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1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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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 |
제 목 : | 나의 능력과 권세, 축복이 어디서 오는가? |
본 문 : | 마가복음 11:27-12:12 |
오승주 목사
Ⅰ. 권세자들의 출현_마가복음11:27-28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예배하고 있음이 얼마나 복된지 알고 계시나요? 예수님을 알고 경배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복된지 알고 계시나요? 내 영혼이 주님을 향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알고 계시나요? 예루살렘성전의 권세자들이 출현하였습니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입니다. 예루살렘성전의 실세들입니다. 그들이 뒤에서 모든 것을 다 조종하고 있는 셈입니다. 자기들이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최고의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위기였기 때문입니다. 그 유명한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 나타나 성전 안에 장사치들을 꾸짖고 갔기 때문입니다. 그를 막지 않으면 자신들의 자리와 권세가 위태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위태롭게 할 질문을 합니다. 긴급회의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누가 네게 이런 권세를 주었는가?’ 사실 이 말은 엄청나게 무서운 말입니다. 자신들의 권세가 최고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참 많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지만, 다들 실제로 믿지 않는 증거는 권세의 자리에 있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성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합니다. 돈이나 세상의 것 혹은 재물, 자리 같은 거라 하지만 그것은 사탄이 쥐어주는 것들이고 실상은 바로 나라는 우상 때문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것의 공격을 받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왕궁을 건설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고,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고,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제가 내년에 안식년을 가지려고 합니다. 사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안식년이 필요하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신임투표 같은 것도 해야 한다. 성도님들이 목사를 원하지 않는데 목사는 그것도 모르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개척한지 겨우 5년 된 작은 교회에서 그런 것을 하면 교만하다 생각할까 미루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필요하다고 확신합니다. 목사는 종입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하나님 앞에 세우고 매일 하나님과 깊게 교통하지 않으면 반드시 타락하게 됩니다. 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 마치 그것이 자기가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온데 간 데 없습니다. 인간은 정말 나약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축복을 받길 원한다면 우리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자리는 피조물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예배자의 자리입니다. 그렇게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라야 인간으로 가장 평안하고 온전할 수 있음을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인생 가운데 가장 어려운 길입니다.
Ⅱ. 나의 능력과 권세, 축복이 어디서 오는가?
1. 세례요한의 세례_마가복음11:29-33,마태복음3:7-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냐 할 것이니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_마가복음11:29-33’
실세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세례로 답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의 세례가 진짜냐? 그렇다면 누가 허락한 것이냐? 그들은 계산하기 바빴습니다. 하늘로부터라 하면 예수님의 권세를 인정하는 것이 되고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세례요한을 통해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과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냥 세례요한을 답변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_마태복음3:7-9’
예수님께서 열매로 그들을 평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열매가 중요 포인트가 아닙니다. 뿌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열매를 보시는 것입니다. 열매를 보지 않으면 뿌리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세들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독사라는 것입니다. 회개의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해서 지금 권위를 따지러 예수님께 왔는데 세례요한은 그들보고 아브라함의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예수님까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교회의 권위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종교 실세들은 자신들이 권위가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도끼로 그 뿌리를 찍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회개의 열매가 없으면 말입니다.
2.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_마가복음12:1-9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_마가복음12:1-9’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곧바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예루살렘의 권세자들에게 한 것입니다. 여기서 포도원은 바로 우리 세상을 뜻합니다. 한 사람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포도원주인입니다. 그리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갔습니다.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소출을 얼마 받으려고 종을 보냅니다. 여기서 종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종을 계속 괴롭히고 거저 보냅니다.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합니다.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소출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은 소출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아주 중요한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남았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아들을 보내면서 주인은 아들은 존대하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가요? 농부들이 아들까지 죽입니다. 이유는 상속자를 죽이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고 큰 착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포도원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아들은 곧 포도원의 주인 아닌가요? 포도원 주인이 와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질문은 지금 우리에게도 하는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겠느뇨?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주겠지요. 그들은 왜 소출이 없었을까요? 포도원 주인이 부탁한 대로 농부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보지 못했습니다. 교만과 욕심은 그렇게 인간을 어리석게 만듭니다. 마치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게 만듭니다.
