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Gospel Letter. ' 우리 교회 청년들에게 미안합니다 '

Gospel Letter. ' 우리 교회 청년들에게 미안합니다 '


지난 3년 동안 작은 개척교회에 정말 많은 청년들이 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진 청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너무 고민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지요. 저는 청년들이 많이 와서 교회가 부흥하면 좋겠다 라고 이기적인 생각만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떻게 하면 청년들을 도울까?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보니 저와 교회가 청년들에게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오직 예배를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시험이나, 회사일 등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예배를 타협하여도 괜찮다고 은연중에 말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렇게 해야지. 라고 말이지요.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청년들의 상황과 입장을 생각하느라 청년들을 향한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라 인정이 되는 것이 예배입니다. 거기에 이르는 여정은 꽤나 고달픕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 그 확신이 생겼고 믿음의 조상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예배를 강조하지 못한 것은 그들을 여전히 방황 중에 머물러 있도록 만든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제자로 키우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음을 깨닫게 해 주고 그들이 자신들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가도록 해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기로 작정한 사람은 반드시 고난과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내 지경을 넓히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제자의 삶은 말씀을 붙들고 씨름해야 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성의 수위를 높여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씨름할 때 우리의 영성의 수위가 높아지겠지요.

셋째, 온전한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놓고도 청년들에게 그걸 가르쳐주지 못했습니다. 사랑은 말로 가르쳐줄 수 없습니다. 한편의 설교로 불가능하지요. 예수님처럼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고,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찾아가 십자가의 사랑을 나누었어야 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성준이네 집 청소, 쌀 나눔 같은 것들을 청년들과 함께 하면서 사랑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교회 사역으로 너무 바빠 그런 일을 뒤로 미루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타락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넷째, 교회에 대해 바르게 안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위해 교회를 주셨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사역은 교회를 위해 세상을 주신 것처럼 뛰고 있습니다. 그 말은 청년들에게 올바른 교회관을 심어주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청년들은 세상에서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로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진짜 멋진 삶은 교회로 사는 삶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년들에게 그런 믿음을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너희들이 세상의 빛이다! 너희들이 가정에서 선교사다! 너희들이 직장에서 전도자다. 너희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다! 그걸 제대로 말해주지 못했습니다.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아 지쳐있는 청년들을 보면서 인간적인 미안한 마음으로 그들의 입장을 배려한 것은 그들을 더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삯꾼 목사인가요? 저는 청년들이 수준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이 좋은 프로그램을 찾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이 위로와 배려를 원해서 교회에 오는 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싶어서 교회에 옵니다. 말씀을 제대로 붙잡고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서 교회에 옵니다. 그런 청년들에게 진심으로 그들이 환경과 상황을 말씀으로 이겨내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신앙생활이 되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_요한계시록2:7'



_삶의 한자락이라도 주님을 담아내려 말씀과 씨름하는,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