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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5-05-10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5년 05월 10일

제목 : 천국을 보여주는 인생

말씀 : 마태복음 18:1-14

설교 : 오승주 목사


2015-05-10 주일1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RrjqZg

영상 다시보기 https://vimeo.com/127384333




2015-05-10 주일 1부 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그들의 관심_마태복음18:1-2,요한복음8:31-32

 

한 주간 제가 무엇에 관심이 있나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농구를 좋아합니다. 음식도 좋아합니다. 물론 책 읽는 것도, 글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예쁜 엽서도 좋아합니다. 또 있습니다. 영화도 좋아합니다. 이런 것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명예, 영향력,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진짜 관심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깊게 생각해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래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관심들은 너무 지나치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내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하나님뿐입니다. 물론 내 안에 죄 때문에 자주 방해받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내 인생의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래서 내 삶의 중심과 목적은 늘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구에게 관심이 있을까요? 바로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죄 때문입니다. 그 죄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단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 죄입니다.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이 차단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불가항력적이다라고 합니다.

몇 해 전에 한 조사기관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1번이 무엇인줄 아세요?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바로 엄마입니다. Mother입니다. 아마 2번이 아빠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닙니다. 2번이 열정인가 그렇습니다. 3번은 사랑입니다. 이상하게도 아빠라는 단어는 100위안에도 없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해가 됩니다. 제가 어릴 적에 아빠는 자기 상처를 못 이기고 늘 술을 드시러 가셨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몸이 부서져라 일하셨습니다. 이유는 저를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학교도 보내야 하고, 남들이 보내는 보이스카우트, 수학여행도 보내야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결정적일 때 사라지셨습니다. 저도 남자이지만 엄마의 사랑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랑은 불가항력적입니다. 엄마가 하나님을 알게 되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오로지 자녀들이 예배드리길 기도하십니다. 예수 믿길 원하십니다. 왜 그렇지요?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천국을 맛보는 곳입니다. 예배 때마다 치유가 일어나고, 예배 때마다 천국을 다시금 깨닫고, 예배 때마다 위로함을 받고, 예배 때마다 말씀으로 인생의 그림을 그리고, 예배 때마다 힘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의 관심도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공격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쉽게 인간을 공격합니다. 저에게도 싫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아서 공격하고, 짓밟고, 마음껏 미워하고 고통을 주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람도 귀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나를 위해서만 십자가를 지신 줄 알았는데 온 인류를 위해 지신 것이었습니다. 그걸 깨닫는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신앙생활의 기준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_마태복음18:1-2’

 

지난 주 말씀에 이어서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물었던 것은 다른 의도가 있었습니다. 제자들끼리 논쟁을 하였습니다. '천국에서 누가 더 크냐? 그럼 예수님께 물어보자!' 이랬습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아직도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의 관심이 어쩌면 이렇게 유치할까요? 우리도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이 꾸짖어 믿음을 가지도록 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_요한복음8:31-32’

 

저는 신앙생활을 불신자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늘 갈등이 많았습니다. '저 인간보다는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저 정도는 응답받아야 하는데'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낙심도 많이 했습니다. 다시 말해 기복이 심했습니다. 기복이 있다는 말은 제 신앙생활에 대한 어떤 기준이 없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언제 뛰어넘은 줄 아십니까? 제 인생의 최고 가치가 하나님임을 깨달았을 때였습니다. 내 인생의 최고 가치가 예배가 될 때였습니다. 바로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해주신 답변처럼 될 때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의 황당한 질문에 어린아이 하나를 데리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조금 이상합니다. 천국에서 누가 큰지에 대한 답변이 아니고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입니다.

 

. 너희가 돌이켜

 

1. 어린 아이들과 같은 자_마태복음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_마태복음18:3’

 

예수님의 답변은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의미이지요? 우리가 철없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일까요? 저는 이 말씀이 주는 의미를 찾기 위해 이번 주 내내 주석을 뒤지고, 수많은 설교를 살펴봐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이 시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화요일 밤에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날 성준이네 가정에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솔직히 이 설교를 들으신다면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함께 했던 분들이 그날 점심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더러웠고, 어찌 해야 할지 모를 만큼 상황이 녹록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두 자기 집처럼, 아니 자기 집이라도 그렇게는 못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그냥 봉사활동이었으면 못했겠지만 우리는 계속 기도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서 섬겼습니다.

