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016-06-19 주일예배


가스펠워십 다운로드 http://bit.ly/1sMtSTl



 . 눈이 어두워지면_요한복음7:32-36, 창세기4:6-7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리라_요한복음7:32-36’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늘 선택해야 합니다. 무얼 할까? 누구와 결혼할까? 어디로 이사 갈까? 그뿐 아닙니다. 매일 선택해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볼까? 어디다 쓸까? 화를 내야 하나? 참아야 하나?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이렇게나 우리 인생은 크고 작은 선택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군대에 다녀와서 한 가지 잘한 것이 있다면 기도 해야겠다라고 선택을 한 것입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깨달은 것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학교를 가서 얼마나 교만했던지 큰 교회를 탐방한다고 돌아다니고, 나에게 맡겨진 교사나, 청소 같은 헌신 이런 것들이 정말 하찮고 부끄럽게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를 키워주신 박이석목사님께서 승주야 너를 따라 살면 망한다. 주님을 따라 살아야 한다.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지금은 그것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보이지 않지만 나중에 알게 될 거야. 항상 앞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렴저는 사실 그 당시에는 그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군에 가서 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주님을 따라 산다는 말이 무엇인지, 말씀을 따라 산다는 말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제 인생을 인도해오셨습니다. 어떤 선택을 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 길이 내가 사는 길인가? 이 길이 살리는 길인가?’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십니다. 저는 정말 감사하게도 그 선택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후회가 없습니다. 손해는 있을지 몰라도 늘 감사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_창세기4:6-7’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죄입니다. 죄는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거짓말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시지요? 아닙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죄는 전부 숨어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착함 뒤에 숨어있고, 봉사 뒤에 숨어있습니다. 죄는 우리의 규모 있는 삶 뒤에도 숨어있습니다. 심지어는 종교생활, 신앙 뒤에도 숨어있습니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결정 뒤에도 숨어있고, 착한 마음 뒤에도 숨어있습니다. 숨어서 뭘 하지요? 죄는 선을 선택하지 못하게 합니다. 죄는 기본적으로 분노가 있습니다. 분노가 있다는 말은 내 감정, 내 마음, 영혼까지 빼앗긴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과 더불어 살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죽음의 길로, 어둠의 길로 가게 합니다. 은밀하게 문 앞에 엎드려지게 만듭니다.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못 들어가게 합니다. 그 문을 보지 못하게 눈을 어둡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왜 은혜여야만 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왜 은혜를 주시려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려고 했는지, 그것은 은혜 아니면 절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죄를 짓기 시작하면 은혜와 멀어지는 이유입니다. 분노가 생기면서 은혜와 멀어집니다.

 

. 왜 은혜여야만 하는가요?

 

1. 답답한 행보_요한복음7:25-29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_요한복음7:25-29’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행보가 너무 답답해 보입니다. 뭔가 확실하면 좋겠는데 지금 내게 확실한 답을 주시면 좋겠는데 답답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리고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냥 구원주시면 되지, 그냥 은혜주시면 되지, 그냥 축복주시면 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자기 위주로 살아갑니다. 왜 예수님이 저렇게 하시는지 진지하게 질문하지 않습니다. 교역자 생활을 하면서 개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여쭤봤지만 한 번도 예스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합리적으로 맞아떨어지고, 마음에 확신이 들었지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결정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행동하고 결정합니다. 너무 쉽게 감정이나 마음을 따라 갑니다. ‘과연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 과연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 질문하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쉽게 답을 해주지 않아 답답하기에 그것을 참지 못하고 결정해버리고 움직여버립니다. 제일 마음이 아픈 것은 신앙을 포기하는 분들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바로 앞에 예수님이 계시는 데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이유가 그럴 듯합니다.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답답하다고 합니다. 예배는 답답하다고 합니다. 어떤 분이 힘들어 하셔서 심방을 갔습니다. 주중에 말씀을 다시 들어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들을 시간이 어디 있나요? 정말 먹고 살기도 바쁘고 힘든데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너무 긴 거 아니냐고요? 제가 답변해드렸습니다. 50분이 길다구요? 드라마는요? 카페에서 남 이야기하고, 수다 떠는 것은요? 아니 당신은 지금 너무 인생이 고통스럽다면서요? 그런데 그들이 진짜 답답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2. 무리들의 쟁론_요한복음7:40-44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는 하며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_요한복음7:40-44’

