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4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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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_로마서5:5
지난 3년 동안 예배를 무척이나 고집했습니다. 다른 조직, 사역, 그 무엇이라도 예배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배경은 ‘하나님은 우리 교회의 주인이시다’라는 것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 누구도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조직이 서툴러도 그냥 패스 했습니다. 실수를 해도 지나쳤습니다. 재정도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사례도 주시는 대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중직자가 세워지고 숫자도 늘고 4년차에 접어드니 제 마음에 해야 할 일들을 그림 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치 지난 3년 동안 신실하게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것을 찾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화들짝 다시 정신을 차렸습니다. 우리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 오로지 한분이십니다. 예배는 그 고백입니다. 예배를 빼먹지 말라 이정도가 아닙니다. 치열하게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심을 말씀으로 깨닫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것이 왜 치열해야 할까요? 세상이 완전히 타락했기 때문이며, 우리도 그 타락 속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서 그 사실을 완전하게 깨닫고 확신했습니다. 100년 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끊임없이 말씀해주셨습니다. 내가 너의 주인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음성이 헷갈렸습니다. 믿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100세가 되어서야 완전하게 믿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을 물려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들입니다. 상속해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내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상속할 천국의 축복들을 믿지 못합니다. 여전히 해방되어야 할 고난 속에서 살아갑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은 바 됨이니_로마서5:5’
표준어새번역은 ‘이 희망은 절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라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근거가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은바 됨 때문입니다. 그 소망이 인간의 약속 아니고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어제 결혼식 주례를 했는데요. 혼인서약이 인간의 약속 중에 가장 진실 되고 제대로 된 약속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지나고 딴 여자에게 눈 돌리고 외도하고 이혼하고 왜 그렇습니까? 혼인서약을 장난스럽게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죄성을 가진 인간은 그 약속을 지킬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 위에 신랑신부의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살면서 위기가 오고, 문제가 올 때 마다 성경의 약속을 기억하고 의지해서 하나님께 구하라고 합니다. 약속을 지킬 힘주실 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믿기 어려운 말이 뭐지요? ‘오빠 믿지?’ 이제는 목사도 믿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는 목사를 모델삼아서 신앙생활 하는데 저는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경을 의지하여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된다는 것은 현재완료형입니다. 과거의 행위가 지금까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무너지게 하는 유혹이나 마귀의 공격도 현재적으로 되고 있지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끊임없이 성령께서 알려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지난 3년처럼 앞으로도 갈 것입니다. 예배가 중심이 되고, 말씀이 중심이 되어 갈 것입니다. 나머지는 주어진 상황과 환경 속에서 주님께 하듯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소망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Ⅱ. 소망의 근거
1. 내가 너희를 택하였기 때문에_요한복음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_요한복음15:19’
우리가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고 주님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것이 소망의 근거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해서, 거룩해서, 의로워서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소망이 진짜 소망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 있어서 참 많은 오해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교회를 오래 다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모릅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수십 년을 다닌 장로님 권사님도 하나님을 모르면 불신자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삽니다.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의미를 아는 목사님을 만나는 것이 신앙생활에 있어 진짜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 삶은 분명 이전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면 분명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나도 모릅니다. 나에 대해 모르는데 어찌 나답게 살 수 있습니까? 내가 누구인지 알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읽지 않습니다.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시는데 듣지 않으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는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치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처럼 신앙생활을 합니다. 내가 교회를 갔고, 내가 믿었고, 내 능력으로 응답을 받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믿음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진짜 나를 찾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저는 과거를 엄청나게 부정했었습니다. 과거의 우리 집, 저의 모습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람들이 고등학교 어디 다니니? 물어보면 정말 곧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일 좋지 않은 학교였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한 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습니다. 불신 가정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날 선택하셔서 상속자로 삼아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독생자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물과 피를 다 쏟아내셨습니다. 제가 구원받은 사실을 알게 되니 학교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공부를 못해서 간 학교였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소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구석에서 걱정만 하는 아이였는데 친구들에게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전한 것이 아닙니다. 친구들을 두고 기도하며 그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이상한 학교였지만 저에게 최고였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나를 알게 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깨달아야 변화가 시작됩니다.
2. 이유가 있는 박해_요한복음15:20-24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_요한복음15:20-24’
그런데 박해가 있습니다. 박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고난을 만들어서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하시려고 한다고 오해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되길 원하십니다.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상속자로 삼아주셨는데 불신자처럼 살게 두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고난이 있고, 박해가 있냐? 세상이 타락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주님이 밉습니다. 다시 말해 죄는 거룩을 싫어합니다. 죽음은 생명을 싫어합니다. 재앙은 축복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박해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부분도 오해가 참 많습니다.
제가 아는 후배가 사업을 합니다. 아주 믿음이 좋은 친구입니다. 그런데 사업을 하는 것마다 실패를 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하나님이 시련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을 성숙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지요. 그러나 제 눈에는 사업 실패 이유가 본인 잘못 때문임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 모두 우리가 선택한 것이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박해를 받는다면 정말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이 깨닫는 순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상속자임을 몰랐기 때문에 불행하다, 힘들다, 죽겠다 그렇게 산 것입니다. 상속자는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랑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언제 박해를 받기 시작하나? 제가 예수님을 제대로 믿을 때부터입니다. ‘하나님이 가난한 너네 집 밥 먹여 주든? 엄청 심각한 가정문제 해결해주든? 머리 나쁜 너 성적 잘 나오게 하든? 너 성공시켜주든?’ 이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전부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었습니다. 그 모욕을 듣고 마음에 동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공부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 가정을 섬겼습니다. 우리는 착각해도 너무 착각합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마음대로 쓰면서 겉으로만 믿음이라 합니다. 그 결과를 두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탓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주인삼아 살 때 이야기입니다.
