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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4-07-13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4년 7월 13일

제목 : 의를 위하여

말씀 : 마태복음 5 : 10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7-13 주일1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s://db.tt/MANz9YjC

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00615643




가스펠교회 주일1부예배 20140713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세상과 교회

 

교회사에 아비뇽유수란 사건이 있습니다. 로마카톨릭, 즉 교황청은 1309년부터 1377년까지 68년간 내부 분열과 외적 정치 상황의 변동으로 인해 로마에 있어야 할 교황청을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이전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던 프랑스 국왕 필립4세의 영향 하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므로 이탈리아는 이를 비판하여 기원전 6세기말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당한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갔던 바빌론유수에 빗대어 한 말이 아비뇽유수입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교황청은 아비뇽 지상 58미터 암반지대위에 거대한 궁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이 건축물은 지금 프랑스 최대 성채중 하나로 현재 최고 유명한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궁전마당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비뇽 연극페스티벌의 야외무대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교황청에서 최고의 관광지로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 궁전 주변의 다리가 절단되어 있습니다. 제가 가보았을 때 그것을 보고 의아했었습니다. 들어보니 저 다리의 이름은 생베네제인데 117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무려 11년 만에 다리를 완공하여 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였습니다. 물살이 드세 쉽지 않은 공사였지만, 생베네제는 그의 제자, 주민들이 힘을 모아 그 다리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런데 1309년 아비뇽유수가 시작된 이래 교황이 강 중앙을 기점으로 저쪽에 이르는 다리의 절반을 파괴해버린 것입니다. 교황과 강 건너편 지역의 기득권을 지니고 있던 추기경과의 갈등으로 파괴해버린 것입니다. 교황의 힘이 약해졌으니 추기경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자 갈 필요도 없고, 올 필요도 없다는 의미로 파괴해버린 것입니다. (사진자료)

궁전이란 이 세상의 정점의 상징입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유혹했던 장소가 궁전입니다. 돈과 명예, 권력이 고스란히 응집된 곳이어서 그것으로 유혹한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궁극적인 욕망의 지향점이기도 합니다. 교황청의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니 그곳은 지금 아무런 생명도 없는 관광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스스로 다리를 파괴하면서까지 세상과 단절된 궁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자기 욕망의 궁전이 있습니다. 그 안에 갇힌 인간은 하나님, 사람과의 바른 관계로부터 스스로 단절시키게 마련입니다. 자기 궁전보다 신뢰할만한 것은 없다는 착각 때문입니다. 그 궁전 속에서 그가 비단옷을 입고 매일 좋은 음식을 먹으며 쾌락을 즐긴다 한들, 그는 하루하루 죽어갈 뿐입니다. 단절된 궁전 속에는 참 생명의 소통이 없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돈, 명예, 권력의 궁전을 지으라는 사단의 유혹을 일언지하에 물리치신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의 궁전을 허물어야 하나님과의 다리가 이어지고 참 생명을 호흡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과는 무관한 관광지로 몰락한 아비뇽교황청 궁전과 끊어진 생베네제 다리는 이 세상의 축소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슴 아프게도 이 시대 교회의 축소판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욕망을 탐하는 인간은 예외 없이 자기 욕망의 궁전을 짓고, 그 궁전을 지키기 위해 외부와 자신을 단절시키며 그 욕망의 궁속에서 영혼과 육신이 함께 죽어가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마음이 아픈 것은 교회가 그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욕망의 궁전을 쌓고 있는데 그 궁전이 얼마나 높고 견고한지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단절된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교회의 몸집은 커졌지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자정능력마저 상실해버렸습니다. 욕망은 바른 분별을 가로막는 벽입니다. 그래서 욕망에 집착하면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헤매다가 인생이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만약 그런 욕망의 궁전을 짓는데 일생을 걸면, 그 궁은 무너지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모든 것을 잃고 모두와 단절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게 마련입니다. 미국의 60대 여배우를 보니 시술을 받아 탱탱한 피부를 유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장례식장에 가면 물품들은 모두가 새것입니다. 그런데 그 물품도 등급이 있어서 가격이 천차만별입니다. 오동나무니 뭐니 해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것들은 죽은 사람과 함께 썩어질 죽음의 용품밖에 되지 못합니다. 가격이 비싸고 그렇고, 싸도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하찮은 나무라도 살아 있는 사람에게 가치 있게 쓰인다면 그것은 생명용품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산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교황청처럼 죽어버리면 세상과 단절됩니다. 교회가 죽어있다는 것은 세상과 단절되어 욕망의 성을 짓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_고린도후서5:17’

