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5 금요찬양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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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5일 가스펠교회 금요찬양예배 | |
제 목 : | (소요리문답강해28) 그리스도의 승귀(높아지심) |
본 문 : | 요한복음17:1-5 |
임대영 목사
제28문 그리스도의 승귀는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답 그리스도의 승귀(높아지심)는 제3일에 죽음에서 부활하심과 승천과 성부의 우편에 앉으심과 마지막 날에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으로 구성된다.
예수님께서 이땅에서 사역을 모두 마치려 하실 때 성부 하나님께 나를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영화라는 말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존귀하고 빛난 상태를 의미 합니다. 하나님만이 영화로우실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부르신 자들을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영화로울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_로마서8:29-30’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단계적으로 성경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승천, 성부 우편에 앉으심, 심판을 통해 승귀, 즉 높아지셨습니다.
Ⅰ.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죽음에서 부활하심입니다. 인간의 육신을 입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장사지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육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정체성은 우리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셨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_누가복음24:37-39’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 제자들은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했습니다. 한마디로 귀신따위로 생각한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 비슷한 장면이 있었지요. 제자들이 바다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며 귀신으로 착각했던 것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래서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내 손과 발을 보라. 나를 만져보라. 나를 보라. 우리는 의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믿는 것이 어찌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아마 제자들은 예수님과 동거동락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손과 발을 기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단순히 손과 발이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아니라, 친한 사람들끼리 확인할수 있는 신체의 구조로써 보여 주셨을 것입니다. 내 손과 발인지 확인해봐라. 그리고 만져보라고 하십니다. 우리 또한 제자들처럼 하나님 말씀이 익숙한 것들로 응답되고, 만져지고, 보여져야 믿을 때가 많습니다. 이날 이후로 제자들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성경을 보며 제자들의 상상력에 의해 기록되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의 높아지심을 거부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역사속에서 예수님께서 존재하지않았던 사실을 증명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기독교는 텍스트의 종교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성령님을 알아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기록된 하나님 말씀안에서 우리의 구원과 신앙생활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는 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경을 보는 눈은 관점입니다. 성경을 보는 관점의 뼈대가 신학입니다. 신학은 성경의 구조를 선명하게 알게 도와줍니다. 이처럼 소요리문답과 교리(7가지신분과권세,5가지확신,10가지신앙발판)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눈이 됩니다. 그래서 바른 관점을 가지고 있지않으면, 성경을 오해하고 잘못 해석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어도 구원과 상관없는 행위에 불과하게 됩니다. 성경을 보는 눈이 사사롭거나, 자신을 위한, 자신의 방패처럼 사용하는 목회자들도 많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은 일점일획도 가감없이 성취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지식으로 성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성과 나약함으로 고학력의 신학자, 경력많은 목회자라 할찌라도 성경의 말씀을 100프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주시는 일용할 양식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주기도문을 기억해야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고,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악에서 구해달라고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Ⅱ. 승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제자들을 자주 만나시면서 40일이 지나자 그날에 영광에 참여 하게 되었습니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_사도행전1:10-11’
이 사건은 불신자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육체의 상태에서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승천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가운데 인간의 육신이 지표면, 땅에서 하늘로 올라간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으신채로 땅에서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높아지셨습니다.
성경은 인문학과 과학,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신비라고 합니다. 성경은 신비로운 부분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예수님의 높아지심입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완전한 육체를 가지시면서 낮아지셨지만, 그의 본질은 영화롭고 영광스러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눈으로 예수님의 높아지심을 볼때는 그것이 신비로운 것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인간의 눈높이로 오셨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지만, 예수님의 높아지심은 피조물인 인간이 상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되신 하나님과 동등한 본체를 지니신 예수님의 영광을 죄 가운데 무지한 우리는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높아지심은 이처럼 신비롭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신비는 믿음으로만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순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텍스트의 종교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기록을 남겨두신 성경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기독교는 상황의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컨텍스트의 종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대형교회, 유명한 목사, 간증많은 중직자들의 설교나 간증이 마치 성경 말씀처럼 동등한 권위를 갖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설교, 성경을 해석한 수많은 책들, 나도 응답받고 싶은 간증따위로 신앙생활을 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진짜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읽기 시작할 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십니다.
Ⅲ.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하나님께서는 육체가 없기에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 우편에 앉았다라는 표현은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비유적 표현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 할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 할 수 있게 기록해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성부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_빌립보서2:9-10’
사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전에 하나님이신 그에게 다 속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것을 예수님께 주신 다는 사실을 성경이 새삼스럽게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되돌아갔을 때, 그분은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인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인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게서 이것을 주셔야만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영광은 매우 위대한 것입니다. 신인이신 예수님께서 이제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지게 되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성부와 성령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처럼 영광을 받으신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위치적으로 어느 공간에 계실 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시고 그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이 본것처럼, 동일하게 인간들이 보는 앞에서 다시 인간의 몸으로 다시 오실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Ⅳ. 심판
예수 그리스도께서 종말에 이 세상을 심판 하십니다. 심판에 대해서는 몇가지 사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_마태복음24:36’
심판의 때를 알지 못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표를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도 기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지상 사역 동안에는 이 날이 언제 할 것인지를 모르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도는 하늘에 있는 천사도 그때를 알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의 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심판의 날이 언제 찾아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기한은 성부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_사도행전1:7’
심판의 시기에 대해서는 성부 하나님만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알 바가 아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판의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할 이유가 업습니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_데살로니가전서5:3’
심판의 때를 짐작할 만한 표징도 없다는 사실도 기억해야한다. 예수님께서는 세대가 이 모든 것이 성취될 때까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것들이 이미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재림이 노아 홍수, 밤의 도적, 동에서 서에 미치는 빛과 비교되기 때문에, 이것이 심판의 때에 대한 표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데살로니가전서 말씀대로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할때가 심판의 때와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판은 갑작스러울 것입니다. 그 시기와 그 시기를 짐작할 만한 징조를 우리에게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심판과 재림은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날 것입니다. 심판의 날에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다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오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는 순간 모든 죽은 자가 무덤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_요한복음5:28’
예수님께서 오실대에 살아 있는 자들은 홀연히 변화하게 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_데살로니가전서4:17’
그리고 심판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의 백성과 사망의 백성으로 나누시고, 구원의 백성은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됩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와 승귀는 모두 자신의 백성을 위한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낮아지셨고, 육신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셔서 다시 높이심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이땅을 떠나 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 것입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_요한복음14:3’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와 함께 하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하늘에서도 자기 백성을 위하여 중재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_히브리서7:25’
예수님께서는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스스로 낮아지셔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죄를 대신지시고 죽음이라는 낮아지심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높아지셨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에 다시 오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은 심판의 날이 언제인지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늘 깨어 있어야 함을 교훈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는 천국 백성과 지옥 백성으로 나뉘어 지고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죽은 자가 살아나고, 산자는 변화되어,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처소에서 항상 함께 할 것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천국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비하와 승귀,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은 복음의 궁극적인 핵심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기도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이땅에서 낮아지심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지금 높아지셨고,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시고 중재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하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찌나 연약한지요. 우리의 관심은 온통 다른 것들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심판의 날, 예수님의 손과 발, 보이는 것, 들리는 것에만 의지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시간에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길 원하십니다. 내가 널 사랑한다. 내가 널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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