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spel Letter. ' 개척 4년의 열매, 경외 '
가스펠 교회가 벌써 4주년이라 하네요. 4년간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는 죄인이구나’입니다. 교회를 개척해서 4년 동안 겨우 그것 깨달았냐고 물으신다면 아직도 덜 깨달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온전한 경외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다시 말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줄 너무 잘 아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죄인이야?’
우리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음에도 하나님은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 길이 아니면 우리가 살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사건은 그래서 놀라운 은혜이자 사랑이며 공의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우리는 십자가에서 멀어지려고 합니다. 아니 멀어지고 있습니다.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니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웃기는 짬뽕 정도 되겠네요. 정말 복음을 깨달았을까요?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변화를 말할까요? 변화가 아니라 완전한 바뀜입니다. 곧,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지요? 지옥에서 천국으로 향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소름이 돋습니다. 그걸 알고 나니 그 어떤 것도 이해가 되고 괜찮습니다. 내 자존심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게 뭐 대수라고.
완전한 바뀜이 되었다는 표시는 바로 경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깨달아질 때 경외가 시작됩니다. 그분 앞에 설 때 시작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상 아래 개처럼 부스러기라도 먹겠습니다.’ 그 고백이 바로 경외입니다. 경배의 대상을 깨달은 것이지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두려움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경외하게 됩니다. 생사화복이 하나님 손에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오래전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십리길 비바람, 눈보라에도 예배를 생명처럼 여겼습니다. 남편 몰래, 부모 몰래 은혜를 받으러, 말씀을 들으러 그렇게 예배하러 가기 위해 몇 배나 더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가족들이 구원받도록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해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경외했기 때문에 기도한 것입니다. 사랑은 그 사이의 통로입니다. 본질은 하나님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죄인임을 깨달은 것이지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축복을 받기 위해 예배한다거나, 내 자녀가 잘되기 위해 예배한다거나, 어떤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예배한다거나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깨달아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깨달아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어떤 것이든 비교하지 않게 됩니다. 아니 비교할 생각조차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경외하는 자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경외하는 자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두렵습니다.
나는 죄인이구나, 하나님만이 나를 살리실 수 있구나, 하나님의 은혜만이 내 인생을 온전하게 하시는구나, 하나님의 말씀만이 올바른 길 가게 하시는구나, 란 마음으로 예배드립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거창한 비전을 가지고 개척했지만 하나님은 지난 4년간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마음에 경외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이 진짜 비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목사가 되고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네 마음으로 조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_잠언23:17-19’
_오직 여호와를 경외하길,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