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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6-08-28 주일예배


2016-08-28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6-08-28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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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을 주시기 위해_요한복음11:14-15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_요한복음11:14-15’

 

오늘 본문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놀라운 기적에 관한 기록입니다. 제가 부탁드린 대로 11장을 다 읽어서 오신 분들은 설교를 들으시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우리는 믿음이라 하면 내가 잘 믿는 것, 내가 열심히 믿는 것, 내가 아는 지식, 내가 하는 믿음의 행위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믿음이라 했을 때 딱 내가 정한 선, 내가 정한 기준까지입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유는 대단하다. 아무도 못하는 거 하셨네를 듣기 위해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가 삶은 계속해서 피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얽매여 살아야 합니다. 죽은 뒤가 불안해서 불안과 염려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믿음이 무엇인지 개념 정리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박영선목사님은 믿음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믿음이란 한번 약속하시면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이 되고 우리 인간이 신실하게 반응하는 태도를 믿음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의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반응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호의를 수락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왜 인간의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당신의 신실하심의 결정체인 십자가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의로 여기시고_창세기 15:6’

 

그래서 믿음의 속성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주님은 관계로 다가오십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잖아요.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_요한복음10:14’

 

주님도 나를 알고 나도 주님을 아는 것이 믿음의 관계입니다.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_누가복음4:34’

 

이 멋진 고백을 누가 한지 아세요? 귀신이 했습니다. 우리보다 예수님을 더 잘 알아요. 그렇다고 그걸 믿음이라고 하잖아요? 난 돈이 많은데, 난 능력이 많은데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러면 귀신들린 상태지요. 믿음은 지식이 아니라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계시록 3:20을 기억하셔야 해요. 두 번째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의지입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_ 하박국2:4’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지 않으면 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길을 열어주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신뢰이 반대말이 교만이잖아요. 내가 교만하면 절대 주님을 신뢰하지 못해요. 믿음의 반대말이 불신앙이잖아요.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의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할 때 자꾸 우리의 능력, 우리의 지식, 우리의 경험을 가지고 믿음을 판단하려고 하지요. 그게 절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주님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길 원하십니다.

 

.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유

 

1. 마리아와 마르다의 믿음_요한복음11:17-21,32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는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_요한복음11:17-21’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_요한복음11:32’

 

성경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나오지요? 그중에 마리아와 마르다도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위험을 무릎 쓰고 나사로의 집에 갑니다. 제자들이 말렸지요. 그 위험한 상황에 안전한 곳으로 왔는데 다시 위험한 곳으로 가기로 결정하십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마을 입구에서 기다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가만 보면 정말 믿음이 좋은 말 같습니다. 이것도 대단한 믿음이긴 합니다. 예수님이 계셨다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거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나사로는 살리지 못한다는 불신앙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아예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빠가 죽었는데 무슨 정신이 있었을까요? 그러나 마지못해 마리아도 예수님께 나옵니다. 그리고 마르다와 같은 말을 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원망입니다. 나사로가 죽은 것이 예수님 때문일까요? 우리가 이런 식으로 주님을 원망할 때가 참 많습니다. 믿음이 좋은 척하면서 경제문제가 오면 원망하고, 자녀 문제가 오면 원망하고, 조금만 문제가 와도 신앙을 포기하고 믿음을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불신앙이지요.

 

2. 예수님의 눈물_요한복음11:35-36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_요한복음11:35-36’

 

많은 유대인들이 나사로의 집에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모였는데 거기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여 흘린 눈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나사로가 죽어서 안타까워서 흘린 눈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나사로든 그의 가족이든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믿음에 문제가 왔기 때문에 그걸 가슴 아파 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도 문제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연약하여 넘어지고 또 넘어지더라도 주님이 우리를 위해 눈물 흘리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빛이 아닌 어둠으로 갈 때, 생명이 아닌 죽음으로 갈 때, 의가 아닌 불의로 갈 때 주님은 이렇게 가슴 아파 하고 계십니다. 군대에 있을 때 저희 부대에 이상한 친구가 하나 왔어요. 자살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하고, 탈영도 시도했습니다. 그 친구도 이렇게 하면 어렵게 되고, 부대로 어렵게 되니까 대장님이 부르셔서 저보고 좀 맡아달라는 거예요. 그 친구에게 복음을 전하고 타이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계속 문제를 일으키니까 저도 군인이잖아요. 이걸 어째? 하는 마음이 계속 들어요. 완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기도하게 하셨어요. 영혼을 보게 하셨어요. 어느 날 이 친구랑 근무를 서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 친구가 그날 선배가 도움 주신 것들이 정말 고맙다고 하는데 저도 그날 간증을 했지요. 그렇게 예수님을 그 날 밤에 진심으로 마음에 모시고 같이 기도하였는데 지금은 서울의 모 교회 집사님이 되었습니다.

