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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5 주일예배


2016-09-25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6-09-25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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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와 사랑에 빠진 소금인형 이야기

 

이번 주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이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금식은 금식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주님을 더 집중해서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애씀이지요. 금식하는 동안 말씀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금요예배 설교를 위해 시편을 읽고 묵상하는데 말씀이 제 마음을 요동치게 했습니다.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교자들의 행위를 내가 미워하오리니 나는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아니하리이다 사악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 자기의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로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들을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을 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_시편101:2-8’

 

제가 그동안 진짜 예배드리는 이유가 무엇이었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인자와 정의를 닮고자 임재를 사모했고 그 이유를 기록했는데 주님을 더욱 찬송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통합 왕으로 제왕식을 할 때 그 고백을 했습니다. 다윗의 관심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목동일 때에도 광야에서도 온갖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야말로 눈물의 골짜기를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시절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임재가 거의 매일 있다 시피 했습니다. 왕이 되니 임재가 더 자주 있을 것 같고, 하나님과 더 가까이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왕이라는 타이틀이 자신에게 독이 될 것이란 것을 몰랐습니다. 왕이 되면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어떻게 은혜를 주셨는지 까마득히 잊어버립니다.

이번 금식을 하면서 그걸 알았습니다. 제 마음에 은근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내가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데, 내가 얼마나 신경 썼는데가족이 복음화된 것도, 어떤 집회나 사역의 열매를 맺을 때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제 마음이 은혜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운하고, 분노가 생기고, 연합하지 못하게 됩니다. 흔히 우리는 크고 작든 어떤 일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감사도 찬양도 하지 않을뿐더러 오늘 다윗처럼 하나님의 원하심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이기심이고 욕심이며 탐욕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배와 기도의 겉모양에 속지 않으십니다.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저는 어떤 하나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믿음을 포기하겠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이유는 믿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무엇이든지 잘 안되었습니다. 이것을 해도, 저것을 해도 안 되었습니다. 결국, 교회를 떠나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그 분 뿐인가요? 교회를 다니면서 믿음을 포기하고 사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잘 안 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응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이 잘 안 풀린다고 그렇습니다.

 

소금인형은 염전에서 태어났습니다. 소금 인형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몰랐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바다에 가보라고 합니다. 바다는 누구일까? 묻고 물어 바다에 도착했습니다. 소금인형은 가슴이 너무 뛰어 두근거렸습니다. 그 순간 소금 인형은 바다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다에게 다가 갈 수 없었습니다.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바다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네가 바다니?’ ‘응 그렇단다’ ‘넌 뭐니? 소금인형이 물었습니다.’ ‘난 나야, 날 알고 싶다면 네 발을 나에게 담구어보렴 그러면 나를 알 수 있단다바다를 알고 싶었던 소금 인형은 바다의 말대로 발을 밀어 넣었습니다. 그러나 깜짝 놀라서 발을 뺐습니다. 발이 녹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바다야! 그래도 난 널 모르겠어.’ ‘날 믿어보렴소금인형은 너무 겁이 났지만 바다를 사랑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바다에 몸을 던진 소금인형은 형체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소금인형아, 넌 뭐니?’ ‘난 바다란다

 

과연 그분이 주님을 믿기는 했을까? 주님을 사랑했을까? ‘우리는 한 번도 십자가의 영광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여 본 적이 없을 수도 있겠구나. 주님을 사랑한다고 해놓고 한 번도 내 발 한쪽이라도 십자가의 길에 넣어본 적 없었구나.’ 그러니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계시나요?

 

.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계시나요?

 

1. 헬라인들의 요청_요한복음12:20-21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_요한복음12:20-21’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만나길 원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만나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는 의도가 무엇일까? 정말 예수님을 경배하려고 만나려고 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만나주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금식하면서 주님을 바라보려고 애썼는데 그게 잘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임직자들과 교회를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모릅니다. 운동한다고 밖에서 1시간 뛰는 것은 그렇게 짧게 느껴지는데 주님 바라보는 시간은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려고 하는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빨리 그 의도를 이루길 원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았지만, 십자가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주님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필요는 하지만 살아가는데 굉장히 큰 걸림돌일 때가 많습니다. 필요할 때 만나달라고 조르면서 정작 주님을 내 삶에서, 내 환경에서 만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 눈물골짜기에서 바라보지 않으려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계획 십자가’_요한복음12:23-24

 

