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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5-05-03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5년 05월 03일

제목 : 눈에 안보이는 믿음의 시스템

말씀 : 마태복음 17:22-27

설교 : 오승주 목사


2015-05-03 주일1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JJJKf0

영상 다시보기 https://vimeo.com/126707346



2015-05-03 주일1부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노예, 속국, 포로가 되었던 이유_스가랴1:2-4, 말라기1:2

 

오늘 어린이 주일입니다. 요즘 예배들을 살펴보면 아이들이 떠들거나, 돌아다니면 눈초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때문에 젊은 엄마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아이들을 가르쳐서 함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조금 떠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아이들이 예배에 함께 찬송을 부르고 함께 성경을 찾아보고 대화하면서 점차 예배에 함께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예배는 누구나 함께 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가 심하게 울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예배를 가르쳐야 합니다. 인내를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십시오. 앞으로 교회를 디자인할 때는 더욱 연구하여 태영아 부모님들이 더욱 편하게 이질감 없이 함께 예배드리도록 할 것입니다. 예배는 남녀노소, 어른아이 상관없이 함께 어우러져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을 몰라 속국이 되고, 포로가 되었으며, 노예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관습을 지키다가, 내 이익을 챙기다가 속국, 포로, 노예가 됩니다.

 

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게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_스가랴1:2-4’

 

왜 구약시대가 어두움으로 끝났을까요? 악한 행위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선조들의 악한 행위를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신앙은 오늘 하는 것입니다. 오늘 갱신하고 개혁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복음이라는 위대한 주제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배웠습니다. 그 위대한 유산이 얼마나 대단한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깨달음들이 제 삶에 지속되어왔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이라는 아주 보편적인 주제에 관해서는 지속이 잘 되지 않아 늘 마음 한켠에 고민이 계속 된 것이 사실입니다. 들었던 복음에 대해 현실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제 고민은 복음에 대해 동의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잘 배워 마음에 담았으나, 배운 복음을 실제로 실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를테면, 옳은 것을 아는 것과 옳게 사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마태복음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복음이 현실에서 납득이 되고 드러나게 하는 것이 역사에 있다는 사실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시간을 말합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살아갑니다. 역사 속에서 살아갑니다. 삶은 전후가 있는 과정이 역사입니다. 옳은 것을 안다고 해도 옳게 되는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마태복음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간차를 고려하지 못하면 신앙은 삶을 포괄하지 못한 채 명분이나 윤리적 덕목으로 왜소화됩니다. 메시지를 한번 들으면 속이 시원하고, 기도한번 하고 나면 속이 시원한,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의 삶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외적 증거나 유능하게 해내야 할 임무 같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 역사 곧 하나님의 구속사적 시간 속에서 구원받은 자에게 허락된 위대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초대하신 영원이라는 시간표 속에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명예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늘 문제와 해답을 왔다갔다 하면서 삶에서 복음의 위대한 주제를 녹여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_말라기1:2a'

 

우리가 포로가 되고, 노예가 되고, 속국이 되는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했고, 받아드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죄송하지만, 우리도 역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고 되물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것은 애굽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통해 왜 그 이유를 더 자세히 묵상해 보려 합니다. 왜 속국이 되었고 왜 포로가 되었는지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을까요?

 

1. 십자가 사건_마태복음17:22-23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_마태복음17:22-23a'

 

드디어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을 직접 언급하십니다. 그것도 구체적인 예언을 하십니다. 구약성경 내내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구속사의 절정이자,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가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 이야기를 한참동안 제자들과 훈련하신 후 다시 갈릴리에 모여 나누셨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이것이 성경의 주제이고, 인류의 주제입니다.

