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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찬양예배

2019-04-26 금요찬양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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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26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소요리문답강해39-42) 도덕법으로서 율법에 대하여

본 문 :

미가 6:8

임대영 목사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_미가 6:8’

 

39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는 무엇인가?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는 계시된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40문 하나님께서 순종에 대한 규율로 인간에게 맨 처음 계시한 것이 무엇인가?

: 하나님께서 처음에 인간에게 제시한 순종에 대한 규율은 도덕법이다.

 

41문 도덕법은 요약적으로 어디에 나타나있는가?

: 도덕법은 요약적으로 십계명에 나타나 있다.

 

42문 십계명을 요약하면 무엇인가?

: 십계명을 요약하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계시된 뜻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_야고보서2:22’

 

소요리문답 신앙교육서의 큰 주제가 변하게 되는 장입니다. 38문까지 질문을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에 관하여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 이후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무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이 두가지 질문을 구분하여 따로 생각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진정한 순종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순종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도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알아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른체 믿는 다는 것은 맹신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믿는 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해집니다. 순종은 믿음이 없이 불가능합니다. 순종이 없는 믿음은 사실 거짓에 불과합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_히브리서11:6’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사실 인간으로써의 의무입니다. 의무는 사람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곧 맡은 직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의무는 사전적으로 직분을 뜻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직분을 인간은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인간은 단지 그분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 하셨기 때문에 그분은 인간에게 요구하실 권리가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 하셨는데, 그 창조의 원리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뜻입니다. 반면에 피조물인 인간은 자기의 길을 가거나 자기 마음대로 행할 어떤 권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유일한 권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인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유일한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좇아 살아가야 할 규범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먼저 도덕법에서 인간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그리고 도덕법은 십계명 속에 크게 두 개의 큰 계명으로 요약 정리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된 뜻은 곧 도덕법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간구합니다. 종종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뜻, 계시된 뜻은 바로 도덕법, 십계명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_마태복음22:37-40’

 

 

 

.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선생: 율법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_로마서2:14-15’

 

이방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즉 기록된 성경이나 계시된 율법인 십계명을 가지고 있거나 신앙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에 함의된 것을 행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이 거룩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십계명이 요구하는 것을 행하려고 노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의 율법은 그들 자신입니다. 자신들의 내명에 도덕의식이 그들을 율법의 요구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따라 살지 않을때마다 양심이 그들을 고발하고 변병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그들이 그 마음에 새간 율법의 행위를 가지고 있다고 바울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에 새겨진 율법의 행위를 강조해서 봐야 합니다. 형식을 다르지만 본질은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통하여 소유하고 있는 동일한 하나님의 뜻이 아담이 워래 도덕적 의식 혹은 양심을 통하여 소유 했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은 이 양심, 마음에 대겨진 율법의 행위를 물려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모든 사람의 마음에 이미 도덕법이 기록되어 있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다시 도덕법,십계명을 계시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 감지되는 하나님의 법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억누르려 노력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_로마서1:28’

 

사람들은 자기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합니다. 죄인인 인간은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이러한 노력은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완전히 제거해 버릴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마음에 새겨진 율법의 행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악한 행위들은 증언하는 양심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도 빛되신 하나님을 핑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이러한 죄성 때문에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통해 자신의 도덕법을 계시하셨습니다. 도덕법이 인간의 마음과 양심에서 활동할때에, 인간은 이것을 다시 매장하고 잊어버리기 위해 악과 어둠을 더 사랑했기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뜻을 다시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_요한복음3:19’

 

율법은 이러한 인간의 죄를 깨달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율법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선생, 개역개정에는 초등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함을 얻게 합니다. 인간의 죄성은 이 빛을 거부하지만,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고 율법을 통해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알고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교사입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_갈라디아서3:24’

 

 

 

. 율법이 지닌 우주적인 권위

 

어떤 사람들은 십계명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며, 구약 시대의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율법은 구약과 신약의 모든 시대를 통틀어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들이 정말로 얼마나 죄악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율법으로써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고 현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_로마서3:20’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해 율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소요리문답은 먼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언급하고 후에 율법을 언급하였을까요? 그것은 그리스도가 율법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만약 신앙교육서가 율법을 먼저 가르친다면 자칫 우리는 율법을 통해 구원받는다고 착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율법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십니다. 두 번재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후로도 우리는 율법을 잊어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시대 이후에 모든 신앙교육서들은 항상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율법을 다룹니다. 그것은 율법이 필요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_고린도전서9:21’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입니다. 율법은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위하여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원을 얻은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다시 우리를 율법으로 인도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_요한복음14:21’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가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우리의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아가도록 함에 있습니다. 죄인으로 불순종의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이 율법을 만나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다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말이아니라 순종의 믿음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킬 때 비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을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_요한일서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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