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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4-07-20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4년 7월 20일

제목 :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말씀 : 마태복음 5 : 11-12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7-20 주일1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s://db.tt/2RRlSOXZ

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01197459




가스펠교회 주일1부예배 20140720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인생관을 정립하다

 

오늘 말씀으로 산상수훈의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2달여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과 삶에 대한 새로운 정립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면 주님께 부여받은 새로운 계명으로 새로운 인생을 사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계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자립하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주님께 상 받는 인생인지 함께 묵상해보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인생관이 잘 정립되어 있어야 그 인생이 보람되고 가치 있게 됩니다. 인생관이 없으면 삶이 흔들리게 됩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1. 보편적 인생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인생관에 관한 개념을 잘 갖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생이란 흐르는 강물(유수)과 같습니다. 인생은 세월을 뜻하는 데 그것이 유수와 같다는 것입니다. 강물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흐릅니다. 내가 멈추었으면 하고 바랄 때도 강물은 흐릅니다. 역류하기를 원할 때도 제 길 따라 흐르기 마련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의지에 따라 세월이 멈추거나 역행해주지 않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밤낮은 흘러가고 계절은 바뀌고 있습니다.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백발이 돋으며, 내 의사를 묻지 않고 이마엔 주름이 생깁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백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_예레미야10:23’

 

인생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다는 관점에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깨달음은 우리가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습니다. 강물과 비슷한 두 번째는 인생이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속도가 정말 빠르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속도를 이야기할 때 굳이 남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요즘 저는 정신을 차려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40대가 됩니다. 40대를 준비하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없이 어리고, 철없는 시절이 그토록 빠르게 지나갈 줄을 몰랐습니다. 예전에 좋다는 것이 이제는 쓸모없고, 예전에 최고였던 것 이제는 고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대학에 갈 때 삐삐가 있었습니다. 삐삐 한 개 생기는 것에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시절 다 지나가서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만큼 편해졌습니다. 이런 세월의 빠름을 모세 역시 한탄하였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_시편90:10’

 

그리고 인생은 빠르기도 하지만, 결과가 허무합니다. 허무는 빌허, 없을무 문자 그대로 남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무언가 남는 것이 있다면 인생이 허무하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라야 사랑도, 우정도, 정의로움도, 권리와 의무도 필요한 것이지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무의미합니다. 제 사랑하는 친구가 2년 전에 조그마한 아이 두 명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친구가 아플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니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죽고 나면 인생은 남지 않습니다. 생각할수록 인생은 허무합니다. 어린아이들이 낮 동안 열심을 다해 모래성을 쌓아도 밀물에 순식간에 쓸려버리듯이 사라집니다. 그러니 시편기자의 고백이 이해가 됩니다.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 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_시편89:47-48’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본질을 놓치면 자꾸 허상을 쫒아 살게 됩니다. 인생이 원치 않아도 흐르며, 빠르게 흐르고, 허무만이 남는다는 것이 보편정인 인생관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인 저와 여러분은 세상을 바르게 인지하고 가야할 것입니다.

 

2. 새로운 인생관

 

그런데 바꿀 수 없고, 빠르며, 허무뿐인 보편적인 인생관이 절대 불변의 인생관일까요?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마저도 이런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 앞에 우리는 무능하게 살아갈 수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은 세상풍조에 마냥 휩쓸리지 않고 나의 의지를 다해 나의 시간을 참된 가치와 의미로 건져 올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욕망을 쫒아 사는 인생이라면 천년만년 살길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참되고 바르게 주의 복음을 전하며 살기에는 충분히 길고도 긴 시간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선교사님들의 고백을 보니 세월이 아까웠다, 아쉬웠다고 고백한 이 하나 없는 것은 그분들 인생이 그만큼 값어치 있었다고 스스로들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600페이지가 넘는 대작만 무려 100권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는 책만 쓰는 글쟁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수없는 설교와 종교개혁으로 감옥까지 다녀왔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였던 헨델은 오페라 46, 오라토리오 32, 78곡의 대작을 남겼습니다. 그 외에 150곡의 칸타타와 40여곡의 성악작품을 남겼는데 아마도 알려지지 않는 소품들은 엄청날 것입니다. 그러나 헨델은 밤낮 작곡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교회생활도 열심이었고, 전도활동도 열심이었습니다.

