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Gospel Letter. ' 대충대충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

Gospel Letter. ' 대충대충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


오래전 미국에서 한 유대인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복도며 교실이며 덕지덕지 붙어있는 아이들의 작품(?)이었습니다. 제 눈으로 보기에는 작품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그림들이며 글들이었지요. 한국에서는 저런 그림들은 전시될 수 없기에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글과 그림은 모두 소중한 작품입니다.'

우리는 잘한 것, 뛰어난 것만 말하고 표현합니다. 그러니 틀릴까봐 늘 조마조마하고, 부끄럽고 창피하다 생각하여 표현을 잘 하지 못합니다. 놀라운 것은 신앙생활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설교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일주일을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이해 되지도 않고, 깨달아지지도 않았는데 일주일을 살아갑니다. 심지어 그걸 답답하게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기도, 상관없는 삶을 살지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죄로 어그러진 세상을 따라 살아가지요.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_시편4:2’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_시편1:4’

본질이 죽을수록 겉모양은 화려해진다고 합니다. 성베드로 성당에 가본적이 있는데 얼마나 화려한지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을 믿어 복음의 빛을 비추는 그리스도인은 전부 사라져버렸습니다. 복음이 희미한 중세시대에 지어진 건물은 유명한 관광지일 뿐 생명의 빛은 비치지 못합니다.

우리가 내면의 일을 대충대충한다면 아무리 겉모양이 화려해도,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그것은 잘 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영이 죽어 있으면 바람에 나는 겨와 같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대충대충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육신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을 하지 않거나, 봉사나 예배, 기도, 전도행위 같은 외향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꿰뚫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이해하고 그 말씀으로 영이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으로 죄를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으로 우리의 구원자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_느헤미야8:8-9’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_느헤미야8:10’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_시편4:7-8’

오늘도 말씀을 사모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봅니다. 내 인생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지 모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_시편1:2-3’

이제 말씀을 듣고이해하기 위해 작은 시작을 해보세요. 설교도 다시 들어보고, 의문이 생기면 질문도 해보고, 또 묵상도 하고, 받은 은혜를 기록하여 지체들, 가족들과 포럼도 해봐요. 무엇보다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여 주님이 주시는 기쁨의 신앙생활을 해요!



_말씀을 따라 사는 기쁨의 신앙을 나누며,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