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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5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5년 03월 15일

제목 : 바울의 간증

말씀 : 사도행전 22:1-21

설교 : 오승주 목사



2015-03-15 주일2부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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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문제로 메시지 영상이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 거짓세상_사도행전22:1-2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그들이 그가 히브리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_사도행전22:1-2’

 

바울은 왜 그들에게 변명이라고 했을까요? 분노가 가득차 있는 유대인들의 마음상태를 알기에 그랬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그들의 마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무엇을 변명하려고 했을까요? 사실, 저는 여러분과 같이 교회를 세워가면서 이런 마음들이 듭니다. ‘가스펠 교회가 하나 세워지면 세상에 무슨 영향이 있을까?’ 거짓투성인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냥 진실하게 사는 것도 묻혀버리는 세상인데 영적인 진실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닌듯합니다. 매우 답답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보면서 위로를 얻습니다. 바울을 보면서 도전이 됩니다. 바울을 보면서 방향을 잡습니다. 바울이 거짓투성인 그네들 앞에서 변명이라고 한 말이 이해가 되는 것은 우리 역시 그런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을뿐더러, 어쩌면 우리역시 그런 속에서 살아왔기에 과연 믿어줄까? 과연 이해해줄까? 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네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이 복음을 알아 그네들 속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미안함이고, 지금 간증하려고 하는 내용을 그네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기에 바울은 변명이라는 표현을 했지 않았을까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이 비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고 또 때론 그네들에게 간증하면서 그네들을 살려야 하는 제자들이라면 오늘 바울이 무엇을 간증했는지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 바울의 간증

 

1. 예전에 자랑거리였던_사도행전22:2-4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 자라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_사도행전22:2-4’

 

바울의 간증은 변화되기 전에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설명하면서 시작됩니다. 사실 이런 사람이 변화되어야 간증되겠다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변화된 것 이라기보다는 그냥 수렁에서 건져주신 것뿐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정말 화려했습니다. 그 사람이 과연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기적과 같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일단 유대인입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최고 수재였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명문가문 출신에 지역은 강남에, 엘리트코스를 밟아 서울대 같은 데를 수석으로 졸업한 인재일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흠이 없었던 유대인이었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그냥 다닌 것이 아니라 핵심인물로 모든 일에 앞장섰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성실하고 대단했던 인물입니다. 그런 바울이 이 모든 것을 예전에 자랑거리였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이 나중 고백에 보니 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라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그는 이 모든 재물과 명예, 심지어 모든 인간관계까지 포기하였습니다. 완전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2. 복음을 듣다_사도행전22:6-11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_사도행전22:6-11’

 

그가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갈 때 다메섹이란 지역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이런 방법 외에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바울은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만납니다. 특별한 문제, 특별한 환경, 특별한 사건을 통해 주님을 만나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분들을 향한 특별한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신자 가정에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것이 특별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불신자 가정에서 신앙생활하는 분들이 마음에 많이 담겨집니다.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이 질문하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바울은 그런 음성을 듣고 얼굴도 들지 못합니다. 정말 예수님을 만나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사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누구십니까?' '네가 박해하는 예수니라' 우리는 예수님 앞에 가면 얼굴도 못 드는 존재입니다. 신앙생활에 갈등이 있는 것은 제대로 체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안다면 고개도 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감히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니 은혜이지 않습니까?

 

3. 아나니아와의 만남_사도행전22:12-16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_사도행전22:12-16’

 

그렇게 예수님을 만났지만, 다시 말해 예수님을 체험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아나니아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울과 만나주시고 곧장 아나니아에게 인도해주셨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바울은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이시구나 예수님이 부활하셨구나 예수님이 그리스도이구나 이 정도였습니다. 그런 그가 아나니아라는 신실한 제자를 만나 수년 동안 훈련을 받게 됩니다. 저는 특별한 훈련이 아니었다 생각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훈련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그림도 그렸을 것입니다. 여기서 아나니아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그래야 합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은 지금 인생의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주님을 위해 사는 인생으로 바뀌어지길 기도합니다.

