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예배>
일시: 2014년 5월 16일
제목 :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말씀 : 시편 18 : 1-3
설교 : 오승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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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교회 금요예배 20140517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Ⅰ.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이 시편의 고백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많습니다. 다윗이 격정의 시기를 보내고 바로 쓴 것인지, 아니면 훗날 왕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면서 쓴 글 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고백은 정말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다윗은 기록에 남은 것만으로 1800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많은 시간을 적들에게 시달리며 보냈는데 언제 이 시들을 남겼을까요? 거의 매일 밤 하나님 앞에 시를 기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글이라는 것이 가끔 써서는 좋은 글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얼마나 자주 하나님과 대화했을까요?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을 만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기도,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오랫동안 싸운 장수였습니다. 그러니 그의 고백에는 그런 용어들이 많습니다. 그 말은 동시에 그러나 삶속에서 얼마나 하나님과 교제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격정기 때에 전쟁을 묵상의 도구로 삼은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지식적으로 합니다. 혹은 그것마저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오는 것이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축복받기 위해, 재앙을 벗어나기 위해 하는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자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지식으로는 가능합니다. 머리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상상으로는 하지 못할 것이 업습니다.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면 실제적인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것도 머리로는 다 가능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매우 어렵고 평생 안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배가 된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예배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운 것은 머리로는 다 안다고 이야기하면서 실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훈련을 많이 받아서 전부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나 실상은 되지 않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배든 기도든 전도든 선교든 그렇습니다. 오늘 밤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을 점검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렇게 만든 원인을 찾고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라고 고백한 다윗처럼 진짜 신앙생활을 회복하길 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_시편18:2’
Ⅱ. 신앙생활의 가장 큰 적을 넘어서는 중심
신앙생활의 가장 큰 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밤 말씀을 듣고 실제적인 기도로 들어갔으면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방해합니다. 그것이 사단의 주 업무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의 답을 금방 찾을 수가 있겠지요.
1. 불신앙 - 하나님중심
가장 큰 적은 불신앙입니다. 불신앙은 하나님을 안 믿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주일에 예배한번 드리고 합숙훈련한번 다녀와서 복음을 깨달았다고 하고 믿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엇이 믿는 것입니까? 정말 믿고 있습니까? 저는 그리스도가 믿어질 때부터 삶의 모든 중심이 바뀌었습니다. 가장 먼저 변화된 것이 하나님중심이 된 것입니다. 불신앙은 사라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교회 안과 밖에서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의 말, 행동, 그들의 모든 것이 중심이었는데 그것이 바뀐 것입니다.
다윗은 광야에 10년을 넘게 있었습니다. 얼마나 불신앙이 많이 왔을까요? 그 때마다 싸웠습니다. 그런데 무려 10년 동안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당장 대학에 떨어지고 취직이 되지 않고 기도해서 결과가 좋지 않으면 '하나님이 안계시나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다른 것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우리가 믿는다기보다 죄인 된 우리가 그 은혜로 인해 눈을 떠서 하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죄 때문에 보이지 않다가 해방 받고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입니다. 그 은혜로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구나, 하나님이 경배의 대상이구나.’라고 깨닫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사단은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라면 예배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 같고 이뤄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불신앙입니다. 그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단의 전략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자를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_에베소서2:1-2’
2. 피해의식 - 성경중심
불신앙보다 무서운 것은 내 의식과 무의식에 내재된 피해의식입니다. 이것은 정말 무섭습니다. 복음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의식은 무엇입니까? 좋은 자동차가 있으면 열쇠 같은 것으로 긁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그러는 것이 아니고 어른들이 그럽니다. ‘나는 좋은 것을 못타는 데 너는 좋은 차 타네.’하고 긁어버립니다. 피해의식입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됩니다. 이런 상처가 자리 잡아 매번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지금 한국교회 성도들이 그런 식입니다. 그런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복음을 누린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합니다.
