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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5-10-04 주일 1부 예배


가스펠교회 주일1부예배 20151004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5-10-04 주일1부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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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장담만 하는 우리 인생_마태복음26:31-35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으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_마태복음26:31-35’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를 지셔야 하기에 제자들에게 구약의 예언된 말씀이 성취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 말씀을 믿으면 될 텐데 여전히 베드로와 제자들은 믿음이 아닌 것을 믿음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닌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베드로는 예수님이 구약의 말씀을 들어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십자가 사건인줄 모르고 그저 큰 소리로 예수님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절대 저는 예수님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도 다른 제자들 앞서서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이 모습을 보고 ‘역시 베드로야 역시 수제자다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은 믿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모습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를 따라 ‘우리는 주님을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합니다.

사실, 우리는 이렇게 장담만 하는 인생을 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될 거야, 나는 이렇게 성공할 거야 나의 비전은 이거야, 저의 비전은 이것이니 여러분 기억하고 기도해주세요.’ 그랬더니 어른들은 저를 믿음 좋은 아이로 생각해주었습니다. 과연 그것이 믿음이 좋은 건가요? 아니지요. 말씀과는 상관없었습니다. 예수님과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십자가사건과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내 욕심을 채우려고, 성공을 해보려고 교회에서 그렇게 열심히 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늘 장담만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장담 뒤에는 허무함이 있고, 성공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결국 오늘에 대한 답이 없이 세상의 흐름에 빠져 살게 됩니다. 예수님에게는 관심이 없고, 그분의 말씀과는 상관없는 인생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제자들과 오늘 저와 여러분을 데리고 예수님은 겟세마네라 하는 곳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Ⅱ. 예수님이 아니면 장담치 못할 인생

1. 예수님의 모든 관심_마태복음26:38-39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_마태복음26:38:39’

사실, 예수님의 모든 관심은 십자가 사건에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연약한 예수님을 왜 믿냐고 합니다. 몰라서 그렇습니다. 연약한 것이 아니라 가장 강하신 분입니다. 감히 창조주가 피조물을 위해 대신 죽어 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관심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십자가 사건을 모르고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기도제목은 어찌나 많은지, 그러면서 비전은 얼마나 거창한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비록 더디게 깨닫고 있지만, 그들을 살리는 길이 십자가의 길이란 것을 아시기에 그것에 집중을 하십니다. 우리 인생에 참 많은 장담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그 장담들이 다 무용지물인 것을 아시는지요. 예수님이 아니면 우리 인생은 절대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영적인 세상이 없다면 제가 한 이야기가 다 허구겠지만, 성경은 영적인 세계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 십자가 사건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우리 가정에 십자가 사건이 없었다면요. 지난여름 수련회를 기억하시지요?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실 수가 없잖아요. 죄의 값으로 자신을 내어줄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도 자식을 사랑하지만 대신 죽어주지는 않습니다. 설령 죽어준다 해도 영혼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죄의 종으로 영원히 하나님도 모르고, 천국도 모르고, 이 은혜도 모르고 멸망의 굴레에서 살다가 지옥가야 하는데 십자가 사건이 내게 빛으로 온 것입니다. 어둠에 있던 내가 빛을 보고 기어서라도 나온 거예요. 예수님의 모든 관심은 영혼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창녀든, 세리든, 과부든, 고아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물들어서 어떤 직장, 어떤 학교, 재산, 명예 이런 것을 보지만 예수님은 영혼을 보셨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가 왜 타락했지요? 이 시대의 목사가 왜 타락했을까요? 영혼에 관심이 없고 생명에 관심이 없고 다시 말해 십자가 사건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저희가 중직자를 세우려고 합니다. 사실 고민도 안되고 문제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교회마다 이 일 때문에 문제가 많습니다. 기준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중직자는 누구나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면 누구나 세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 영향력을 끼치는 장로가 되어야 하고, 권사나 집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십자가 사건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되지만 예수님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면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세상에서 연약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진 자가 중직자입니다. 제가 여러 가지 갱신을 하려하지만 사실 갱신이 아니고 그냥 성경대로 하려고 합니다. 대신 한 가지 마음에 담아주실 것은 '진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야겠다'입니다. 정말 예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중심이면 되는 것입니다.

2. 십자가 사건이 관심 없는 제자들_마태복음26:40-41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_마태복음26:40-41’

그런데 제자들은 십자가 사건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배신을 하지 않겠다고, 예수님을 지켜주겠다고 장담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을 두고 기도하실 때에 졸기만 했습니다. 저는 영적인 세계를 믿고 봅니다. 정말 바쁘게 살고, 부지런하고, 성공된 인생을 살다가도 십자가 사건 앞에서 만큼은 무기력하고 게으르고 심지어는 지혜롭지 못한 인생들을 많이 봅니다. 좋은 대학 다니고, 실력 있다고 최고의 렘넌트라고 손가락을 치켜세우지만 십자가 사건에는 무지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봅니다. 그런 인생은 길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에서는 멀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저주이며 감당할 수 없는 죄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했는데 실상은 졸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집회나 수련회가면 오직 예수, 세계복음화를 얼마나 외쳤는지 모릅니다. 성령충만은 정말 많이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 삶, 보이지 않는 제 삶에서는 졸고 있었습니다. 이익이 되거나 손해가 되는 삶에는 말씀적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이지요? 신앙생활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일까요? '교회 다니는 거냐? 직분을 받는 거냐?' 아닙니다. 우리는 어쩌면 십자가 사건 앞에 졸고 있는 무늬만 그리스도인일 수도 있겠습니다. 늘 이런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단 하루라도 제대로 살 수 없을까요?'

