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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5-04-26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5년 04월 26일

제목 : 예수님의 요청 - 믿음

말씀 : 마태복음 17:9-20

설교 : 오승주 목사


2015-04-26 주일1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FnUaOL

영상 다시보기 https://vimeo.com/126025303



2015-04-26 주일1부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절대 안 되는 이유_로마서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_로마서3:23’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난 다큐였습니다. 영상이 서론이라 생각하고 오늘 말씀을 연결해서 들으시면 될 듯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청하시는지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요청하셨습니다. 왜 이것이 중요하냐하면, 인간은 다른 것으로 절대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안 되듯이, 나무가 땅에서 뽑히면 안 되듯이 절대 안 되는 이유를 안다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절대 안 되는 이유를 기록 한 것이 구약성경입니다.

인간이 가진 원죄가 무엇입니까? 주인을 상실한 것입니다. 주인을 상실한 그들은 선민사상을 가졌습니다. ‘내가 최고야 나만 잘되면 된다뭐 이런 식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착각입니다. 네피림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죄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온갖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는 사상으로 멸망해버렸습니다. 주인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새로운 주인이 나타났는데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교묘하게 문화로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공하고도 망하고, 실패하고도 망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육신적인 동기를 가지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게 뭐지요? 그게 종교입니다. 그게 선행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깨닫게 하시 위해 속국이 되게 하시기도 했고, 때론 고난을 주시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절대 안 되는 이유를 깨달아야 신앙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구약이 끝나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우리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절정이 곧 예수님입니다. 저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1. 무엇에 관심이 있는 가_마태복음17:9-13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요한 인 줄을 깨달으니라_마태복음17:9-13’

 

우리는 무엇에 관심이 있습니까? 사실 여러분이 예수를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세상적으로 보상받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희생하라 하고, 오히려 베풀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예수 믿는 자로 살지 않는 것을 당연시 합니다. 하나님 앞에 반항심을 가지고 나옵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올 때도 감사함과 기쁜 마음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나한테 해준 것이 하나도 없지만, 나는 그래도 주일날 교회는 갑니다라는 아주 방자한 마음으로 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습관화되고 골수에 뿌리가 박혀서 자기가 방자한 줄 모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하면 여러분 다른 사람을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런 요구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했던 신앙고백과 그 열심에 대해서 보상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지위, 세상적인 능력을 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주를 위해서 일생을 바치겠다고 하는데도 아무것도 안주시니 내가 그냥 이렇게 지지고 볶으며 살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하소연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왜 오셨는지 날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정도면 됐지 않을까? 이정도 깨달았으면 됐지 이런 마음입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어떤 자부심은 있어서 아는 척했는데 실제로는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관심이 있습니까? 과연 저는 무엇에 관심이 있나요? 그저 축복받아야 한다고, 남보다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에게 왜 오셨는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는 현장_마태복음17:14-17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더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_마태복음17:14-17’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곳이 세상입니다. 그들은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면서 하나님이 주신 답을 쳐다보지는 않습니다. 아니 답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놀라운 것은 제자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나 안다니나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자들에게 왔으나 제자들도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신자들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전부 현상과 증상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깐의 체험에 울고불고 감사하고 그러면서 어느새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러다보니 불신자들에게 아무런 답을 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현상과 증상이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 보셔야 합니다. 이것을 보셔야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하면서 실상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답이 진짜인데 그것은 원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끈임 없는 불평과 원망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니 인생이 늘 답답합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책망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도대체 누굴 믿고 있냐? 도대체 누굴 따르고 있냐? 도대체 누구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냐? 내가 너희들에게 왜 왔느냐?

 

3.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초점을 모르는 제자들_마태복음17:19-20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거시 없으리라_마태복음17:20’

 

성경에는 초점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성경의 초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초점은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생각해보십시오. 자녀가 고통당하고 있는데 밥이 잘 넘어가는 부모가 있을까요? 자녀가 방황하고 있는데 편히 잠들 수 있는 부모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선우가 밤새 열이 나고 아픈데 부모가 TV나 보고 그럴 수 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기 위해 직접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대신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믿어달라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믿음 곧, 겨자씨 같은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 깨달으니까 화를 내시는 것입니다. 중원이가 열이 나서 해열제를 먹으면 좀 괜찮겠는데 안 먹겠다고 짜증내고 화를 내면 어떻게 합니까? 때려서라도 먹이잖아요. 믿어달라는 것입니다. 제발 세상의 것에 속지 말고 나를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에 반응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초점입니다. 그걸 모르니 예수님이 답답하셨지요. 제자들은 아직도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저 예수님처럼 능력을 나타내지 못한 아쉬움만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아직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던 것입니다.

