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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5-09-20 주일 1부 예배




가스펠교회 주일1부예배 20150920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5-09-20 주일1부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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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믿음의 선택을 하고 있나요_마태복음26:1-5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라 하더라_마태복음26:1-5’

저희 교회가 내년 가을에 중직자를 세우려 합니다. 보통 장로님, 안수집사님, 권사님을 세우는데 여러 가지 현상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도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경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놓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 교회 첫 중직자 임직은 믿음을 세우는 기회다. 정말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교회 안에 교사로, 성도를 사랑하고 돌보는 자로, 기도하는 자로, 세상에서는 온전한 교회로 사는 중직자가 세워지면 좋겠다.' 그런데 중직자를 세우며 문제가 생기는 것은 헌금이나 어떤 잘못된 인식, 관례 때문입니다. 중직자가 따로 할 헌금은 없습니다. 임직식도 정말 간소화해서 할 예정입니다. 중직자로 가정에서 믿음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지 임직식 다 초대해서 행사해 놓고 집에 가서는 불신자보다 더하게 싸우고 갈라지고 너무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 함께 중요한 훈련을 통해서 믿음이 성장하여 교회안과 밖에 영적인 영향력을 끼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선택을 하는 것이 어려울까요? 사실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믿음의 선택을 하지 못할까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주일 예배를 선택하면서 연봉협상에서 연봉의 20%를 손해 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러냐고 뭐라고 했더니 그 분이 하는 이야기가 ‘제가 손해 본 거 아닌데요? 제가 받은 것이 더 많은데요. 저도 구원받았지, 가족도 구원받았지, 무엇보다 주일마다 20%보다 더 많은 힘과 은혜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들 20%더 받아서 술 먹고, 여행가고 그러는 것보다 훨씬 잘 살아요. 걱정 마세요. 저 행복해요’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교회는 성도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교회입니다. 제가 만일 건물이나 세력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저도 똑같이 전투하듯이 교회를 했겠지요. 그런데 틀린 것을 알았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다보니 그것이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건물을 짓고 군림하는 것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교회고, 그 사랑으로 선교하고, 전도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개념정리가 중요합니다. 교회가 뭐냐? 목회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3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교회입니다. 지금 마태복음을 묵상하고 있잖아요. 여기에서 교회론이 다 나옵니다. 교회는 믿음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우리가 속게 됩니다.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속아버립니다. '예수님이 주인이다'는 믿음의 씨앗을 심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심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생명을 심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에서 조용한 곳에서 말씀으로 심었습니다. 잘 변화되지 않았고, 오래된 문제가 쉽게 해결 되지 않았지만 그들 속에 믿음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사도행전의 교회입니다. 믿음을 고백한 수많은 고아와 과부, 또 부자들까지 세대들이 통합되어 모였습니다. 그 교회가 초대교회입니다. 초대교회를 하나 되게 한 것이 기도와 성령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목격하고 모인 것입니다. 그 위에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체험하였더니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그전에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감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함께 하신 다는 것이 체험되니까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증거잖아요. 그랬더니 사마리아에도 가고, 앉은뱅이에게 복음도 전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선교도 시작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초대교회입니다.

마지막으로 서신서의 교회입니다. 사실 교회는 문제가 많습니다. 초대교회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다는 말은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말입니다. 다 불완전합니다. 이 땅에 어느 교회를 가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서신서를 봅니다. 사랑하래요. 낮아지래요. 겸손하고 섬기래요. 그렇게 되면 다 살릴 수가 있어요. 상처주지 말라는 거예요. 어떤 교회는 목사님들이 막 야단치고 그럽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저는 매일 말씀으로 묵상하는 시간만 되면 회개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도 못하는데, 나도 부족한데 누굴 가르칩니까? 저는 정말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목사요? 설교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설교집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데요. 설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얼마나 깊이 묵상하고 인도받는 가가 중요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때론 설교가 아니라 울어주고 안아주는 것이 주님의 교회 아닌가요. 교회가 계획도 철저하게 세워야 하지만, 주님의 교회니까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야망이나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려고 애쓰잖아요. 쪽팔리지 않으려고 포장하잖아요. 그래서 성도들이 상처받아서 교회를 떠나는데 그 책임은 누가 질까요? 우리는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Ⅱ. 왜 믿음을 선택하지 못할까요.