3. 세 번이나 기도하시는 예수님_마태복음26:42-44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_마태복음26:42-44’

예수님은 정말 고통스럽고 어렵더라도 예수님은 그것을 해야 하기에 세 번이나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부모가 구원받아야 한다면 고통스럽지만 세 번이라도 기도하며 해야 합니다. 맞지요? 만일 우리가 병들었다면 세 번이 무엇입니까? 열 번이라도 고침을 받겠다 하면 받아야지요. 제가 지난봄에 이빨이 너무 아픈거예요. 그래서 유진이가 근무하는 치과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제 잇몸에 염증이 심해서 마취가 안됐습니다. 아 정말 10번 가까이 마취를 했는데...그래도 안 되서 그냥 통증을 참고 치료를 했습니다. 유진이가 목사라고 소개해서 소리도 못 지르고 나중에는 눈물이 나니 의사 선생님이 쉬었다 하자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했습니다. 왜요? 썩은 이빨두면 더 아프고 나중에는 더 고생하잖아요.

지금 우리 앞에 십자가를 져야 한다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싫다 하고 핑계대고 외면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하나님은 촛대를 옮기시는 겁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제3세계 선교현장을 놓치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놓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도가 편할 때 하고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루하고 견디기 힘드니 그냥 편하게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되는대로 살면서 기도만 세계복음화라 하면 되겠지. 그렇게 장담하고 살면 되겠지.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우리 인생에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내 인생에 상관없다면 하나님이 모른다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3번이나 깊은 기도를 하셨을까요? 한주 내내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단 1번도 예수님을 만날 생각, 내 주변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데 말입니다.

Ⅲ. 아버지의 원대로 살기 위한 겟세마네

1. 그리스도인의 겟세마네_마태복음26:36,4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_마태복음26:3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_마태복음26:46’

여러분의 겟세마네는 어디인가요? 예수님의 겟세마네는 십자가를 위해 기도하는 곳입니다. 십자가 사건이 내 삶에 가장 리얼하게 적용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기도하시면서 까지 그 십자가 사건을 받아들이셨던 곳입니다.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셔야한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종종 착각합니다. 먼 미래에 성공하는 것이 신앙인가요? 아닙니다. 지금 오늘 여러분의 겟세마네 같은 회사, 가정, 심지어 여러분의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삶 속에서 예수님처럼 깨어있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곧 교회이고 교회로 살아갈 때 이 나라도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아버지의 원대로 살도록 나를 바꿔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살면 됩니다. 여러분의 주변에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려진 자들이 있으면 되고 그들에게 빛과 소금으로 살고 있으면 됩니다. 그들에게 십자가 사건을 전달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에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것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을 만나는 삶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늘 내 겟세마네에서 십자가 사건을 위해 살 때 가능합니다.

2. 아버지의 원대로 산다는 것_요한복음14:23-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_요한복음14:23-24’

아버지의 원대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는 아버지의 원대로 산다는 것에 갈등이 많은 사람입니다. '내가 이것을 해도 될까? 안될까?' 작은 것 하나라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공동체에 하나님의 영향력이 있을까 이런 고민이 많습니다. 내 개인의 이익을 생각했다면 선택이나 판단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 인생의 겟세마네를 항상 가지려고 합니다. 힘들어 죽겠지만, 묵상일기를 쓰는 이유입니다. 사실 이제는 힘들지는 않습니다만, 처음엔 힘들었습니다. 나를 솔직하게 오픈하는 것이 힘들었고, 내가 낮아지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높아지고, 예수님이 주인 되는 것이 묵상일기입니다. 그것을 통해 제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가 하는 하나님의 시간 속에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작은 시간이지만 늘 질문합니다. '과연 나는 아버지의 원대로 살고 있는가?'

우리는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아내에게도 맞춰야 하고, 이시대의 목회자 상에도 맞추어야 하고, 심지어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미디어 속 사람들의 기준에도 맞추어야 할 만큼 위태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살도 하고, 그래서 진실하지 못하고 포장하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신앙도 그렇게 하려합니다. 포장하고 또 포장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만큼은 진실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됩니다. 여러분의 겟세마네를 가져보세요. 아니 이미 여러분은 교회와 가정, 한 영혼을 두고 겟세마네를 가지고 계시는지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이미 귀한 분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축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겟세마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입니다.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한 기도의 시간이고 내 의지, 내 목표, 내 것이 아닌 아버지의 원을 찾는 곳입니다. 여러분의 작은 삶속에서 그런 은혜가 시작되길 기도합니다.

✔ 주님 우리가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나 되돌아봅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모르고 제자들처럼 장담만 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십자가 사건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기도제목만 산더미같이 많고, 받고 싶은 응답만 많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비전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면서 내 현장, 내 가족, 내게 붙여주신 병들고 어려운 영혼들은 외면하고 살고 있네요. 또 내 인생도 십자가 사건과는 상관없이 살고 있네요. 십자가 사건을 위해 기도하는 내 인생의 겟세마네는 없네요. 아니 그것이 못내 싫다 하네요. 그것이 축복임을, 그것이 고귀한 인생임을 왜 모를까요.

오늘 십자가 은혜가 회복되는 날이 되게 해주세요. 오늘 말씀을 들어 우리네 인생이 십자가 사건에 쓰임 받도록 해주세요. 그리하여 내 장담대로 사는 것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살도록 축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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