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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8 주일예배



2016-09-18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6-09-18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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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님_이사야53:1-6

 

사람들은 기독교를 사랑과 기쁨, 평화, 인내, 친절함, 더 나은 결혼 생활, 더 순종적인 자녀를 약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그저 우리의 사업을 번창하게 해주시는 분이라고 전하기도 합니다. 만약 기독교가 한낱 망상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많지만 제가 놀란 것은 성경을 덮어둔 재미 위주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들은 제대로 복음에 대해 알고 싶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이 임기응변식으로 교회를 운영합니다. 당장 세상의 문화를 따르면 교회가 대단한 수준이나 되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것을 보고 듣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에 현혹되어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은 직분이나 직책이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크리스마스를 위해 성극을 했습니다. 저는 항상 악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성극을 할 때는 일본 순사를 했습니다. 급기야 도어라는 연극에서는 마귀 역할을 했습니다. 분장하는 선생님이 승주는 너는 분장 안 해도 되겠다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마귀 역할을 한 3년 쯤 하니까 박이석 목사님께서 목회자가 되려면 너무 마귀를 오래 하면 안 된다고 하셔서 그만 했습니다. 목사님이 제 이미지까지 신경써주실 정도로 마귀와 잘 어울렸나 봅니다. 그때는 그것도 너무 좋았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때는 금요일 밤만 기다렸습니다. 밤새워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그 은혜가 너무 커서 교회에서 맡겨진 모든 일에 순종했습니다. 그때 불신자였던 누나가 너 교회에 너무 빠진 거 아니냐? 공부는 언제 할래?’ 그 정도였습니다. 그런 누나들이 지금은 전부 신실한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_이사야53:1-6’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신앙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틀린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참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특별히 예비 중직자님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교회에 오래 다니신 분들에게 더욱 그렇습니다. 목회자인 저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길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확인해야 할까요?

 

. 주님을 경배하고 계시나요?

 

1. 찬송하는 무리들_요한복음12:12-13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_요한복음12:12-13’

 

예수님이 드디어 예루살렘성전으로 입성하십니다. 유월절 전날입니다. 모든 것이 성경에 예언된 대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진행이 되어집니다. 모든 사람들과 상황, 환경까지 완벽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매일, 매순간 그래야 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여라고 찬송합니다. 사실 엄청난 찬송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보니 우리가 천국에 입성할 때 수많은 천사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에게 오신 그리스도를 찬송해야 합니다. 그러나 찬송하는 그 무리의 대부분은 예수님의 기적과 표적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대다수가 예수님이 이 나라를 회복하고 통치하는 왕이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동안 기다리던 메시야였던 것입니다. 메시야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강력한 메시야, 크고 위대하시고, 놀라운 능력으로 통치하실 그리스도였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즉 자기들 민족을 위해 오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방인들, 로마 군대를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아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이 찬양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럴 수 있습니다. 찬양도 하고, 예배도 드리는데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신앙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10, 20, 30년 신앙생활하고, 중직자도 되고, 리더도 되는데 신천지나 사이비 단체들이 복음에 대해 질문하면 확신도 없고 지식도 없고 그들이 제시하는 신비와 기적, 표적에 넘어가기도 합니다. ‘열심히 했는데, 은혜를 받았는데, 주님을 사랑했는데라고 변명하지만 결국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내게 왜 오셨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여서 무리들을 따라 신앙이 흔들리고, 변질되기도 합니다. 그런 신앙은 바람 불 때 확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많은 젊은 친구들이 교회는 다닙니다. 뜨겁게 찬양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분위기나 사람들 즉 무리들이 하는 신앙에 머무릅니다.

 

2. 무엇 때문에 주님을 경배하고 계시나요?_요한복음12:17-18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_요한복음12:17-18’

 

그렇게 찬양하던 무리들이 닷새 만에 180도로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여라고 소리치는 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로마 군대를 다 내쫓으시고 다윗의 왕국을 다시 세우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광적으로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와서 그들의 기대와 다르게 조용히 천국복음만 전하시고 목요일 밤에는 기도하시다가 로마 군대에 잡혀가서 재판을 받게 됩니다. 맥없이 끌려가셔서 재판을 받으시는 모습에 실망을 했습니다. 왕으로 입성하려면 군대를 이끌고 강력한 왕의 모습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초라한 나귀를 타고 갔으니 얼마나 웃겼을까요? 제자들도 이해를 못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모든 무리들이 속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구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성모독한 죄인이구나!’ 그들이 앞장서서 십자가에 못 받으라고 소리치게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기적과 표적으로 예수님을 믿었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왕이 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들을 위한 일인지 몰랐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위한 일인지 몰랐습니다. 정말 어리석지요. 우리가 그렇습니다. 실제로 기적이나 표적을 일어나면 예배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사업이 잘 된다든지, 공부 못한 자녀가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든지, 질병이 치료되었다든지,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이 지속되지 못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정확하게 모르고 경배하는 것은 경배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찬양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기적이 찬양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찬양과 경배의 이유는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여야 합니다. 많은 목회자들도 이 부분을 놓칩니다. 물론 기적과 표적이 중요합니다.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매이면 진짜 찬양과 경배가 사라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이 메말라 버리고 감사와 찬송이 없는 이유입니다. 매일 뜨거운 가슴으로 감사와 찬송이 넘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은 주님이 내게 어떤 존재인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교회 다녔더니 이런 것이 좋더라 저런 것이 좋더라 그러다가 더 좋은 삶이 시작되면 교회와 멀어집니다. 그래서 마치 무엇이 더 있는 것처럼 이곳, 저곳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더 용한 점쟁이를 찾는 것과 같은 심리입니다.

