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펠 수련회 1강 20150717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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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요한일서 말씀을 수도 없이 읽었습니다. 말씀을 읽으며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런데 유독 말씀을 읽는데 어머님이 생각났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글을 잘 모르십니다. 그래서 전화번호가 입력이된 전화기를 사드렸습니다. 그래도 제가 바쁜 줄만 알고 전화를 하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전화를 하면 어머니께서 고맙다고 하십니다. 어머니는 85세이신데 지난 39년을 제 뒷바라지를 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부터, 그 후로는 더욱 헌신적으로 사랑해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전화 한통을 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신데 그 하나를 해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을 이해하시고 사랑해 주셨는데 그러지 못한 것입니다. 두 달 동안 요한일서를 묵상하면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정말 사랑해서 드리는 예배인가? 내 삶의 행위가 정말 사랑해서 드리는 것인가? 아니었습니다. 전부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내 욕심, 내 영광,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단 하나도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서 한 것이 없었습니다. 지난 두 달동안 요한일서를 묵상하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제가 무슨 설교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고 말해드리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모든 것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모든 것을. 우리는 내가 사랑받기 위해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필요한 조건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니요. 단 하나도 하나님께 사랑받을 조건이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빛이 없습니다. 빛이 사라졌습니다. 그런 존재인 사단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릅니다. 어둠에서 살아가면서 그 곳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둠자체에서 살고 있으며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그 세계 밖에 빛이 있음을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줄기 빛을 비춰주신 것입니다. 감히 제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감히 제가 어떻게 이 생명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믿음을 주셨고, 복음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를 묵상하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음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은혜가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사랑을 베푸는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한 달쯤 요한일서를 묵상하며 다시 십자가로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요한일서에는 십자가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핵심을 십자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의 결정체가 십자가입니다. 오늘 이 밤에 여러분이 십자가를 마음에 다시 담을 수 있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성공할 것이며 모든 것을 다시 회복할 것입니다.
1) 십자가는 빛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창세기3장에서 마귀의 종노릇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이 속에 있습니다. 이것이 느껴지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과학, 문명, 지식들이 이를 덮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세계는 실존합니다. 만약 크리스천들이 영적인 세계에 둔감하다면 의심해 봐야 합니다. 빛과 상관없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과 사단은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역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많이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15년간 교역자 생활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한 것이 ‘영적인 세계’입니다. 사람들은 둔감하고 무지하며 어리석을만큼 믿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 잘 안 믿겠지만 마귀는 실존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불화살을 쏘고 있으며 광명의 천사로 가장해서 정치, 문화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빛에서 멀어지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만큼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불신자들은 이 이야기를 해도 믿지 않습니다. 영적인 세계가 실존 하냐고 묻습니다. 과학문명이 발전하고 기술이 늘어나면 정신병자들이 없어야 할텐데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셔도 분명히 있습니다. 마귀는 저와 여러분을 육신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창세기 3장입니다. 세상의 육신적인 것들을 부인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 천국, 하나님이 말씀으로 주신 하나님의 계획인 모든 소망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세상을 보면 알지 않습니까. 왜 사람들이 술에 의지해서 살아갑니까. 그러면 행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육신적인 것을 추구하고 돈을 모으며, 명예를 가지고, 사회적 지위, 인기가 있으면 행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돈은 소유하면 할수록 불행해집니다. 반드시 여러분을 배신합니다. 명예, 지위, 인기도 그렇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제일 먼저 영적인 세계에 둔감하게 만듭니다. 마치 야생에서 자유롭게 뛰놀던 노루 한 마리를 데려다가 자연이 없는 양 우리에 가둬놓고 기르는 것과 같습니다. 마귀가 인간을 사육하는 것입니다. 이 안에 있으니 굉장히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정이 파괴됩니다. 옛날에는 마지못해 살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만 맞지 않으면 싸움이 납니다. 서로 부족한 것을 알고 채워주는 것이 가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복음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만 가정에 있어도 소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닙니다. 