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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7 주일 1부 예배



2016-01-17 주일 1부 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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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성경의 이야기

요한복음의 중요한 흐름 속으로 여러분이 들어오시길 기도합니다. 지금 예수님 시대에 종교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교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요한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기록한 성경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 다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서 하나님의 역사를 전부 보고 다시 예수님 시대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적의 이유들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 왜 그렇게 사역을 하셨는지 전부 깨닫고 기록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앞의 공관복음의 키가 되는 성경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에 대한 정확한 이유들이 바로 요한복음입니다. 우리가 요한복음을 보면서 반드시 봐야 할 것들을 봐야합니다. 그것을 보느냐 못 보느냐에 따라 우리 신앙생활의 흐름이 결정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생각할 때 자기중심으로 생각을 합니다. ‘저 사람 왜 저래?’ 저는 목사의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저분이 복음을 알까?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냐?’ 목회자의 진짜 관심을 가지니 다른 것에 대해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목사가 목사의 흐름을 놓치면 문제가 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멀리하고 외면했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그 말씀을 짓밟았습니다. 그래서 멸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은 그것을 전혀 모릅니다. 자기들 수준으로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우리나라에 정치인들이 지난 20년간 들고 나온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경제발전입니다. 그런데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경제발전을 이룬 선진국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와 있습니다.

유럽의 한 나라에서는 마약을 너무 많이 하니까 아예 마약을 하는 공원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경찰도 배치하고, 의사도 배치해서 안전하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공원에서만 매년 100만개의 주사기를 나누어준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정치권에서 마약을 공급하는 범죄 집단과 결탁한 것입니다. 정치인도 이제는 어쩔 수가 없을 만큼 큰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그렇게 경제발전을 외쳤지만, 가정문제, 자녀문제 감당하지 못해서 지금 다시 교회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돈이면 된다고 했던 그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온다는 것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지금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오늘 요한복음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봐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Ⅱ. 예수님을 처음 만난 사람들

1. 세례요한처럼_요한복음1:35-36

첫째, 세례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이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깨달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왜 그가 자신은 쇠하여도 된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높였는지 봐야 합니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_요한복음1:35-36’

여기서 이튿날은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처음 본 다음 날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이튿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주님을 만난 세례요한은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 즉 하나님의 독생자란 의미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이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쫓거늘_요한복음1:37’

세례 요한의 선포와 동시에 요한의 제자였던 두 사람이 예수님을 바로 쫓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그 날 한번 따라가서 보았다면 쫓을 수가 없었겠지요. 본문에 사용된 단어 ‘아콜루데오’는 지속적으로 좇아 섬긴다는 뜻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두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40절에 그 한사람이 안드레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나머지 한 사람은 많은 신학자들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세례요한의 신실한 제자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두 제자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사랑, 그리고 정성을 쏟아 부었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들이 하루아침에 세례요한을 등지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불쾌하거나 속상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달랐습니다.

왜 그를 큰 사람이라 했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우리를 구원할 하나님의 독생자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쫓도록 보내어주었습니다. 전혀 불쾌함도 없었습니다. 저는 목회자입니다. 목자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안내하는 직업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는 신자를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교인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왜 교회에 문제가 계속 오는지 생각합니다. 바로 목회현장에 예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을 따르도록 만들면 됩니다.

무엇이든지 본질을 놓치면 싸우고 상처를 받고 문제가 되기 마련입니다. 지난주에 3천명이 모인 청소년 수련회를 진행했습니다. 예전에는 많이 싸우고 상처받고 그랬습니다. 그러다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중요한가? 아니다. 수련회의 본질은 아이들이 은혜 받는 거다.’ 이것을 깨닫고 기도하며 준비했습니다. 예전에는 프로그램이 중요하니까 사람들이 프로그램에 참석하지 않으면 속상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아이들이 은혜 받아야 합니다. 신기하지요? 사람들이 전부 다 참석합니다. 오히려 시간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본질을 놓치면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왜 가정에서 섬기면서 상처를 받습니까? 본질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이 예배가 사실 제자훈련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파송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세상에 다시 파송되어 교회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교회가 그 기능을 상실하면 교회는 썩어버릴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인삼지 못하면 늘 문제가 됩니다. 세례요한처럼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께로 가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례요한처럼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2. 안드레처럼_요한복음1: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메시야를 번역하면 그리스도라)_요한복음1:41’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의 모든 관심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였습니다. 세례요한에게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구원을 이루는 유일한 직분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존재한다면 그리스도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을 막겠지요. (마귀의 존재를 믿지 않으시니 가정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녀도 그리스도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고 또, 그리스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허다합니다. 교회가 정치, 경제, 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 이유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여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가 이유가 아니라면 교회는 반드시 세속적이게 됩니다.

안드레는 세례요한을 통해서 메시야에 대해 들었을 것입니다. 말로만 들었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났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안드레가 곧바로 달려간 곳이 바로 자신의 형제인 게바였습니다. 그 말은 진짜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가장 소중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만남이 없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사실 신앙생활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 예배를 많이 드린다 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고 예배를 많이 드리는데 그것이 종교가 되고, 자신의 의가 됩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의가 되어버립니다. 제가 정말 그랬습니다. 나는 훈련도 받고, 집회도 빠지지 않으니 다른 사람을 그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어리석지요.