 

무리들은 끊임없이 쟁론을 합니다. ‘저 사람의 능력을 봐라. 말하는 것을 봐라. 대단하지 않냐.’ ‘아니다 저 사람은 나사렛에서 자란 것을 내가 들었다. 봤다.’ 그리스도가 맞다. 아니다. 그렇게 쟁론을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맞다. 틀리다. 말씀을 들으면 봐라 네 행동이 잘못되었지. 내가 맞잖아. 마치 무당을 믿는 것처럼 그렇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믿지는 않습니다. 로마의 군대가 무서워 나서지 못합니다. 쟁론은 잘하는 데 믿지는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쟁론 대상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믿음 대신 쟁론이 더 많습니다. 무리들처럼 우리도 늘 쟁론을 합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는 노력보다 서로 쟁론을 합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백성으로 살려는 믿음보다는 쟁론을 합니다. 세상의 것들을 가지고 말이지요. 그래서 그들이 볼 때 소망이, 빛이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자체가 목적이 되면 문제가 됩니다. 지교회 자체가 목적이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가 목적이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합니다. 연약한 성도들을 돌보고 아이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죄에서 승리하여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양육을 하고, 성도간의 교제를 하고, 은혜를 나누는 곳이 지교회입니다. 지교회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 지교회를 유지하고 사이즈를 키우고 그것이 중요할까요? 그런 것들이 전부 쟁론입니다.

여러분 개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수많은 선택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영생을 위한 선택이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이 쟁론이 됩니다. 나는 이것은 해야 해, 이것은 지켜야해,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어.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무지 예수님이 주인 되어 인도할 자리가 없습니다. 왜 그렇지요? 전부 내 뜻대로 살려하기 때문입니다. 내 뜻,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쟁론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대단한 그리스도가 앞에 있어서 쟁론해버립니다. 그러니 답답합니다. 영생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천국의 복음이 들리지 않습니다.

 

3. 예수님의 외침_요한복음7:37-39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_요한복음7:37-38’

 

이 외침이 들리십니까? 들리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이 외침은 항상 있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외치고 계십니다. 성전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듣도록 외치셨습니다. 무슨 외침입니까? 나를 버리고 예수님을 주인 삼으라는 외침입니다. 성전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어떤 사람들입니까? 로마의 속국이 되어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인생은 항상 벽을 느끼고 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문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문제라기보다 단점이기도 합니다. 연약한 것을 다 가지고 살아갑니다. 정말 그렇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 연약함을 공격합니다. 서로 공격합니다. 서로 돕고 살라고 만든 부부마저도 공격합니다. 왜 그렇지요? 희망도 없고 소망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보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시간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황도 피하고, 문제도 피하는 것을 인도라 말합니다. 상처를 준 부모를 피하고, 답답한 가정을 멀리하는 것이 기도라고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문제투성이라고 피해버립니다. 그네들끼리 모여서 잘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사상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문이 있다고 외치셨습니다. 살길이 있다고 외치셨습니다. 가정도 살리고, 문제투성인 세상도 살릴 길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역사하시면 누구든지 변화되고, 누구든지 살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는데 아무도 가서 마시지 않습니다. 쟁론 하느라 못갑니다. 내 뜻, 내 계획 때문에 예수님께 가면 손해 볼 것 같아서 못갑니다.

