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spel Letter. ' 주님을 사랑하시나요? '
다윗이 사울왕에게 쫓겨 피난 생활을 시작하였을 때 그는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피난 생활하는 동안 이 사람, 저 사람이 함께 하여 결국 그가 먹이고, 재우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약 600명이 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주로 주류세력에서 밀린 병든 자, 범죄자, 문제 많은 사람들이었죠. 결국 그들은 다윗이 왕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 함께 쓰임 받는 소중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구약에 멸망할 도시로 예언되어 있는 이방의 땅이며 유대인들에게는 버려진 지역으로 상종하지도 않았던 두로와 시돈이란 지역에 예수님은 그 짧은 공생애기간 중에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기다렸던 가나안의 한 여인(성경은 그의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았습니다.)은 예수님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자존심도, 창피함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 여인의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딸의 치유를 위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을까요? 그런 여인이 예수님을 큰 소리로 불렀지만, 예수님은 그를 무시하셨습니다. 항상 병자를 먼저 치료해주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왜 그러실까? 단순히 이방인이라서 그러셨을까요? 그러나 여인은 예수님의 그러한 태도에게 변함없이 믿음을 고백합니다.
‘비록 개와 같은 제 인생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부스러기라도 있으면 내 딸이 살겠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여인을 예수님은 처음부터 테스트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지요. 그저 문제만 해결 받기에 급급하고, 병만 치유받으면 되었고, 예수님을 통해 무엇인가 이루려는 마음을 가졌던 그들을 겪으셨던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딸이 치유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나요?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입니까? 병을 치료받아야 하나요? 경제 축복을 받아야 하나요? 내 자녀가 성공해야 하나요? 이 고비만 넘기면 되나요?
신앙생활은 버려진 내 인생, 버려진 내 가족을 찾아오셔서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함 속으로 들어갈 때 내게 일어난 모든 문제가 길이 되고, 간증 거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지요. 그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세상의 어떤 목표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계시나요? 사랑은 곧 믿음입니다. 사단은 제가 그 사랑에서 멀어지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예배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말씀이 들리지 않게 만들고, 자꾸만 짜증과 분노를 만들어줍니다. 주변의 모든 정황이 그렇게 만듭니다. 신기하게 말이지요. 결국, 어느 순간 주님과 멀어져있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 내 목표, 내 성공을 위해 살도록 하지요.
우리가 비록 문제가 많지만 그래서 그 문제로 주님을 만났지만, 이제부터는 믿음으로 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일행에게 광야에서 10년 동안 훈련시키시면서 그리고 가나안 여인에게 무엇을 주고자 하셨을까요?
믿음은 곧 사랑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신앙생활을 할때 비로소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_요한1서2:15-17’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_요한1서 4:10’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_요한1서5:4’
_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