다윗도 피해의식이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의 고백을 가만히 보면 그 피해의식을 뛰어넘었습니다. 그 방법은 언약을 붙잡는 것입니다. ‘지금 비록 광야에서 쫓기고 궁지에 몰려있지만 하나님이 나를 이 나라의 왕으로 기름부으셨음을 기억하옵소서’라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앙생활하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니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 가나안 땅을 붙잡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중심을 성경으로 해야 합니다. 피해의식이 있으십니까? 말씀을 듣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_골로새서2:6-10’
3. 비교의식 - 교회중심
불신앙과 피해의식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비교의식입니다. 이것 때문에 예배생활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에 갔는데 사람들이 싫은 것입니다. 사실 좋은 비교도 있습니다. 내 상황이 너무 안 좋은데 더 안 좋은 상황을 보고나면 위안이 되는 면도 있습니다. 인도에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감정을 느끼고 왔습니다. 그래도 나는 작지만 용돈도 받고 하루 세끼 밥도 먹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 비교의식은 다른 사람을 섬기고 함께 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치명적인 적이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늘 불신자, 다시 말해 그의 대적자들과 늘 비교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그들과 비교하여 세우는 정도의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윗은 그들과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특별하게 부르셨는데 우리는 늘 비교하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감히 사울왕이나 다른 이방나라들의 대적자들과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비교대상이 되었겠습니까? 다윗의 신세가 쫒기고 있는 신세였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비교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영혼구원이라는 사역의 영성을 가지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봉사를 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 하면 그것이 많든, 적든, 크든, 작든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일을 많이 해서 억울한가요? 아니면 남보다 못해서 억울한가요? 하나님 앞에서 하는데 그것이 많던 적던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셈하심 앞에서 계산해야 할 문제이지 사람들과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상대적인 평가를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남들과 비교해서 사는 것이 아닌 남을 섬기는 삶을 살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점 자체가 영혼구원에 있기 때문에 우리 역시 그런 관점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_갈라디아서2:20’
Ⅲ.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어떻게 하면 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불신앙, 피해의식, 비교의식은 하나님중심일 때, 말씀중심일 때, 교회중심 즉 예배중심일 때 넘어서게 됩니다. 사실, 스스로 이겨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요즘은 그런 것들이 눈에 드러나는 병이 되어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곳도 많아 졌습니다. 제 학부때 동기 중에 연극을 통해서 치료를 하는 목사님도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병들어 있는 것일까요? 사회가 갈수록 그렇게 만들어버립니다. 무엇이든 이겨야 하고, 무엇이든 쟁취해야 합니다. 복음 가졌으니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감사와 감격, 은혜가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 선교를 위해서 돈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것이 없어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따라오는 것들입니다.
성장해야 하고, 성과가 있어야 합니까? 복음은 그것과는 다른 비밀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크든, 작든 주님을 위한 일이라면 그것 자체가 가치가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중요한 것은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고 창조주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우리의 원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입니다. 이것은 주일 예배를 잘 드리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으로 우리 삶 중심에 계시는가 입니다. 다윗이 드린 고백의 핵심입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것이 된다면 대단한 불신앙이 들어오든 그 어떤 피해가 있든 남과 비교해서 내 모습 초라하든 문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데 이유가 있습니까? 그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그런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서 경배의 대상을 바꾸려고 합니다. 돈이 경배의 대상이 되도록, 내 가정이 경배의 대상이 되도록, 내 자식이 경배의 대상이 되도록, 성공과 자리가 경배의 대상이 되도록 합니다. 교회들이 설교도 그렇게 해야 모인다고 이이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규모를 갖추지 못했다고 평생 저주받은 사람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누구를 사랑하고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성공이 필요합니까? 우리의 명예가 필요합니까? 왜 다윗을 광야로 내몰아 10년을 고생시켰습니까? 그 속에서 도대체 무엇을 깨닫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입니다. 그것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