그것은 예수님의 계획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라 해봤자 열심히 하다가 지쳐서 포기하거나 상처받아서 등을 돌리는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예전에 믿었어, 예전에 열심히 했어, 예전에 사랑 했어과연 믿음일까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는 지려 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만 좋고 십자가는 싫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헬라인들을 만나주지 않는 대신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_요한복음12:23-24’

 

이제 나사로 한사람을 살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십자가를 지고 너희 모두를 살리려 한다. 그것이 예수님의 계획입니다. 이걸 이해해야 합니다. 만일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 못하면 우리 역시 신앙생활의 이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구원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와 싸울 수 있고,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마음을 매일 돌이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남을 위해 죽도록 헌신하여도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힘을 모아 전도하고 선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이것이 잘 안 믿어지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미워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증오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자기 스스로 주인노릇하며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계획을 따라 산다는 것은 곧 십자가를 따라 산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믿음을 참 많이 오해했습니다. 저는 약하였습니다. 뭐든 잘하는 것도 없고 연약해서 강한 자가 되는 것이 응답이고 성령충만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강해지려고 했고 그것이 안 되면 강한 척이라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연약한 자나, 약한 자를 쳐다볼 때 무시하거나 실패한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가만 보니 예수님이 기준이 안 되어서 생긴 일입니다. ‘그래비티라는 영화 보셨습니까? 시간 되시면 한번 보시면 좋습니다. 별로 재미는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몇 년 전에 그걸 보면서 조금 충격이 되었습니다. 그 영화는 겨우 배우가 2명밖에 안 나옵니다. 시체 몇 구도 나오긴 합니다. 그런데 그 넓은 우주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서 내가 참 좁게 살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면 내 주장 말하기 바빴고, 내가 조금 더 안다고 아는 척하기 바빴습니다. 그뿐 입니까? 말씀을 들어도 내 마음에 맞는 말씀은 아멘 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엄청 기분 나빠하거나 듣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제 마음 속으로 들어오질 못했습니다. 그러니 예배가 끝나기 무섭게 말씀과 멀어진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영화 한편이 저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팔다리 다 자르고, 머리 자르고 작게 만들어서 내 주머니에 들고 다닙니다. ‘하나님 교회 부흥하게 해주세요. 성도들이 나에게 순종하게 해주세요. 안 그런 사람들을 없게 해주세요.’ 물론 그렇게 기도하지는 않습니다만,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다스리도록 축복해주셨는데 창세기 3장에서 마귀에게 속아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기 치부를 감추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짓고 나무 밑에서 숨어 지내는 아담과 하와를 불러서 가죽옷을 입히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십자가를 주셨는데 죽는 길인가요? 네 맞습니다. 내가 죽어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내가 바다에 들어가야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길_요한복음12:25-26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_요한복음12:25-26’

 

십자가를 지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그 길을 믿음으로 가면 어떤 길일까요? 우리는 매우 궁금해 합니다. 우리 교회가 아직 계척교회지만 진짜 미래를 모르겠습니다. 비브릿지가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가 진짜 어떻게 선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은 내가 망하는 것이 아니고 우주를 창조하신 광대하신 하나님을 받아드리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알량한 내 도덕심, 내 경험, 내 의를 내려놓고 나무 밑에 웅크리고 숨어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다스리라 하시는 삶으로 살려고 합니다.

사실 오늘 말씀은 베드로 같은 제자에게는 참 억울한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마태복음 4장에 보니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자신의 생계였던 그물도 버리고 배도 버렸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 나는 세상도 버리고, 내 경험도 버리고, 내 명예도 버리고 주님을 따랐잖아요. 그래서 정말 주님을 따르는 것이 억울하십니까?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 못마땅하십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먼저 베드로를 만나주셨습니다. 부활하신 베드로에게 주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것을 세 번이나 물어보셨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습니다. 십자가 사랑을 통과하고 나면 시선을 옮기라는 것입니다. 내 것, 내 자아, 내 상처, 내 이익만 보지 말고 이제 하나님이 보시는 영혼을 보라는 것입니다. 보통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은 전부 자기만 보고 삽니다. 내 집, 내 교회, 내 새끼 그러면 잘될 것 같은데 아니잖아요. 이제 좀 다른 사람의 영혼도 보고, 교회도 돌아보고, 어려운 이웃도 돌보고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내 것만 쳐다보지 말고 저 3세계도 보고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우리끼리 잘했다 교만하지 말고 이제 에덴동산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그게 엄청 손해 같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나누고 베푸는 것이 손해 같습니다.