3. 증언할 증인_요한복음15:26-27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_요한복음15:26-27’
그러면 우리 인생은 증언을 할 수 있는 증인이 됩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한 확실한 몇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믿으면 지옥에서 천국 가는 것만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그것이 전부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천국을 가는 사람의 삶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과 삶을 분리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비극이고 한국교회가 이렇게 된 이유라 생각합니다. 복음은 우리 모든 삶의 영역에 능력이 되고 생명이 됩니다. 다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하게 회복하는 것입니다. 만족과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이 어디에 있냐? 주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주님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축복, 성공 이런 세속적인 응답만 추구하니 그걸 고난이라 하고 박해라 하고 있으니 답답한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전혀 무관한 삶을 끊임없이 살면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외친들 성령 하나님이 내 삶에 어떤 역사로 임하시겠습니까?
저는 어느 순간부터 예수님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언제일까요?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부터입니다. 그때부터 부끄러움이 사라졌습니다. 그 전에는 전도를 하러 가면 부끄러웠습니다. 저 사람이 나보다 괜찮다 싶으면 말하지 못했습니다.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상속자임이 믿어지는 순간부터 그런 것들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그럴 수 있는 모든 근거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제 인생의 백그라운드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제 삶도 풍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지난 3년 동안 헌금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성도님들께서 헌금을 조금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말씀들이 있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또 앞으로 우리 교회가 후대 교육의 비전을 두고 준비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올바른 헌금에 대해 송구영신예배 때 설명을 드릴까 생각중입니다. 일 년에 한번이 되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예산이 부족하다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이유 때문에 여러분에게 설명을 드리진 않을 것입니다. 이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분명하게 믿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예산을 줄이시면 우리 교회 이름을 바꾸면 됩니다. 광야교회. 여러분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 내 친구들에게 증언할 증인으로 나를 세울 것입니다. 여러분의 직장, 사업처, 학교, 가정에서 여러분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는 일, 공부, 모든 삶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치열하게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굶어죽는다. 병 걸려 죽는다. 교회가 어렵다.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자녀, 재산, 재능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름답게 사용되도록 청지기의 삶을 삽니다. 청지기는 하나님의 법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식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증인입니다.
Ⅲ. 두 가지 결론_로마서5:6,8,10,요한복음16:33
오늘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 두 가지 결론을 가지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사실을 인간은 생각보다 잘 모릅니다. 그런데 누구는 그것을 잘 알지요? 마귀입니다. 아는 정도라 아니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죄로 유혹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어라. 하나님께 불순종해라. 말씀을 따라 살지 말고 네 욕심대로 살아라.’ 그것이 죄의 유혹입니다. 요즘 감옥에 가 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대통령을 배경삼아 엄청난 권력을 이용해 엄청난 세월을 보냈을 것입니다. 꿈같은 세월을 보냈을 것입니다. 마음먹은 대로 다 되었습니다. 부와 명예가 자신의 손에 있다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처럼 살았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거기에 빠져듭니다. 죄의 마력입니다.
권력뿐입니까? 우리에게도 그런 것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처럼 불의한 권력은 사망을 향하여 역사하는 힘이 크지 생명을 잉태하지는 못합니다. 그렇게 사망을 향해 가는 것의 마지막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여러분 죄는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면 세상이 미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께 속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상속자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증언할 증인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소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실 때 소망이 생깁니다. 거룩한 자를 알고 예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에서 모든 지혜가 옵니다. 죄를 녹이고, 욕심을 녹입니다. 바울이 항상 잊지 않았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의 확신입니다. 사람들이 바울을 위대한 전도자라 했지만, 정작 본인은 스스로는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_로마서7:19’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_로마서7:24
바울이 죽고 싶을 만큼 죄가 그의 마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죄가 우리보다는 덜 하겠지만 마음으로는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은 그것을 절망으로 몰고 가지 않고 소망으로 몰고 가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앞으로 간 것입니다. 로마서 7장의 고백 뒤에 뭐라고 고백하지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_로마서8:37-39’
여러분 교만도 죄지만, 은밀한 죄 때문에 낙심하고 포기하고 사는 것도 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갈 때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잘못하고 그리 혼나더라도 다시 웃고 품에 안기잖아요. 그러면 부모님도 행복하잖아요. 구원의 확신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래서 항상 소망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구원의 감격입니다. 우리의 소망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_로마서5:6’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_로마서5:8’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_로마서5:10’
연약할 때에, 죄인 되었을 때에, 원수 되었을 때에, 가치 없는 죄인인 우리에게 사랑을 부어주셨고 용서를 주셨습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들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감격이 회복되어야 사랑도, 용서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무가치한 인생을 지금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가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용서하지 못할까요? 누구를 사랑하지 못할까요? 저는 우리 교회가 앞으로 구원의 확신과 감격이 넘치길 원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말입니다. 그러나 그 확신과 감격은 말씀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놀라운 소망을 주시려고 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_요한복음16:33’
✔ 주님 우리의 소망이 주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 소망의 근거는 지금도 부어주시는 십자가의 사랑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지금도 역사하시는 말씀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나의 모든 현장에서 소망을 가진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상속자로 물려받을 기업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도전하길 원합니다. 구원의 확신과 감격으로 살아가는 축복된 삶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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