 

3. 예수님의 기도_요한복음11:40-4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_요한복음11:40-44’

 

예수님답지 않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십니다. 이유는 그들을 믿게 하려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는 것에 대해 모든 것을 다 하셨습니다. 믿음은 그렇게 중요합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그리스도라 해도 믿지 않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수영을 할 줄 모릅니다. 그렇다고 물을 비난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제가 즐기려면 수영을 배우면 됩니다. 물이 위험하다고 다 없애면 어떻게 되지요? 우리가 마치 그런 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을 통해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으며, 누릴 수 있습니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합니다. 제가 전도사를 할 때 고3 아이들이 너무 불신앙을 많이 하고, 눌려있었습니다. 우리교회에도 고3이 많으십니다. 남들이 놀 때 공부해야 하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이 들까요? 전 어려운 시기에 미래가 불투명 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사실 제일 은혜 받을 때입니다. 믿음은 죽음 앞에 섰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 가장 힘들 때 진심으로 기도해보셨습니까? 무엇인가를 얻거나 잃거나 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앞이 깜깜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낙심이 될 때, 너무 무능하게 느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고 생각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새벽예배를 갔습니다. 기도할 힘조차 없을 때 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저에게 내가 널 사랑한단다하는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넌 지금 나에게 신세를 한탄하지만, 너는 지금 복음을 믿지 않고 있구나.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있구나.’ 전 의자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차디찬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제 문제에 빠져서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아빠 그리고 가족들이 생각났습니다. 제 환경에 빠져서 낙심하고 있을 때 복음을 모르는 전 세계의 죽어가는 영혼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정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나오는데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습니다. 믿음이 딱 생겼습니다. 전 그 뒤로 한 번도 환경이나 상황 탓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나와도 환경은 그대로잖아요. 가정 문제도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괜찮았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확신으로 생겼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저는 그때부터 최선을 다했습니다. 돈이 없어도 최선을 다해 헌금했고, 머리가 나빠 성적이 안 나와도 새벽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책 사볼 돈이 없어서 그냥 서점에 가서 하루 종일 서서 책 읽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 저는 복음을 믿는 믿음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얻었습니다. 믿음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처럼 고행을 해서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노력해서 받는 것도 아닙니다. 믿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믿지 못했지요. 자기 것이 있어서 믿지 못했지요. 아직도 내 의가 남았기 때문에 기도할 수 없는 거예요.

 

. 믿음의 삶_히브리서12:1-2,베드로전서1:3-9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_히브리서12:1-2’

 

보십시오. 믿음은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죄를 벗어버리고 주님께 가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믿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이 복음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중에 천국 갈 때 쓰는 티켓정도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할머니는 전쟁 중에 남편을 읽고 너무 가난하고 어려운 삶에서도 하나뿐 하나뿐인 아들을 최선을 다해 키웠습니다. 그 아들이 너무 공부도 잘하고 그래서 나중에 미국으로 유학을 간 거지요. 유학을 가서 미국에서 정착을 했습니다. 아들이 성공했으니 어려움 속에 있는 어머니를 위해 돈을 보내주겠지 했는데 보내주지 않아서 할머니가 계속 어렵게 살았어요. 동네 사람들도 다들 그 아들을 욕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아들이 계속해서 매달, 매달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그 편지와 함께 수표를 보냈다는 거예요. 그 수표가 돈인 줄 몰랐던 할머니가 편지와 함께 수북하게 수표를 쌓아놓았다는 거예요. 그 많은 돈을 놔두고 계속 해서 궁핍하게 산거예요. 이것이 지금 우리의 믿음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요?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거예요. 믿음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거예요. 지금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이 엄청난데 그냥 그리스도인들이 궁핍하게 사는 거예요. 예수님을 믿으면 죽음의 권세도, 어둠의 권세도 다 이기는 엄청난 능력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늘 죽을상을 하고 삽니다. 속 좁은 사람으로 한번 누군가를 미워하면 평생 미워하며 살잖아요. 복음의 능력을 그런 식으로 수북하게 쌓아놓고 궁핍하게 사는 거예요. 하나님과 원수 되어 영혼이 피폐하여 죽음이후를 두려워하며 살던 사람들이 복음으로 완전하게 새롭게 되어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살게 되는데 그 믿음이 내 삶에 어떻게 영향이 안 미치겠습니까?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_시편34:8’

