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014-04-18 금요예배

<금요예배>

일시:  2014년 4월 18일

제목 :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말씀 : 시편 15 : 1-5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4-18 금요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메시지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npVF6xta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으로 메시지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youtu.be/sP2p3Cb4JAY


Ⅰ.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는 누구일까요?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사고가 났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처음에 다 구출되었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중에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화도 나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자신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재앙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전부 남 탓만 합니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 탓만 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교회 탓이고 믿는 자들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알 수 없지만, 최소한 하나님이 주시는 기도제목은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작은 사역이지만 저희에게 주어진 사역을 하는데 바른 복음을 전할 교회가 또 목회자가 되어야겠다 했습니다. 그 일이 비록 손해가 될 수 있고, 이익이 안된다 할지라도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최소한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지금도 그 은혜로 우릴 보호하고 계심을 우리 후대들에게는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믿습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드리는 마지막 금요예배입니다. 또 성 금요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날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의미 있는 날인 것 같습니다. 주의 장막에 머무를 수 있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스스로 자신을 의롭다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겉으로 거창한 사람일까요? 사마리아를 두고도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저는 저 사람보다 헌금을 더 많이 하잖아요, 신앙생활을 더 잘하고 있잖아요.’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했습니다. 생색을 내며 신앙생활을 하면 잘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사역을 잘 하지만 내 안의 사마리아를 드러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데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 부분만큼은 하나님이 주인이 되지 않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의 사마리아를 깨닫고 회개하며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자신을 내어드린 자가 의로운 사람입니다. 그런 자는 자신의 현장에서도 사마리아가 보이게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사마리아를 내 놓았을 때 진짜 사마리아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미래의 사마리아도 보이게 됩니다. 주의 장막에 머무르는 것은 다른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가능한 것입니다. 선교지에 다녀 올 때마다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실상은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모셔지지 않는 사마리아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에서 어떤 자가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인지 답을 주고 있습니다.

Ⅱ. 내적으로 경건한 자

먼저 내적으로 경건한 자가 주의 장막에 머무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경건한 자가 주의 장막에 머루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정직하게 행하며_시편15:2a

우리는 정직해야 합니다. 이 정직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의 죄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니 교회를 다니면서도 회개하는 삶이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 앞에 정직해야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이 정직이 없으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내 안에 정직한 영혼을 회복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외면합니다. 합리화를 시킵니다. 특히, 복음을 가진 단체 안에 그런 사람이 더 많습니다.

두 번째 정직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직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임에도 세상이 두렵고 세상에 가면 손해 볼 것 같아서 정직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가서 불신자보다 더 불의를 행하고 부정부패를 행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써 세상에서 정직해야 하는데 두렵고 손해가 될 것 같은 것입니다. 복음은 있는데 우리의 생활은 정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정직을 회복해야 합니다.

2. 공의를 실천하며_시편15:2b

이번 주에 일어난 사건은 우리나라에 공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의는 우리 시대의 질서일수도 있고, 우리 모두의 약속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공의가 없으니 계속해서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사사기 시대에는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것이 암흑시대가 된 이유입니다. 어쩌면 중세시대의 교회들도 그러했습니다. 공의가 사라지게 되니 인간의 탐욕과 이익과 손해로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힘이 있으니 공의를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암흑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저와 여러분은 공의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성경의 공의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코람데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면 세상이 말하는 도덕과 질서, 약속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이 되지 않아 우리의 후대들은 재앙과 저주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부정부패를 하며,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고, 짓밟는 삶은 당장은 이익이 될지 모르나 결국 그것이 악순환이 되어 암흑시대를 만들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을 보면 눈에 보일 때는 거룩하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의를 잃어버렸습니다.

3.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_시편15:2c

저와 여러분은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늘 실수하며 실수투성입니다. 어리숙하게 살 때가 많습니다. 저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서로 도와주면 됩니다. 제가 실수하면 전도사님이 도와주고 전도사님이 실수하면 제가 도우면 될 것입니다. 약한 자를 돕고 코너에 몰린 자를 도우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죄악에서 벗어나는 것은 진실을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진실을 이야기 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진실되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교회가 성도들이 틀린 길을 갈 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_시편15:4a

내면의 힘을 키워야 하는데 그러면 항상 죄악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은 늘 그것을 멸시하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 영적인 눈을 바르게 뜨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구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망령된 자를 멸시하라 했습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사단의 역사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영적인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지 무엇을 두려워하며 살겠습니까.

