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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Letter. '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

Gospel Letter. '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

 

이번 주만 벌써 두 번째 광주에 가는 길입니다. 이번에는 가면 2.3일이라도 어머니 곁에 있을 참입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부터 어머니 곁을 떠나 지냈습니다. 어머니가 시골에 사셨기 때문에 도시에 사는 누나네 집에 살면서 학교를 다녔고, 부산으로 신학교를 가면서는 혼자 지내기 시작했지요.

 

기차를 타고 어머니에게 가는 이 시간,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주님 어머니의 병이 치료받아서 다시 건강해지시는 것은 불가능할까요?' 제 마음에는 이런 마음이 큽니다. 이제 살만하시니까,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는데 아쉽게 하나님이 부르시네. 원망하는 마음도 생기고, 안타까운 마음도 생겨납니다. 눈물과 함께.

 

그렇지만 꾸역꾸역 말씀을 묵상하니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이런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승주야 내가 내 딸을 힘든 세상에서 그만 고생시키고 이제 내 품으로 부르는 것이 그렇게 싫으니?'

 

어머니는 사실 평생 고생만 하셨습니다. 8남매를 키우시느라 늘 고된 농사일만으로 사셨습니다. 배우기라도 했으면 벌써 다른 인생을 사셨을 거라고 늘 배우지 못한 것을 한탄하셨던 어머니셨습니다. 그저 마지못해 사셨지요. 오직 희망이라고는 자식들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식들마저도 쉽지 않았나 봅니다. 어릴 적에 늘 어머니는 '내가 뭔 죄를 많이 지었길래...너희들이 고생이다'라고 푸념하셨습니다. 어린 저에게도 잊지 못할 아픔입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힘겹게 살았습니다. 마치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우리 집에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처음엔 큰 누나 때문이라고, 처음엔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님이 엄마를 사랑하셔서 친히 찾아오신 것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고통이어서 싫다 하고, 괴로움이어서 싫다 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어서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주님의 사랑이었고, 주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무속신앙 같은 종교가 아니기에,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마귀가 아니기에 하나님은 구원의 길로 안내 하시기 위해 우리를 바꾸시는 작업을 하신 것이지요. 빛으로 가도록 말이지요. 그렇게 우리 가정에 빛을 비추어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이 어느 순간부터 밝아진 것은 아마도 제가 목사 안수받을 때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어머니에게, 가정에 어둠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아 하나님이 내 마음을 이렇게 좋게 해주셨다 내 고생을 하나님이 다 갚아주셨다' 어머니는 참 밝아지셨습니다. 여유도 생기셨습니다. 시골 교회가 그리 멀리 있었지만 예배드리는 것을 즐거워하셨습니다. 잘 배우지 못하셨던 어머니도 깨달으셨던 것입니다. 그토록 바라보고 사셨던 베데스다가 우리를 낫게 하지 않는구나. 이제는 베데스다를 바라보고 살지 않겠다. 이제 오직 주님만 의지해서 살겠다고 고백하신 것이지요.

 

저는 광주 가는 이 길이 참 기쁩니다. 어머니와 있는 동안 주님 이야기를 참 많이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를 선하게 인도해오셨던 주님 이야기말입니다. 그때 그 문제가 아니었으면, 그때 그 고난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주님을 만났을까 이렇게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신실하게 어머니의 인생의 뿌려진 생명의 씨앗으로 아름다운 천국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주님이 사마리아 같은, 베데스다 같은 우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 것이지요. 그게 얼마나 큰 사랑인지 전 오늘 또 깨닫습니다. 그리고 전 알고 있습니다. 가스펠 성도님들이 지금은 힘겹고 어려울지라도 반드시 주님을 만나 낫게 될 것을 말입니다. 영혼이 낫고, 마음이 나아 우리 주님으로 인해 밝아진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빛으로 말이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_요한복음3:16'

 

 

 

 

_ 주님 내 영혼과 마음이 낫기를 원합니다,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