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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Letter. ' 나는 사랑하며 살고 있을까? '

Gospel Letter. ' 나는 사랑하며 살고 있을까? '


어느 시골 교회의 한 권사님이 남의 밭에서 수박을 훔쳐서 집에 가져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수박을 갈라보니 너무 잘 익은 거지요. 그래서 ‘하나님 너무 잘 익은 수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어떤 집사님은 어느 날 옷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려서 거짓말을 하다가 빰을 맞았다고 합니다. 주일에 교회에 갔는데 뺨이 부어 있으니 사람들이 놀라서 물어본 것이지요. 그랬더니 집사님이 하시는 말이 ‘주님도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는데 이 정도는 인내할 수 있어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입술로 고백하면서 전혀 변화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저의 이야기였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고, 훈련을 잘 받으니 마치 그것을 신앙생활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였나 봅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여전히 내 기준으로, 세상의 기준으로 살고 있었지요. 저 권사님, 집사님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어요. 또, 영혼을 사랑한다면서 나는 여전히 내 성격, 내 이익, 내 감정 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바리새인처럼 말이지요.


이제 저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거룩하신 주님을 모시고 살아 내 삶도 거룩하게 변화되길 원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생각하는 것 까지 모두 '사랑인가?' 질문하며 사는 것이지요. 그것이 엄청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게 살면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고, 말도 안 되게 손해를 볼 때도 있을 것입니다. 때론 인내가 필요할 때도 있겠지요. 그러나 주님께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신앙생활이 아닌가요?


저는 사실 목사가 되어서도 목사가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물론 알지요. 설교하고, 심방하고, 전도하고, 기도하고, 교회 안과 밖에서 당연하게 해야 할 사역과 행정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해서 선택하셨고, 사랑해서 용기를 내셨고, 사랑해서 가던 길도 멈추셨습니다. 그것이 본인에게 위험한 일인 줄도 아셨고, 모욕을 당하는 일인 줄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사랑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사랑하는 일을 하셨지요.


우리는 늘 '나를 향한 계획이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한 번도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하지 않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계획이면 아무 말 없이, 이유 없이, 핑계 없이 기쁨으로 감당해야 하는데도 그 질문 자체를 하지 못합니다. 왜 바리새인들은 그 질문을 하지 못했을까요? 왜 그럴까요?


저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내 기준과 자존심을 생각하기 전에 한번 더 질문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사랑인가요?' 원수를 갚는 것, 억울한 것을 해결하는 것은 전부 하나님께 있으니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임을 마음 깊이 새겨봅니다. 그렇게 살 때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과 같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큰 기쁨이고 은혜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평안이 아닐까요?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_로마서12:19-21'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_요한복음15:9-12'




_ 사랑하며 살길,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