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1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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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불신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_요한계시록3:14-22
우리는 지금 불신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귀가 얼마나 영악한지 근본적으로 우리의 믿음을 저해하고자 사회 자체를 불신 사회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이기심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기심은 너무 무서운 마귀의 무기입니다. 이기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 누구와도 함께 하지 못합니다. 이기심은 사회 곳곳을 병들게 만듭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이기심들이 너무 만연해 있습니다. 겉으로는 깨끗한 척 하면서 뒤로는 부정과 부패가 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대표적입니다. 국민을 사랑한다. 국가를 사랑한다. 심지어는 정말 깨끗하게 하겠다. 그렇게 당선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실망스런 소식을 전해옵니다. 아내 이름으로, 아들 이름으로, 친척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하였는지 모릅니다. 전부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기심의 결과는 무섭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들은 평생을 메시야를 기다린 민족입니다. 그러나 막상 메시야가 왔음에도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한 이유들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메시야라고 온갖 기적과 표적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다음 주에 설교하겠지만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도 하셨습니다. 기적과 표적이 믿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이미 자리잡아온 전통과 관습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 해도 그것을 어길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백성은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고통을 당하는데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은 그들과 타협하여 자리와 명예, 부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엄청난 이기심이 그들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그것 때문에 자신들이 빛에 있는지, 어둠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불신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_요한계시록3:15’
한빈이가 이제 8개월인데 크면 얼마나 컸다고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합니다. 위험한 것이 있으면 부모는 못하게 하지요? 울고 그러니까 설명을 해줍니다. 물론 듣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해봤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볼 때는 어떨까? 우리는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교만한지 저는 신앙을 다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_요한계시록3:17-20’
이 말씀은 불신자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쓰라고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즉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문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함께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신앙은 완성이 없습니다. 바울은 섰다 하면 넘어질까 주의하라(고린도전서10:12)고 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관계는 완성이 없습니다. 부부사이에도 이기심이 들어와 신뢰에 문제가 생기면 갈라서게 됩니다. 법적으로 갈라서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내가 이정도 했으면 된 거 아니야.’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신앙도 같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10년을 믿었으면 더욱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20년을 믿었으면 더욱 더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30년을 믿었으면 오직 주님만 사랑해야지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러질 못했습니다.
Ⅱ.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1. 선한 일을 보고도 돌로 치려는 유대인_요한복음10:32-3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_요한복음10:32-33’
유대인들은 그걸 몰랐습니다. 얼마나 세상의 것으로 마음을 가득했는지 자기들은 스스로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정확하게 아셨고 보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예의 주시했습니다. 진짜 관심이 있어서 예의 주시했다면 그들은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예수님이 불편한 존재였습니다. 사라져야 할 존재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일 죄목을 찾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신성모독을 했다는 이유로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가 그리스도라고 말했을 뿐인데 그들은 그것 자체를 문제 삼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제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때리시려고 했습니다. 미친놈들이 다니는 곳이 교회라 하셨습니다. 가보지도 않으셨으면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보일 증거를 가져야겠다 생각하고 기도했습니다. 공고에 다녔지만 못하던 공부도 열심히 해보았고, 나쁜 습관들도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요구하시는 것들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토요일이면 시골에 내려가 농사일을 돕고 일요일 새벽에 올라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에 입학 할 때는 반에서 1등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제가 신학교에 간다고 더 난리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예수님을 믿으셨습니다. 사실 어머니는 제가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제가 농사일을 돕지 않았어도 예수님을 믿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기적을 보고도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으셨습니다. 왜냐면 아버지 마음속에는 세상의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버지를 욕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 마음에는 세상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믿게 하려고 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여줘도 그들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실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기적과 표적을 자랑하시는 분이 아니시잖아요. 예수님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시는 분이잖아요. 그런데도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적을 보이셨습니까. 다른 길이 없으니, 오직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 받을 길이 없으니 그렇게 믿게 하시려고 애를 쓰셨지만, 그들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세상의 것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2. 그들의 어두운 마음_요한복음10:34-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_요한복음10:34-39’
왜 그렇지요? 그들의 마음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평생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그들의 신앙이 틀렸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말로만, 행위로만, 무엇이든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 실제로 믿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하가요? 가능합니다. 1938년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치하에 있었습니다. 지금의 합동 측 교단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했습니다. 그리고 주기철 목사님을 이단으로 만들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아시지요? 그분이 무엇을 했길래 이단인가요?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말씀에 순종하여 신사가 우상이기 때문에 절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난 국가를 사랑하고 국가의 법을 지키겠다. 그러니 그 법대로 날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죄명은 교단에서 정한 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그럴 수 있습니다. 주일날 예배드리면서 아멘 하지만, 우리 삶으로 돌아가서는 아멘이 아닌 채로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번 주에 제가 수련회를 취소하면서 여러분에게 잠언 읽기를 부탁드렸습니다. 제가 진짜 독한 목사라면 숙제 검사를 다 했을 것이나 아주 착한 목사라 그러진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예상은 해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잠언을 읽을 만큼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집안일도 해야 하고, 회사도 가야하고, 아이들도 키워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하필 이번 주가 올림픽 주간이라 저녁만 되면 텔레비전도 봐야 합니다. 그것은 아주 양호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왜 읽어야 하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큰 죄를 짓는 것만이 타락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수 없고, 말씀을 들을 시간조차 내지 못하면 그것이 타락의 시작입니다. 그것이 어두운 우리의 마음입니다.
