톨릭처치입니다. 늘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공회와 같은 말입니다. 한국말로 보편적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주위에는 세리도 있었고 창녀도 있었습니다. 독립운동 하는 열심당원도, 로마 장교도 있었습니다. 유대인 정치인도 있었습니다. 절대 한 자리에 모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편적인 교회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한 가족입니다. 그것이 사도행전의 특징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느 현장이라도 갔습니다.

한국교회의 특징 중 하나가 분열입니다. 세계 선교지에 가면 그 분열은 더 심한데 이상하리 만큼 한국교회는 그러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 그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를 이루어갈 때 비로소 참된 교회가 되는 것이고 그 교회가 역사와 시대를 바꾸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나 중심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선택해서 살았다면 이제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의 입장에서서 생각하게 되고 그들과 더불어함께 신앙생활하려 하는 것이 성령충만의 회복입니다. 반대로 열심히 기도는 하고, 성령충만하다고 큰소리치고 다니는데 아직도 패거리지어 남을 정죄하고, 분열한다면 그것을 올바른 성령충만이 아닐 것입니다. 바울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눈에 비닐 같은 것이 벗겨졌다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돌로 쳐 죽여야 할 사람들을 이제 형제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식인이나 모두에게 빚진 자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여 평생을 전도하러 다닙니다.

 

4. 하나님 사랑의 회복_마태복음9:12-13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_마태복음9:12-13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요? 사실 우리의 사랑은 편협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익이 되니 사랑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사랑입니다. 사실 주님은 죄인을 사랑해주셨습니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죄인들과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어때야 할까요?

흔히 사랑은 뜨겁습니다. 뜨겁다는 것은 언젠가는 차가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뜨거운 사랑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연인끼리의 사랑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래서 뜨겁다가도 언제 그랬냐 싶게 식어버리고 식다 못해 차갑고 냉정하기까지 합니다. 저는 이번 주에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요즘 바쁘다고 거의 전화를 못 드리고 거의 3주 만에 드린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전화 드렸더니 저희 어머니가 제 가슴을 먹먹하게 하셨습니다. ‘아들이 전화해줘서 고맙다. 목소리 들으니 힘난다. 전화하려 해도 아들이 바쁠까봐 망설였다어머니는 지금도 저를 사랑하십니다. 평생 번 돈을 저에게 다 주셨습니다. 가스펠 교회를 시작할 때도 가장 많이 후원해 주신 분은 돈 많은 장로님들이나 넉넉한 다른 형제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루 4만원, 5만원 일당을 벌어 모아두신 모든 돈을 다 헌금해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다른 것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아니면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그런 사랑입니다. 편협함이 없고, 이유가 없습니다. 해석도 불가능 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조금 비유할 수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어느 것으로도 비유할 수 없습니다. 사랑스러워서 사랑한 것이 아니고 사랑해서 사랑스러워 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렇게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을 사랑함같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매일 누리면 우리는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5. 영성의 회복_마태복음9:14-17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헤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_마태복음9:14-17’

 

예수님을 만나면 영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성에 관해 오해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하기도 합니다. 성령충만이라고도 합니다. 기도하고 말씀보고 전도하는 행위라고도 합니다. 거룩함이라고도 합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영성은 성숙이라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이 아우러지는 것이 신앙의 성숙, 믿음의 성숙이라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은 훈련이 필요로 합니다. 아이들도 나쁜 음식을 먹으려하면 어머니가 호되게 꾸짖습니다. 그리고 좋은 음식 먹고 좋은 길을 가도록 안내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일 것입니다. 항상 좋은 것을 주고, 항상 나쁜 것을 못 만나게 지켜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 교육은 참 중요합니다. 그것이 체질이 되면 나중에 체질이 그 인생을 좌지우지 하게 됩니다. 체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을 들으라 말씀을 순종하라 말씀을 따르라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숙한 자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그는 무당처럼, 미신을 믿는 사람처럼 기도하지 않습니다. 성숙한 자의 성령충만은 어떻습니까? 그는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보편적인 교회가 되려고 할 것입니다. 성숙한자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세상 연인들의 사랑처럼 다른 것이 안 보이는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그 사랑은 오랫동안 인생을 뒷바라지한 부모님의 사랑과 같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사람으로 회복되어 성숙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도 성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성숙하다는 것은 이 땅의 교회의 역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성입니다.

