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2014-02-16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2월 16일

제목 : 부흥과 핍박의 시작

말씀 : 사도행전 4 : 1-12

설교 : 오승주목사


2014-02-16 주일2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메시지를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pLCK1tO0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으로 메시지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youtu.be/6z1Paaib3OQ


 지금 시간표에서는 영적으로 일어나야 하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주제 설교를 하지 않습니다. 설교의 모든 타이틀이 주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설교의 흐름들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깨달은 말씀들을 붙잡으셔야 합니다. 그것이 강단말씀입니다. 주제가 전달되면 그것이 내 말씀인 것 같지만, 사실 내 것이 되지 않고 실제 응답이 되지 않게 됩니다. 주제설교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습니다. 누군가가 만들어서 주는 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만들어서 먹으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리법도 잊어버리고 주는 것을 먹는 인스턴트 시대에 있습니다. 너무 편한 시대에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6일 동안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 앞에 서는 훈련을 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되지 않으면 절대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모여도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짜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삶을 통해 가정, 직장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해야 할 궁극적인 사명입니다. 그렇다면 모인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 이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많은 가정의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어떤 면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기도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기도입니다. 삶 속에서 기도 생활이 되지 않고 있다면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Ⅰ. 고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사람들이 기적이 일어났다고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고난이 왔습니다. 종교인들이 제동을 걸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어떤 면에서 펼쳐진 큰 길에서 개선장군처럼 나아가는 성장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핍박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교회가면 조롱하고 손가락질을 하는 그런 핍박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진짜 잡아서 죽였습니다. 그런 고난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힘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_로마서8:17’

Ⅱ. 핍박과 고난을 이기는 힘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는 고난을 함께 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녀들을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과 핍박이 몰려오는데 이길 힘이 없다면 주저앉아 버리게 됩니다. 힘이 있으면 주저앉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이 핍박과 고난이 오는지 안다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면 어둠의 세력도, 사단의 저항도 강렬해지게 마련입니다. 드러나지 않습니다. 한참 은혜 받으려 할 때, 교회가 부흥하려 할 때, 사단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작은 약점을 공격합니다. 그것을 예상하고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그것을 이겨내었던 힘을, 우리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1. 삐뚤어진 영성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핍박을 주도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제사장, 성전 맡은 자,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이야말로 앉은뱅이가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기뻐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이 반대로 복음을 거부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세력들은 외부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불신자가 핍박한 것이 아닙니다. 내부에서 온 것입니다. 그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사실 진짜 오늘날 교회 부흥을 방해하고, 복음을 가로 막는 것은 불신자가 아닌듯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교회의 부흥을 바로 막고 교회가 어려움에 처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우리들이 아닐까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고 세상 기준으로 살아가길 즐겨하고, 신앙생활을 취미생활처럼 하는 삐뚤어진 영성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약한 자를 멸시하고, 소외된 자를 정죄하여 스스로 교만한 기독교인들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성이 삐뚤어진 것입니다. 종교적인 모습은 있지만, 교회 안에서 잘못된 전통과 자기주장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_사도행전4:1-2’

2. 핍박자들의 실체

진짜 이상한 것은 이 작은 기적으로 인해 산헤드린 공회가 소집되었습니다. 관리들, 장로들, 서기관들이 모인 것입니다. 유대인 최고 재판 기관입니다. 안나스는 전직 대 제사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가야바는 그의 사위로 현 대제사장이며, 요한과 알렉산더는 당시 영향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만든 장본인들입니다. 그들 모두 성전 문 앞에서 앉은뱅이가 일어나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핍박은 작은 시작입니다. 그들은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제자들을 통해 기적이 일어나고 3천명 5천명이 모이게 됬습니다. 그래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사람이란 것이 사단에게 붙잡히면 끝을 보게 됩니다. 여호수아처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서서 '하나님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하면 되는데, 결국 300년 동안 핍박이 계속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핍박을 통해 결국 이 복음이 이방까지 퍼지도록 하셨습니다.