3. 요단 강 저편 사람들의 믿음_요한복음10:40-42
‘다시 요단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르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_요한복음10:40-42’
그런데 오늘 본문에 유대인과 반대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요단강 저편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베다니 지역입니다. 거기서는 요한이 아무런 표적도 행하지 않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 하며 율법은 자기들만 잘 지키는 것처럼 자랑했지만, 실제 그 마음은 사람의 평판, 재물의 욕심, 명예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실제로는 현실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나타나니 당황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단 강 건너편 사람들은 영적으로 맑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메시아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수하게 반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믿어진 것입니다. 마음에 진정으로 주님에 대한 갈망을 가진 사람이 말씀이 깨달아지고 은혜가 되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답답하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마음이 세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돈 버는 일, 여행하고 즐기고 노느라고 병이 날 정도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진정한 갈망은 없습니다. 지난 일주일동안 과연 우리는 몇 번이나 얼마나 예수님을 찾았을까요? 얼마나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였을까요? 타락은 간음을 하거나 알콜 중독자가 되거나 횡령을 하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기도 시간에 무관심 하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세상에 대한 욕심이든, 먹고 사는 걱정이든지, 건강이나 자녀들로 인한 염려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으로 마음이 가득한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볼 수도 믿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Ⅲ. 믿음의 삶_잠언4:23, 잠언23:15-19, 잠언24:5-6
저는 성도에게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 반드시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것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장차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끝날 때 하나님을 조롱하면서 ‘이 성도한테서는 아무 기업도 받지 못하셨군요. 이 사람은 이 땅에서 80년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이루라고 명하신 목적을 전혀 이루지 못했습니다’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일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_잠언4:23’
그래서 잠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오셔서 함께 하시겠다고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십시다. 우리 마음이 얼마나 예수님을 바라보고, 얼마나 그의 말씀을 사모했는지 봐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해 살고, 착하게 살고, 가정적이며, 대단한 일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 못하면 거기에 속아버립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건강 하나만 잃어버려도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버리지 않습니까? 바쁘다고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성공이 무슨 소용이고 돈이 무슨 소용입니까? 건강은 ‘건강해야지’ 생각한다고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결단과 행위가 필요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거야’라고 생각만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결국 행함이라고 야고보서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저절로 가져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갈망하고 그의 말씀을 사모함 없이 믿음이 생길 수 있을까요? 어찌 우리 마음에 가득찬 세상의 것들을 들어내지 않고 주님을 마음에 모실 수가 있습니까? 남에게 잘 보이려고 믿는 척 하는 것은 절대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_잠언23:15-19’
마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행함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십시다. 그 일에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_잠언24:5-6’
운동하나를 하더라도 계획을 세우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아니 돈을 벌고,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계획을 세우고 투자를 합니까? 그런데 영적으로 승리하는 일에 우리는 너무 대충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혼을 살리는 일을 위해서는 그냥 우리 삶을 흘러가는 데로 두기만 합니다. 마음이 병들어, 영혼이 병들어 사회가 난장판이 되었는데도 그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마귀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자들은 믿음의 삶을 위해 전략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들을 때 믿음이 생긴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말씀을 얼마나 듣겠냐 하지만, 제 아내에게 물어보시면 알 것입니다. 시간만 나면 듣습니다. 삶이 분주하고 바쁘잖아요. 그래도 저녁에는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묵상일기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홈페이지에도, SNS에도 나눕니다. 그렇게 묵상일기를 쓰면서 제 영혼도 맑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분노도 사라지고, 잘못된 것들도 회개합니다. 그러는 동안 제가 얼마나 주님 안에서 안전하고 평안한지 확인합니다. 요즘은 한 가지 더 도전하는 것이 있습니다. 말을 줄이고 있습니다. 대신 기도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도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문제를 만나면 예전에는 벗어나려고 변호하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도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문제 속에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보입니다.
여러분 전략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말을 하고 계시다면 전략을 수정하셔야 합니다. 예배가 잘 안된다면 전략을 짜셔야 합니다. 더 이상 마귀에게 당하고 살지 마시길 바랍니다. 잠언의 지혜자는 그 전략이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전술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을 지혜롭게 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정말 시간을 내어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묵상하고 묵상일기를 적어보십시오. 가족끼리 오늘 말씀을 포럼하고 은혜를 나누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의 삶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 주님 유대인처럼 겉으로는 신앙생활한다고 하나 마음에는 세상의 다른 것들이 가득 차 있어서 주님을 믿지 못하고 따르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을까요? 내 마음에 주님이 머무를 곳이 없을 만큼 세상의 다른 것들이 가득 차 있다면 오늘 그것을 들어내길 원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오셔서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해주세요. 그리하여 내 마음과 영혼이 오직 주님을 갈망하며, 사모하여 주님을 따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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