 

. 매듭짓는 신앙생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만나 저렇게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을 위해 우리가 매듭을 져야할 일이 있습니다. , 결단일 것입니다. 저는 이 결단 정말 수도 없이 합니다. 안되지만 또 합니다. 100번 넘어지면 다시 101번 합니다.

 

1. 생사의 매듭짓기

 

해외를 갈 때마다 저를 돌아보는 성찰을 많이 하였습니다. 한번은 비행기를 타고 호주를 가는데 신문에 바보처럼 살았군요란 광고카피가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변비약광고였습니다. ‘이렇게 좋은 변비약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그토록 고생하며 살아온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그것도 의미가 있었는데 비행기 안에 영상을 뒤지던 중 열린 음악회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열린 음악회에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한 원로가수였던 김도향이란 분이,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불렀습니다.

 

어느 날 난 낙엽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흘러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살아버린 내 인생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흘러버린 세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 좋을까?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바보처럼, 바보처럼, 바보처럼.‘

 

혹 여태껏 바보처럼 살아온 것은 아닌가?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물거품처럼 허망한 욕망을 우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허망하게 소진시켜 온 것은 아닌가? 그토록 열심히 살았던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결국 죽어서 사라질 것을 위해 살았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생사의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여화와의 이름을 겸손히 불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이 땅에 보내신 주님께 나의 삶을 온전히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그때부터 주님 안에서 전혀 새로운 생명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며, 내 육체의 코끝에서 호흡이 멎는 그 순간이후에도 나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_고린도후서5:17’

 

2. 비전의 매듭짓기

 

오늘 예수님은 금식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 하던 금식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죽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시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늘 과거의 것에 집착하고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새 은혜를 주시는 데 자꾸 이 땅의 것에 담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이나 세상의 사상이 가득한 마음에 하나님의 것이 담기니 갈등이 생깁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_잠언22:9’

 

저는 생각해봅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할 것인가? 최선을 다해 온힘을 다해 세상에서 성공해야하겠지만 진짜 예수님을 만난 우리에게 그것이 비전이어야 하는가 입니다. 새 마음을 가지길 원합니다. 우리가 새 부대가 되길 원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마음이며, 주님이 주신 가치관일 것입니다. 선한 눈을 가져야합니다. 그리고 그 눈으로만 보이는 가난 한 자들에게 양식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단지 돈으로 저들을 돕자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영의 양식인 주님의 사랑을 나누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선한 눈을 가져야 합니다.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_잠언22:29’

 

그런 사람은 매사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런 인생은 결코 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을 것입니다. 능숙한 자가 되어 왕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꿈을 매듭지어야 합니다. 무엇을 위한 인생입니까? 주님을 위해 인생을 드려야 합니다. 그 인생이 가장 축복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3. 신앙의 매듭짓기

 

그래서 이제는 신앙을 매듭지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은 절대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가난한 자들, 죄인들, 세상에서 소외된 천박한 자들이나 하는 짓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나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죽게 만든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가진 것이 많고 지식이 많고 권세가 많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가장 없는 자가 되었고, 가장 미련한자가 되었고, 가장 비참한 생을 산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아버지 앞에 나아갈 때 인생은 새롭게 됩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보다 크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지고, 왠지 세상이 주는 쾌락이 아쉽게 느껴지지만 어떤 법칙처럼 완전히 반전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만나면 인생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따릅시다. 말씀을 따릅시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그 길이 비록 좁디좁은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 후대 앞에서 멋지게 교회다운 교회로 가봅시다. 비록 힘들지라도 우리 생이 다하는 날 정말 뿌듯하고, 정말 찬송하며 주님께 갈 수 있도록 우리의 신앙을 매듭지어봅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_마태복음5:3’

 

주님 예수님을 매일 만나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내 삶에 풍성한 은혜가 임하여 내 삶이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되어지길 원합니다.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회복하고, 성령충만을 회복하고, 주님의 사랑을 회복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고통당하는 이 땅 가운데 멋지고 아름다운 예수님의 제자로 살게 해주세요.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11-09 주일 1부 예배  (0) 2014.11.10
2014-11-02 주일 2부 예배  (0) 2014.11.03
2014-10-26 주일 2부 예배  (0) 2014.10.27
2014-10-26 주일 1부 예배  (0) 2014.10.26
2014-10-19 주일 2부 예배  (0) 2014.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