5.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_시편15:4b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내면에 하나님의 소원을 담아 주십니다. 그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제가 흔들리고 틀린 길을 갈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제가 서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목회자가 되어야지’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복음을 위해 살겠습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이 은혜를 나누는 전도자로 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평생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 ‘복음전하는 전도자로 살겠다’는 서원은 내면의 큰 힘이 됩니다.

Ⅲ. 이웃과의 관계에 경건한 자

내면의 힘을 가진 자들이 이웃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힘이 있으면 섬기고, 낮아지고,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함께 하나 그것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고 그들을 돕게 되는 힘이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결정적인 순간에 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면이 중요합니다.

1.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_시편15:3a

우리는 남을 허물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명심해야 합니다. 함께 불신자들처럼 입술로 범죄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스펠 가족들은 그러하길 원합니다. 정죄하면 그 정죄가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결코 저 사람처럼 하지 않겠어.’ 라고 하지만 어느 순간 그렇게 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그러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남을 정죄했습니다. 남이 아무리 허물이 많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에 허물을 정죄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실 이번 여객선 사건도 어떤 면에서는 모두가 피해자일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보시고 이 땅의 영적인 황폐함과 이 땅에 공의 없음에 가슴을 쳐야 합니다. 누구 한사람 더 죽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이 죄를 덮을 수 없습니다.

2.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_시편15:3b

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생각한다면 절대 악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악은 악을 낳고, 악은 사단의 통로가 될 뿐입니다. 그래서 악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이유 불문하고 우리는 그래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악으로 역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 했지만 악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외식하는 자들에게 화 낼 때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고 순종하셨습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3.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_시편15:3c

우리는 비방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비방하는 자들과 함께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은 비방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오늘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는데 우리는 또 그 비방가운데 살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사는데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우리를 비방한다고 우리가 똑같이 비방해서는 안 됩니다.

4.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_시편15:5a

제일 어려운 본문입니다.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주지 말라고 하는 데 갑자기 이것을 왜 썼을까 했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웃에게 이익을 얻기 위해 금전거래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교회가 가난하면 가난한데로, 없으면 없는 대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면 안 됩니다. 구원받을 영혼에게 그런 것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자가 목적이 되면 그것은 돕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의 헌금이 소외계층과 3세계에 보내져서 영혼을 살리는 데 쓰인다면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대가를 바라고 돕는 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금전거래는 반드시 분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을 도울 때 계산 없이 도와야 합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헌금할 때 ‘내가 얼마를 헌금했으니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겠지.’라고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승진하기 위해 헌금하는 것이라면 그냥 열심히 일하면 됩니다. 우리는 거저 받은 은혜를 거저 주는 것입니다.

5.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_시편15:5b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입니다. 무죄한 자를 해하는 이 시대를 볼 수 있습니다. 뇌물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아 자살에 이르기도 합니다. 권력을 가지고 힘을 가진 사람들이 뇌물을 받고 힘없는 사람들을 해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냥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 사람이 죽든지 말든지 나는 축복을 받아야 겠다’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정부패로 인해 사람들이 악순환에 살며 우리 후대들은 무엇이 올바른지 그른지 분간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가스펠 성도여러분의 사마리아는 어디입니까? 그곳을 향해 이유 없는 사랑을 베풀기 원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살지 않아도 한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공의를 지키며 살아야겠습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 때문에 불신자처럼 행동하고 살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윗이 자신의 상황이 어려울 때 이 시를 고백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왕으로 잘못 살았음을 회개하는 시이기도 합니다.

Ⅳ.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우리의 기준은 성경에 있습니다.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라이이다’라고 했습니다. 무엇에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까? 불의에 흔들리지 않고 불법에 흔들리지 않아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에 경건한자로 도피성으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렇다면 왜 흔들립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세계, 영원한 그 나라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는 자신의 내면을 함부로 하며 살아갑니다. 내면이 엉망인 사람은 아무리 포장해도 이익 앞에서 이웃을 해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전도? 선교? 우리의 후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우리는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바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이 시대 앞에서 복음을 바르게 붙잡고 바르게 전하는 교회로 응답받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에 함께 하는 자들이 영혼이 흔들리지 않는 영적인 힘을 소유하시길 바랍니다. 영적인 힘은 다른 것이 아닌 오늘 말씀에 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오늘 성금요일에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돌아가셨는지 그 의미를 붙잡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