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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5-01-25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5년 01월 25일

제목 : 권한 후에

말씀 : 사도행전 20:1-2

설교 : 오승주 목사



2015-01-25 주일2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uOZEPw

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17708468



2015-01-25 주일 2부 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소요가 그치매

 

1. 소요 뒤에 오는 평화로움

 

항상 우리는 이 부분을 기억해야 합니다. 큰 소요 뒤에 오는 평화로움을 주의해야 합니다. 열심히 영적인 싸움을 싸워 문제가 해결되고 평안이 왔을 때 우리는 이제 되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때가 위험합니다. 그 평화로움은 달콤하고, 매력적이나 그것을 주의해야만 합니다. 에베소의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에베소의 소요는 굉장한 압박이었을 것입니다. 아데미를 섬기는 자들이 큰 세력을 형성하여 사람들을 선동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몰아내고자 압박하였습니다. 그 압박은 작은 압박이 아니었습니다. 매우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런 두려움을 주는 소요가 끝난 것입니다. 그때 찾아오는 평화로움, 안도감을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2. 평화로울 때 찾아오는 영적 무기력

 

바로 그때 찾아오는 것이 영적 무기력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소요가 무사히 지나갔으면 영적으로 더 성숙해질 기회이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는 주의를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가정복음화라든지 목회자가 되었다든지 어떤 위치에 도달 했을 때 그런 영적 무기력이 찾아온 것을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영적무기력은 어떻게 찾아옵니까? 그 과정은 꼭 말씀이 마음속에 자라는 과정과도 비슷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에 말씀이 하나도 없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씨가 뿌려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이 길가와 같은 마음이라서 씨앗이 바람에 휙하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아스팔트에 떨어진 씨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돌밭에 떨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잠시 뿌리를 내리는가 싶더니 뿌리가 깊지 않아서 햇볕이 얼굴을 내밀자 타서 없어졌습니다. 때로는 씨앗이 가시덤불이 가득한 밭에 털어지나 금세 말라버립니다. 그런데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의 씨앗이 그런 마음 밭에 떨어지면 , 그렇구나하고 전심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커다란 나무가 됩니다. 바람이 불어도 쉽게 뽑히지 않고, 시절을 따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나면 그 씨앗이 다시 땅에 떨어져 같은 종류의 나무들로 숲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머릿속에는 하루에 약 십만 가지의 생각이 오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들 중 상당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죄악된 것들입니다. 그런 죄의 씨앗이 의식과 무의식속에 계속 마음밭에 뿌려집니다. 만일 그것이 뿌리를 내린다면 어느 순간 죄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한껏 자라서 밖으로 드러날 정도가 되면 실제로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런 죄가 마음을 지배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영적인 무기력입니다.

영적인 무기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점차 멀어지도록 만듭니다. 싫증을 주기도 하고, 태만을 주기도 합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굉장히 부지런하고, 올바른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인데 그것에 대해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에 대한 반감을 만들어 총체적으로 하나님을 반항하는 역할을 합니다. 영적인 무기력을 무서운 것입니다.

 

3. 영적 무기력의 결과

 

처음 죄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날 때 그 최초의 것과 싸워서 투쟁하는 것이 힘든 게 사실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 후에 뒤따라오는 모든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보다는 훨씬 쉽다_벤저민 프랭클린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적무기력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자신을 성찰하는 삶은 유별나게 율법적이고, 복음에 배치된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자신의 영혼이 무기력하다는 것을 알고도 그러한 상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리고는 그 결과에 대해 뒤늦게 후회하곤 합니다. ‘아니, 매주일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내가 어떻게 이런 죄에 빠지게 되었을까? 바보같이 왜 그렇게 쉽게 죄에 굴복하게 되었을까?’

영적인 무기력의 순간 찾아오는 죄는 나도 모르게 받아드려지며 뿌리를 내립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파괴적인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오랜 세월동안 예배시간에 그냥 멍하니 앉아서 예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무엇을 들었는지 되새기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기는커녕 예배가 끝나고 일어날 때 들었던 말씀조차 생각나지 않습니까? 기독교인이라 하면서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 혹은,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는 무관심하지는 않습니까? 그러한 삶은 영적인 무기력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 무기력은 영혼과 마음에 총체적인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죄와 손잡은 영적인 무기력은 마음에 영향을 주어서 생각은 부주의하게 만들고, 정서는 죄를 미워하지 않게 만듦니다. 의지는 죄와 더불어 싸울 수 있는 굳셈을 상실하도록 만듭니다.