 

. 구원의 문 : 살려는 선택, 살리는 선택_ 요한복음10:7,9-10, 요한계시록21:24-25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_요한복음10:7’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제사 지낼 때마다 어린양을 잡아 죄사함을 받는 구원의 소망을 가졌으면서 예수님이 어린양으로 오신 것을 알면서도 믿지 못했습니다. 참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포기할 것이 너무 많아 망설이고 있는 제 모습을 봅니다. 인생의 쟁론을 하느라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제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너희가 붙잡고 있는 것들이 도대체 무엇이냐? 돈이냐? 명예냐? 전통이냐? 그런데 너희가 지금 속국이 되어 죄의 종노릇하고 있는 것은 보지 못하는구나! 여러분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잘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이고 은혜인지 몰랐습니다. 그냥 제가 믿고 제가 기도하고 제가 열심히 해서 응답받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도 응답이라고 해봤자 이 땅에서 남들 보기에 조금 잘된 것을 응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응답은 그게 아니잖아요.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들어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_요한복음10:9-10’

 

진짜 응답은 천국입니다. 제가 지금 너무 옛날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좋은 설교, 대단한 훈련 프로그램을 다 하고서도 삶의 변화가 없고,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입니다. 왜 성령의 역사가 없을까요? 천국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았다는 말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이 땅에서 잘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생각하잖아요. 아니요. 아닙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조금 잘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닙니까? 천국은 나중에 가는 곳이니까 일단 잘 살고 보자입니까? 마귀는 지금도 우리의 영혼을 도둑질합니다. 야금야금 갉아 먹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잘살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지금은 괜찮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은밀한 곳에 숨어서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의 믿지 않는 가족들이 그러고 있다니까요. 그런데 미워요? 미워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기도해야지요. 구원받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제가 신학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설교를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죽고 나서 천국 갈 확신이 없는 사람이 어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삽니까? 죽고 나서 천국에 갈 확신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보화가 있는 밭을 사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_요한계시록21:23-27’

 

이 말씀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천국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닙니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갑니다. 이 땅에서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진 자들만 들어갑니다. 만국의 영광과 존귀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뜻합니다. 이 땅에서 그것을 믿고 바라고 그것으로 즐거워하는 사람이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어린 양되신 예수님이 등불이 되어주셔서 우리를 그 거룩한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지금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둑이 있는 것입니다. 둑 아시지요? 물줄기를 막아버리는 둑 말입니다. 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큰 댐보다 작은 둑이 너무 많습니다. 생수가 흘러가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지금도 둑이 있습니다. 죄의 둑이 있고, 미움의 둑이 있습니다. 내 계획, 내 자존심의 둑이 있습니다. 은혜가 흘러들어가야 하는데 막혀있습니다. 어린양의 등불이 비춰야 하는데 우리는 늘 쟁론하고, 세상의 것들과 갈등하느라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그저 썩어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들 때문에 흔들리고, 싸우고, 마음마저 죄에게 내어주잖아요. 내 고집, 내 성질, 내 완고함 때문에 주님께 나가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런 우리를 주님이 사랑해주시러 오셨습니다. ‘저 수군거림이 얼마나 싫을까? 저렇게 쟁론하며 거리를 두는 것이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그 수모를 왜 참으셨을까?’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그러셨습니다. 우리는 천국 가는 우리 인생도 인내하지 못하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은혜 아니면 우리는 도무지 갈 수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면서 천국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 아니면 될 수 없는 일이 구원입니다.

 

주님 우리의 어두운 눈을 밝혀주옵소서. 죄로 인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우리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 깨닫게 해주세요. 천국이 아닌 지옥으로 가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세상이 좋아 예수님이 답답하고, 사람들과 수군거리며 쟁론만 하고 있네요. 마음에는 크고 작은 둑이 많아 하나님의 은혜가, 생명의 말씀이, 그 십자가의 사랑이 흘러들어올 수가 없네요. 그럼에도 주님은 지금도 외치시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으리라’ ‘주예수를 믿으라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오늘 그 외침이 들리게 해주세요. 그 놀라운 사랑을 받아드리게 해주세요. 내 고집과 완고함, 상처, 은밀한 죄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이제 예수님을 믿어 자유하게 해주세요.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천국백성으로 살게 해주세요. 이 땅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만큼 천국이 좋은 곳임을 깨닫게 해주세요. 우리의 눈을 밝혀 천국이 보여지는 인생이 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