후대들이 파괴됩니다. 어른들이 돈벌기 위해 후대들을 팔아먹고 있습니다. 정말 타락했습니다. 그 타락한 세상이 좋다며 교회에서는 성공하라고 합니다. 후대들이 완전히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주일날 자녀를 학원에 보냅니다.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는 예수 믿고 권사이고 장로이면서 내 자식은 세상을 따라가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끝나면 다행입니다. 돈 벌어서 좋은 것 먹고 잘 살면 됩니다. 그러나 죽고 나면 반드시 내세가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마귀의 종은 지옥으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길어봐야 80, 100년입니다. 금방입니다. 그러나 지옥은 영원합니다. 성경에 많은 비유가 있습니다. 부자가 지옥에서 물 한 방울만 내 입에 대면 좋겠다고 합니다. 저는 이게 믿어지고 나서 매일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머니 아버지 예수님 믿고 천국가게 해주세요.’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 떠나서 마귀의 종노릇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빛을 비춰주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2)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저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주로 복음, 믿음, 기도, 전도, 선교와 같은 단어를 잘 사용했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면 왠지 창피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십자가가 왜 사랑입니까? 하나님께서 본인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요한일서에서 누가 너희 죄를 위해서, 스스로 죄 가운데 빠진 너희를 위해서 그렇게 하느냐고 말합니다. 이 땅에 이런 사랑이 있습니까? 약간 견줄 수 있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대신 죽어도 죄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만이 가능합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과 사귀며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죄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이런 저런 수많은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그런 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그 자체를 이야기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원죄라 합니다. 죄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계속해서 오는 것입니다. 두 살, 세 살짜리 아이가 집을 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거지같이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모를 떠난 자녀는 그렇게 고통 받게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는데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하게 살면 하나님께 갈 수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구원받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있지 않을까 합니다. 죽을 때까지 매주 고아원, 양로원에 가서 봉사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선행으로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이를 잘 설명하는 것이 해적선 이야기입니다. 정말 착한 사람이 해적선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갑판도 깨끗이 하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악질입니다. 인간은 도덕주의로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종교를 가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종교 다원주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말은 멋있고 논리적으로 일리 있어 보입니다. 인간은 종교를 통해 하나님께 가려 했으나 하나님은 더욱 싫어하셨습니다. 3, 4대까지 망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종교로도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인간은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께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인간을 사랑하시어,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하고, 멸망해야 하며, 마귀의 종노릇하다 지옥에 가야하는데, 이 모든 문제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아오셨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
이 십자가를 붙잡고 나아가면 다 회복됩니다. 이 십자가 사건이 믿어지고 예수님이 믿어져서, 내 마음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3)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사귐(교제)을 원하십니다.
사귐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십자가가 사귐입니까?
① 예를 들어 교회에서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대화할 시간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기회가 생겼을 때 포럼을 하고 친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에 절친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교제는 그런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거기서 멈추려 합니다.
② 주님과 사귀기 위해서는 삶에 십자가가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주님을 만나는 통로이며, 길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빛으로 나아가기 위해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왜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데 매일 십자가가 필요합니까? 요한일서에서 십자가가 아니면 이 어둠을 깨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③ 예를 들어 제가 외도를 했다면 무릎 꿇고 빌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회복하려면 모든 방법을 통해야 할 것입니다. 비교가 잘 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죄인인 것입니다. 완전 외도한 사람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회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길이 회개입니다. 하나님은 회개를 통해서만 만나 주십니다. 왜 매일 회개해야 합니까? 왜 매 순간마다 회개해야 합니까? 요한일서에서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④ 인간은 어둠속에 있고 회개를 하지 않으면 금세 교만해지며 인생의 주인이 되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이길 수 있는 힘으로 주신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를 돌이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를 통해 빛으로 갈 수 있으며, 주님과 사귈 수 있습니다.