 

. 권한 후에

 

1. 제자들을 불러_사도행전20: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_사도행전20:1’

 

사도바울의 사역을 보면서 신앙의 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사도바울은 소요가 일어났을 때보다 소요가 그친 후에 중요한 사역을 하게 됩니다. 바로 제자들을 따로 부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에베소에서 제자들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저는 놀랍습니다. 여러 해 동안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서 제자들이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요를 겪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소요가 그친 후에 바울은 제자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권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짧은 한 줄의 말씀을 보면서 제 사역의 많은 답들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제 성향상 사람에게 권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신앙생활도 못하고, 어려움에 빠져 지내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하였는지 모릅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하면서 꼭 내린 결단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오면 신앙생활만큼은 제대로 가르치고 제대로 하게 권면하자입니다. 물론 마음은 그렇게 먹어놓고 또 권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제가 약한 것입니다. 사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인정받고 좋은 목사가 되려 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을 권해서 신앙생활을 잘하게 만들어야 하는 책임감을 다하지 못한 목회자의 죄가 아닌 가 생각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마다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큰 소요든 작은 소요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시간표 뒤에 우리는 반드시 권면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한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소요 뒤에 무엇이 그들을 인도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 여러 말로 권하고_사도행전20: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_사도행전20:2’

 

놀라운 것은 에베소의 제자들뿐 아니라 다른 지방의 제자들까지 권면합니다. 지방마다 언어가 달라 말이 달랐는지, 혹은 언어가 아닌 여러 말이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제자들에게 중요한 말씀을 전달한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도움을 청하면 이유 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도움을 청하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입니다.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대다수가 영적인 무기력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시간표라는 것이 있는데 그 시간표를 제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지역마다 제자들을 세웠습니다. 미션홈장이라는 직분, 지교회를 담당하고 있는 직분은 결코 작은 직분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돌아보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소요가 있을 때, 혹은 그 소요 뒤에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여러분은 항상 그들에게 여러 말로 권면하셔야 합니다. 그들의 말로, 혹은 그들이 알아듣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영적 집중력

 

사도바울이 무엇을 권면했을까요? 추측 외에는 알 길이 없습니다. 죽은 자처럼 사는 것이 영적인 무기력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생명이 있다는 것은 깨어있는 삶입니다. 어떻게 행할지 자세히 주의 하여야 하고 지혜 있는 자처럼 악한 세대 속에서 하나님의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영적인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무기력의 반대입니다. 우리 인생에 수많은 사건들, 수많은 상황들, 수많은 인간관계들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에베소의 아데미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세를 과시하였습니다. 정치권력도 이용하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그의 제자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자 했는지 모릅니다. 바울은 제자들에게 당부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_에베소서5:14-21’

 

이것이 영적인 집중력입니다. ‘자세히 주의하여하나님 백성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여러분 영적인 집중력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집중력이라 함은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평소에 게으르게 지내지만 중요한 일이 생길 때는 집중을 하게 됩니다. 내 자녀를 키우는 데도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순간적으로 자녀를 놓치면 어떤 위험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부모는 그래서 항상 자녀에게 집중합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절대 공부를 잘할 수가 없습니다. 뭐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영적인 일에는 집중하지 않으려 합니다. 영적인 집중력은 무시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크리스천입니다. 사단이 우리 사이에 가라지를 뿌려놓았기 때문입니다. 뭐든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문제는 왜 집중이 되지 않습니까? 영적 집중력이 없으면 그냥 되는대로 살아갑니다. 주일날 예배에 나오는 것도 하나의 집중력입니다. 무기력한 사람은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그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권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권면해야 합니다. 영적인 무기력에서 벗어나십시오. 집중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다 놓치게 됩니다. 영적인 집중력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제자들이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길입니다. 그 집중력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게 만듭니다.

 

주님 우리에게 있는 영적 무기력을 벗어나 환경과 상황과 인간관계를 뛰어넘어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영적 집중력을 허락해주세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는 힘을 허락해주세요. 그리하여 내 자신 뿐 아니라 내 주변의 지체들을 돌볼 수 있는 영적인 지도자가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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