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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6 주일예배


2016-06-26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6-06-26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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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진짜 문제_요한복음7:49-52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_요한복음77:49-52’

 

7월 추천도서는 이요셉 작가의 결혼을 배우다입니다. 읽다보니 청년들에 추천하기보다 결혼한 부부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내용 중에 아내와 남편이 주고받은 유언장이 있습니다. 이요셉 작가의 아내분이 쓴 오빠가 정말 떠나가면 어쩌지 어쩌지...’하는 부분은 그 마음이 정말 느껴졌습니다. 이 책을 5월초에 읽었고 여러분들에게 선물해주었습니다.

천국을 정말 믿는 사람, 소망하는 사람은 이 땅이 괴로우니까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너무 미워서 주님이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천국이 그 정도 밖에 안 될까요? 천국을 진짜 소망하는 사람은 사랑하게 됩니다. 어떤 책에 보니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아이들에게 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거나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을 소망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내 아내, 내 남편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사람들에게, 예수님에게, 교회에 뭔가를 얻어내려는 마음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죽어 헤어지게 되면 어쩌지 어쩌지하는 마음으로 더 사랑하는 사람이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가정은 그 십자가 사랑을 배우는 하나님 나라의 사랑학교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에 얽매여 그것을 잘 보지 못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죄를 자꾸만 들추어 우리를 멸망으로 가도록 만듭니다. 죄의 정의를 정확하게 내리기 쉽지 않지만, 제 생각에는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음에 천국을 두기 싫어하는 마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두기 싫어하는 마음이 죄가 아닐까요. 그래서 죄는 그런 자신을 만족시켜주기 때문에 끊임없이 짓게 됩니다. 자기만족이 얼마나 무서운 죄의 유혹인지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죄와 싸우는 것은 곧 자기만족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뉴스에 나온 사건 사고들을 보셨지요. 성범죄들, 심지어 아내를 죽이고, 여자 친구를 죽이는 범죄들, 감독과 여배우의 불륜 그것 모두는 자기만족 때문에 저지른 죄들입니다. 죄는 그 모습을 드러내면 정말 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와 죽기까지 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자기만족을 위해 살면 안 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자기만족에 사용하면 안 됩니다. 돈을 자기만족을 위해 사용하면 안 됩니다. 정말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은 항상 어쩌지, 어쩌지이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련회에 참석했는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냥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불신자가정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 은밀한 죄들도 많이 짓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죄짓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죄를 오해합니다. 죄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 거짓말하는 것쯤이라 생각해서 우리는 죄인이 아니야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쉽게 남을 정죄합니다. ‘저 사람은 사람을 죽였어 그러니 사형을 당해야 해, 저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네 죽어도 마땅해이렇게 쉽게 말을 내뱉습니다.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혹시 우리가 그러고 있다면 오늘 말씀은 정말 하나님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죽이려는 마귀, 살리려는 예수님

 

1. 간음한 여인_요한복음8:2-6, 신명기22:23-24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_요한복음8:2-6’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명분을 찾고자 간음하다가 걸린 여자를 예수님 앞에 데려다놓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에게 둘려 싸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여자가 간음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자연스럽게 돌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였습니다. 창녀나 고아나 과부의 친구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_신명기22:23-24’

 

그런데 모세의 율법에 간음한 사람은 죽이라고 했으니 예수님이 그 여인을 살려두라 하면 모세의 율법을 어기게 되는 것입니다. 다들 예수님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면서 예수님과 여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누군가를 정죄하고 불같이 화를 낼 때가 많았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나는 깨끗하니 그것을 가지고 남을 정죄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하니까 그것이 저에게 기준이 되어 남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면 정죄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요? 나는 천국을 가는데 너의 행실을 보니 천국을 못가는 것이 꼭 하는 짓이 그래서 그래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말씀을 귀담아 들으셔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항상 분노가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는 자들을 다 죽이려고 했습니다.

