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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6-04-03 주일 1부 예배


* 방송장비의 문제로 영상 녹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2016-04-03 주일1부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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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진정으로 변화를 기대하고 계시나요?

굉장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번 해 보겠다.’ 이런 마음으로 도전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도전해서 목표를 이루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성공한 사람들, 좋은 대학에 합격한 사람들, 심지어 삶을 바꾸어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공을 하고 좋은 대학도 갑니다. 취직도 합니다. 돈도 모으고, 건강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지요. 성공을 했지만 언젠가 그 성공이 필요 없을 때가 오게 됩니다. 좋은 대학도 갔지만, 그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옵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온갖 좋은 운동을 다하고, 좋은 약을 다 먹어도 언젠가 그것들이 필요 없을 때가 반드시 옵니다. 사람들이 그런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결국 인생에는 한계가 옵니다. 좌절이 옵니다. 저희 어머니가 이번에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제 좀 살만 하니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좀 살만 하니 한계가 옵니다. 그러면 나이가 들면 그냥 죽지 못해 살아야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가만 보니 인터넷의 정보검색창이나 영원한 세계도 모르는 사람들이 기록한 책이나 심지어 부패한 기업인들이 제시한 기준들이 아닌가요?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아등바등 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 마음은 다 병들고, 우리 마음이 병드니 어둠에 빛을 전할 사람이 없어서 하나님이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대학생 때 매일 새벽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던 제목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사용하여 주셔서 이 땅에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용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일에 사용하여 주옵소서. 가진 것 없고 잘난 것 없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사용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우리에게 어떤 목표를 주셨을까요?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것이 안 되지요?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죄가 없어야 하고, 우리에게 허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원래 인간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죄가 인간을 유혹했습니다. 그 존재가 우리에게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있다고 유혹한 것입니다. 그 유혹이 전부 그럴 듯합니다. 돈 좀 벌면 폼 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럴 듯합니다. 좋은 직장에 다니면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그럴듯하지요. 젊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몸, 좋은 환경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사탄은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죄인이 됩니다. 마음에 빛 대신 어둠이 자리 잡고, 하나님 대신 세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의 말씀만 들을 수 없고, 예수님의 은혜만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거기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거기서 벗어나 예배의 자리로 가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천국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예배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틀린 기준에서 벗어나고, 어둠에서 벗어나고, 틀린 예배에서 벗어나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Ⅱ.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

1. 아버지께 참되게 드리는 예배_요한복음4:21-23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_요한복음4:21-23’

사람들은 지금도 예배를 잘 모릅니다. 마치 사마리아 여인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누구의 말입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의 말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버렸기 때문에 저들을 원수로 살아야해. 그래서 더 열심히 제사 드려야 해, 저들과 상종하지 마.’ 이렇게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겉치레가 심합니다. 남에게 보여 지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삶도 비슷합니다. 진실하지 않고, 자기 마음을 오픈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고통스럽다고 하면서 자기를 오픈하지 않습니다. 대화를 해도 남의 이야기만 합니다. 포럼을 해도 마음을 나누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해주신 말씀을 무엇입니까? 이 산도 아니고 저 산도 아니다. 그리심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성도 아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에게서만 나온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해를 못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정말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제가 아는 어떤 청년은 목사님이 너무 좋아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너무 잘생기고 젠틀하고 설교도 너무 잘했습니다. 그것이 은혜인 줄 알았습니다. 교회의 행사란 행사는 다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습니다. 낙심했나? 시험이 들었나? 아닙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청년에게 문제가 왔는데 그 문제 때문에 교회를 못간 것입니다. 창피해서 그렇습니다. 사실 그 문제가 왔을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놓친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 기회마저 놓친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가 잘 안되십니까?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리심 산에서 끊임없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예배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상처를 풀기 위해 어쩌면 예루살렘보다 더 열심히 드렸는지도 모릅니다. 억울한 마음이나 다른 동기를 가지고 드린 것입니다. 그것이 우상숭배가 아닐까요?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데 참되게 드리지는 않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습니다. 아직 마음을 오픈하여 예수님과 사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소중한 예배시간에 주보를 보고, 낙서를 하고,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내 모습을 봅니다. 창피하고, 부끄럽고, 아니면 교만하기도 합니다. 예배를 전혀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2. 영로 드리는 예배_요한복음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_요한복음4:24’

예수님이 예배의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해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로 예배는 영으로 드려야 합니다. 영은 뭐지요? 뜨거움입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뜨겁단 말입니까? 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지 않습니까? 영이 살아 있는 사람을 봤습니다. 삶은 문제투성인데, 정말 어려운 환경인데 예수님과 사귐이 있어서 영이 살아있는 사람이 그 문제와 어려움을 뚫고 예배를 드립니다. 기도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문제와 어려움을 바꾸는 것을 봅니다. 영으로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영이 살아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눈빛도 다르고, 행동과 말도 다릅니다.

