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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Letter. ' 예배를 드리고 계시나요? '

Gospel Letter. ' 예배를 드리고 계시나요? '

 

영적인 축복을 받으면 육신의 축복도 받는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일까요? 창세기 3장의 사건으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다시 하나님을 만나 구원받으면 육신의 모든 삶도 회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축복을 받으려고 예배를 드립니다. 영적인 축복을 받으려고 설교를 듣고, 영적인 축복을 받으려고 헌금도 합니다. 또 영적인 축복을 받으려고 전도도 하고, 선교도 합니다. 모든 것이 영적인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가만 보니 그 뒤에 육신의 축복을 받기 위한 숨은 동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문제가 오면 그대로 주저앉아버립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취를 감추기도 합니다. 그토록 신실하게 신앙생활(?)했던 렘넌트들이 취업이 되지 않거나, 문제를 겪으면 창피해서인지, 자존심이 상해서인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과연 우리는 영적인 축복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성경에는 ‘온 마음을 다해’ ‘온전하게’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고, 경배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보다 육신의 축복에 관심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잘 모른 채 사랑한다고 합니다. 예배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예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색을 냅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내가 얼마나 예배를 잘 드리는데, 내가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데'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가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_누가복음10:40’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잘 모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주님께 드려서 ‘주님 나 이만큼 노력 했어요. 이제 축복해주세요’ 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 저 이만큼 기도하고, 이만큼 거룩하게 살았어요. 저 이만큼 전도하고 이만큼 열심히 살았어요. 이제 축복해주세요.’ 이렇게 말입니다.

 

아! 정말 어리석게도 저의 젊은 시절이 전부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도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맡은 부서가 부흥해야 하고, 내가 하는 사역이 잘되어야 하고, 가난이 저주라 생각하여 경제축복도 받아야 했고, 심지어는 가정복음화도 되어야 하고, 모든 것이 다 풀려야 했습니다. 그것이 안 되면 자존심이 너무 상하고 창피하고 그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부 저의 의였습니다. 이렇게 음식을 많이 차려서 주님을 대접하려고 하는데 주님은 당연히 좋아해주셔야지 그러면서 일하는 것은 즐겁지 않고, 마음과 영혼의 안식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분주합니다. 은혜 받는 마리아를 경계하고 미워해야 하지, 비교해야 하지, 시기 질투해야 하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더 노력해야 하지 마음이 쉴 틈이 없습니다.

 

저는 이제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깨달아지고, 그 사랑이 내 마음의 감사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 말은 내가 연약한 자임이 고백되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 것이 아닌 주님의 것을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식이 찾아왔습니다. 내 마음과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_마태복음11:28’

 

세례요한은 그 쉼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짊어지려고 했던 이스라엘의 회복이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세례를 받으러 오는 사람이 많든 적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고, 그것으로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예수님으로 쉼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만나면 안식을 얻게 됩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_요한복음3:29-30'

 

그래서 예배가 안되는 그리스도인들은 늘 마음에 안식이 없습니다. 마르다처럼 예수님을 바로 앞에 모시고도 다른 일로 마음이 분주합니다. 세상을 의식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불쌍한 인생이 어디 있을까요?

 

예배를 드리고 계시나요?

 

 

 

 

_예수님을 만나고 바라보고 그분의 임재 속에 살아가고픈,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