 

. 예수님의 요청-믿음

 

1. 구원은 어떻게 얻는가_로마서9:30-3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마를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셨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_로마서9:30-32’

 

우리는 이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요청하는 것을 조금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왜 믿으라고 하십니까? 단순히 병이 치유되는 것이 중요한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져서 무엇을 주시려고 하십니까.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사람들은 전부 믿음을 주신 이유를 잘 모르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왜 이렇게밖에 안 해주세요? 저 친구는 저렇게 응답해주시면서 나는 이것밖에 안 해주세요? 그래도 예배는 드려 줄게요. 이런 식입니다. 본질을 놓쳐서 그렇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왜 교회에 가는지, 왜 예배를 드리는지 본질을 놓칩니다. 그러다보니 돌에 부딪히는 것이지요. 자꾸만 뭔가 걸립니다. 행위를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을 선물이라 하셨습니다.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초점이 이것입니다. 절대 안 되는 이유를 알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얻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2. 믿음의 본질_요한일서4:7-12, 마태복음5:3-1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_요한일서4:7-12’

 

그렇다면 믿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믿음은 사랑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자기중심적으로 살고, 세상에서 보상을 요구하고 사는 자리에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온 자들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하나님 앞에 보상을 기대하고, 하나님의 기쁘심을 소원으로 삼고 사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지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거룩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감기가 들어서 기침이 나듯이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그 본질이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이것이 믿는 자의 근본 내용이며, 신자라는 존재의 인격과 그 본질의 특징입니다.

이것을 보고 하나님을 닮아간다라고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원하고 바라는 것은 부모를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사랑입니다.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십자가가 부끄럽지 않으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우릴 사랑하셔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이요? 사랑하기에 드리는 것입니다. 아깝지 않습니다. 아니 아까울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내 삶을 드려서 변화시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의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_마태복음5:3-12’

 

유대인들은 자기 치장을 위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 신앙을 치장한 것뿐입니다. 제자들의 모습이기도 하였습니다. 저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자꾸 치장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습니다.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니 남는 것은 상처뿐입니다. 그래서 그 상처로 하나님을 더 멀리 했습니다. 겉으로는 가까이 했지만 갈수록 멀어집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너무 가슴 아프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을 외면하니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십시오. 그것이 신앙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왜 제자들을 책망하셨을까요? 능력발휘를 못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셨는데 제자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으니 그랬습니다. 여러분 신앙을 점검해보세요. 심령이 가난하면 복이 있다 하셨고, 의에 주리면 복이 있다고, 의를 위해 박해를 받으면 천국이 있다고, 애통하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합니까? 고생해라가 아닙니다. 내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방법을 내려놓고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니 가능합니다. 세상이 병들어 하나님이 없다하나 우리가 주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면 가능합니다.

 

3. 본질적인 싸움을 하라_로마서5:1-8, 로마서10:8-9,15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는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_로마서5:1-8’

 

믿음은 본질적인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자녀됨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놓아두고 지금 어떤 싸움을 하고 있습니까? 어느 시대나 그랬듯이 하루에 기도 몇 시간해? 하루에 성경 몇 장봐?’ 이런 것은 훈련과 연습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사용하기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너희 교회는 몇 평이야? 너희 교회는 목사님이 몇 명이야? 너희 교회는 프로그램이 뭐야?’ 그것은 각 개인이나 각 교회마다 모두 다른 것입니다. 증상과 현실은 본질을 확인하려 하는 것이지 그것이 본질을 대신 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자꾸 치장으로 갈려고 합니다. 어떤 행동으로 신앙의 본질을 오해합니다. 여러분 다른 것으로 여러분을 스스로 속이지 않기 바랍니다. 본인만 속는 것이 아니라 남까지 속이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만이 본질입니다. 사랑하면 말씀도 귀하고, 예배도 귀합니다. 사랑하면 교회도 귀합니다. 그 사랑의 표현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소망이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_로마서 10:8-9’

 

우리의 남은 인생이 주님을 시인하는 인생되길 바랍니다. 사랑은 표현이 중요합니다. 저는 잘 표현하지 못하는데 주님은 우리에게 표현하길 원하십니다. 저는 그래서 주님을 날마다 시인합니다. 인생의 중요한 시간표마다 주님을 시인합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_로마서10:15’

 

그런 우리가 이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발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을 찾아온 병자들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몰랐습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기적을 베풀까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삶에 주님의 사랑이 있길 바랍니다.

 

주님 예수님이 요청하시는 것은 그저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대한 믿음임을 깨닫습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심을 믿음으로 누리게 하여주옵소서. 우리가 그 사랑으로 우리의 현장을 바라보며 섬기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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