‘이틑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_사도행전4:5-6’

3. 어둠의 권세 잡은 자

그들의 배후가 어둠의 권세 잡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전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핍박이 온다고 미리 겁먹지 말아야합니다. 배후 세력이 누구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복음에 담대해야 합니다. 영적인 배후를 알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Ⅲ. 부흥의 역사

그걸 안다면 부흥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정말 멋진 장면입니다.

1. 핍박자들의 질문과 베드로의 답변

핵심 구절은 핍박자들의 질문과 베드로의 답변입니다. 그들은 말씀과 성령의 역사에 관심이 없습니다. 앉은뱅이가 복음을 받고 일어난 것에는 더욱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자리와 권력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의 기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혹시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정말 심각하게 병든 것입니다. 정말 십자가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나요?

그런데 지금 이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꼭 이런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해도 자기 자신을 통해서 해야 하고, 자기들을 통해서 해야 하는 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변화받고 살아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스타가 되어야 하고 자기 공동체가 돋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사람들이 안 믿었으면 안 믿었지 다른 교회 가서 믿고 그 교회가 부흥되는 것을 못 참는 심보와 같습니다.

이들의 질문의 참된 의미는 여기는 내 구역인데 감히 누구 이름으로와 앉은뱅이를 일으켰냐는 것과 같습니다. 완전히 조폭과 같습니다. 사람이 앉은뱅이로 평생 재앙과 저주 가운데 죽어가는 데 그 영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무엇에 관심이 있습니까? 내 자리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노력을 해서 이 자리에 왔는데’라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이런 목회자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제3세계에 복음을 듣지 못해서 팔려가고 전쟁중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교회는 자기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종교 지도자들이 제일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고 어떻게 일어났지?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얼굴이 밝아 진 것을 봐. 하나님께 감사하다’라고 해야 하는데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누구 이름으로 누구 권세로 했냐고 합니다. 얼마나 기분이 나빴으면 가장 막강한 회의체를 소집했습니다.

가스펠 공동체는 그것을 뛰어넘길 바랍니다. 자신들이 어둠의 권세에 사로잡혀 잘못하고 있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교만함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언제나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한다면 정말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이 감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진짜 내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감사가 있다면 치유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복음을 받고 변화되면 우리는 정말 신나야 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와도 고난이 와도 진짜를 알고 있기에 두려워하지 않기 바랍니다.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_사도행전4:7’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_사도행전4:8’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_디모데후서1:7’

2. 관점을 바꾸어

놀라운 것은 베드로의 대답입니다. 못 배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 한 베드로가 어떻게 이런 답변을 했을까요? 정말 기가 막힌 답변입니다. 대제사장들이 한 질문에 너희들의 질문이 틀렸다. 잘못되었다. 라고 합니다. 다시 내 말을 들어 보라고 합니다.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께 인생의 축을 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이 하는 질문에 흔들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 사람들의 질문에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개인적인 기도생활이 회복되기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을 살아가며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단의 어른들이 모이는 회의에만 가도 떨립니다. 보고하나를 하려고 해도 떨다가 나옵니다. 오늘 베드로가 최고 회의 앞에서 틀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앉은뱅이가 어떻게 치유되고 구원을 얻었는지 질문하신다면 이라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세상을 살아가며 이 답을 가지고 계시기 바랍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는데도 그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의 기준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기준이 말씀이기 때문에 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의 신앙은 하나님께 기준을 두었기 때문에 요동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가든 3천명의 제자가 일어나든 꿈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만 마음이 상해도 신앙생활에 영향이 있습니다. '교회갔더니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라고 합니다. 조금만 자존심을 상하게 해도 신앙생활에 영향을 받습니다. 조금만 마음이 상해도 흔들려 버립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자꾸 하나님의 위치에 가려고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여호수아의 말씀이 맞물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아무런 요동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관점을 바꿔주고 질문을 다시 했습니다. 베드로는 완전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삶이 우리의 삶을 내팽게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준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사모하고 귀담아 듣고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나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누는 그런 기적이 있는 삶입니다. 성령충만은 나누는 것입니다. 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다 비우시기 바랍니다.