그런데 왜 뜨겁지 않을까요? 왜 예수님으로 가슴이 뛰지 않을까요? 왜 예배가 힘이 들까요? 정신과 전문이자 신앙인이었던 스캇 펙 박사님이 쓰신 ‘그리고 저 너머에’ 라는 책에 보니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는데 마치 기억상실증 걸린 사람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저 돈을 벌고, 성공하고, 인간관계를 잘하고, 여행을 잘 다니고 그럼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공부해야 하고, 일을 하고, 인간관계를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사귐을 가지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먹고 살기 바쁘고, 눈앞에 있는 것만 모든 것으로 느껴집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신 할 것을 끊임없이 찾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로 나를 만족시키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공허함이 찾아옵니다. 다 이루었다고 하나 허전하거든요. 그때 좌절이 찾아옵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우리는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듣고 영접하면 영이 살아납니다. 그런데 그렇게 영이 살아나는 것이 쉽습니까? 성경은 믿을 때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을 때 말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는데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영이 사는 방법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됩니다. 매일 예수님을 만나는 삶을 살면 영이 살게 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게 됩니다. 그렇게 영이 살면 그때부터 예배가 시작됩니다. 영으로 드리는 사람은 찬송을 부를 때 보면 압니다. 말씀을 들을 때 보면 압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예배인데 그 관계가 없으니까 찬송할 때 다른 것을 합니다. 평상시에 주님과의 관계가 있는 사람은 이 시간이 그 어느 시간보다 소중하겠지요.

3. 진리를 드리는 예배_요한복음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_요한복음4:24’

예수님은 진리로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영이면 되지 왜 또 진리입니까? 그림심산에서 드리는 제사가 얼마나 뜨거웠을까요?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것은요? 더 뜨거웠겠지요? 그런데 하나님과 상관없는 예배입니다. 예전에 사이비단체가 드리는 예배를 우연찮게 본적이 있습니다. 너무 뜨거웠습니다. 그럼 거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까요? 아닙니다.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숭배했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찬양하는 영상을 본적이 있습니다. 진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진리가 필요한데 그 진리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4장 6절에 ‘내가 곧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예배가 가능합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는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저는 끊임없이 말씀을 연구합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도 봅니다. 아무리 현장에서 요구하더라도 틀린 것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미 죽을병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에게 천국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천국에 가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얼굴이 싸늘해졌습니다. 사실, 그분은 권사님이셨는데 저는 병실을 나오면서 예수님을 만났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여러분 진리로 예배드리지 않으면 늘 감정적입니다. 뜨겁다가 금방 식어버립니다. 저는 정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찬양하고 예배하지만, 제 삶에서는 정말 냉철하려고 노력합니다. 제 감정대로 살지 않으려고 합니다. 보통은 전부 감정대로 기분대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말씀을 묵상합니다. 제 마음대로, 제 뜻대로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자유하기 위해서입니다.

Ⅲ.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1. 나를 인정할 때_요한복음4:20,25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_요한복음4:20’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_요한복음4:25’

하나님이 모든 예배를 다 받으시냐? 아닙니다. 참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이스라엘의 제사를 다 받지 않으셨잖아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우리 예배를 받으실까요? 우리 영이 살아 있습니까?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도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주일성수를 강조했습니다. 그 개념이 뭐지요? 출석입니다. 그래야 은혜 받으니까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예배드렸다’ 하고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안심이 됩니다. 그러니까 대부분 목사님 설교 들으러 옵니다. 아니면 찬양을 부르러 오신 분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인간관계 때문에 오신 분도 계십니다. ‘지금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실까?’ 질문해 봐야합니다. 예배 시간인 지금 예수님과 사귐이 있느냐 입니다. 대부분 그냥 예배에 앉아 계시지 영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6일 내내 예수님과 사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저는 그런 저를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이구나, 나는 매 순간 매일 주님과 관계를 가져야 하는 사람이구나! 인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배가 안 되지요? 나를 인정 못하기 때문입니다.