 

. 의를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예수님은 매주 우리에게 정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산상수훈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복 받아 아무 일없이 잘되고 행복할 것이라 착각을 합니다. ‘예수 믿으면 직장도 잘되고, 자녀도 잘 될거에요.’라고 합니다. 저는 그것이 교회들이 욕망의 메시지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치 돈을 내고 자기계발 강의를 매주 듣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박해를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의를 위하여 산다면 당연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를 위하여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은 곧 의를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잃어버린 한국교회는 아비뇽궁전과 같으며, 죽은 용품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은 용품이 아닌 생명용품으로 살아가야 하며 그것이 인생의 지표가 되어야 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_빌립보서1:27a'

 

1. 전도를 위하여

 

의를 위한 다는 것의 첫 번째는 전도를 위하여 입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하나님께 음성을 듣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전도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부담스러운 것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 욕망의 궁전을 지어 그 안에 있는 많은 것들, 즉 예수님을 유혹했던 사단의 욕망의 도구들(돈과 명예, 권력)로 채워가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생명을 가진 생명의 용품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깊이 영혼에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지난 금요예배 때 시편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그 기준에 대해 묵상을 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묵상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생명입니다. 다시 말해 내 욕망의 궁전으로 인해 주님과 단절이 되기 시작하면 당연히 주변과도 단절이 됩니다. 불안한 것도 잠시이고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되어 파멸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끼치는 영향을 잘 모르고 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가 이것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2014년도에 1차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나누고 있습니다. 목회자로써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위로부터 흘러내려오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생명 흘러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단절되어 있습니까?

 

2. 선교를 위하여

 

의를 위한 다는 것은 선교를 위한 다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는 같은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좀 더 넓은 의미에서는 다른 의미입니다. 어제 몇몇 지체들과 양화진에 다녀왔습니다. 정민이가 아들을 낳으면 데리고 와야겠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도전이 되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저도 또 다시 도전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라도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미지의 나라 한국에 온 것입니다. 심지어는 대를 이어서 왔습니다. 심각한 전염병이 돌아 한국 사람도 도망가는데 그들은 떠나지 않고 병자들을 돌보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한국 사람들은 그때부터 그들이 믿는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선교를 한다는 것은 흑암으로 덥힌 한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사역입니다. 교회가 왜 존재합니까? 우리는 이 선교에 너무 인색합니다. 아니면 생색내기로 선교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교회는 배부르면서 선교지에 선교사 한명 파송하는 것은 아까워합니다. 내 교회는 거대한 궁전으로 지으면서 오지에 학교 하나 세우는 것은 아까워합니다.

 

3. 복음을 위하여

 

의를 위한 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복음을 위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십자가의 복음을 위한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곳이 골고다입니다. 골고다의 뜻은 해골이란 뜻입니다. 영어의 갈보리 역시 어원적으로 해골이란 뜻이 있습니다. 해골은 무엇을 뜻합니까? 죽음을 뜻합니다.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곳에 십자가가 박힌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피 흘리심으로 그 해골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마치 에스겔의 해골과 같은 것입니다.

복음은 죽은 용품이었던 저와 여러분을 생명의 용품으로 바꾸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복음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기 위해 내 욕망을 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해 내가 죽은 해골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언젠가부터 자기 비움이 없이 자기 욕망을 채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것을 목표로 삼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 교회가 복음을 외치나 허공의 메아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졸업식장에서 아름다운 말들을 하나 사람들이 듣지 않는 것과도 같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이미 욕망으로 스스로 세상과 단절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위해 사는 그리스도인이 제 꿈입니다. 복음을 위해 산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의를 위하여 산다는 것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곧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순간 선데이 크리스챤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자신의 부와 명예, 권력을 꿈꾸기 시작했고, 그런 자들이 모인 교회는 거대한 궁전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써 제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 개척교회를 섬기면서 할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보통 한국교회는 목회자를 잘 섬기기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대접을 받습니다. 그것이 복 받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것이 기분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도가 지나쳐서 목회자들의 기준이 세상에 있게 된 것입니다. 큰 교회, 좋은 차, 좋은 자리..심지어는 그것이 꿈인 신학생들이 많습니다. 저는 요즘 고민이 너무 많습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나? 그래서 가스펠교회를 섬기는 동안 여러분에게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못할지언정, 우리가 조금 버벅거리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교회를 잘 다니는 것이 아니요, 신앙생활은 헌금을 잘하는 것도 아니요, 신앙생활은 교회를 이루는 것이며, 신앙생활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과 관계된 그 누군가를 살리는 길임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위해 수고하는 일이 인생에 가장 가치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 복중의 복, 천국

