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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4 주일1부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4년 8월 24일

제목 : 온전한 신앙생활

말씀 : 마태복음 5 : 33-48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8-24 주일1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s://db.tt/B2MYlkat

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04210286





가스펠교회 주일1부예배 20140824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간디에게 어떤 사람이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와서 술을 그만 먹으라는 말 한 마디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주후에 돌아오라고 해서 다시 왔더니 술을 먹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들을 데려온 엄마가 2주씩이나 지나 말해주는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하자 대답했습니다. ‘저는 2주 전에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고,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런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쉽지 않은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따르는 것이 교회이고, 그리스도인이기에 오늘 말씀으로 함께 우리를 점검하길 원합니다.

. 거짓으로 얼룩진 교회

 

교회가 거짓으로 얼룩졌다는 표현은 너무 심한 표현입니까? 이것은 공동체로써의 교회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개인으로써의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야기하는 교회는 가스펠교회라는 공동체 뿐 아니라 한명 한명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어떤 면이 거짓이라는 것입니까? 우리의 삶에서 거짓말을 해서 얼룩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과 반대로 살아가거나 교회가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과 반대로 간다면 그것이 거짓이지 않겠습니까? 과연 지금 교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리고 과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나 하는 의구심입니다. 이것은 저를 포함하는 질문한 것입니다. 제가 목사이기 때문에 잘 믿고 있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도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에 원수를 미워하지 마라 했지만 지금도 원수를 미워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다는 것은 실제로 믿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흐름에 전혀 맞지 않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살고 싶으면 죽어야 한다거나 생명을 찾으려면 잃어야 한다는 것이 어디 세상 이치에 맞는가요? 자기희생과 십자가를 지는 일, 고난과 죽음, 부의 위험에 관한 말씀, 우리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자들을 위해 우리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는 말씀,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고 가장 높은 자리가 아닌 말석을 추구하라는 말씀, 눈이 죄를 짓게 하면 뽑아버리고 손이 죄를 짓게 하면 잘라 내라는 말씀, 하나같이 세상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말씀들입니다. 예수님은 성도의 삶이 매일 죽는 삶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의 욕망에 대해서는 죽고, 더 크고 깊고 영원한 것을 위해 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말고 시대를 초월한 것을 위해 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유행하는 것이면 뭐든 우상화하는 세상에서는 이런 삶이 답답하고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반대로 세상은 부와 권력, 명예, 지위를 좇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같아지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한 말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시대입니다. 전도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세상처럼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교회 안에 독버섯처럼 퍼져있습니다. 그로 인해 말로는 그리스도인이라 하지만 실제로 생각하고 믿고 행동하는 것은 세상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가 거짓으로 얼룩졌다는 것은 더 이상 성경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제 삶도 얼룩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세상의 기준에 부합되려 노력하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에서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이론들을 더 신뢰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경의 저자들이 지금의 특이한 상황을 경험하지 못했고, 지금 같은 의술과 첨단 장비를 보지 못했잖아.’ 인간의 자만심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영원한 것들입니까? 우리의 영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 교회,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우습게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축복받기 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도 이러한 교회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 세상을 변화시킨 예수님의 방법

 

세상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답은 성경 안에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그 당연한 것을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1. 거짓이 아닌 진실_마태복음5:33-37

 

마태복음5:33-37은 맹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방법 중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세상은 쉽게 맹세를 합니다. 그것을 저는 헛맹세라 생각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을 마치 그것이 진리인양 이야기합니다. ‘이것 아니면 안된다.’는 식이지만, 그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속았다고 펄펄뜁니다. 속고 속이면서 서로 속였다고 참소하기까지 합니다. ‘이럴 줄 몰랐어.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하면서 분해서 넘어갑니다.