⑤ 주님과 사귐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난 누구의 친구야,’라고 자랑합니다.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사귀는 것입니다. 잘 이해되지 않으십니까? 저는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이 단번에 해결하시진 않았지만 가난문제, 불행이 주님과 사귈 때 해결되었습니다. 내 스스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지만 거룩하신 하나님과 사귀어 살면 내 삶은 내 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변화됩니다. 성경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고 합니다. 함께 한다는 것은 교제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내가 너와 서로 사랑하길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 사귀려 하지 않습니다. 믿어야 응답받으니 믿고는 싶은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왜 주셨습니까?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늘 교만하고 주인이 되려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자아를 누르고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해결책이 아닙니다. 종교는 누르고 인내하라 합니다. 복음은 사랑하라 합니다. 주님과 교제하라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1. 다시
매일, 회복, 돌이킴이라는 의미를 담고 다시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① 황폐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② 마귀가 주인노릇하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③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④ 그런데 다시가 없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을 것입니다. 나는 깨끗하다고 합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잊어버렸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유난히 죄는 지나고 나면 잊어버립니다. 제 인생을 카메라로 찍어서 비디오로 틀었다면 여러분은 다 떠났을 것입니다. 제 마음상태를 전부 밖으로 드러낸다면 저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제 마음 상태가 끔직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다시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이 기회는 날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2. 십자가로
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길로 주셨습니다. 죄로 가득한 나를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 모습이 변화되어 하나님과 사귐의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제가 진환집사님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다보면 닮아가게 됩니다. 성경적으로는 성화된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는 사랑하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가능합니다. 이는 율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삶의 변화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②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면 빛으로 가려는 습성이 생깁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빛으로 가려는 습성이 생깁니다. 우리가 빛이라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빛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려는 것입니다. 이런 감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습성으로 예배드리고 싶어지고, 말씀이 달콤해지며, 잘못된 생활을 돌이키고 깨우치려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빛으로 나아가려는 이런 습성들이 생깁니다.
③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안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두 달 동안 요한일서를 묵상하며 첫째로 회개한 것은 제 욕심이었습니다. 어려서 가난했던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돈을 내는 것을 즐겨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난하지 않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그런 겉치레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요청으로 사역을 하러 갑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귀찮고 힘든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제 마음이 병들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표현할 길이 없는데 이번 두 달 동안 십자가를 묵상하며 하나님이 안식을 주셨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안식이 없으니 계속해서 조바심이 생기고 뭔가를 준비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쟁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삶에 십자가가 없으니 교만이 생기고 정죄하는 마음,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④ 요한일서에서 하나님 사랑을 확인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데 네가 어떤 자격으로.’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지 않는 것이라 말합니다. 이 안에 전도, 선교가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사님이 이 자리에 계신데 쉬실만도 하지만 계속 돌아다니십니다. 한 영혼을 찾으러 다니십니다. 십자가를 안 것입니다. 그것이 안식인 것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신 것입니다. 내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십자가의 결론입니다. 저에게는 아빠였습니다. 제가 아빠를 사랑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술만 먹고 오면 엄마를 때렸습니다. 매일 이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싫었습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빠의 영혼이 불쌍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세리도, 과부도, 창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빛으로 나아가려 애쓰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답이 있습니다. 매일 십자가를 붙잡고 묵상하는 것에 답이 있습니다.
결론
사랑이 무엇일까요? 사랑하면 어떻게 될까요?
① 사랑하면 눈이 뜨입니다.
② 세상을 이길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세상을 이길 힘이 생깁니다.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순교도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고 합니다. 왜 우리가 성령을 근심하게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③ 사랑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신앙생활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곧 사랑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결과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에서 다 끝납니다. 구원은 받고 축복은 받고 싶은데 사랑은 하지 않습니다.
① 하나님을 사랑하면 영적인 눈이 뜨입니다.
② 하나님을 사랑하면 세상을 사랑하게 됩니다. 세상은 창녀, 세리, 연약한 자, 저는 자입니다. 예수님도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세상과 분리되어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영적인 눈이 뜨이게 됩니다.
③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작은 변화들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주실까 생각합니다.
다시 십자가로 가는 것이 사랑입니다. 삶이 무너지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다면 십자가를 회복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요한일서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