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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6-04-17 주일 1부 예배



* 방송장비의 문제로 영상 녹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2016-04-17 주일1부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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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_요한복음4:44

 

여러분은 우리나라에 무속인들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모르시지요? 실제로 이번 총선 같은 때는 정말 많은 무속인들이 활약을 합니다. 저도 예전에 무속인들을 많이 만나봤습니다. 정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 신앙도 무속신앙 같은 모습을 많이 봅니다. 무속신앙이 뭘까요? 단지 무당을 찾아가는 것인가요? 아니지요. 무속신앙의 핵심은 인간이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신을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은 바꾸지 않고 신을 불러서, 심지어는 전문적인 신을 불러와서 자신의 문제나 행복 등 원하는 것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뭐지요? 신앙은 뭐지요?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구원의 길을 알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자기 부인, 자기 부정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에 나를 맞추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 맥락으로 보니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_요한복음4:44’

 

왜 높임을 받지 못할까요? 예수님을 어릴 때부터 봐왔던 그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쉽게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모교회에서 신앙훈련을 하고 신학교를 다녀왔더니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권사님 장로님이 승주야 승주야 하다가 전도사라 말씀하기 힘든 거지요. 제가 설교하면 얼마나 웃겼을까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제가 전한 말씀도 그렇게 받아야 하나요? 아니지요. 그런데 저희 제일 어른 되시는 장로님께서 시간을 내서 강단에 올라 말씀해 주신 거예요. 오늘부터 주의 종이라고 자신부터 생각하고 그렇게 섬기겠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단순히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님들이 은혜 받으라는 거지요. 정말 하나님을 믿으라는 거지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어린 예수인가요? 오랫동안 함께 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잘 믿지 못했습니다. 겨우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표적이나 기적을 보여주면 우와 대단한 분이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온전한 믿음을 가지길 요구하고 계십니다.

 

. 무엇을 믿고 계시나요?

 

1. 갈릴리 가나에서 기다린 왕의 신하_요한복음4:46-47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_요한복음4:46-47’

 

오늘 갈릴리에 가니 가버나움에서 온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왕의 신하면 대단한 신분입니다. 그런 그가 34Km나 되는 거리를 8~9시간 가까이 걸어서 온 것입니다. 그 자체로 대단한 믿음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이면 죽음의 병에 걸린 자기 아들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도 그럴 수 있지요. 문제가 있으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새벽기도를 빼먹지 않고 한다든지, 내 모든 것을 다 드려서 믿음의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죽을병이 걸리면 더 그렇습니다. 정말 집중하여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믿음인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암에 걸린 어떤 분을 보았습니다. 암에 걸리고 나서 그분이 하신 고백을 저는 직접 들었습니다. 암이 낫고 나면 신앙생활을 바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분은 암에 걸리기 전에 생활이 문제가 많았습니다. 술집도 자주 가시고, 여자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걸 치료기간에는 끊었지요. 회개도 했습니다. 왜지요? 병을 치료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제가 충격 받았습니다. 병이 치료되자 점차 교회도 멀어지고, 결국 예전처럼 술과 여자로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럼 그분이 병에 걸릴 때 열심히 했던 신앙은 뭐지요? 그것이 바로 무속신앙입니다.

 

2. 표적과 기사를 원하는 사람들_요한복음4:48

 

구원의 확신이 우리 확신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은 유월절동안 예루살렘에 머무르시고 다시 갈릴리 가나에 가셨습니다. 가나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으로 표적을 행하신 곳, 즉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동네입니다. 주님께서 가나에 오셨다는 소문이 나기 무섭게 가버나움에서 왕의 신하가 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자기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 먼 거리를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자기 집으로 가자고 간청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왕의 신하에게 나무라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_요한복음4:48’

 

이 남자는 주님의 능력이 필요해서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온 것입니다. 사실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이며, 칭찬받을 믿음인가요? 그런데 주님은 오히려 꾸짖으셨습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는 구나!’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섬겼는데 예수님은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표적과 기사를 원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곧 무속신앙입니다. 그것 때문에 열심히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신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사경을 헤매는 자식을 통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생각하지도, 생각해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들의 병만 나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그것이 대단한 믿음인지 모르나 주님이 보시기에는 하찮은 무속신앙에 불과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렇게 지금은 다들 표적과 기사만 원하는 시대입니다. 교회나 목회자 역시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 성도들에게 시원한 답처럼 느껴지니 잘못된 표적과 기사를 전했습니다. ‘성공하는 것이 예수 잘 믿는 거야, 병 고침 받는 것이 예수 잘 믿는 거야.’ 그래서 많은 분들이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살아가는 진짜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걸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실 때마다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표적을 구하는 그들에게 표적을 보여주실 때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결국 다 떠났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잡히실 때,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다 떠났습니다. 그것이 무속신앙의 모습이지요. 예수님은 그걸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가정문제가 심각할 때 그것을 두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해결해달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해결되니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처럼 뜨겁게 깨어있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정문제 해결하시는 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늘 표적과 기적만 원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3. 신하의 깨달음_요한복음4:49-53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_요한복음4:49-53’

 