헛맹세를 하는 사람은 허풍이 심한 사람입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있는 척, 가진 척, 되는 척합니다. 하나님이 없이도 될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맹세합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그래서 결국은 쾌락으로 가는데 그것은 누구도 예외 없는 과정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늘 맹세만 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신앙생활을 잘하는 데 하나님이 이런 축복을 주시길 원합니다.’ 우리도 똑같지 않습니까? ‘하나님 저에게 이것만 해주시면 제가 뭐든 다 하겠습니다. 하나님 저 이런 축복주시면 제 평생 주님만 섬기겠습니다.’ 급할 때 자기의 이익을 위해 다들 그렇게 거짓맹세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그 어떤 맹세도 하지 말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맹세하라고 강요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흥정할 수 있는 존재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한번만 사업 잘 되게 해주시면 건축할께요.’ ‘이번 시험만 합격시켜주시면 평생을 주님께 바치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사람이 신앙생활 잘하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진짜 신앙생활은 맹세하지 않아도 주님의 은혜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올무에 빠져서 아예 예배도 그리지 않고 오히려 대적하며 사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그 과정이 진실하더라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맹세가 아닌 진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가 진실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진실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진실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진실할 수 있습니까? 모두 강한 척, 잘난 척 그렇게 맹세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는 진실해야 합니다. 전도하려고 포장하지 않아야 합니다. 애써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부족해도 주님이 날 사랑하셨다고, 구원해주셨다고 고백하면 됩니다. 그것이 진짜 힘이란 것을 세상은 결코 모릅니다.

 

2. 복수가 아닌 용서_마태복음5:38-42

 

두 번째 예수님의 방법은 복수가 아닌 용서입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맹세를 합니다. ‘우리 애는 누구를 속일 애가 아니야,’ 자식을 두고 장담을 합니다. 돈을 두고, 건강을 두고 장담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장담을 하고 맹세를 하다가 배신을 당하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너만은 믿었는데!’ 하면서 복수의 감정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으라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이럴 때 율법이 필요하다면서 적용합니다. 내가 당했으니까 생각하면서 온갖 도덕과 신의와 합리화 시켜서 정의의 이름으로복수를 합니다. 함무라비법전에 나온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보복의 정당화를 위한 것이지만, 성경은 공정성에 관한 것입니다. 자기가 받은 피해만큼 공정하게 복수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자기 머리를 한때 때렸다면 대부분 당신 미쳤어?’ 하고 더 때립니다. 자신이 받은 피해를 똑같이 돌려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고 공정한 보복에 대해 법을 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법은 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정에서 사용되는 공적인 법입니다. 다들 사사로이 보복의 법을 남발하고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아무개집사가 나를 욕했어?’ 이러면 딱 그만큼 욕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붙잡고 모아무개집사를 욕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갈등이 공동체로 번지고 공동체를 병들게 합니다. 죽어도 원수를 갚아 주겠다는 분들은 일대일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받은 만큼만 갚아주어야 합니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오늘 말씀에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반대로 행동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 가장 어렵고 또 가장 쉬운 말씀이기도 합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에게는 정직으로, 화를 내는 사람에게는 화평으로,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담대함으로, 욕하고 때리는 사람에게는 부드러움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해하려 하면 더 사랑하는 말씀입니다. 사단의 역사인 세상의 법 앞에 예수님의 사랑을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어찌 속옷을 달라하는 데 외투까지 내어줄 수 있습니까? 그것이 쉬운 이유는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다 쏟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닌 주님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온전함을 이루는 인생입니다.

 

3. 미움이 아닌 사랑_마태복음5:43-48

 

마태복음 5:43-48은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것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소용없고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세상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다른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게다가 나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합니다. 나를 좋다는 사람을 좋아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 끼고 돌고, 나에게 잘못하면 미워하고 보복하는 것은 세상의 사랑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종교는 세상에 없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너무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죽었으면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복음을 만나고 죄인임을 깨닫고 나니 내가 그 죄인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아빠를 좋아합니다. 사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멸시했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까? 그것이 대적자들에게만 있었던 일입니까? 믿는 우리에게 있었던 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은 누구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특별한 보상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자체가 상이고, 보상입니다.