구약성경 내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사건을 설명하시고 계십니다.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떠나 온전히 육신적인 존재가 된 인간은 영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인간은 하나님과 수직적인 관계로만 제한적인 만남을 허락받았습니다. 왜 그렇지요? 구약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때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수도 없이 반복되는 축복과 재앙 곧, 노예와 속국, 포로가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그런 운명을 바꾸시기 위해 거대한 역사적 계획을 세우고 계셨던 것입니다. 완벽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구약 내내 오실 메시아를 준비하셨습니다. 그 계획의 완성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우리를 창세전에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시려고 목적하신 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이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신앙생활을 늠름하게 살아야 합니다. 겁내지 말고 넉넉하게 살아도 됩니다. 이 구원의 역사는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역사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사건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속에 접속되어 살아가는 것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닫는 것을 은혜라 합니다.

 

2. 매우 근심하더라_마태복음17:23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_마태복음17:23b'

 

그런데 제자들은 반대로 근심했습니다. 그럴만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너무도 잘 압니다. 요즘 새가족분들을 만나니 그걸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제자들이 근심했습니까? 한 단계를 못 넘어섭니다. 그 단계를 넘어서는데 시간이 필요하지만, 어떤 분들은 아예 시도를 못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예전에 복싱 챔피언이었던 홍수환씨가 카라스키야한데 한 대 맞고 뻗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일어납니다. 또 넘어졌습니다. 그렇게 4번 넘어졌는데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겼습니다. 그래서 45기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05기라 말이 있습니까? 그런 말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4번 넘어졌기 때문에 5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을 통해 구원받은 것이 과거의 일이라면 우리는 현재, 오늘을 이기기 위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십자가의 승리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많습니다. 남편이 그렇다, 자녀가 그렇다, 경제가 그렇다, 회사가 그렇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전부 주일날 교회 나오는 것으로 기준을 삼으니 그렇습니다. 누가 교회 나오랍니까? 신앙생활을 하시라는 것입니다. 근심하지 말고 믿고 순종하여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났는데 또 다시 과거로 돌아갈 근심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저 한고비, 한고비 넘어서면 어느새 승리의 자리에 와 있을 텐데 그 한고비가 두려워 근심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속국이 되고, 포로가 된 것입니다.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 하나님 나라의 이해

 

1.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_마태복음17:24-26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_마태복음17:24-26‘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이 본문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도 세금을 잘 내자 그런 본문이 아닙니다. 무엇입니까? 세상에 찌들어있는 제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세상의 방식으로 설명을 하십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을 유지하기 위해 성인이 된 남자는 누구든지 반세겔을 세금으로 냈습니다. 반세겔은 그 당시 약 이틀 정도의 임금입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니 세금을 걷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물어봅니다. 예수님은 왜 세금을 내지 않느냐라고 합니다. 이런 현상 역시 예수님이 의도한 사건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베드로에게 물어봅니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이 세금을 받는 임금이 누구에게 이 세금을 받느냐 아들이냐 타인이냐 무슨 말입니까? 임금의 아들에게는 세금을 안 받는 다는 것입니다. 아들들은 세금을 면한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겠습니까? 여러분의 하나님의 아들들입니까?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들이 아닙니까?

 

2. 네가 바다에 가서 _마태복음17: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_마태복음17:27’

 

그런데 뒤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베드로보고 바다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낚시를 하라고 합니다. 그 속에 돈 한 세겔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너와 나의 이름으로 내라고 하십니다. 영적인 자녀가 세상에서 이렇게 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상에서 몫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선교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의 지금 현장 곧 힘들면 힘든 현장, 불신자 현장이면 불신자 현장 그곳에서, 네 바다에서 건강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곳에 응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기서 이기셔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눈에 안보이는 믿음의 시스템

 

1. 불신자가 못 본 것을 보는 믿음_히브리서11:1-2,22,25-26,30-3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_히브리서11:1-2’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 곧 하나님의 시간표라는 커다란 믿음의 시스템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그렇게 승리한 믿음의 증인들에 관한 성경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다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받아 누릴 수가 있을까요? 우리가 믿음이 없다면 어찌 육신적인 것에서 벗어나 영적인 삶을 추구하고 살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만일 믿음이란 것을 선물로 주시지 않았다면 저 천국을 바라보고 살 수 있을까요? 믿음이 없었다면 십자가 사건은 역사의 그저 그런 영웅전일 뿐이었을 것입니다. 끔찍합니다. 그저 아무런 소망도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믿음이란 선물을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_히브리서11:22’