2. 예배는 주님과 사귐_요한복음4:26,요한복음15:4-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_요한복음4:26’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_요한복음15:4-5’

예수님을 매일 만나 예배를 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런데 사탄이 그걸 방해합니다. 방해정도가 아니라 유혹합니다. 이상하리만큼 말씀을 듣고 자기를 인정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인정해야 주님과 사귐이 시작 될 텐데 그것이 되지 않습니다. 프랑스에 로렌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쓴 묵상일기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그 분이 프랑스 전쟁을 참여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그가 부엌일을 한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겨우 부엌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거기서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을 누렸다고 합니다. 늘 찬송하면서 일을 하는데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아니 뭐가 그렇게 좋아서 찬송을 하십니까?’ ‘저는 힘이 들지 않습니다. 저는 부엌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교제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로렌스형제를 만나기 위해 수도원으로 갔다고 합니다.

여러분 정말 주님과 교제를 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자기 계획, 자기 목표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계십니까. 사람들이 시선, 사람들의 기준에 빠져서 예수님과 사귐을 가지지 못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여러분과 사귀길 원하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찬송을 들으십니다. 찬양팀의 찬송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왜 제가 설교를 마치고 통성기도를 하지요? 제가 그냥 대표기도 하면 될텐데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의 예배를 들으세요. 우리 기분으로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으로 예배하시길 바랍니다. 마귀는 우리 기분 뒤집는 선수입니다. 기분으로 예배하면 평생 제대로 예배드리지 못합니다. 영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주님과 사귐이 있는 영으로 오늘 예배드리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게 됩니다.

3. 그래서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_고린도후서4:7-10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_고린도후서4:7-10’

A.J. 토저 목사님의 책을 즐겨 읽는데 그 책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영이 죽은 성도가 부르는 찬송에 마귀가 배꼽을 잡고 웃을 것이다. 왜 그렇지요? 너무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옆 마귀를 때리면서 웃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그렇습니다. 내 영은 죽어있는데 그저 출석 부르려고, 아니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예배드립니다. 그것이 신앙생활 잘한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목표는 예배입니다. 그 예배가 무엇입니까? 주님과 사귐입니다. 교제입니다. 다시 말해 내 안에 오신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 환경, 내 상황, 내 형편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배 때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제가 처음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잘 드리지 못했습니다. 바닥에서 예배드렸는데 얼마나 힘들던지 몸을 비틀고 참느라 힘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손을 들고 찬양하는데 왜 들지? 그런데 제가 변화가 된 거예요. 제 삶에서 예수님을 만나니 완전 변화된 것입니다. 예배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고, 찬양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는 찬양할 때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생각하니 손을 들거나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제 마음에 오셨습니다. 보배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저같이 못난 그릇, 질그릇에 오셨습니다. 저는 겨우 돈 좀 벌었으면, 겨우 좋은 차 좀 탔으면, 겨우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그런 목표로 살았는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입니다. 제 인생의 목표가 예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부교역자로 있든, 개척을 하든 상관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슨 직업을 가지느냐, 무슨 공부를 하느냐 그것은 도구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진짜 예배드리는 사람이라면 그 직업도 가치 있게 사용될 뿐입니다. 부엌에서 일하는 로렌스라도 그가 하나님께 쓰임 받으니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기가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착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예배를 드립시다. 나는 죽고, 나를 내려놓고, 내 목표가 아닌, 이제 예수님으로 삽시다.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목표인 말씀에 귀를 기울여 살아봅시다. 그렇게 살아서 고난을 당한다면 인내하면 되지요, 그렇게 살아서 핍박을 받는다면 기도하면 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진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제 우리는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 주님 저희가 주일에 교회 의자에 한 시간 앉아 있는 것으로 예배드렸다고 안심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내 삶에서는 여전히 인터넷이나, 세상의 기준이나, 내 속의 상처, 야망, 동기로 살면서 말입니다. 마치, 사마리아여인처럼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을 봅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저희의 삶에서 주님과 사귐이 시작되게 해주세요. 주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삶이 회복되게 해주세요. 그래서 매일 주님을 만나 죄에서, 세상에서 참된 자유함을 얻어 영으로 뜨겁게 주님을 예배하게 해주세요. 주님의 말씀 곧, 우리를 이끄시는 말씀으로 진리삼아 살게 해주세요.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저희 인생이 주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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