그날 밤 성준이 어머니에게 전화가 오셨습니다. 그리고 문자도 왔습니다. ‘선생님, 목사님 어찌 이런 일을 하셨습니까. 진짜 부끄럽습니다. 제가 이렇게 살았네요. 희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손가락질만 하고, 다들 말만하고, 생색만 내는데 진짜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해봤습니다.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됩니다. 어린아이는 손익관계를 따지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는 조건 을 따지지 않습니다. 조금만 커버리면 아이들이 변화됩니다. 신기한 것은 도덕을 배우고, 윤리를 배우는데 도덕과 윤리를 지키기 어려운 어른들이 됩니다. 세상에서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고 배운 어른들이 나쁜 짓을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것을 배우지 않아도 큰 범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모든 세상적인 것에서 돌이키게 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됩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어린아이가 됩니다. 그래서 구원받지 못한 내 부모, 형제를 위해 조건 없이 헌신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저 아이들을 위해 이익과 손해를 따지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사랑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사람으로 돌이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처럼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2.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한 자_마태복음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_마태복음18:5’

 

두 번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게 쉬운 말 같으나 정말 어려운 말입니다.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 다음단계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라는 말은 천국에 한 영혼을 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려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어야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_마태복음18:4’

 

어린아이는 자기를 낮추지 않습니다. 이미 낮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어린아이는 좋아합니다. 누구라도 어린아이 앞에서는 화를 내거나, 협박하거나, 가식적이거나 할 수가 없습니다. 민준이, 세빛이, 찬송이 앞에 가보십시오. 무슨 말이지요? 자기를 낮추면 어린 아이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 돌이켰다면 이제 우리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낮추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못내 불편하고 힘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 못하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낮아질 수 있는 배경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낮아지셨을까요? 저와 여러분을 천국으로 영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절대 낮아지려 하지 않습니다. 자존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낮아질 때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3. 실족케 하지 않는 자_마태복음18:6-10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삼가 이 작은 자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_마태복음18:6-10’

 

실족케 하지 않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실족케 합니다. 알게 모르게 그렇게 합니다. 쉽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사실 상처를 주는 사람보다 상처를 받는 사람이 문제이긴 합니다. 그것은 늘 비교하는 마음, 늘 주님을 사랑하기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와 여러분은 실족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함부로 남의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다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모른 채 내 기준으로 사람들을 평가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실족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의 진정한 뜻은 우리가 구원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한다는 뜻도 있지만 자신에게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만일 눈이 실족하여 구원받지 못한다면 눈을 빼버리라 합니다. 만일 손이 범죄하여 구원받지 못하면 손을 잘라버리라 합니다. 그것은 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바로 나에게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실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처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실족하고 상처받습니까? 마음속에 다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세상의 방식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실족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늘 우리를 실족하게 만들려 합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실족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도 죄입니다. 하나님이 소중하다 하는 데,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데 우리는 우리 인생을 늘 실족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지만 자기 자신을 함부로 해서도 안 됩니다.

 

4. 잃어버린 자를 찾는 자_마태복음18:12-14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_마태복음18:12-14’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한 영혼을 살리는 것에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 곧 구원받은 자는 천국을 안다는 말이고 구원이 무엇인지 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영혼을 그저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인생을 통틀어서 잃어버린 영혼을 찾게 됩니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것이 신자가 가야할 신앙의 길입니다. 그 길은 아무나 갈 수 없습니다. 명예로운 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됩니다. 우리가 여명원을 하는 이유이고, 가스펠교회를 세워가는 이유입니다. 사람을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대신 길 잃어버린 한 영혼을 섬기십시오. 그 사람을 주인되신 하나님에게 안내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단순히 전도 많이 해서 교회 부흥시키자가 아닙니다. 저는 제 인생이 복되다 생각합니다. 감히 저 같은 사람이 천국을 소개하고 복음을 말해줄 수 있고, 예배를 선물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돈을 쓰고 공부를 하는 이유도, 설교를 하면서도 그것을 생각한다면 진짜 복된 인생이 아닙니까?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살아도 그저 명예요, 돈이요, 행복 찾아 사는 것이 전부인데 우리 인생이 구원받아 또 다른 사람을 주님께 안내할 인생이 되었다는 것은 정말 축복입니다.