그렇게 표적과 기사를 원한 신하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그 말씀을 하실 때 신하는 낙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실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먼 거리를 와서 예수님을 모시고 가야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돌아가서 다시 모시러 올 것을 생각하면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원하는 응답을 두고 기도 했는데 원하는 대로 응답이 오지 않으면 낙심하거나 좌절합니다. 심지어 예배드리는 것 마저 흔들립니다. 마치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으면 가출하는 자녀와 같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그 신하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갔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믿는 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믿을 때 깨닫게 됩니다. 이해하고 깨달아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에 순종하길 요구하십니다. 신하가 그걸 깨닫길 바란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잘 깨달아지는 것이 순종하는 것인줄만 알았습니다. 남들이 볼 때 메시지를 잘 이해하고 있으면 그래서 머리가 좋으면 잘 깨달으니 그것이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만 보니 내 삶에서 말씀에 순종은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언약 맺으시길 원하십니다. 그 말은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살도록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할 수 있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거룩하신 주님 때문에 거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거룩하신 주님이 내 삶에서 완전하게 인도하실 수 있도록 우리는 모든 권리와 주장을 내려놔야 합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예를 들어, 저희 집이 망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는데 망했습니다. ‘뭐야 왜 이래, 예수님을 믿었는데 왜 이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하게 말이지요. 하나님은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 저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듣지 못했을 뿐이지요. 하나님은 다른 신실한 계획이 있으셨는데 저는 오직 성공만 생각하니 들리지 않습니다. 해도 해도 안 되니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저에게 완전한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창조주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완전하게 엎드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나 평안 하든지요, 얼마나 좋든 지요. 세상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집이 다 망해도 괜찮은 것입니다. 솔직하게 집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헨리 나우웬 목사님이 쓰신 두려움을 떠나 사랑의 집으로라는 책에 보면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문제들, 고난들, 어려움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한 도로 표지판 같은 거라고 하고 있습니다. 정말 맞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의 여지를 남겨두고 말씀을 듣습니다. 조금의 여지를 남겨두고 묵상합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한 자들의 모임가운데 나오길 원하고 계십니다. 그랬더니 보입니다. 그전에는 문제만 보였는데, 그전에는 저주받았다고만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뭐가 보이지요?

 

4. 자기와 온 집안이 믿더라_요한복음4: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_요한복음4:53’

 

그렇게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갔던 신하는 예수님이 가라고 한때가 아들의 열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간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서야 믿었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믿음은 우리가 순종했을 때 오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문제를 통해, 어려움을 통해 예수님을 찾았지만, 나중에는 문제와 어려움이 아닌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진짜 믿음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질 때라야 아들의 병이 치유되는 정도가 아닌 온 가족이 죄와 저주, 사망에서 벗어나 구원받고, 천국백성으로써의 참 자유를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구원이 보입니다. 천국이 보이지요. 영혼이 보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그분을 우리 인생의 기적과 표적을 삼아 살아갈 때 우리 마음도, 우리 삶도 참 변화가 있고, 더 나아가 우리 가족도 변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무리들이 이야기하는 표적과 기사를 쫓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진짜 표적을 보지 못하는 무리들에게 오늘도 진짜 표적인 자기 자신 그리스도를 보도록 깨달음을 주신 것입니다.

 

. 믿음의 자리에 계시나요?_요한복음4: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_요한복음4:54’

 

어떤 신자가 산행을 하다가 미끄러져서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마침 거기에 나무뿌리가 있어 그걸 잡아 죽진 않고 매달렸습니다. 그 분이 그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그런데 신기하게 음성이 들렸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좋았던지 모르지요. ‘그래 내가 살려 줄 테니 네가 잡고 있는 뿌리를 놓아라.’ 갑자기 근심이 생겼습니다. 가만 생각하던 신자가 거기 하나님 말고 다른 신 없어요?’ 이랬다는 거지요. 우리가 그렇습니다. 믿음은 어려움을 만나보면 그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문제를 만나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믿음의 자리에 있길 바랍니다. 무속신앙 같은 믿음이 아니라 제대로 된 믿음의 자리 말입니다. 그 믿음이 나를 살리고 가족들도 살리게 됩니다. 무속신앙 같은 믿음은 가족을 절대 살리지 못합니다. 나도 살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인 삼아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 신앙은 모두를 살리게 됩니다. 왜 그렇지요? 진짜이기 때문이지요. 믿음의 자리가 무엇인가요? 여러분 이 예배 시간에 어떤 표적과 기적을 바라고 오셨습니까? 그러나 진짜 표적과 기사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삶입니다. 그것은 너무 어렵거나 너무 쉽거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저는 문제나 상황 같은 것이 중요했습니다. 포럼을 할 때도 그것이 먼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씀이 마음에 담겨져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상황도, 환경도 해석하고 적용합니다.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손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는 저도 아직 무속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손해 봐도 상관없다가 아니라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믿고, 그 아버지가 성육신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내게 오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알고 나니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제가 가난했던 것도 감사고, 제가 조금 실수가 많았던 것도 감사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희 부모님도, 가정의 문제도 전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주님을 의지할 수 있었고, 그것 때문에 어려운 가정을 마음에 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더 감사한 것은 예배드리게 하셨습니다. 제 삶에서 주님을 경외하면서 살게 하셨습니다. 제가 그렇게 사니 죽고 사는 문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더 이상 크게 제 신앙을 좌우지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사십시다. 교회의 예배 시스템을 조금 바꾸려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예수님을 믿으십시다.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을 보지 마시고 그것을 표지판 삼아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믿음의 자리를 지키시길 바랍니다.

 

주님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문제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병을 고치고, 기적을 베푸는 표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마치, 무속신앙처럼 내가 원하는 것만 응답해주시는 분으로만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고 계시네요. 진짜 표적과 기사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이었네요. 예수님을 믿고 보니 모든 문제나 병, 어려움은 우리에게 믿음의 자리로 안내하시는 주님의 사랑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주세요. 그리고 주님을 만나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어 믿음의 자리에 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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