 

2.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_요한복음8:7-9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_요한복음8:7-9’

 

그런데 예수님은 그 순간 땅바닥에 뭐라고 쓰시고 일어나서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떠나갔다고 합니다. 신기하지요. 사실 그렇게 분노가 가득했던 사람들이 쉽게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떤 주석가는 추측하기를 땅바닥에 쓴 것이 그 모인 사람들의 죄였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놀라서 돌아갔을 것이다. 정황상 일리가 있는 해석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도 예수님 말씀의 권세이겠지요. 우리가 그렇게 말하면 돌로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같은 율법으로 여자를 살리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죄가 다 드러나면 사람들이 다 돌로 치려고 할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이 아는 성인이 누가 있습니까? 슈바이처 아시지요? 아프리카의 성자라고 하잖아요. 그분이 정말 좋은 일을 많이 했지만, 실제 기록에 보니 얼마나 흑인들을 차별하고 못살게 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너무 존경하고 우리의 신앙생활에 큰 도움을 준 요한 칼빈도 사람들이 죽게되는 실수를 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은 다 죄가 많습니다. 이사야가 성전에 들어가서 처음 기도했을 때 무슨 기도를 했지요? 그가 걱정하고 기도하던 제목은 나라였습니다. ‘이 나라가 어떻게 될까? 이 민족이 이렇게 우상을 섬기고 타락해서 어떻게 하나?’ 기도했는데 그때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그때 회개하였습니다. ‘나는 죄인이구나. 나는 죄인이구나.’ 그렇게 절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이사야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오실 메시야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스스로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사야서를 구약의 복음서라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사야는 백성들을 살리려고 했습니다. 나라를 살리려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는 용서해주고 사랑해주고 이사야는 그 모진 고통을 다 겪으면서까지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정말 믿게 되면, 정말 천국을 소망하게 되면 하나님이 정말 내 죄를 사해주고 구원해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남에 대한 정죄가 사라집니다. 우리 안에 살리는 영이 생깁니다.

 

3. 죽이려는 마귀, 살리려는 예수님_요한복음8:10-11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_요한복음8:10-11’

 

마귀는 우리를 죽이려는 영입니다. 그래서 늘 남의 허물을 보고 정죄만 합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더 율법적입니다.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일제 말 한국교회의 실화입니다. 수석장로님의 아들이 불신자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교회가 난리가 났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율법이 심한 시대입니다. 교회 안에 드럼도 놓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온 성도가 다 들고 일어나서 그 장로님을 징계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징계를 하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주일에 설교를 다 하고 징계를 하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청년에게는 아버지가 둘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육신의 아버지이고, 한사람은 영의 아버지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아무개 장로이고 영의 아버지는 바로 저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의 죄는 육신의 죄는 아닙니다. 죄라고 하면 영적인 죄가 되겠는데 그래서 징계는 제가 받겠습니다. 앞으로 저는 사역과 설교를 멈추고 근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서야 성도들이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구나.’

제가 막 목사가 되었을 때 어떤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 너무 술을 좋아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 때문에 교회 분위기가 너무 안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쫓아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만 없으면 교회 분위기가 너무 좋겠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해봤습니다. 내 가족이라면 쫓아 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답변을 했습니다.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 했으니 그분이 잘못했고 벌을 받아야 하겠네요. 쫓아내야지요. 그런데 선생님 성경에 사랑하라 하셨는데 사랑하지 못했으니 우리도 벌을 받아야 하겠네요.’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은 끊임없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려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귀의 종노릇 할 필요가 없잖아요. 마귀는 우리에게 분노를 주고, 정죄하게 만듭니다. 남편, 아내, 자녀에게 화를 내면 자녀가 깨닫습니까? 그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서 화를 내는 거잖아요. 바리새인들이 왜 분노가 가득 찼고, 여인에게 돌을 들었을까요? 정말 죄에 대한 분노였을까요? 정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분노였을까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분노는 사람을 절대 살릴 수 없습니다. 영혼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돌을 들고 화를 내면 그 여인이 변화될까요? 돌로 치면 그 여자가 회개할까요? 사람들이 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돌아가고 나서 예수님이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저도 어릴 때 습관적인 죄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고 오히려 더 빠져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그것이 사라졌습니다. 한 친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사람인데 자꾸 제 주변에 있는 것입니다. 저에게 찾아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분을 저도 미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번 미우니 계속 미운 일만 보였습니다. 저에게 하는 말도, 행동도 계속 거슬렸습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저에게 편지를 썼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노력해도 안 되고, 결심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죄를 짓고 있는데 정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저는 도와줄 것 같아서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도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해 얼마나 화가 나셨을까요? 그런데 화를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어떻게 배웠습니까? 화는 사람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분노는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분노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합니다.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거예요. 그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살 수 있는데 그것이 유일한 길인데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서 그 사랑을 소개하지 않으려 합니다.

