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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4-11-09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4년 11월 09일

제목 : 예수님이 보시는 것

말씀 : 마태복음 9:18-38

설교 : 오승주 목사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tugsU2

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11320230



Ⅰ. 무엇을 바라보고 사는 가.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사는 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을 보고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그것을 ‘관’이라 하지요. 만일 신앙생활하면서 큰 교회를 바라보고 가면 그런 교회관이라면 모든 예배와 사역이 모양은 같겠지만 다르겠지요? 인생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많이 모아야지? 그것이 인생관이라면 평생 재물의 노예가 되어 살아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시나요? 저 역시 한동안 잘못된 것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바라본 것들이 뭐 완전 세상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 것이었기 때문에 잘못될까 불안해하였고, 또 그것이 이루어진듯하면 신나했습니다. 혹은 그것을 누가 막으면 싸우기도 했고, 누가 충고라도 할라치면 자존심이 상해 스스로 무너지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나는 왜 이렇게 이럴까 생각하다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우리가 마태복음 설교를 마치면 신앙관이 형성되어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전에 세상 것 바라보고 살았는데 예수님 만나 예수님 바라보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면서도 계속해서 세상 것을 바라보게 하잖아요. 꼭 바리새인과 같습니다. 곧 수능이 다가옵니다. 전 수능생을 위한 기도회 이런 거 싫어합니다. 아니 절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합격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합격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수능생 기도할 때는 한명도 빠짐없이 나옵니다. 부모 형제 심지어 평소 예배 안나오는 아이들까지 다 나옵니다. 수능끝나고 합격을 했건 불합격을 했던 안나옵니다. 합격했으면 합격했다고, 불합격했으면 불합격했다고 안나옵니다. 교회가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병이 걸려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병은 축복입니다. 병이 없이 육신이 건강하여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진짜 영적인 평안을 얻길 원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_히브리서12:1-2’


Ⅱ. 세상이 보는 것


1. 비웃는 세상_마태복음9:23-24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_마태복음9:23-24’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비웃는 세상입니다. 에수님이 혈루증여인도 치료하셨고, 많은 병자들도 치료하셨는데 죽은 자를 살린다 하니 비웃었습니다. 어쩌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관리는 예수님이 자기 딸을 살리리라는 믿음이 있었지요. 사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데 굉장히 합리적이고, 개관적인지 모릅니다. 어쩌면 비웃는 세상이 두려워서 그 믿음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르지요. 예수님을 정말 만나고 믿고 따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런 자들을 비웃는 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실 때 함께 하셨던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사람들은 비웃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틀은 절대 안 깨지겠지요. 그 사람들은 전부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 아닙니까? 우리가 얼마나 틀에 갇혀서 사는가 하면 성경을 읽으면서도, 말씀을 들으면서도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백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습니다. 말씀이 들린다는 것은 그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그 순종이 없으면 믿음이 아닌 것이지요. 비웃는 세상의 틀이 아닌 예수님을 따르길 원합니다. 


2. 시기, 질투하는 세상_마태복음9: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_마태복음9:30’


왜 예수님은 그 맹인들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셨을까요? 세상은 질투하고 시기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면 참 좋은 것 아닌가요? 예수님을 만나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정말 감사하고 그 은혜를 나누는 것이 정상이겠지요.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시기하거나 질투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그런 마음을 던져줍니다. 그래서 신앙생활도 세상방정식 안에서 할려고 합니다. 저 집사보다 더 응답받아야지. 저 집사보다 더 축복받아야지. 무슨 응답이 보너스도 아니고, 축복이 경쟁해서 받는 상장도 아닌데 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인생이 새롭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것을 시기질투합니다. 그래서 시대마다 올바른 교회가 핍박을 받았고, 올바른 믿음의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3. 세상의 수준과 판단_마태복음9:33-34


‘귀신들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적이 없다 하되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쫒아낸다 하더라_마태복음9:33-34’


예수님이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만나니 귀신이 떠나가고 말 못하는 병이 치유가 됩니다. 사실, 예수님을 만나면 귀신을 좆아내지 않아도 떠나게 마련입니다. 귀신이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 바뀐 거지요. 귀신이 들려서 생긴 병들도 자연스레 치유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뭐라고 비난하지요?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좇아낸다고 합니다. 종교생활을 한 사람들은 삶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축복받고 세상 응답 받으려 하니 오로지 열심이지만, 정말 주님을 만난 신앙인들은 생명을 소중히 여깁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의 생명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수많은 문제들을 있음을 알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 새 생명이 되면 귀신은 떠나가고 문제도 해결되지요. 그런데 그것을 보는 세상의 수준보세요. 교회를 교향 있게 다녀야지. 교회는 수준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무슨 수준일까요? 자기 틀 안에서, 자기가 배운 지식 안에서, 자기가 모은 재물 안에서 신앙생활할려다 보니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잘 안되는 모양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자기들은 한번도 생명을 나누어 준 적도, 한번도 귀신을 좇아낸 적도 없거든요. 늘 율법을 지켜 축복받으려고 외식만 했으니 이해하지 못할법도 합니다. 세상은 그렇게 자기들의 틀 안에서 판단하고 수준을 논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우리교회에는 그런 역사가 계속 될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가능성을 나누시길 바랍니다. 교회에 오는 것이 부끄러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저는 불신자 가정을 오픈했습니다. 제 친구들에게도, 목사님에게도 모두에게 오픈했습니다. 가난도, 가정의 문제도 오픈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응답이 올줄 확신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수준입니다. 사람들이 비웃는다면 그 사람은 거기까지 인거지요. 우리 교회에 올 때 그런 분들이 부담가지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오히려 그런 분들이 오시는 교회가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Ⅲ. 예수님이 보시는 것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이 보시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 신앙인입니다. 많은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닮아야 하는데 예수님을 닮으려 하지 않고 세상의 그 무엇을 닮으려 하지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만난 사람들을 보면서 무엇을 보고 계시는지 관심이 어디에 있는 지 알려고 합니다.