안드레처럼 그리스도를 만나면 삶이 달라집니다. 마음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섬기게 됩니다. 제가 왜 목사인데 매일 묵상일기를 쓰는가 하면 하루 중에 반드시 그리스도를 만나고 누리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와 무관한 삶이 대부분입니다. 그렇지요? 세상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창조주 하나님이 정하신 영적인 시간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실 그것이 예배입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내 삶에 적용하는 시간입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그런 시간이 매일 되어 진다면 기적이 일어나리라 확신합니다. 사람에게는 반드시 답이 있습니다. 육신의 병이 오기 전에 여러분 매일 땀을 흘리는 시간을 30분만 가져도 건강이 회복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는 시간을 매일 가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시간을 가지지 못하도록 다 막는 것이 마귀입니다. 그런 안드레가 어떻게 했습니까? 바로 자기 형제인 시몬에게 갔습니다. 뭐라고 이야기 했지요? 메시야를 만났다. 이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그리고 너가 똑바로 살아라 라고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간증입니다. 오늘 망콴마을에 갑니다. 가면서 우리의 마음가짐이 우리는 잘사는데 너희는 못사니까 우리가 도와줄게 라면 가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그들이 단순히 불쌍해서 돕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망콴마을에 있는 아이들에게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를 간증할 수 있을까? 그 영혼의 상태가 되어야 진짜 선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게바처럼_요한복음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_요한복음1:42’

세 번째 게바는 베드로의 원래 이름이며, 안드레의 형제입니다. 안드레에게 이끌림을 당해 예수님께 갔습니다. 그런데 처음 만난 게바에게 예수님이 바로 이름을 개명해주셨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생각해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면 제 본래의 신앙이 아닌 새로운 신앙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의 신앙생활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오늘 게바도 그랬습니다. 게바라는 이름의 뜻은 듣는다입니다. 예수님은 게바에게 이제부터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아시다시피 반석이란 뜻입니다. 흔들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뿌리를 내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듣는데서 그치면 안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 신앙생활을 듣기만 합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시간에 앉아서 좋은 말씀을 들으면 신앙생활인가요? 예수님이 왜 게바를 보자마자 이름을 바꾸셨을까요? 훗날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반석 같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려고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듣기만 했다면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변화되었습니다. 베드로만큼 그 과정이 어려웠던 제자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하자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도 데리고 가셨습니다. 물고기를 못 잡고 있을 때 그물을 내려 봐라. 베드로는 ‘에이 물고기가 없는데 내린다고 잡힙니까?’ 사실 베드로는 정말 많은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구나 라고 깨달은 순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를 통해 얼마나 많은 영혼이 주께로 돌아왔는지 모릅니다. 결국,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시간표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우거나 인간관계를 할 때 이 시간표를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만나는 길을 성경에 기록해주셨습니다.

Ⅲ. 예수님을 만나는 길

1.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_요한복음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_요한복음1:1-3’

그리스도를 만나고, 믿는 첫 번째 길이 바로 말씀입니다. 말씀은 문자적으로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말씀은 살아 있고 지금도 성취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생명입니다. 사람들은 유대인처럼 말씀을 많이 알거나 연구하면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많이 다릅니다. 말씀이 단순히 문자가 아니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살아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좋은 음식을 무조건 많이 먹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듯이, 운동도 많이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듯이 정확하게 말씀을 깨닫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매일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셔야 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주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상을 하나 보려고 합니다.

(영상) 보시다 시피 전 세계의 주요 종교들, 엘리트집단들은 전부 이런 무서운 것들이 주도를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비참합니다. 저 영상의 배후가 사탄 곧 악한 영이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힘이 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 교회만큼 육신적이고, 세속적인 곳이 없습니다. 말씀을 놓치면 그렇게 됩니다. 반대로 정말 말씀을 붙잡으면 교회는 가장 아름다운 빛이 됩니다. 여러분 제가 그냥 심심하기 때문에 묵상일기를 쓰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런 것을 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주제로 삼는 이유를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그것은 엄청난 축복이기도 하고, 반대로 가장 무서운 것이기도 합니다.

2. 예수님은 생명의 빛_요한복음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_요한복음1:4’

말씀 안에 즉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빛입니다. 실제로 여러분 가정과 가문에 내려오는 재앙, 저주는 끊임이 없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만일 저희 가정이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해보는데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몇 명이 있으니 헌신도 하고, 섬기기도 하고, 소통도 해서 가족들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끕니다. 만일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없었다면 같이 싸우고, 후대들은 상처받고 가정이 완전 무너져버리게 되겠지요. 예수님을 믿는 한 사람만 있어도 가정은 반드시 빛을 비추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가진 여러분이 되셔야 합니다.

3.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_요한복음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_요한복음1:29’

요한이 처음에는 이것을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초대교회를 통해서 말씀이 성취된 것을 보고 노년에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이 인생의 답을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을 가진 사람은 다릅니다. 말씀을 가지고 있으니 흔들림도 없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릅니다. 말씀이 없으니 계속 세상에 흔들리고, 의식주에 흔들리고, 사람들의 말에 흔들립니다. 요한복음이 말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주신 독생자입니다. 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니 내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내 형제 부모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목회자로써 성도님들이 예수님을 주인삼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 좋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높아지고, 예수님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많아지는 가스펠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 주님 이 세상에 흐름을 보길 원합니다. 지금 온갖 종교들이 무서운 영적인 전략을 가지고 세상을 움직이고 있고, 엘리트집단들은 그런 종교들의 영향으로 알 수 없는 길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교회는 무지하고, 무능하고, 심지어 세속적이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고, 구원이며, 모든 원수를 무너뜨릴 영적인 승리의 말씀인데도 말씀을 외면하고, 말씀을 그저 문자로 생각하고, 말씀을 짓밟기까지 합니다. 주님 이 시대의 교회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길 기도합니다. 생명이신,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 말씀이 교회의 주제요, 신앙생활의 주제로 회복되길 원합니다.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매일 만나 환경, 물질, 성공, 명예, 타락 등에 빼앗긴 그리스도인의 빛 된 삶을 회복하게 해주세요. 영적인 싸움에 승리하여 세상의 흐름이 아닌 구원의 흐름이 내 인생에 시작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