1. 말씀을 대적하는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_마태복음26:3-5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라 하더라_마태복음26:3-5’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고 계실 때 종교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서 논의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유월절입니다. 너무 코미디 같은 것은 유월절의 주인이 예수님이신데 그 주인을 모르니 유월절을 피해 죽이자 이런 논의들을 한 것입니다. 관정이라 함은 대단한 힘을 상징합니다. 민란이 일어날까 두려웠다는 말은 무엇을 말하지요? 정치를 이야기합니다. 이 당시의 종교인들은 신앙생활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권력을 의지하고, 정치를 하여 자기들이 잘 먹고 잘사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잘못하면 우리의 잘못된 가치관, 세상에 물든 사상, 우리의 상처로 인해 말씀을 대적하고 있을 수 있다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곧 재앙과 저주, 지옥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지신 어린양이신데 그걸 모르니까 대적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관정에 관심이 있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잘 먹고 잘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 말씀이 듣기 싫습니다. 교회는 다니는데 말씀 듣기는 싫어하고 회개하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거나 그 묵상을 나누는 것이 정말 싫습니다. 내 믿음이 확인되고 부족하면 자라야 하고, 믿음이 올바른지 서로 함께 나누어야 하는 데 그것이 쪽팔리고 부끄럽습니다. 저희 교회 정민이가 쓴 묵상일기입니다.

‘말씀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계속해서 오픈하라 하신다. 나는 싫다. 나에게 맡기신 상황, 환경, 사건들이 난 그저 창피하고 부끄럽다. 나의 지식대로, 내가 생각한 이치대로 흘러가지 않아 늘 답답하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고 싶다. 하나님 바라보고 천국을 바라보며 살면 된다는데. 난 그게 참 어렵다. 다른 것들 때문에 자꾸만 의식하고 포장하려한다. 참 못났다. 하나님 앞에서 살고 싶다. 2015.09.18. 묵상일기 중’

뭔가 다른 것에 잡혀서 회개가 없고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영원히 신앙생활을 못할 수 있습니다. 진짜 믿을 때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알 때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살게 됩니다.

2. 말씀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_마태복음26:8-9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_마태복음26:8-9’

더 웃긴 것은 제자들입니다. 다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주로 유다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제자 중에 그래도 똑똑하여서 재정을 맡았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달랐습니다. 유다는 돈을 따랐습니다. 가난했던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고 능력이 대단했던 예수님을 보고 저분을 따르면 인생이 바뀌겠구나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따라보니 인생이 바뀌었는데 반대로 바뀐 것입니다. 큰길로 갈 줄 알았더니 오히려 좁은 길이요, 고난의 길입니다. 인기 좀 얻고 수입 좀 되는 줄 알았더니 종교인들에게 이단이라고 오히려 핍박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주로 산에만 올라가서 이상한 비유만 들려주십니다. 아무리 봐도 이 양반 따라가면 남는 것도 없겠다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이 사건 이후로 행동에 옮깁니다. 예수님은 팔아버립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전부 제 이야기입니다.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신앙생활 했습니다. 반대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분노가 많았고, 상처가 많았던 것입니다. 잘 안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잘 안 풀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서 그랬습니다. 믿음이 무엇인가요? 저는 이제 평안을 찾았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날 사랑해주셨고, 감히 저 같은 사람이 그 사랑을 나누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도울 것입니다. 비브릿지도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혼자 하기 힘드니 함께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사마리아도 찾고, 앉은뱅이도 찾아야하지요.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의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저는 말씀을 믿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다는 말씀을 믿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다는 말씀도 믿습니다. 우리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3. 한 여자의 믿음_마태복음26:6-7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_마태복음26:6-7’

대단했던 종교인들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방황하고 있는데 한 여자가 나타납니다. 바로 마리아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병을 치료해주시고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셨던 장소입니다. 제자들이 관심 없어하고, 종교인들이 까마득히 잊어버린 현장에서 마리아는 기억했습니다. 구원의 감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안다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언하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믿었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이기에 장사지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때 보통 온 몸에 기름을 바르는데 마리아가 미리 기름을 바른 것입니다. 정말 제대로 믿은 것이지요. 마리아는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누군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왜 우리가 재앙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지, 왜 반복되는 세상의 문제에 빠져있는지 알았던 것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Ⅲ. 믿음은 내 향유옥합을 깰 수 있는 사랑입니다.

1. 세상의 성공을 회개하는 것_마태복음26:8-9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_마태복음26:8-9’

첫째, 믿음은 세상의 성공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세상의 기준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감히 세상의 것과 예수님을 비교합니까? 그래서 예배가 영화한편과 비슷한 것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집회에서 누가 제 옆 테이블에서 그럽니다. 진짜 좋아하는 배우가 사인을 해주는데 그 영화시간이 주일 예배랑 겹친다고 그래서 고민이 된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세상에 매여 살고 있는지 봐야 합니다.