1.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_마태복음9:20-22


‘열두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_마태복음9:20-22’


혈루증이란 병은 참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여러분이 인터넷같은 곳에서 찾아보시면 자세히 그 병에 관해 알 수 있습니다. 어찌되었던 무려 12년 동안 그 병을 앓던 여인이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을 그것도 끝자락을 만진 것이지요. 만지면서 마음으로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받겠다 라고 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많은 무리가 예수님 주변에 있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를 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어찌 아시고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지요. 참 신기한 것은 혈루증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구원을 선물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왜 이 땅에 오셨는 지 안다면 내게 있는 문제가 별 중요하지 않습니다. 혈루증이란 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혈루증보다 생명을 얻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에 그 여인도 구원받고자 그의 옷자락을 만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믿음의 사람을 보고 계십니다. 오랫동안 병들어 고통 중에 있었으나 믿음으로 예수님을 옷자락이라도 만지려는 그런 믿음을 보고 계십니다. 그 수많은 무리들을 뚫고서 예수님께 나아간 것입니다. 


2. 두 맹인의 믿음_마태복음9:27-31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에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_마태복음9:27-31’


예수님을 따라오던 맹인들은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많은 무리들 속에서 맹인으로써 예수님을 만나려면 소리지르는 방법밖에 없었겠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소리를 듣고 어떻게 하셨지요? 수많은 무리들 속에서 그들이 예수님과 대화하기란 힘든 일이었겠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들과 대화하기 위함이지요. 그리고 그에게 정확한 질문을 하십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예수님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소리를 지른 그들을 보신 것입니다. 

 

3.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_마태복음9:32-34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_마태복음9:32-34’


바리새인들은 구원을 받는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말 못하는 사람이 귀신들려 그렇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께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들의 수고와 헌신을 보세요. 그냥 예수님을 만나니 귀신은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바뀝니다. 책한권 읽고, 좋은 사람만나서 깨달음을 얻고 변화된 인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배경이 바뀌고, 마귀의 자녀 지옥갈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 곧 생명을 가진 천국백성이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그들을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4.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_마태복음9:35-36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_마태복음9:35-36’


예수님을 무엇을 보셨나요? 무리를 보셨습니다. 사실 병든 자, 약한 자를 보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는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떠나 세상 사주팔자운명에 살아가는, 세상 방정식에 사로잡혀 소망 없이 살아가는 그들을 보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지요. 성공복음, 합격복음 이런 복음이 아닌 그들이 구원받을 천국복음을 듣길 원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아니 예수님을 알았을지언정 자신의 성공방정식을 버리지 못했지요.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혈루증과 맹인,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의 혈루증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맹인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영적인 병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떳떳하게 가지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것을 가지고 예배의 자리에 오십시오. 거하게 차려입고 오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오시면 됩니다. 예수님의 관심을 받으십시오. 


Ⅳ. 제자의 기도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_마태복음9:37-38’


사실 이 본문이 우리가 붙잡아야 할 말씀입니다. 왜냐면 저와 여러분은 제자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추수할 것이 많다 그런데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추수할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무엇을 보고 살아야 하는 지 말씀해주셨습니다. 추수해야 할 현장입니다. 영적으로 혹은 육신적으로 병든 자, 가난한자, 귀신들린 자 그 모든 사람을 예수님께로 안내하도록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 혼자 안됩니다. 그러니 구원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진정한 부흥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 식구 구원하고, 내 가정 구원하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우릴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내 부모가 만나고, 내 형제가 만나고, 내 사랑하는 이웃이 만나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 기도가 진실되다면, 그 기도가 진짜라면 우리 인생은 많은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처럼 낮아질 수 있나요?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처럼 신앙생활하면 절대 그 행복, 그 기쁨 모르고 평생 종교생활만 하다가 죽을 것입니다. 그들이 주여주여 외친다하여도 주님은 모른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생명을 살리는 것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는 삶이 된다면 그것이 천국백성으로써의 삶입니다. 곧 제자의 삶입니다. 


✔주님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알고, 또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의 축복된 자녀로 산다면서도 예수님이 바라보시는 것을 바라보지 않고 우리가 바라보고 싶은 것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세상 방정식이 너무 좋아 보여 그것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것은 행복하지도 않았고, 평안도 없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바라보는 것을 바라보며 살길 원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내 삶에 예수님이 주인되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세요. 내 삶을 귀히 사용하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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