 

3. 경배: 믿음으로 가는 길_갈라디아서5:4-6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_갈라디아서5:4-6’

 

십자가의 영광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으면 의를 위해 살게 됩니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이 의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것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의 즉, 교만을 말합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공적을 쌓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날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뜨겁게 찬양하고 예배하지만 정작 나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강권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 전도를 해도, 헌금을 해도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합니다. 자기만족, 자기 사랑 때문에 합니다. 그것은 경배가 아닙니다. 찬양도 마찬가지 이고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의를 내세우기 위해서 하는 예배도 위험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진짜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_고린도후서5:14a’

 

바울은 그 사랑으로 강권함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전형적인 유대인이었습니다. 전통을 중시여기고 할례를 중하게 여겼습니다. 남들보다 뭐든지 잘해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믿음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영광을 위한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두 자기를 위해서 한 믿음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경배가 아니고 찬양이 아닙니다. 기적과 표적을 바라는 믿음과 같겠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_고린도후서5:16

저도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영광을 알고 아니 제 삶이 변화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 성격, 체질을 하나님이 사용하시지만 다듬고 고치심을 느낍니다. 저의 의지로 변화될 수 없잖아요. 그러나 십자가 사랑 때문에 제 의지나 뜻보다 영혼이 먼저가 되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 먼저가 됩니다. 무엇보다 성공이나 명예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이 먼저가 됩니다. 육신을 따라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십자가의 영광을 깨달을수록 그 사랑을 깨닫고 받을수록 우리는 변화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 천국 가는 길에 부를 찬양_시편84:5-7,고린도후서6:1-10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_시편84:5-7’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는데 어떤 복인가요? 천국에 가서 하나님 앞에 그 모습 그대로 서게 됩니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으신가요? 바울이 가졌던 시온의 대로, 믿음의 사람들이 가졌던 시온의 대로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이 시온의 대로가 있길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목회자인 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온의 대로가 천국가는 길입니다. 천국을 향해 가는 인생 말입니다. 그 가는 길에 눈물 골짜기가 있겠지요? 힘들고 어려운 인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 나는 가난한가? 왜 나는 병에 걸렸는가? 그렇지요?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갈 때를 생각해봅시다. 그 때를 생각해봅시다. 여러분 우리가 천국 갈 때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원수 같은 사람에게 복수할 마음이 생길까요? 오히려 눈물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할 것 같습니다. 십자가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용서가 될 것입니다. 천국 갈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나보다 부자, 뛰어난 사람, 내가 부러워했던 사람들이 지옥 가는 사람이 많은데 나 같은 자가 천국에 간다니 그 모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그러니 찬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때도 내 성격대로 얌전히 찬양하렵니까? 저는 춤추며 찬양할 것입니다. 저는 그때를 정말 생각해봅니다. 내가 가난했고 질병이 많았는데 그 때 가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하나님이 나를 이 천국 가는 길로 인도하시려는 계획이었구나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천국 갈 때는 다 이해가 됩니다. 십자가의 영광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의 영광을 아는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매를 맞고 또 맞았는데 기쁨으로 찬송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기쁨입니까? 나 같은 것이 어찌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갈 이 길에 들어서게 되었는가? 여러분 놀랍게도 그 감사로, 찬송으로 세상을 이깁니다. 어둠도 이깁니다. 가난도 질병도 이깁니다. 그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것이 경배입니다. 그러면 자기만의 찬양이 생겨요. 누구에게나 찬송이 있게 되요. 누구나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잖아요. 그때도 부를 찬양이 있어요.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참 소망 나의 몸 정성 다 바쳐서 주님 경배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말하지 않아도 표현 다 못해도 주님 사랑해요

 

제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마다 부르는 찬양입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불렀던 찬양입니다. 천국 가는 길에 부르는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천국에 입성할 때도 부르는 찬양이 있으셔야 합니다. 그것은 기적과 표적 때문에 감사하거나 찬양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감사해서 그 은혜에 감사해서 부르는 찬양입니다. 그 찬양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이깁니다. 환경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으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자 같으나 보라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_고린도후서6:1-10’

 

찬양이 있는 사람 즉, 십자가의 영광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다릅니다. 저는 우리교회 교역자, 중직자, 여러분 모두가 이 믿음의 고백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예수님을 뜨겁게 찬양하던 무리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메시야의 모습이 아니자 결국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뜨겁게 찬양하고 예배하지만 정작 나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모르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삶은 아닌가요. 무리들처럼 표적과 기사로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과 그 은혜로 천국 가는 길에 항상 감사와 찬송이 있게 해주세요. 십자가의 영광으로 주님을 경배하길 원합니다. 그 감사와 찬송으로 세상도 이기고, 내 욕심과 이기심도 이기어 주님께 빛나는 인생이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