3. 건축자의 버린 돌인가? 모퉁이의 머릿돌인가?_마가복음12:10-12,에베소서2:20-22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_마가복음12:10-12’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시편118:22를 인용하십니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바로 예수님을 지칭하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건물들도 전부 머릿돌이 있지요. 우리는 건축을 다하고 머릿돌을 붙이지만 이스라엘 건축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머릿돌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립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_에베소서2:20-22’
예수님께서 머릿돌이 되셨다는 말씀은 우리 인생의 주추를 반석위에 놓은 것입니다. 우리의 뿌리를 예수님께 내린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비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1편의 말씀처럼 복 있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 땅에 자신의 왕국을 만들며 사는데 그처럼 어리석은 것이 어디 있을까요?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말입니다. 창조주가 계시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우리는 매 순간 그 사실을 놓치게 됩니다. 그것이 인간의 죄이고, 사탄이 주는 강력한 유혹입니다. 포도원의 일꾼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심지어 그의 아들까지 죽이니 그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신 은혜, 말씀,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맞이하고 있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의 권세자들은 그들의 욕심으로 마음이 어두워졌으며 그들의 눈은 매우 좁은 시야가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영원할 것 같은 예루살렘성전, 영원할 것 같은 포도원, 그러나 우리의 왕국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Ⅲ. 우리의 영원한 샘물이 누구인지 기억하라_이사야55:1-11
우리의 영원한 샘물은 어디에서 나오는가요? 능력과 권세, 축복이 어디에서 나오는가요? 그걸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며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_이사야55;1-3’
첫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내게로 나와 귀를 기울이고 들으라 하십니다. 그러면 영혼이 살리라고 다윗에게 약속한 확실한 은혜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인의 말씀입니다. 창조주의 말씀입니다. 다윗은 그가 강력한 나라의 왕이 되었지만 항상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병든 것이지요.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들으면 뻔하다 생각합니다. 회개해라, 믿음으로 살아라. 그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타락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뻔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주시며,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영혼이 살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인간은 그 안에서 가장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말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_이사야55:6-7’
두 번째,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를 찾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런데 악인과 불의한 자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어둠에 있는 사람은 빛을 싫어합니다. 그의 생각 때문입니다.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살면 되겠다 생각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오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리에 가지 않습니다. 교만한 자리에 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까.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기도시간을 확보하시길 바랍니다. 직장에서 기도처를 찾고, 가정에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시길 바랍니다. 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_이사야55:8-9’
마지막으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인간의 유일한 행위입니다. 예배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길을 가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생각 속에 있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예배를 두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얼마만큼 우리가 온 마음으로 정성으로 예배할 수 있는가? 앞으로 성가대도 하려고 합니다. 소리가 아름다운 성가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들이 함께 부르는 성가대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올 수 있는 성전이어야 합니다. 이곳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합니다. 수많은 다민족들이 올 수 있고, 지도자들과 엘리트, 가난하고 병든 자들도 와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예인들도 오고 스포츠선수들도 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 같이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함께 예배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특별한 사람이 예배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연예인들도 교사를 하고, 스타선수들도 주보를 나누며 함께 예배를 섬겨야 합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 모든 축복이 다 나옵니다. 저는 예배를 통해 제 인생을 향한 신실하신 계획을 다 발견했습니다. 여기에서 능력도, 권세도, 축복도 받았습니다. 말씀이나 기도, 예배를 통해 예수님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권세가진 저들처럼 포도원의 일꾼처럼 예수님을 놓치면 안됩니다. 신앙의 핵심은 내가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죄악된 세상에서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냥 있으면 놓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방법으로 주신 것이 내 삶에서 예수님을 고백하는 말씀, 기도, 예배입니다. 인간은 가만있으면 당연히 마음이 타락으로 갑니다. 입술에서 그 마음이 드러납니다. 교만한 자리로, 오만한 자리로 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필요없다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탄은 그 타이밍에 세상의 좋은 것을 주어 못을 박습니다. 예루살렘성전의 실세들이 축복되게 보이나요? 포도원의 일꾼들이 행복하게 보이나요? 우리의 자리는 주님을 경배하는 자리입니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리입니다. 매일 예수님이 우리의 비밀이 되어야 합니다.
✔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그 이름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 예수 오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의 비밀을 그 이름의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