 

이렇게 의를 위해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특히나 부정부패가 심한 대한민국에 살면서 진리를 지키며 살면 반드시 손해가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10, 20, 아니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런 그리스도인이 남긴 영적인 유산은 실로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그것을 어제 양화진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니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으면 천국이 저희 것이라 하셨습니다. 제가 정말 이해가 되는 말씀입니다. 정말 이해가 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_마태복음18:3-4‘

 

1. 핍박을 받을 만한 세상

 

한국에 살면서 예수 믿는다고 박해를 받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박해는 북한 땅이나, 중동의 회교도 국가에 있는 박해입니다. 지금도 그곳에서는 심각한 박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단이란 나라는 80%가 넘는 회교도들이 10%가량 되는 기독인들을 심각하게 박해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해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화형과 총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박해를 받지도 못했고, 심지어는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런 박해가 왜 없을까요? 이미 믿음의 선조들이 박해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님들이, 혹은 주기철 목사님 같은 믿음의 선조들이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박해를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박해받는 선교지를 마음에 담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선교헌금을 하여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정신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지 조차 모르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주일 날 잠깐 교회에 들리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하니 진짜 핍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핍박은 주님이 주시는 핍박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니 사망의 권세가 판을 치고, 재앙과 저주가 계속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주님과 단절되었기 때문에 세상에 또 다른 핍박이 시작된 것입니다.

 

2. 최고의 보상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제대로 한다는 것은 교회를 잘 다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근본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경배의 자리에 욕망이 아닌 주님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잘 다니는 것이 신앙생활에 유익하다면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하기 어렵다면 곳곳에 세워진 모임과 예배 등을 통해서라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저를 찾기를 원합니다. 목사님을 만나려 애쓰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살아나기 위해 애쓰셔야 합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데 무슨 보상이 있을까요? 오늘 주님은 천국 소유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이 생명의 용품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닐진대 우리 인생이 생명의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것은 천국을 소유한 자들이기에 가능합니다. 어찌 순교하신 분들, 박해를 받은 분들이 그것을 감사하다, 감격스럽다 고백했을까요? 주님을 외면하기만 하면, 주님을 모른다 말하기만 하면 핍박을 받지 않아도 될 텐데 그 한마디를 못하여 모진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들의 삶은 기쁨이 넘쳤습니다. 양화진의 선교사님들을 보면서 일반 사람들은 이유를 모를 것입니다. 미쳤구나 저 좋은 학교를 나와서 저 좋은 배경을 가졌으면서 왜 더럽고, 온갖 질병이 가득한 나라에 와서 평생을 헌신하였는지...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비밀은 천국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최고의 보상입니다.

 

3. 천국을 바라보며

 

천국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당장 우리는 내년도 재정을 생각하고, 우리가 편할 것에 대한 계산을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비워야 합니다. 우리의 궁전을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천국을 소유하여야 합니다. 교회가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 당연하나 그렇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가스펠교회는 천국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바라보는 것이 달라질 것이요, 우리의 목표도 달라질 것이며, 성도 개인의 삶도 달라질 것입니다. 천국은 주님이 계신 영원한 우리의 안식처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천국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천국을 소개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그곳에 안내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을 소유한 교회이기에 우리는 전부 비울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론 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나 선교지를 위해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어야 하며, 때론 행정적으로 맞지 않으나 시급한 현장을 위해 교회의 모든 재정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로써 저의 결단이자 그런 교회가 비전이기도 합니다. 이 교회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근심도 불안도, 혹은 온갖 욕망으로 인한 갈등과 쾌락의 쓰디쓴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오직 천국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_잠언11:30’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_고린도후서4:1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_요한복음11:25-26’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_고린도후서4:18’

 

주님 우리가 한번뿐인 인생 죽은 용품으로 살다가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생명용품으로 살아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축복된 인생이 되도록 오늘도 말씀으로 깨우쳐주세요. 무엇보다 우리의 소망이 천국에 있게 하셔서 욕망의 궁전을 짓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감사와 기쁨이 흘러넘쳐 세상에 힘을 주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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