 

그런 믿음의 증인들입니다. 그들은 불신자가 못 본 것 즉, 십자가 사건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부르심을 바라보았습니다. 고통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본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요셉입니다. 요셉은 노예에서 애굽을 보았습니다. 노예생활을 하면서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가나안땅을 곧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니 노예로 살았지만 결코 수직적인 관계에서 머물러 퇴보되는 신앙생활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으로 진보하는 신앙이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기 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_히브리서11:25-26’

 

그뿐 아닙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그는 왕궁에서 편안한 생활을 했을 것인데 자기 민족이 우상숭배로 인해 재앙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자신은 무능한데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란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적인 싸움을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자꾸 넘어지고, 쓰러졌지만 그 자리에서 계속 다시 일어났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상주심을 바라본 것입니다.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_히브리서11:30-31’

 

기생라합을 보세요. 기생 라합은 세상의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여리고 성에 살았지만 그곳이 곧 멸망할 것을 보았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세상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기생라합은 그 기회를 붙잡았습니다. 당장 위기인 듯하고, 당장 손해인 듯하지만 하나님은 멸망 속에서 기생라합의 가문을 언약의 가문으로 구원하셨습니다.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이 불신자들이 못 본 것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불신자가 못 본 것을 보았습니다.

 

2. 눈에 안보이는 믿음의 시스템_히브리서12:8-13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_히브리서12:8-13’

 

믿음의 시스템은 눈에 안보입니다. 불신자들이 볼 수 없습니다. 세상이 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장사를 해도 맛집은 다릅니다. 천주교가 길거리에서 전도하시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늘 어려운 이웃을 섬깁니다. 저희 동네 천주교 성당은 지역주민이 결혼식을 한다 할 때 무조건 개방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믿음은 눈에 안 보이는 시스템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눈에 안보이지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것을 1차원적으로 적용했습니다. 하루에 성경은 몇 장 읽는다. 강단말씀을 묵상한다. 기도는 어떻게 한다. 이제는 더 진보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더 진보했습니다. 저의 믿음의 시스템에 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영광이고 찬송이 되어야 하는데 절대 불신앙은 하지 않겠다. 이런 것입니다. 불신자들을 살리기 위해 내 삶은 항상 예배가운데 있을 것이다. 예배가 삶의 중심이다. 그 중심으로 은혜를 받고 힘을 얻어 주중에는 불신자를 살린다 이런 시스템입니다. 곧 저만의 신앙 로드맵입니다.

 

3. 신자의 명예_베드로전서2:9-10

 

여러분 오늘 십자가 사건을 볼 수 있는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제 근심이 아니길 바랍니다. 왜 근심합니까? 무엇인가 세상에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는데 무엇인가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을 반복하지 않으렵니다. 저는 십자가의 길, 영광스런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이 제 인생의 최고 명예라 생각합니다. 감히 나 같은 인생이 주님께 선택받아 절대 믿지 않는 자들은 알 수도 갈 수도 없는 이 길을 가는 것이 최고이 명예가 아닙니까? 바울이 그것을 알았습니다. 베드로가 훗날 이 사실을 깨달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_베드로전서2:9-10’

 

하나님의 나라에 살렵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세상에서 불신자를 살리는 증인으로 살렵니다. 노예가 되고, 속국이 되고, 포로가 될 때 주님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가스펠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모든 자리에서 신자의 명예를 지키길 바랍니다. 그것은 단순하게 불신자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더 이상 근심하는 신자가 아닌, 이제 십자가의 그 크신 사랑을 받아 남은 인생이 영광스러운 신앙의 길이 되도록 크신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는 한주가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 제자들처럼 근심하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게 해주세요. 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있습니까?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누리는 신앙생활로 진보하게 해주세요. 그래서 내가 있는 현장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몫을 다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참된 축복을 누리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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