제자들이 분개했다 했습니다. 향유 옥합은 거의 1-2년 치 월급으로만 살 수 있는 고급스러운 기름입니다. 그 귀한 것 예수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분개를 했습니다. 의로운 척, 잘난 척, 가난한 자를 아끼는 척 한 것입니다. 실제로 백성을 가난한 자를 아꼈습니까? 그저 자신들이 가져갔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안타까워 한 것입니다. 잘 먹고, 잘살면 행복합니까? 복음을 모르는 영혼들이 죽어가는 데요? 십자가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2. 내 향유옥합을 깰 수 있는 사랑_마태복음26:6-7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_마태복음26:6-7’

믿음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여자는 자신의 향유옥합을 드리는 데 아깝지 않았습니다. 내 영혼을 구원하여 주셨고, 나병환자를 고치셨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이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믿음은 내 향유옥합을 드릴 수 있는가 입니다. 내 향유옥합을 못 드립니다. 제 향유옥합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신앙생활 처음 시작할 때는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청년의 때에는 마음이었습니다. 목사가 된 후에는 무엇일까요? 제 자존심입니다. 그걸 드릴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존심상하면 아무리 구원을 위한 일이라도 하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가장 낮아질 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날 사랑하셔서 구원하셨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는다하면서 아직도 오픈을 못합니다. 믿음은 주님께 모든 것을 오픈하는 것입니다. 왜 오픈하지 못할까요? 예수님이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면 오픈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자유롭게 됩니다. 우리가 참 어리석은 것이 세상에 산다고 세상의 것에 얽매여 사는 데 그럼 잘살기라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망해요. 그냥 망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망하는 것을 모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삽니다.

3. 영혼구원의 가치관으로 사는 것_마태복음26:10-12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_마태복음26:10-12’

믿음은 영혼 구원의 가치관으로 사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이 여인의 이름이 거론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 뭐가 중요합니까? 그런데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믿음을 가르쳐주었어, 우리 아빠가 나에게 예수님을 믿도록 삶을 사셨어. 저 장로님이 집사님이 우리가 어릴 때 믿음을 알려주었어. 그분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이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빛나는 것은 그들이 우리로 인해 구원을 받을 때라야 진짜 빛나는 것입니다. 그게 축복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이상한 짓해서 믿음이 아니라 불신자처럼 살면 욕먹는 이름이 되겠지요. 자기만 욕먹나요? 교회도 욕먹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은혜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름이 기억될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달란트지만 영혼구원을 위해 살 때 그 모든 것이 복음이 전파될 때 기억될 것입니다.

4. 삶의 어떠한 자리와 영역에서도 말씀을 적용하는 것_창세기21: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_창세기21:23’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종교로 오해합니다. 신앙생활은 매일 삶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부은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밖에서는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지요, 제자들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모면할까 하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은 핍박과 고난으로, 교회는 타락해서 어떤 믿음이 진짜 믿음인지 모를 때라는 것입니다. 그때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귀담아 들었고, 사실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아무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자가사건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한 여자만 믿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았고, 주님을 사랑했던 그 여인만이 상황과 환경을 떠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이 참 감사가 됩니다. 내가 종교인가 아니면 돈을 쫓은 유다인가 아니면 마리아인가 내가 비록 보잘 것 없고, 가진 것 없지만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는데 남은 인생 주님을 바라보고 주의 말씀에 순종해 살수 있다면 저는 진짜 멋진 사람이 아닌가요? 어찌 하나님께 쓰임 받는 다면 우리 인생이 복되지 않는가요? 우리는 오해하는 것이 많습니다. 교회가 오해하고 있는 것도 많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매일 예수님을 사랑하고 만나면 환경도 뛰어넘게 됩니다. 어떠한 삶의 영역에서든지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합니다. 그것이 기쁨이 되고 힘이 됩니다. 그러한 삶이 영혼을 구원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인생이, 여러분의 인생이, 우리 교회가 복음이 증거 될 때마다 기억되는 이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믿음을 선택하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귀히 쓰임 받도록 되길 바랍니다.

 ✔ 주님 우리가 지금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지요. 십자가 사건을 말씀하셨는데 종교인들은 예수님을 죽일 의논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가진 권력과 정치를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몇몇 제자들은 향유옥합을 예수님께 바른 마리아를 향해 분개했다 합니다. 십자가 사건을 말씀하셨는데도 믿지 않았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배경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아무 힘도 없는 한 여자만이 십자가 사건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주님 나를 돌아봅니다. 저 역시 환경과 상황이 더 중요했고, 관계나 내 계획이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강단 말씀을 들었음에도 들리지 않았고, 내 삶의 영역에서는 적용하지 못하였습니다. 주님 이 시간 회개합니다. 주님께 받은 구원의 사랑에 감사하여 가장 귀한 향유옥합을 드렸던 마리아처럼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을 주세요. 그리하여 복음이 전해는 지는 곳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듯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나의 이름 또한 알려지는 축복을 누리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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