 

맛보아 알지어다. 맨 날 맛을 보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만 듣고 잘났다 잘났다 하는 마음으로 교회만 다닐 것입니까? 아니잖아요. 이제 나도 도전을 해야지 하고 이 자리에 계시잖아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툰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_베드로전서1:3-9’

 

광주에서 사역할 때 어떤 집사님이 이사를 오셔서 저희 교회에 오셨어요. 제 교구에 편성이 되셨는데 심방을 가서 보니 젊은 집사님이세요. 그런데 가만 이야기 해보니까 모든 말이 전부 불신앙이예요. 알고 보니까 남편이 정말 술꾼이고, 아이들은 완전 밖으로 도는데 집도 엉망이고, 이 사람이 포기를 했어요. 교회를 오자마자 성가대도 하고 교사도 하겠다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제가 개인적으로 사역을 잘 안하는데 그 집은 여러 번 갔습니다. ‘집사님 지금 집사님이 복음을 잘 모르는 것 같다그러면서 제 간증을 했습니다. 교회 일도 중요하고, 돈 버는 것도 중요한데 복음을 믿으면 좋겠다. 그리고 복음을 한 몇 개월 설명했습니다. 신기하지요? 이분에 그 말을 알아들으신 거예요. 어느 날 보니까 금요예배도 오시고 예배 시간에 말씀도 적고, 또 제가 가면 예배드릴 준비를 하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요? 갑자기 전화가 오셨어요. 문제가 생겼다는 거예요. 중학생 아들이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포기하고 싶겠잖아요. 그런데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우선 제가 좀 변화되어야 할 것 같아요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인 것 같아요그러더니 집 청소도 하고, 술 먹고 오는 남편도 잘 챙기고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는데 사실 그게 쉽지 않잖아요. 크리스마스 때 그 남편이 교회를 왔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방황했던지 말도 못 할 텐데 고등학교를 문제아만 다니는 대안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깨진 거예요. 그렇게 일 년이 채 안되어서 예배를 드리러 갔더니 이웃집 아줌마, 친척 동생, 자녀의 친구들을 모아놓고 복음을 전해달라고 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미 이 집사님이 복음을 다 전해 놓으셨습니다.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나중에 제가 서울로 올라올 때 만났는데 간증을 하셨습니다. 자기 마음에는 항상 남편은 죽어서 지옥에나 가라고 했다는 거예요. 아이들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알아서 하시겠지 하면서 돈 쓰고 자기도 마음대로 살아버리겠다고 하나님 앞에 불신앙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말씀을 듣는데 정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기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셔서 내 안에 함께 하시는데 나를 왜 이런 가정에 보내셨을까? 그런데 믿음이 생기더래요. 십자가에서 나 같은 것을 살리신 주님이 내 남편, 내 아이들도 살리시겠다는 믿음이 생기니 용서가 되고 오히려 미안하기까지 하더라는 거예요. 그동안 복음을 전해주지 못해서. 그래서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살기로 한 거지요. 그런데 자기 고백이 남편도 아이들도 문제가 아니라 제가 변화되어 살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 집사님 얼굴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기쁨이 없고, 감사가 없고, 은혜가 없다면 아직도 믿음이 아닌 세상의 것으로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입니다. 그래서 타협을 하게 됩니다. 마리아 마르다처럼 말입니다. 믿음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고, 남들이 이해 못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무한도전에서 도산 안창호선생님에 대해 나오는데 제가 많이 울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여 자기 삶을 온통 독립에 힘을 쏟았는데, 정말 어려운 환경도 문제되지 않고, 사람들이 포기한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아요. 양반 출신도 아니신데 나라를 사랑하니 훌륭한 사람이 되어 후손들이 다 존경하고 또 불가능한 일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깨우고 다니셨지요. 솔직하게 우리가 그 정도와 비교 안 되잖아요. 정말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다면 우리 삶은 달라져야 합니다.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주님 믿음의 삶을 살길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서 죄와 저주, 재앙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이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셨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세상과 타협하고, 문제와 타협하고, 내 감정과 타협하여 살고 있습니다. 복음은 서랍장에 넣어놓고 천국 갈 때만 필요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 삶은 믿음의 삶이 아닌 불신앙과 염려, 근심, 불평, 불만, 짜증, 원망이 지배하였으며, 세상에 살아가면서 세상의 영향을 받고 사는 종교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복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믿는 믿음을 회복하길 원합니다. 복음의 능력을 맛보아 주님과 관계가 회복되어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삶이 회복되길 원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복음을 증거하고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시키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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