 

. 살리는 믿음, 살리는 신앙생활_로마서5:1-2,8 이사야38:5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_로마서5:1-2’

 

우리 죄를 예수님이 다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창녀도, 고아도, 과부도, 오늘 간음하는 여인도, 다 의인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난 상태라면 다른 사람을 그렇게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반대겠지요. ‘어쩌지, 어쩌지안타까워 할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용서다그리고 용서한다는 것은 교제가 회복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맞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로는 용서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만나기도 싫고 대화하기도 싫으면 용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랑도 모르고, 용서도 모르는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사실 죄를 짓고 있는 줄도 모르는 저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교제하시려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그 사랑을 만났는데 어찌 분노하고 화를 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_로마서5:8’

저는 오늘 설교가 참 저의 간증 같습니다. 저는 이 여인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돌에 맞아 죽어도 수십 번은 더 그랬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제 힘으로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마귀의 올무에 사로잡혀 계속 죄를 짓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제게 오셨습니다. 처음에 교회를 다닐 때 그걸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예배드릴 때마다 주님은 제게 찾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한번 드리던 예배가 두 번, 세 번 드리게 되었고, 금요일 밤에 기도하러 가게 되었고, 새벽마다 일어나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무지 변화될 것 같지 않던 제 마음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제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하셨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도 덮는다 하잖아요. 정말 그렇습니다. 사랑하기 힘들지요? 사랑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우리 가족 중에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살리려는 예수님을 바라보면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은 살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 할 수 있을까요?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네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_이사야38:5’

 

다들 먹고 사는 것이 힘들다, 일하는 것이 힘들다, 인간관계가 힘들다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것들이 힘들까요? 진짜 예수님을 만났을까요? 종교행위가 아닌 예수님을 바라보고 만나는 신앙생활을 하면 사랑하게 됩니다. 묵상일기를 제대로 잘 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잘 쓰니까 그게 또 남을 정죄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게 만듭니다. 내 만족을 위해 선택하게 만들지요. 그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와 가까워지면 기도가 사라집니다. 주님을 의지할 필요가 없잖아요.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 내 부모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까? 눈물로 기도해보셨습니까? 어려움이 있는데 그냥 기도하지 않으려 합니다. 내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데 귀찮아합니다. 우리는 살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살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매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바라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며 삽시다.

주님 자기만족을 위해서 죄와 타협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들도 그렇게 속고 있지는 않는지요. 죄가 추하게 드러나 서로 정죄하고 비난하고 싸우는 세상입니다. 그렇게 마귀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걸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세요. 우리를 살리려고 십자가 사랑으로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 역시 자기만족을 쫓아 죄와 타협하려 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남의 허물을 보고 죽이려고 돌을 들고 살지는 않는지요.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해주세요.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기만족을 선택하지 않고 살려는 믿음을 선택하게 해주세요. 그 사랑으로 살리는 믿음을 선택하게 해주세요. 하나님은 나를 통해 우리 가정도, 교회도, 이 땅도 살리려고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세요. 주님의 사랑으로 내 자신도, 가정도, 교회도, 이 땅도 사랑하며 살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