인생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지만, 누구에게나 속도가 같은 것은 아닙니다. 같은 햇수를 살아도 진리를 좇아 산 사람의 인생은 자신의 욕망을 좇아 산 사람과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은 물질적인 관점으로만 이해한 결과일 것입니다. 한줌의 재로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는 영적인 유산을 남겨놓을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새로운 인생관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까? 보편적 인생관과 새로운 인생관의 분기점은 어디일까요?

교회를 다니면서도 보편적인 인생관에 빠져 무의미한 인생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볼 때 그들에게 아직 인생의 분기점이 오지 않았거나, 혹은 그것을 외면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그 분기점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 즉, 영원한 천국입니다. 그것을 깨우칠 때 우리의 인생관은 새로운 인생관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으며, 우리가 복음을 위해 준비하는 일생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천국을 아무나 깨달을 수도 없고, 소유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으로 영이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창세기 3장에 나온 선악과 사건입니다. , 하나님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란 죄로 인한 천국의 상실이기 때문에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님이 사랑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_로마서 5:8’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주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곧 영생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_요한복음3:16’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까닭 역시 한 줌의 흙으로 끝나 버릴 인간들에게 영원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란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영원에 접속되어 영원을 사는 자를 말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_고린도후서4:18‘

 

주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영원에 접속되어 있지 않을 경우 그는 결국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만을 인생의 목적으로 섬길 터인즉, 그의 인생은 유수 같은 세월의 하나로 세상 풍조에 휩쓸려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그것을 사주팔자라 하지만, 그런 인생은 열심히 살수록 허무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접속되어 사는 자의 시간은 그냥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사명을 마감하고 돌아가는 죽음 역시 우리에게는 참 소중한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자의 삶이 어찌 가치가 없겠습니까? 영원을 믿지 않고 욕망을 좇아 살아가는 저들의 인생이 어리석은 삶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 인생의 기로에 서다

 

우리는 날마다 인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침마다, 일터에서, 공부하는 곳에서, 수많은 상황 앞에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영원한 천국을 접속되어 사는 것이 참된 인생임을 알았다면, 우리는 날마다 결단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신앙생활이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의지가 박약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한 때 의지박약이었습니다. 밤마다 음식을 먹어 몸무게가 100kg을 넘어갈 때가 있었습니다. 신앙생활도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아무런 능력도 없는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마치 쓸모없는 종교를 가진 것처럼 살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나고 예수님이 드러나는데 세상에서 우리를 보고 쓸모없는 종교를 믿는 것처럼 바라봅니다.

사실, 저는 요즘 정말 말씀을 묵상하면서 몇 번이고 눈물을 흘리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살게 된 것이 몇 년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불과 30년 정도일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있고, 어떻게 해서 교회가 이처럼 부흥했는지 제대로 보지 못한 다면 우리는 영원히 이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세상의 풍조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는 결단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은 다 그 결단 앞에 섰습니다. 인생의 기로에 선 것입니다. 사도바울 역시 다메섹도상에서, 다윗 역시 광야에서, 예수님마저도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사단의 시험 앞에 결단을 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_마태복음10:16’

 

사람마다 출생환경과 성장배경이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부잣집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성장했을 수도 있고,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자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의지 밖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삶은 우리의 의지가 선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태어나기 1년 전에 태어난 곳이 프랑스 령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려운 가정에 태어났는데 인생의 기로에서 야망, 욕망의 선택을 했습니다. 욕망의 우상을 좇아 살면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100만 명을 죽였습니다. 그가 프랑스에 태어나 프랑스인만 50만 명을 죽이고 결국 52세에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간에 복음을 듣고 천국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일평생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우리의 의지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망과 불평 속에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사는 것은 그것이 곧 영적인 문제이고 의지의 문제일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천국에 대한 접속으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_사도행전20:24’

 