그는 세상의 기준이 들어올 때 관점을 바꾸어 답변합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이 들어올 때 말씀으로 답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꾸 자기의 경험과 지식, 세상의 그것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며 하나님이 정말 싫어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데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니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에 담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질문을 바꾸어 다시 이야기합니다.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_사도행전4:9’

그리고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야기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나눕니다. 그것이 저들이 살길이라는 것을 베드로는 안 것이지요? 왜 우리 집에 우환질고가 끊이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다면 가문이 회복될 것입니다. 질병이 왔을 때 제대로 된 의사를 한번만 만나면 치유가 시작될 것입니다. 영적인 것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셨고 하나님을 만나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면 회복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행복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Ⅳ. 능력의 이름 예수

무엇보다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은 자신의 영광이 아니었음을 베드로는 선포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감옥에 보내기 위한 구실을 찾으려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질문을 했는데 속지 않았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셨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만약 정확한 신앙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 부분에서 속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백성의 신앙생활입니다. 어지럽고 힘들수록 고난이 있을수록 예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분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정말 회개했습니다. 저 또한 저 종교지도자들 같았기 때문입니다. 동역자들의 사역에 역사가 일어나면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정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 영광을 받는 다는 것은 입술뿐이었습니다. 나를 통해 일어나는 역사만 진짜 역사이고 나를 통해 일어나는 기적만 진짜 기적이라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부끄러웠는지요. 저는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지 않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저를 위해 그렇게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3세계와 소외계층 엘리트 현장을 살리는 교회로 함께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능력의 이름 예수를 통해 변화되고 주께 돌아오길 정말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주인 삼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에 올인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기도해야 할 시간표입니다. 중요한 시간표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꼭 여리고성 앞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초대교회 앉은뱅이 앞에 있는 요한과 베드로와 같은 심정입니다. 왜 기도하라는 것입니까? 기도하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삶과 기도하지 않는 삶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기도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습니다. 세상의 유혹들에서 무엇으로 이겼냐고 한다면 기도로 이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흉년의 때, 고난에 몰렸을 때 늘 기도로 이겨냈습니다.

금요예배를 소홀히 하지 않기 바랍니다. 함께 모여 기도할때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 건물을 두고 유일하게 기도하는 것은 금요일 밤에 정해진 시간 때문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초대교회가 성도들이 모여 함께 철야하며 이겨내는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기도할 때 역사하십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말씀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좋은 프로그램 화려한 예배가 없어도 됩니다.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저는 굉장히 예민합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사명이다라는 것을 붙잡았습니다. 앞으로 교회가 어떤 모양으로 갈 것인지 신경쓰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바른 기준을 두고 있다면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부흥의 시작입니다.

비본질적인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행정은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는 것도 복음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려고 주신 직분이 신앙생활을 옭아매는 것을 보았습니다. 혹 신앙생활에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직분을 내려놓기 바랍니다. 재정도 행정도 뭐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기도하면서 인도받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고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어서 어떤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를 높이고 그분 중심으로 순수하게 사랑하고 그것 때문에 서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불신자들을 섬기고 어려운 성도들을 섬기기 바랍니다. 베드로처럼 이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하기 바랍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아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_사도행전4:10’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_사도행전4:12’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02-23 주일 2부 예배  (1) 2014.02.23
2014-02-23 주일 1부 예배  (0) 2014.02.23
2013-12-13 예배 메시지  (0) 2013.12.30
2013-11-29 예배 메시지  (0) 2013.12.30
2013-11-08 예배 메시지  (0) 201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