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50:15-26
제목: [요셉10] 우리의 소망은 어디에 있나요?
찬송: 272장(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1. 우리의 소망은 어디에 있나요?
• 축복이라는 단어는 (상대방에게 좋은 말)이라는 뜻의 라틴어인데, 축복은 서로에게 생명을 주는 말, 그런 말로 시작된 공동체적인 복을 뜻합니다. 또한 강복 즉,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복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축복은 인간을 부르실때 항상 사용한 단어이고 반대 단어는 저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축복에 소망을 두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일은 약해지는 일이다. 뭐든 사랑하려면 마음이 괴롭고 심하면 찢어질 각오를 해야 한다. 상처 하나 없이 안전하게 지키고 싶다면 아무한테도 마음을 주지 말라. 심지어 동물한테도 주지 말라. 취미와 얄팍한 사치들로 마음을 고이 포장하고 누구와도 얽히지 말라. 그저 마음을 이기주의 관에 넣고 꼭 잠그라. 하지만 안전하고 어둡고 아무 움직임도 없고 공기도 통하지 않는 그 관 안에서 마음은 변한다. 상처를 입지 않지만 부수고 뚫어서 바로 잡을 수 없게 단단하게 굳어버린다. 사랑하는 것은 약해지는 것이다._C.S.루이스’
• C.S.루이스의 말대로 우리는 축복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그것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셔서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들어가실 때 하신 약속이 율법과 규례 즉,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대로 살면 축복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규례는 하나님만 온전히 섬기고 사랑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세대가 가기 전에 그 약속을 파기했습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율법과 규례가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 머리가 나쁜 저 역시 처음에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율례와 규례를 주시면서 그것을 지키면 네 하나님이 될 것이라 말씀하셨는지 말입니다. 우리는 불편하고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정이 행복해지려면 사랑을 잃어버리면 안되는데 사랑을 지키는 것은 불편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편한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시작할때 생각보다 환경이 좋지 않았습니다. 물론 내 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또 일기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20년 넘게 하다보니 이제 그것이 습관이 되고 제 삶이 되었습니다.
• 목회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이 귀찮아하고 불편해하고 하기 싫은 것을 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걸 하면 됩니다. 귀찮고 하기 싫은 것이 기도이고, 또 설교준비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그것이 습관이 되도록 하고 또 하고를 반복했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능력이나 어떤 화려한 배경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해볼만 했고 아니 저는 그것말고 할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 놀라운 것은 이제 불편하지 않고 싫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습관처럼 엎드리고 습관처럼 서재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작은 습관들이 이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용기까지 줍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_출애굽기20:6’
• 우리가 다 알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다 들어도 삶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정보)만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셉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성장과 성공을 배우려고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2. 요셉 이야기는 구속사 즉, 구원을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이 어떻게 흘러가고 퍼져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창세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때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축복입니다. 내가 너를 축복하겠다.
• 그러나 (자아충족)에 빠지면 복이 흘러갈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이삭을 통해, 야곱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집중하는 만큼 불행해집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흘러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축복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충족은 하나님께서 멈추게 되는 죄입니다.
• 요셉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구속사 즉, 구원입니다. 내 백성을 구원하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 축복입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_창세기 49:22”
• 고난이 축복이 된 요셉을 보게 됩니다. 축복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시고 원천이십니다. 죄는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드렸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직장에서 오너와 좋은 관계를 맺어도 길이 열립니다. 모든 복은 관계를 통해서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아브라함의 가문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은 이 복이 흘러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다음세대에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 요셉은 무성한 가지가 되었습니다. 가지가 담을 넘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축복은 이제 뻗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가정을 구원할 정도가 아니라 오실 그리스도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까지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_이사야 4:2”
• 예수 그리스도로 주실 풍성함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 복은 생명이고 복이, 생명이 가득한 상태가 축복입니다. 가지가 무성하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얻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에 생명이 소멸되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_요한복음 15:5”
•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 함께, 이 모든 것이 관계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몸된 교회와도 좋은 관계를 맺으셔야 은혜가 여러분 삶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배가 그 통로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_시편 1:3”
• 생명이 넘치는 열매의 비밀은 뿌리에 있습니다. 뿌리가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성경은 생명과 관계가 있는 지를 확인시켜줍니다. 생명이 넘치면 가지가 담장을 넘어버립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_에베소서 2:7”
• 진짜 축복을 받으면 자신이 받은 복 안에 갇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복의 특징 즉, 은혜의 특징은 감출 수가 없고 담장을 넘게 됩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_빌립보서 4:19”
• 바로 하나님의 영광 때문입니다. 영광이 드러나야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축복과 반대되는 말이 저주인데 저주는 목마름 혹은 메마름입니다. 시냇가에서 죄로 인해 쫓겨난 인간은 사막과 같은 광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먹고 마셔도 목마른 삶입니다. 돌아서면 목이 마릅니다. 그것이 죄인의 삶입니다. 메마름은 내 자신도 고통이지만 자녀에게도 고통입니다. 은혜가 없는 삶은 자녀에게 도 축복을 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꾸 착각하시는데, 자녀에게 이 세상의 것만 잘 물려주기 위해서만 사시면 후회하실 것입니다. 신앙을 물려주셔야 합니다. 그것을 축복으로 물려주시도록 사셔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_요한복음 4:13-14”
• 솟아나는 샘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_요한복음 7:38”
• 기쁨이 흘러넘치고 감사가 흘러넘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표현으로 충만함을 사용했습니다.
3. 우리가 하나님의 복인 구원을 소망할 때 진정한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 요셉은 아버지집에서 쫓겨났고 노예로 감옥에서 죄수로 살았습니다.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하지만, 그는 남들이 하기 싫은 불편한 일을 했습니다. 먼저 영적으로는 하나님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자기충족으로 살면 그 삶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인데,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니 그의 삶에도 지혜가 생겨났고, 그 지혜는 남들이 하기 싫은 일을 하게 했습니다. 곧,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은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_고린도후서 6:9”
•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면 반드시 부요하게 됩니다. 진짜 신앙을 가진 자는 부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안에서 살면 어떤 상황이든 영향 받지 않고 결국에는 승리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생수가 되고 생명의 떡이 되기 때문입니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_창세기 49:23-24“
• 형들은 요셉에게 죽음의 화살을 쏘았지만, 보디발의 아내도 그에게 어둠의 화살을 쏘았지만, 요셉은 그 고난을 하나님께로 가지고 갔습니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화살을 죄가 우리에게 화살을 쏘고 있는데 여러분, 그걸 우리 스스로 벗어날 수 있나요? 우리가 어디서 힘을 얻고 위로를 받고 또 축복으로 그것들을 바꿀 수있을까요? 전능자가 아닌가요.
창세기 50:19-20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 요셉의 고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인생이 변화된 것은 요셉의 실력도 아니고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 때문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또 섬기게 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_에베소서 1:18-19“
• 복중의 복은 (눈을 뜨고 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보는 것입니다. 보는 사람이 복 되도다가 하셨습니다. 그것을 소망이라고 합니다. 그걸 보지 못하면 우리는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은 세상이고 세상의 방식으로 구원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교회 공동체는 세상과 다른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생명을 누리고, 영원히 목 마르지 않는 생명의 역사들이 넘치게 될 것이고, 전능자의 손이 우리를 붙드셔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셔서 생명 열매가 가득한 가지가 담장 밖으로 넘치는 축복된 삶을 사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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