그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산상수훈의 열쇠입니다. 우리 인생이 기로에 서 있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질 것입니다. 천국에서 상이 크다는 것은 이 땅에서 사는 것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상 받는 것은 다릅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우상숭배로 가난과 질병으로 거의 멸망해가고 있을 때 선교사님들이 이 땅에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또한 신사참배하는 우상숭배 앞에서 모든 교회 지도자들이 죽음이 무서워 우상이 아닌 것으로 결의할 때 천국의 소망을 가진 몇몇의 목회자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그것을 반대하지 않았다면 이 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신앙생활은 의지입니다. 말씀을 듣고 의지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 의지가 곧 우리가 영적으로 자립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 당시 교회들이 얼마나 뜨거웠습니까? 그 속에서 뜨겁게 찬양하고 있는 목사가 성령충만입니까 아니면 믿음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서 홀로 수감된 주기철목사님이 성령충만입니까? 우리가 아무리 뜨겁게 찬양하더라도 인생의 기로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성령충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는 성령님을 모시는 그릇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 태어났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자신의 과거를 자양분 삼아 주님을 위해 일평생 의지를 다해 말씀을 전파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다

 

진짜 그리스도인이란 예배당 안에서의 모습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의 머리로 생각하고, 그리스도인의 손과 발로 행동하고, 그리스도인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합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공항 세관 형사들의 삶을 다룬 내용의 방송을 본적이 있습니다. 주로 밀수꾼을 잡는 일을 하는데, 밤낮으로 수고하는 모습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충격적인 장면은 그들이 조금 한가할 때 밀수품을 파기하는 일을 했는데 불에 태우거나, 망치고 부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만약 대충한다면 다시 상품으로 유통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부수는 모습이었습니다.

시계를 부수는 장면을 보는데 제 마음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젊은 세관원에게 압수된 수천만 원짜리의 시계를 부수는 것이 아깝지 않냐고 질문했습니다. 그의 대답은 아까워보이죠? 그러나 이게 아까우면 이 자리를 지킬 수 없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겨야 할 수 있죠.’였습니다. 저에게는 충격이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그것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저걸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한 세관원의 답변이 나온 것입니다. 세상의 것이 아까우면 진짜 그리스도인의 자리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욕망이 아깝거나, 금방 사라질 세상의 풍조가 아까우면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없습니다. 저들과 타협하고 살아간다면 불안한 공조를 해야 할 것입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주님의 말씀을 좇아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입니다. 그는 진짜 큰 것은 세상에 속 안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아닌 말씀, 즉 영원한 진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짜 그리스도인은 프로가 되어야 합니다. , 영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처남과 몇 번 운동을 갔는데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등산은 걸어서 가야 하는데 뛰어서 가는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기에 철저하게 몸 관리를 합니다. 그래야 또 시즌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프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어떻게 말씀을 적용하고 살아가십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은 자기관리를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직분, 직책, 소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영적인 자립이 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입니다. 신앙생활은 실재입니다. 만약 그 수준이 되지 않는 다면 세상은 변화될 수 없을 것입니다. 서해안에서 잡히는 생선이 중국어선에 잡히면 중국산이 되고, 한국어선에 잡히면 국산이 됩니다. 그런데 왜 가격이 천차만별일까요? 그것은 생선의 신선도, 즉 어떻게 관리를 했느냐일 것입니다. 하늘의 상급은 누가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태어난 환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의지가 없다면 그 삶은 신선도가 떨어질 것입니다. 혹시 가난하게 태어나서 원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혹은 어려운 환경속에 있습니까? 신앙생활에 있어서 그런 것은 모두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_삼무엘상2:30b’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_열왕기상2:2-3’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힘써 대장부가 되라 하십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요셉이 그리 살았고, 욥도 그리 살았습니다. 에스더 역시 그리 살았습니다. 오늘 말씀이 가스펠 가족들에게 평생의 말씀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진짜 축복과 형통은 어디에서 올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있을 때에도 우리를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어찌 영원토록 아름답게 책임져주시지 않겠습니까? 내가 내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존중하며 산다면 하나님이 축복하는 인생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천국을 바라보는 자, 이 땅에서 주님을 존중하고 사는 것이 상급을 받을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그리고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는 시작이 되어 우리의 작은 발걸음이 이 땅을 회복케 하는 위대한 기적의 발걸음이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인생관을 새롭게 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인생관속에서 허우적거리면 살아왔습니다. 그들처럼 사라질 욕망을 위해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주님의 사랑으로 천국을 바라보는 저희가 오늘 또다시 인생의 기로에서 말씀을 따라 새로운 인생관을 가지고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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