제가 예전에 현이에게 물어봤습니다. 현이가 방송 공부를 했는데 취직이 안되고 있었습니다. 예배도 안 드리고, 교사도 안하고, 묵상도 안하고 공부했는데 말입니다. 그때가 은혜 받을 때니?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너의 계획대로 살면 참 멋질 것 같은데 아니다고. 은혜 받고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살면 손해 볼 것 같다는데 아닙니다. 어른들이 그랬습니다. 우리나라는 정직하게 사업하면 망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정직하면 안 망하는가요? 부끄럽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뭘 자랑했지요? 복음가지고 성장한 우리 교단이 뭘 했지요? 정직해서 망하는 길을 택했어야 했습니다. 그 길을 택했으면 정직해도 망하지 않는 사회가 되잖아요. 목사도 강단에서 떠들 때는 엄청 정직한 것 같으면서 실제로 살고 행정 하는 것을 보면 아닙니다. 제 모습을 아무리 돌아봐도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도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전부 말쟁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임직하시는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교회를 두고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중직자들을 훈련시키고 뭐도 하고 그런 거 왜 안 시키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신앙양심이 움직이는 대로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삶에서 애쓰는 것인 훈련입니다. 눈물 골짜기 같은 삶에서 작은 몸부림이 기쁩니다. 우리 승조집사님이 인석집사님이 오집사님이 변화되어가는 모습이 기쁩니다. 막 훈련받고 가진 척 되는 척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현장에서 우리 삶에서 믿음으로 애쓰는 것을 볼 때 기쁩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은 믿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살 때 뭐가 일어나나요? 십자가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 십자가의 기적_요한복음12:31-32,35-36, 시편101:2-6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_요한복음12:31-32’

 

십자가의 기적이 무엇입니까? 결국 믿음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의 길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언제 흑암이 떠납니까? 세상의 임금이 언제 쫓겨 가나요? 우리가 비록 지금 세상에 살지만, 눈물의 골짜기를 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보호하시고 지키십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불 가운데 물 가운데 가게 하시나요? 왜 눈물의 골짜기를 가게 하시나요? 이왕이면 평탄한 길 가게 하시지. 아닙니다. 우리가 그 길을 가야 하나님을 깨닫고, 맛보고 경험하게 됩니다. 잘 살든지, 못 살든지, 성공했든지, 못했든지, 행복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게 십자가의 길을 가는 인생입니다.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점검해야 합니다. 소리 꽥꽥 지르면 회개나 변화가 일어나나요? 말로 회개하라고 아무리 해도 변화가 없잖아요. 복음은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아는 척, 다 아는 척 말 좀 줄이고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못하지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매일 훈계하잖아요. 그런데 왜 아이들이 변화되지 않지요? 말뿐이어서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고 말뿐이어서 그렇습니다.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_요한복음12:35-36’

어떤 결과를 보고 빛으로 갑니까? 빛을 본 사람은 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릴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는 사람은 십자가의 길을 갑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나요? 이해 못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합니까? 그런데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참 오늘 설교는 결론도 없습니다. 1,2,3번 요약도 안 되는 설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기적이 일어나길 원하고 계십니까? 내 마음이 변화되고, 내 부모 형제가 예수를 믿어 천국가게 되는 것이 기적 아닌가요?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이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 지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것을 믿는다면 우리도 내 마음 속에 있는 우리의 이기심, 내 자아, 내 자존심 내려놓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믿음입니다. 그때 내 마음에 말씀도 들리고, 내 마음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더 이상 사람을 의지하지 마세요. 상처에 마음을 더 이상 뺏기지 마세요. 저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자존심 상할 일이 없습니다. 마음 상할 일도 없습니다. 뭐가 상해요. 뭐가 자존심 상해요.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도 지셨는데. 더 이상 계산이 안되요. 계산이 없어졌어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결단하십시다.

 

주님 나사로 한명이 살아난 것을 보고 기적이라 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 기적을 원하여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이 아닌 십자가의 길을 가신 주님을 보고 실망하고 낙심하여 주님을 떠나고 조롱한 모습이 마치 우리들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모두를 살리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참된 기적임을 그들은 몰랐지요. 우리 역시 십자가를 통해 구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십자가의 길을 가길 두려워하고 십자가의 영광을 원치 않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여전히 마음에는 세상이 주는 미움, 욕심, 탐욕, 은밀한 죄, 자아 등이 자리 잡고 있네요. 이제 십자가를 통과하여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길 가길 원합니다. 그 길이 고통의 길 같으나 은혜의 길이요, 죽음의 길 같으나 모두를 살리는 길 생명의 길임을 깨닫게 해주세요. 우리의 마음과 삶이 십자가의 은혜로 변화되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세상을 살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