. 온전한 신앙생활

 

예수님은 부유하셨으나 가난해지셨고, 만왕의 왕이셨지만 만인의 종이 되셨고, 누구보다도 강하셨지만 기꺼이 약해지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위해 세상을 거스르셨습니다. 그러면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구원보다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에 억울함도, 모진 고난도, 부끄러움도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짓으로 얼룩진 말씀과 헛된 가르침에 속지 마시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1. 진짜 그리스도인의 힘은 약함에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짜 힘은 우리의 약함을 고백하는 것에서부터입니다. 세상에 반한 그리스도인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 약점을 숨기고 강함을 보이려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릴 구원하시기 위해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셨고 자신의 모든 치부를 드러내셨습니다. 영적으로 보지 못하면 그것이 승리하는 길이란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양육강식 문화를 따라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자신의 약점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떻게든 남들에게 강하게 보이려는 집착은 이 세상의 방식으로 결국 영적인 노예상태를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복음의 자유를 맛보면 그 세상의 강한 허울도 더 이상 매력으로 다가 오지 않게 됩니다.

세상을 따라가면 반드시 노예상태로 전락합니다. 영적으로 노예가 될 뿐 아니라 육신적으로도 노예가 됩니다. 나니야 연대기의 저자인 C.S.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을 보면 마귀 스크루테이프가 제자 웜우드에게 그리스도인을 무너뜨리기 위해 악랄한 전략에 대해 가르치면서 그리스도인을 기독교 더하기 다른 무언가라는 마음상태에 묶어두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루이스는 당시 1940년대 독자들에게 기독교 더하기 신 심리학, 기독교 더하기 신질서, 기독교 더하기 신앙요법같은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믿음대신 기독교 색깔을 입힌 유행을 따르고, 항상 똑같은 것만 하기를 지겨워하는 인간의 심리를 공략하라고 가르칩니다. 사실 항상 똑같은 기독교가 매력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양념을 추가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_고린도전서1:27-29’

 

이 말씀이 은혜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약한 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복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겹다면 병들어있는 것입니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나이가 들었다고, 지겹다고 헤어지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진짜 교회의 힘은 약함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힘은 약함에 있습니다. 교회, 그리스도인이 그것을 모릅니다. 그것을 모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약함을 고백할 때 비로소 역사가 시작됨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 신앙생활의 적은 세상이 아닌 바로 우리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문제라면서 자신들끼리 뭉칩니다. 그러나 세상에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는 우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 죽음의 땅에서 영적 생명의 땅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죄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 국적을 옮긴 사람들입니다. 이에 사도바울은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_골로새서1:13-14’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은밀히 침투하는 세상적인 사고와 감정, 삶의 방식을 경계하지 않으면 이 세상이 갈망하는 색다른 삶을 결코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않으면 세상이 원하는 그리스도인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세상적인 패턴이 감옥이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은 성공해야 한다, ‘세상의 멋을 따라야 한다, ‘흐름에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세상적인 사람은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맞지 않는 이야기임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마저 그렇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우리는 세상의 패턴과 요구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말씀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 인도하심 속에 있다면 그것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복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을 정말 사랑하고 아낀다면 세상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세상은 우리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는 존재로 서있어 주길 원합니다. 그것이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_이사야 11:6-10’

 

여러분이 복음들고 일어나는 그 때에 우리가 세상에 있지만 그들이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리와 양이 어찌 함께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세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다고 하면 손해 볼 일이 많을까요?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면 축복이 있을 것이라 설교를 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면 경제문제, 인간관계의 문제가 올 수도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그러했고 믿음의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겉모양이 아닌 영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단순히 거짓을 버리고, 복수를 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영원히 못할 수도 있는 것들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온전함을 이룰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내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온전한 사랑과 삶, 그리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목표가 있어야 절제도 하고 인내도 하고, 또 도전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올바른 인생입니다.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고 또 우리 가족과 후대, 어그러진 이 세대를 살릴 수 있는 길입니다. 더불어 교회가 온전해질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생활이 온전한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주님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성공인 것처럼, 세상에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가르치고, 따르는 거짓으로 얼룩진 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순종하려 하지 않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으로 인해 세상에서 복음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간표에 우리 교회가, 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쫓아, 생명의 말씀을 좇아 사는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만나 세상의 법이 아닌 주님의 방법으로 살아가게 하셔서 내가 있는 처소에 주님이 함께 하심을 나타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