 

4. 과거의 죄가 이제 사명으로_사도행전22:17-21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보내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_사도행전22:17-21’

 

자신이 스데반을 죽인 것, 자신의 과거를 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과거가 모두 죄였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랑거리였던 그런 삶들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것이 그저 자신의 의였고, 가면이었고, 덕지덕지 붙인 세상의 것들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민낯으로 주님앞에 서니 이제야 황홀해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니 이제야 살 것 같습니다. 주님을 깨닫고 보니 이제야 홀가분해집니다. 주님은 그런 바울의 모든 과거의 죄를 사명을 감당할 증거가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내 삶에 오시면 우리 인생은 증인이 됩니다. 인류역사도 주님이 오시기전과 후로 나뉘듯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제 삶에 주님이 오시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죽이려 했는데 이제는 그들을 살리러 나섭니다. 거짓세상이 그의 인생에 주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사실 바울이 배설물로 버렸다는 것은 진심입니다. 그가 로마를 가기 위해 감옥을 갔으며, 사람들에게 핍박을 당하여도 침묵하였던 모습만 보더라도 사실입니다. 그의 신분을 밝힐 때는 오로지 주님을 자랑하기 위하였을 때입니다. 그 외에는 그는 주님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 간증하는 신앙생활

 

1. 말씀을 들을 때_빌립보서3:8-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_빌립보서3:8-9’

 

우리는 바울처럼 살아야 합니까? 네 그러셔야 합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말뿐이지 실제로 그런 마음이 없기 때문에 우리 삶에 간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예수를 아는 지식, 곧 예수님을 알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시간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시간이 아나니아와 함께 있던 시간입니다. 그때 바울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깨닫기 위해 몸부림 쳤습니다.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을 알면 끝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인생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아시길 바랍니다. 아셔야 합니다. 아시도록 말씀을 귀담아 들으시길 바랍니다.

어느 정도로 알아야 합니까? 예수님께 발견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을 만큼 되어야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목회자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이상합니다. 문제가 있다는데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다는데 믿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것을 쥐고 있으면서 문제 있다고 합니다. 기도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예배가운데, 기도 가운데로 나오질 못합니다. 꼭 베드로 같습니다. 예수님을 유령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 교회가 되어_빌립보서4:8-9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_빌립보서4:8-9’

 

말씀을 들으면 예수님을 알게 되고 그에게 발견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마음이 변화됩니다. 바울이 변화된 것처럼 우리도 변화됩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무엇을 하든지 영적인 진실을 추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삶이 교회가 됩니다. 주님과 함께 하기에 교회가 됩니다. 주님과 함께 하기에 거짓과 세상의 악을 멀리하게 되고 주님을 가까이 하는 은혜가 마음에 생깁니다. 왜 자꾸 주님을 멀리합니까? 예배를 멀리하게 됩니까? 자꾸 속게 만듭니다. 그것이 영적인 문제입니다.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을 떠올리셔야 합니다. 말씀을 행하셔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평강으로 함께 계신다 하셨습니다.

3. 간증하는 인생으로_빌립보서4:21-2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_빌립보서4:21-23’

 

그런 우리가 드디어 간증하는 인생이 됩니다. 성도에게 문안하게 됩니다. 문안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은혜가 심령에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문안이 있길 기도합니다. 문안해주세요. 우리의 문안은 곧 간증입니다. 가족에게도 가장 소중한 친구에게도 문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션홈 안에서도 새가족들에게 문안하십시오. 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심령에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사명입니다.

주님 거짓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주인되는 은혜를 주세요.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 곧 진짜를 맛보며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세요. 우리가 그리하여 저들에게 거짓을 말하는 교회가 아닌 간증하는 교회가 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