 

. 천국을 보여주는 인생

 

1. 새로운 갈등_창세기22:12,15-18

 

천국을 보여주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생기는 갈등이 있습니다. 여러분 천국에서 누가 크냐가 중요할까요? 아닙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그런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모두 내가 더 잘나야 되고, 내가 더 빛나야 되고, 내가 더 알아줘야 하는 가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빛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빛 되신 주님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 더 잘나고 못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됩니다. 그러면 내 인생을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낮아지고, 섬기게 되며, 실족케 하지 않는 인생 곧 구원하는 인생이 됩니다. 그때라야 빛이 납니다. 주님이 내 인생 중에 빛으로 드러나십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성경의 수많은 인생들을 하나님이 보여주십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_창세기22:12’

 

그가 처음에는 잘못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셨는데, 하나님이 날 구원하시겠다고 하셨는데 환경을 보니 금방 까먹습니다. 어려움에 부딪히니 그 구원보다 당장 어려움이 더 문제 같아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 과정은 드라마입니다. 여러분도 이삭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아시지요? 모진 세월, 오랜 세월 다 견디고 견디어서 아들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때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입니까?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을 바치랍니다.

우리는 때론 우리의 계획이 크다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위대하다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훨씬 더 선하고 위대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드렸습니다. 아들을 죽이기 위해 장작을 패고, 불을 지필 준비를 하고 칼을 아들 목에 가지고 갈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_창세기12:15-18’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의 로드맵이 있었습니다. 내 인생이 하나님꺼라고, 하나님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갈등이 오는 것입니다. 그 갈등은 거룩한 갈등입니다. 새로운 갈등입니다. 예전에는 그런 갈등을 안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셔야 합니다. 예배를 드려야 하나, 놀러 가야 하나? 아 경제가 어려운데 예물을 해야 하나? 그냥 써야 하나? 아 저 인간 욕하고 싶은데 축복해야 하나 저주해야 하나? 이런 갈등이 계속 됩니다. 저는 그런 갈등을 다 거쳤습니다. 저는 이제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왜 부르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그것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아내가 불신앙 할 때도, 자기 조카가 위기에 처했고 죽을 때에도, 자기 목숨, 재산을 빼앗길 위기에도, 자기 사랑하는 아들을 죽일 때에도 마음에 새긴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이 전부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갈등에서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2. 천국을 보여주는 인생_고린도후서6:7-10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_고린도후서6:7-10’

 

힘들고 힘겹습니다. 불신자들처럼 맘대로 못하니 답답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시지요? 우리의 모습이 때론 바보 같습니다. 저렇게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찬양만 한다고 되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됩니다. 그 찬양의 대상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을 위해서 낮아지면 바보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합니까? 아닙니다. 그 영혼이 주님께 돌아와 함께 기쁨의 눈물로 주님을 예배한다면 그처럼 보람된 일이 또 있을까요?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 맡기고 예배 때마다 은혜를 받고, 또한 말씀 안에서 인도를 받고 있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통틀어서 천국을 우리 후대들에게 보여주시고자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의 삶을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어린아이처럼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신앙생활에 늠름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을 가진 자들입니다. 제자들이 아직 세상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투고 있는 것은 저들이 돌이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 주 동안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우리에게 돌이킴이 있길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주님이길 원합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셔서 십자가사랑을 베푸신 내 주님이길 원합니다. 그래서 이제 내 삶을 돌이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천국을 즐거워하며, 주님의 관심에 내 관심이 되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전부 불안과 걱정, 다툼과 미움뿐인 세상에서 천국을 보여주는 인생이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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